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하느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그리고 가장 기쁘게 여기시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즉 개인의 구원이나 바른 몸가짐이 아니다.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성경에 분명하게 나와있다.
천사들이 무엇 때문에 가장 기뻐하는가.
바로 영혼의 구원과 관련이 깊다.
그만큼 개인의 구원이나 개인의 바른 몸가짐은 자기자신 즉 개인을 위한 것이지
하느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뱃머리가 그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그와반대로 우리는 소극적으로
자신의 바른 몸가짐이나 구원만을 바라고 있다.
전세계의 1/2이나 믿는 신이 아닌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극적으로 자신만을 위해 대쳐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당당히 전세계의 1/2 이나 믿는 신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성모님에 의해 정확하게 밝혀졌다.
그런데도 자신만을 위해 절이나 수도승처럼
아직도 자신만의 바른 몸가짐을 위해 살아갈것인가.
위의 성경구절을 다시 읽어보자.
바른 몸가짐은 하느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절대! 아니다. 두번째이다.
하느님의 계명이 크게 둘로 나뉜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다.
자신을 위하라는 계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사후세계를 더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도 소극적으로
남을 위해서도 쓰일 수도 있는 방언조차 배우지 않고
자신의 올바른 몸가짐만 지나치게 신경쓰고 있다.
마치 불교를 믿는 것처럼 말이다.
위의 성경을 다시 읽어보자.
전세계의 1/2이나 믿는 신이 아니었다고 알고 있었던
시절처럼 소극적으로
그리고 남이 아닌 자신만의 구원을 위해 힘쓰는
시대는 이로써 끝나야 한다.
소인배는 어떤 말을 해도 고깝게 들을것이고
대인배는 이 말도 소중한 가르침으로 엄중히
받아들이는건 사실이다.
그냥 내가 싫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