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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찐따 이야기

ㅉㄸ |2022.12.17 08:40
조회 887 |추천 0
앞선 세줄요약

- 나 그런 찐따 였음.

- 당시엔 여자애가 어장한 줄 알고 욕 박았는데

- 생각해보니 내가 소름끼치는 찐따 였음.


찐따에게 잘해줬더니 고백 공격하더라 같은 썰 몇 번 보며
'찐따들이란 이래서 관심을 주면 안돼요' 정도로 치부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그런 찐따였었음.



재수학원 당시 자리에서 밥 먹는 시스템이어서 자연스럽게 옆자리 앉은 여자 애랑 밥 같이 먹고 이어서 학원 내 카페 매점 같이 다니며 친해졌음. 이쁘장한 애가 리액션도 좋으니 진짜 인기 많을 스타일이었음. 번호 교환하고 문자 자주 하다 보니 어느날 부터 난 썸이라고 착각했었음. 주말 자습 시간에는 주변 식당 같이 가 밥 먹고 그러는걸 데이트라 생각하며 혼자만의 썸은 점점 더 깊어졌음.



한 달에 한 번 제비뽑기로 자리 바꿨음. 첫 달에 이어 두번째 달에도 연속으로 옆자리 되고 7~80명 넘는 반 전체에서 연속으로 자리 붙다니 이건 하늘까지 응원해주는 줄 알았음. 5월 쯤 되면 그 여자 애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나서 지하철 타고 집 갔음. 그 여자애는 괜찮다 거절했지만 썸이라고 착각한 나는 산책하고 싶다는 명분 내세우며 강제로 진행했음. 6월 모평 끝나고 영화도 한 편 같이 봤음. 그때 그저 편하게 입고 온 그 애 옷 차림에 과거 내가 이쁜 옷이라 칭찬했던 그 옷이다 같은 이상한 이유 갖다 붙이며 의미부여 했었음. 츄리닝 수준에 별 시덥잖은 의미 붙임.



6평 이후 다음 한 달은 특정 날 선착순으로 자리 골라 앉는거 였음. 내가 먼저 와서 뒤쪽 자리 잡은 후 여자애 보고 옆에 오라 강권해서 또 옆에 앉게 됨. 그리고 그 시기에 나만의 연적이 등장했음.



첫 번째 놈은 같은 반이면서 여자애랑 동네 친구인 애 였음. 둘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동네 학원에서 친해졌다는데 학원 초 부터 저 놈이 저 여자애 좋아하는구나 느껴졌던 놈임. 편안한 맛이 있는 놈이었음. 처음 주말 자습 때 밥 먹으러 식당 갈 때 얘랑 여자애랑 가는거에 내가 붙었던 기억이 남. 그땐 썸 오해가 아니라 그냥 혼자 밥 먹기 싫어서. 이후에 나랑 여자애랑 친해지고 어디 가려고 하면 역으로 첫 번째 놈이 끼어 들려 함. 얘 자리 비움 틈을 타 밥 먹으려 가는 식으로 은근히 따돌렸음. 그 당시엔 얘가 참 찌질하고 머저리 같다 생각했는데 내가 소름 끼치는 찐따였음 깨닿고 생각해보니 얜 여자애에 호감 있던건 맞지만 자기 친구 보호하려던 것이 더 큰 얘였던거 같음.



두 번째 놈은 나랑 비슷한 케이스로 이 여자애랑 친해진 놈이었음. 선착순 자리 결과 나-여자애-두번째 놈 이렇게 자리가 배치되어 자연스럽게 친해졌음. 내가 첫 번째 놈 따돌린 것처럼 내가 자리 뜨면 두 번째 놈이 여자애랑 희희덕되고 그랬음. 두 번째놈이 여자애랑 무슨 관계냐 물었을 때 스스로는 썸이라 생각했지만 찐따미가 발동하여 그냥 친구 사이라 답한 이후부터 집적대기 시작했기에 자책 했음. 집 데려다 주는 길(이때 쯤에는 1달 넘게 이래서 데려다 주는거 그냥 기본이었음)에 여자애 한테 두 번째놈 어떠냐 물어보면 너무 재밌고 좋다는 식으로 호평 일색이고 그 놈이랑 번호교환한 이후로 내 문자 답장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음.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 생각해도 진짜 썸은 그 둘이 일으키고 있었던거 같음.



억지로 하원길 집 데려다 주던거도 그때 부터 안했음. 여자애가 애초에 원하지도 않았지만 스스로도 그 여자애 좋아하는 마음 접으려 노력했음. 간혹 문자나 하고 학원에서 종종 이야기나 나누는 평이한 관계가 됨. 여름에 아이팟 터치로 카톡을 처음 시작 했었는데 카톡 읽으면 1 없어지는 것도 모르고 오자마자 읽고는 안읽은 척 한 참 있다 답장하고 그랬음.



추석 쯤 어떤 남자애 좋아하다 차인 같은 반 여자애랑 같이 수업 쌩까고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 태우며 학원 주변에서 농땡이 피움.서로 상처 받은 이야기하며 같이 욕해주고 위로해주고 그랬었음. 질투 유발 작전 쓰자며 서로의 존재 이용하자는 병신 같은 이야기 하고 계획 짜며 수능 2달 남은 재수생들이 시간 죽임.



어느 날 여자애가 와서 무슨 일 있냐며 걱정 된다는 식의 이야기하며 치맥 제안함. 같이 치맥 먹으며 솔직한 내 감정 말했음. 여자애는 두 번째 놈 이랑은 말이 잘통해서 재밌고 좋은데 남자로는 안느끼고 난 가능성 있다며 수능 얼마 안남았으니 끝나고 보자는 이야기했음. 며칠 후 두번째 놈이 저녁 쯤에 이야기 하자 부르더니 별 시답잖은 이야기 좀 하다 갑자기 노래나 부르자며 노래방 가서 울먹이며 노래 부르는거 보고 최후의 승자는 내가 되었음을 직감함. 알고 보면 그 친구는 나름의 반전을 그때 안거 같음.



수능 끝나고 썸에서 남친(진)으로 진급했다 믿으며 논술 시험 치러 같이 다니고 논술 후 대학가에서 나름 데이트도 하며 언제 고백할지 고백각 재고 있었는데 여자애가 황당한 소리를 함. 자기 남친이 내일 휴가 나와서 당분간 남친이랑 데이트 해야 하니 못 만난다는 거였음.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남친 있었냐. 언제부터 있었냐 물어보니 여름 쯤 대학 간 고등학교 찬구 소개로 만난 오빠인데 소개 받고 얼마 안있어 군대 가 자기도 사귀는지 몰랐다 함. 그런데 그 사람은 사귀는 걸로 알고 있고 군인이라 잘해줘야 한다는 소리 하더라. 내가 찐따이긴 해도 머저리는 아니었으니 그 자리에서 정색 빨고 그대로 집 와 번호 지우고 카톡 차단 박았음. 물론 특유의 찐따미 발휘해서 며칠 안 가 카톡 차단 풀고 남아 있는 문자로 번호 저장만 안된 상태였지만. 그 남친 백일 휴가 일 수 끝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 없었음. 내가 먼저 카톡 보냈음. 안그래도 자기 핸드폰 바꾸면서 번호 다 잃어버려서 친구에게 내 카톡 아이디 물어서 연락할 참이었다는 개소리 시전함. 읽씹하니 걔도 연락이 없었음. 그렇게 흐지부지 끝남. 그 당시에 스스로 생각해도 찌질한 기억이라 더 집착 안한 듯.



2년 쯤 지나 갑자기 연락이 옴. 잘지내냐 언제 한 번 커피라도 마시자는 연락. 대학 가서 괜찮게 생겼다는 이야기도 듣고 나 좋다고 고백한 후배 있고 그렇게 인생에서 외적 자신감이 가장 충만할 때여서 오냐 한 번 보자 하고 당당히 나갔음. 갔는데 웬 60년대 여류 시인이 있더라. 빵모자 쓰고 담배 태우는 그 모습. 허세 섞인 듯 하나 나름의 생각이 정리 되어 멋지기도 하고 뭐 그런 모습. 적당히 식사 하고 헤어짐. 스스로 생각해도 더 이상 미련 없다 생각되어 카톡 친구 지우고 번호 남아 있던 문자도 지우고 오늘 즐거웠다는 인사 카톡 한 통 보냄. 그거 보내고 카톡 대화창도 나가려 했는데 그거 읽씹 당했음...



뭐 그래도 스스로 만족하며 살았음. 나 좋다는 사람이랑 연애도 해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대시해서 만나기도 하고 소개팅도 받고 그런 식으로 연애도 끊이지 않고 했음. 재수 시절 그 여자애 관련 썰은 어장 당한 흑역사 수준으로만 기억함. 그러다 어제 찐따 이야기 읽고 나니 급 소름 끼침. 그 여자애한테 내가 그 찐따 였겠다 생각 듦. 집 억지로 데려다 준거도 소름이고 혼자 연적 만들어 질투하고 고백하고 차이고 그런거 전부 개소름이었겠다 생각이 듦. 미안했음. 어장 관리하던 나쁜 년이라 치부했는데 난 그 이상되는 찐따 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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