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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 )) 천국과 지옥 ....

새로미 |2023.01.02 18:48
조회 162 |추천 2
(( 펌 ))   <부르는 소리> 10부-13

    

천국과 지옥


                                     

새 하늘 새 땅


계시록 21절 1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디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 천국이라고 한다. 

왜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 21-22장의 말씀을 천년왕국 뒤에 올 영원 천국이라고 생각하는가?  

계시록 20장을 보면,

사단은 잡혀 무저갱에 묶이고, 주님 재림 시에 변화된 자들과 부활한 자들이 보좌에 앉아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

7-10절에서 사단이 다시 옥에서 놓여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키다가 잡혀 유황 불 못에 던지운다. 이어 백보좌 심판대가 보이고,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가 없어진다.

다시12-15절에서는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백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운다.  

이어 21장이 시작된다. 따라서 21장부터는 당연히 천년왕국 뒤에 있을 영원 천국이다. 곧 21-22장의 새 하늘 새 땅은 당연히 영원 천국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그럼 21-22장은 무엇을 설명한 것인가?

천년왕국을 설명한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계시록 20장은 사단이 잡히고, 보좌에 앉아 천년 동안 왕 노릇할 왕권 성도의 모습이 나오고, 그런 다음 천년왕국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채 천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곡과 마곡의 전쟁, 이어 백보좌 앞 신판이 나온다.

왜 가장 중요한 천년왕국에 대한 말씀이 없는가? 그 이유는 21-22장에서 아주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19장에서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처리되고, 20장에서는 사단이 처리되고, 또 백보좌 앞 심판대에서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이 처리되고 그리고 난 다음, 구원받은 자들이 들어갈 천년왕국의 모습이 자세하게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천년왕국에 대한 설명인 계시록 21-22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국이 무엇이며 지옥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한다, 동시에 계시록 21-22장을 바르게 이해해야 또한 천국이 무엇이고 지옥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천국이 무엇이고 지옥은 또 무엇이냐? 천국은 어디 있고 지옥은 어디 있느냐?

사실을 말한다면,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하고 소리 높이 외치고 있는 우리나라 교회는 천국이 무엇인지, 지옥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

천국이 무엇이고 지옥이 무엇이냐? 천국은 어디에 있고 지옥은 또 어디에 있느냐?

예수 잘 믿는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여기에 대해 모르고 있다. 예수 믿어야 천국 간다고 믿고 있으면서도 천국이 무언인지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다.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말하면서도 지옥이 무엇인지 또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알지를 못하고 있다.

저 하늘 어딘가에 천국이 있고, 우리가 예수 믿고 죽으면 우리의 영혼은 그 우주 공간을 날아올라 그 곳에 가서 아무 고통도 없이 주와 함께 참으로 행복하게 살게 된다. 그리고 예수 안 믿는 불신자들은 죽으면 땅 속 그 어딘가에 있는 그 무서운 불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토록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무조건 지옥에 떨어져 영원토록 고통 속에 살고, 반면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받아 천국에 올라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 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 것일까?


교회에 다니는 사람치고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 가고 안 믿으면 심판 받아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죽어 지옥에 갈까 두려워 열심히, 혹은 할 수 없이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많다.

필자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오늘이라도 주가 부르셔서 죽게 되면 내 영혼은 천국으로 올라가 주와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성경을 자꾸 읽다 보니까, 그런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그 어디에도, 사람이 예수 믿고 죽으면 저 하늘 어딘가에 있는 천국에 올라가 주와 함께 복을 누리며 영원히 살고, 믿지 않는 자들은 죽으면 무조건 다 지옥으로 떨어져 ‘앗 뜨거워!’하면서 영원토록 불 속에서 고통 받으며 살게 된다고 하는 그런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믿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예수 잘 믿고 살다가 죽은 사람은 지금 천국에 올라가서 예수님과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고, 나도 죽으면 천국에 가서 그들을 만나 함께 천국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히 지옥 고통 속에 있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 말씀 어디에도 이런 천국과 지옥은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죽어서 가는 저 하늘 어딘가에 있는 천국이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라고 추구한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이루어지는 천국이다. 아버지가 보내시는 메시아가 강림하여 이 땅에서 모든 죄와 악을 물리치고 그 분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지상 천국)이 곧 그들이 바라는 천국이요, 곧 히브리적 천국이었다.

구약을 읽어보면 그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나? 죽고 난 다음에 가는 저 하늘 어딘가에 있는 천국인가? 아니다. 그의 자손으로 하여금 이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는 것이었다. 범죄하여 에덴을 잃은 아담에게는 무엇을 약속하셨나? 그의 죄를 대속하고 에덴을 회복해 주실 메시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을 세우는 것이다. 이사야가 여러 번이나 예언한 장차 임할 천국은 아버지 보좌가 있는 영의 나라인 영원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 세워질 천국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 땅의 모든 악과 죄를 무찔러 없애고 메시아가 직접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도 기다리고 고대한 천국은 저 하늘 어딘가에 있는 영의 나라,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 임하는 실질적 천국이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1장 6절에서 제자들은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묻는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주께서 하나님의 권세로 이방인 통치자들을 다 무찌르고 주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나라를 세우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도 주기도문을 통해 천국을 말씀하신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나라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뜻한다. 하나님 보좌가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인간 청조의 목적이며, 그것은 곧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세우는 것이다. 사단에 의해 죄로 오염된 이 땅을 다시 죄가 없고 악이 없고 하나님의 의만이 지배하는 땅으로 회복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던 천국이었다.

만일, 그 천국이 이 땅에서의 천국이 아니라 저 하늘 어딘가에 있는 천국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죽은 사람들이 부활을 하는가? 예수 믿어 구원받고 죽은 사람들이 천국에 올라가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면, 그곳 천국에서 계속해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있을 것이지 왜 주님 재림하실 때, 사람의 모습을 하고 다시 지상으로 부활을 한단 말인가?

그 이유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친국은 저 하늘 어딘가에 있는 그런 천국이  아니라  지상에 세워지는 천국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라는 히브리적인 천국은 영의 나라가 아닌 바로 이렇게 땅 위에 세워지는 천국이다. 그리고 그 지상 천국의 모습을 요한 시도는 환상을 통해 보고 계시록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셨다.

계시록 21-22장에 나오는 새 하늘 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고 바라던 바로 그 천국이다. 이 지구 위에 세워질 천국, 모든 악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이 지상에 세워지는 천국의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히브리적인 천국인 동시에, 또한 기독교가 그리는 천국이기도 한 것이다.

그럼 우리가 생각해 온 천국, 우리가 예수 믿다가 죽으면 우리의 영혼이 곧 가게 되는 그런 천국은 없단 말인가?  그런 천국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란 말이냐?  

아니다. 그런 천국도 있다. 그러나 그 천국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저 하늘 끝 어딘가에 있는 그런 천국은 아니다.  


낙원과 음부


사람들이 죽으면 그 영은 음부로 내려간다. 음부란 죽은 자의 영을 보관해 두는 곳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사망은 음부의 권세이다. 죄로 죽은 자들은 다 음부로 들어간다. 그러나 믿고 구원받은 자의 영혼은 낙원으로 간다.

낙원은 누가복음 23장 42-43절에 나온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한 강도가 예수님을 향해 말한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사람이 죽으면 그 영은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곧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믿고 구원받은 영들은 낙원으로 가고, 믿지 않고 멸망 받을 영들은 음부로 간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말씀에 의하며 부자는 음부로 떨어지고, 거지 나사로는 낙원으로 올라간다. 

누가복음 16장 19-25절의 말씀을 보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읽고 이런 의문을 갖는다. 부자는 아무 죄도 짓지 아니 했는데, 왜 지옥에 떨어졌는가? 오직 부자라는 그 자체만으로 지옥에 떨어지는가? 부자가 죄인가?

또 어떤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한다. 나사로는 예수도 믿지 않았는데, 오직 가난하게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천국에 가는가?

이 이야기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모두 이스라엘 사람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말하자면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 것이다. 나사로는 하나님을 믿는 거지요, 부자는 하나님을 믿는 부자인 것이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 부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세 가지 죄를 범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이 부자의 모습부터 보자.

이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있다.

흔히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 자색 고운 옷은 왕이 입는 옷이다. 이 부자가 자색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가 당시의 고귀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 해 준다. 그는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을 가진 자였다.  그는 또 교운 베옷을 입고 있었다. 베옷은 이스라엘 제사장의 옷이며, 레위족 성가대가 입는 옷이며, 이스라엘 신부의 옷이다. 한마디로, 고운 베옷은 종교적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결국, 이 부자는 단순히 돈이나 많은 그런 졸부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을 가진,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귀한 자리에 있는 그런 부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귀하신 부자가, 무슨 죄를, 그것도 세 가지 씩이나 저질렀단 말인가?

그 세 가지 죄는 이렇다.

첫째, 그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 죄를 범했다. 날마다, 온갖 값비싸고 귀한 맛있는 음식과 술을 차려 놓고 먹고 마시고 하며 즐겼다. 이것이 죄이다.

그것도 죄인가?  그렇다. 성경은 죄라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4장 3절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자나간 때가 족하도다”

연락(宴樂)은, 음란이나 정욕, 술 취함, 무법한 우상 숭배와 함께 이방인의 뜻을 좇는 못된 행실인 것이다. 이방인의 뜻을 좇는 자들은 이방인들처럼 멸망할 수밖에 없다.

둘째, 그는 가난한 이웃을 돕지 않았다.

요한 1서 3장14-1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사랑이 곧 생명이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영생이 그 안에 없다. 재물을 가지고도 궁핍한 이웃을 도와주지 않는 자는 그 안에 사랑이 없는 자이며, 그 안에 사랑이 없는 자는 사망에 거하는 자인 것이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해도 그 안에 사랑이 없는 자는 예수 믿는 자가 아닌 것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면서도 자기 집 무 앞에 누워 구걸하는 거지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 부자에게는 사랑이 없었다. 그는 사망에 거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죽어 음부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부자가 범한 세 번째 죄는 또 뭔가? 그것은 그가 불의한 재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불의한 재물이 무엇인가?  불의한 짓을 해서 얻은 재물인가?

아니다.

불의한 재물이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재물을 하나님 뜻을 따라 사용하지 않고 오직 나의 욕심만을 위해 사용하고자 잔뜩 쌓아놓고 있는 재물이 불의한 재물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재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나에게 맡기신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에게 맡기셨는가?

나로 하여금 그 재물을 하나님 뜻을 따라 쓰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맡기신 재물을 가지고 궁핍한 이웃을 돕는 것이 의를 행하는 것이요, 그렇게 하는 자는 의인이 된다.

반면, 하나님이 맡기신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궁핍한 이웃을 돕지 아니한 자들은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 부자는 죽어 음부에 떨어져서 불꽃 가운데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음부는 괴로운 곳이다. 불꽃 속에서 고통을 당한다.

부자는 음부에 떨어져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애원하며 말한다.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다 = 낙원에 들어가다. 낙원에는 아브라함도 있다. 구원받은 자는 다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부자는 고통 가운데 아브라함을 부른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 나의 조상 아브라함이여.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일 뿐이다.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되어야 구원에 들어간다.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음부란 뜨거운 불꽃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곳이다.

아브라함이 그 부자에게 말한다.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은 자들은 음부에 떨어져 뜨거운 불꽃 중에서 고통을 당한다. 그러나 살았을 때에 고통을 당한 자들은 죽어 낙원에 들어가 위로를 받는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자들과, 교회에는 다녔으나 불의한 자들, 사랑 없이 자기의 육신만을 위해 호화롭게 생활한 자들이 죽어 들어가는 곳이 음부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 구원받은 영혼들이 가는 곳이 낙원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부활하실 때까지 잠시 이 낙원에 와 계셨다.

이 땅에 살다가 죽어 낙원이나 음부에 가 있는 영들은 주님 재림 때까지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주 재림 시, 낙원에 있는 일부 영혼들 곧 순교한 영혼들은 낙원에서 나와 부활한다. 땅의 삶을 주님을 위해 희생했기 때문에 주님은 그것을 다시 땅에서의 삶으로 갚아 주신다. 그들은 땅에 세워진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을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영들은 다시 그 천년이 차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 그러니까, 우리가 죽어 가는 곳은 저 하늘에 있는 천국이 아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낙원으로 간다. 또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깊은 땅 속 어딘가에 있는 지옥으로 덜어져 영원히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음부로 내려간다.


낙원과 음부는 어디에 있는가?


그럼, 낙원은 어디 있고, 음부는 어디 있는가?

낙원도 음부도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낙원도 음부도 다 영의 존재이다. 따라서 영의 세계에 있다.

어떤 바보 같은 외국의 무슨 신학박사라고 하는 자가 쓴 책(한 때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혔고 한 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을 읽어봤더니 이렇게 써 있었다.

자신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 여러 날 동안 공중을 날아 천국으로 갔다고 한다. 천국을 다 구경하고 또 공중을 날아서 지구로 돌아오는데, 천국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한 무리의 영혼들과 마주쳤다고 한다. 알아보니 이들은 지상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나 한꺼번에 죽은 영혼들이라는 것이었다. 

무식해도 이렇게 무식한 신학박사를 아직까지 본 일이 없다. 천국이 우주 공간을 여러 날 날아가면 있는 곳인가? 아니다. 아무리 여러 날을 날아가도 그 곳은 물질계일 뿐이다. 천국도 지옥도 물질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계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믿는 사람들 중 아주 유식한 사람들 중에도 물질계와 영계를 혼동하고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초고속 로켓을 타고 며칠 혹 몇 달을 가면 천국이 나오는 것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는 것이다.  


불못 과  불과 유황 못  과 지옥


그럼, 천년왕국의 천년이 차면 어떻게 되는가?

계시록 20장의 말씀과 같다.

마귀는 불과 유황 못에 들어가 적그리스도 및 거짓 선지자와 함께 영원토록 괴로움을 받고, 그때까지 낙원과 음부에 있던 영혼들은 다 깨어나 백보좌 앞 심판대에 서게 된다.

심판대 위에 펼쳐진 생명책에 그 이름이 있는 자들은 영원 천국으로 올라가고,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은 다 불못에 던져진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마귀와 적그리스도, 그리고 거짓 선지자가 들어가 세세토록 괴로움을 받는‘불과 유황 못’과 20장 15절에 나오는 ‘불못’은 같은 곳인가, 아니면 다른 곳인가?

‘불과 유황 못’과  ‘불못’은 같은 곳이다.

여기‘불과 유황 못’혹은‘불못’에는 사단 곧 마귀와 원래는 사람이었던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이렇게 셋 만이 들어간다. 마귀(사단)는 원래가 영체(靈體)이기 때문에 죽지 않고 영원토록 고통을 받는다. 반면 원래가 사람이었던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불과 유황 못’에 빠지면 그 불에 의해 그들의 영혼이 불타 소멸되고 만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로 죽지 않고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하기 위해 산 채로 던져 넣으신다.(계 19:20)    영원 지옥인‘불과 유황 못’에는 위에 말한 셋 만이 영원토록 고통을 받으며 있게 된다.

반면, 사람들의 영혼이 이곳에 빠지면 그 불에 불타 소멸되고 만다. 만일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그 곳에 빠져도 죽지 않고 영원토록 고통을 받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구태여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영혼을 산채로 그 곳에 던져 넣으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뿐 만 아니다. 사망도 음부도 다 ‘불못’속에 던져 넣어 불태워 버리신다. 사망도 음부도 또 인간의 영혼도‘불못’속에 들어가면 불타 소멸되는 것이다.        

지상의 불은 물질을 태우지만, 지옥의 불은 영을 태우는 것이다. 죄인의 영이 지옥 불 속에 들어가면 곧 소멸되어 없어져버린다. 단 음부의 불은 영을 태우지는 못하고 단지 살을 태우는 것과 같은 고통을 준다.

계시록 21장 8절의 말씀을 보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하는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 째 사망이라”

여기서는‘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 나온다. 그리고 이‘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는 자들은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하신다.

앞의 20장 15절에서는‘불못’에 던지우는 자들을 둘째 사망이라고 하셨다. 결국,‘불못’과‘불과 유황 못’과‘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은 같은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옥이다.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에게는 이 곳 곧 지옥에 던지워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 이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없다. 이들은 영원히 그 이글거리는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한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영혼과‘사망’과‘음부’는 그 불 속에 들어가 소멸되어 버린다. 즉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 과정에서 나온 쓰레기들이다. 음부도 사망도 그 부산물이다. 그래서 인간 창조의 역사가 끝나면 하나님은 이것들을 다 불 속에 넣어 태워버리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2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

불에 태우면 소멸되어 없어진다.

꺼지는 불 = 지상의 불.

지상의 불은 물질을 태운다. 이 불은 탈 것이 없거나 산소가 없으면 꺼진다. 이 지상의 불은 영혼을 태우지는 못한다.

꺼지지 않는 불 = 영계의 불. 영계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탈 것이나 산소에 의해 타는 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상의 불은 물질을 태우지만, 꺼지지 않는 영계의 불은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태워 없앤다.

마태복음 13장 29-30절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에 넣으라 하리라”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 불못에서 태워 버리기 위해 음부에 가두다.

곡식은 모아 내 곡간에 넣다 = 알곡 성도들은 하나님의 추수 곳간인 낙원에 들인다.

마태복음 7장 19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계시록 20장9-10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마귀는 영원 지옥인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고 나머지 곡과 마곡(귀신과 사람들)은 불로 태워 소멸해 버리신다.


인간들은 두 번 태어나고 두 번 죽는다.

육신은 죄로 인해 죽는 것이 첫째 사망이다.

육신이 죽어 음부로 떨어진 영혼들은 백보좌 심판대의 심판을 받아 둘째 사망을 당한다. 이 둘째 사망은 영의 사망이다.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

첫째는 육신의 출생이요, 둘째는 성령 받아 영이 살아나는 거듭남이다.

사람은 두 번 사망한다. 육신의 사망과 영의 사망이다. 불못에 던지우는 것이 바로 둘째 사망이며 영의 사망이다. 사람은 첫째 사망으로 육신이 소멸되고, 둘째 사망으로 그 영이 소멸된다.

마태복음 10장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성도들의 육신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육신을 멸하실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영혼까지 지옥 불에 멸하실 수 있다. 그러니 핍박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몸을 죽이다 = 그의 영혼이 음부로 내려가다.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다 = 죽어 음부에 있는 영혼을 백보좌 심판대에서 지옥 판결을 내려 지옥 불에 멸하시다.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은 성도들을 죽여 그 영혼이 음부로 내려가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을 마지막 심판대를 통해 지옥 불에 던져 멸하실 수 있는 분이다. 이 말씀에서 지옥은 음부가 아니다. 음부는 죽은 영혼들이라면 누구나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음부로 가는 것은 아직은 멸망이 아니다. 멸망은 그 영혼이‘불못’혹은‘불과 유황 못’또는‘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는 것이다.  

‘불못’‘불과 유황 못’‘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는 영혼들은 다 둘째 사망에 들어간다. 위의 셋은 같은 곳이며. 이것들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불못’‘불과 유황 못’‘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은 그 곳의 형태를 말한 것이며,  지옥이라는 명칭은 그 곳의 지위(地位)적 상태를 말한 것이다. 즉 지옥이라는 명칭은 천국과 대립되고 반대되는 개념인 것이다.

지옥이 어디냐?  천국의 반대되는 곳이다.

그 곳은 어떻게 되어있나? 불못(火池)으로 되어 있다. 불과 유황이 영원토록 불타오르고 있다. 그곳에는 장차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이 셋이 그 타오르는 불 속에서 죽지도 못하고 영원토록 고통을 받게 된다.


천국과 지옥과 음부와 낙원


자, 정리를 해 보자.

성경의 천국, 히브리적인 천국은 저 하늘 멀리 어딘가에 있고 우리가 죽으면 가는 그런 곳이 아니다. 천국은 이 땅에 세워지는 것이다. 그것이 천년왕국이다. 이 천년왕국을 위해 예수님은 재림하시고, 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순교의 종들 곧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생명을 버린 종들이 부활하여 지상에서 왕 노릇 한다.

우리가 죽고 천년왕국의 그 천년도 다 지난 다음 백보좌 앞 심판대를 지나 올라가게 되는 영원 천국은 즐겁게 사는 인간적 천국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곳이다.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영이 하나가 되어 영생을 누리는 곳이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영만이 존재하는 곳이요, 물질세계처럼 3차원의 세계가 아닌 4차원 혹은 5차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은 이 영원 천국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은 다 음부로 내려간다. 음부는 고통스러운 곳이다. 땅에서 살 때에 그가 행한 대로 받는다.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거나 교회를 핍박한 자들은 이 곳에서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비록 교회를 핍박하지는 않았으나 악하게 산 자들은 그 악행에 비례해서 고통을 당할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아 구원받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착하게 산 사람들은 악하게 산 사람들에 비해 덜 고통을 받을 것이다. 

낙원은 하나님 잘 믿고 구원받은 영들이 와 있는 곳이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주를 위해 순교한 영들은 낙원에 있다가 부활하여 다시 세상으로 나간다. 그리고 천년 동안 주님과 더불어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하게 된다.

그 밖의 낙원에 있는 영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그대로 낙원에 있게 된다. 천년이 차면, 낙원과 음부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든 영들은 부활하여 백보좌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는 영원 천국으로 올라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은 불못에 던지운다. 이들 영들은 그 불에 타 소멸해 버린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사람의 영들 뿐 아니라 음부도 사망도 다 이 불못에 던져져 소명해 버린다. 더 이상 음부나 사망이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구를 위시하여 모든 물질계는 소멸되어 없어져 버리고, 오직 영원 천국과 영원 지옥만이 존재하게 된다. 영원 천국에는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 하나님과 구원받은 영들과 천사들이 영원토록 안식을 누린다. 반면 영원 지옥에는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이렇게 셋이 영원토록 고통을 받으며 있다.


오해되기 쉬운 몇 몇 성경 말씀 


성경 말씀을 읽어보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죽으면 영원 지옥에 떨어져 영원토록 고통 받는 것으로 오해되기 쉬운 말씀들이 더러 있다. 그 몇 말씀을 보자.

마태복음 25장 45-46절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고 악인들은 영벌에 들어간다.

그런데, 영벌이 무엇인가?

영벌은 영원한 형벌이요 따라서 영원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오해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영벌이란 영원토록 지옥 불 속에서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벌을 받는 것이 영벌이다. 그럼, 다시는 구원받을 수 없는 벌이란 어떤 벌인가? 지옥 불 속에 들어가 그 영혼이 소멸도어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되는 벌이 영벌이다. 

다시 말하면, 영혼이 소멸되어 버리고 다시는 영원토록 존재할 수 없게 되는 벌이 영벌이다. 다시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다시는 구원받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영벌이다. 

그럼, 그 영벌은 어떻게 받는가?

사람의 영혼이 죄 가운데 죽어 음부로 내려가서 고통 속에 있다가 마지막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부활하여 지옥 판결을 받고 지옥 불 속에 던져져서 그 영혼이 불타 소멸되어 무로 돌아가는 것이 영벌이다. 그것이 영벌인 것은 그 영혼이 영원토록 다시는 살아나서 생명을 회복할 수 없는 벌이기 때문이다. 

영벌이란 영원토록 지옥 불 속에서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예수님은 오해받기 쉽게‘영벌’이라는 단어를 여기에 사용하신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그 뒤에 나오는‘영생’이라는 말씀과 대조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영생’과‘영벌’을 대조시켜서‘영벌’을 강조하시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고, 악인은 영벌에 들어간다.

영생은 생명의 무한한 연속이요, 영벌은 그 영이 소멸해서 영원한 무(無)의연속이다.

마태복음 18장 8-9절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말씀에서 8절의 “영원한 불”과  9절의“지옥 불”은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원한 불 = 지옥 불

영원한 불을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말씀의 뜻은 사람이 범죄하고 죽으면 곧 영원한 불이 훨훨 타오르는 지옥 불 속에 들어가 영원토록 고생한다는 말씀이 아니다. 범죄한 영혼은 백보좌 심판대에서 심판을 받아 지옥 불,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 소멸되어 버린다는 뜻이다. 

이 말씀 어디에도 영원토록 지옥 불 속에서 고생한다는 말씀은 없다. 단지 “영원한 불” “지옥 불”속에 던지운다고 말씀하섰다.

“영원한 불” 또는 “지옥 불”속에 던지우면 어떻게 되는가? 그 영혼이 불타서 소멸되어 버린다.

영원한 불, 지옥 불은 지상에 있는 물질을 태우는‘꺼지는 불’과는 다르다. 이 불은 영의 불이며, 영원히 꺼지지 않으며, 또 이 불은 생명이 없는 사람의 영혼들을 불태워 소멸시킨다.

마태복음 23장 33절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시의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여기서도 바리새인들이 죽으면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죽은 다음 마지막 백보좌 심판대에서 지옥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뜻이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율법을 충실히 지키기 때문에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지옥 판결이 이미 예정되어졌다.

마태복음 25장 29-30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잘 아시는 달란트의 비유이다.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두었던 무익한 종에게 주님이 주신 벌이다.

그런데, “바깥 어두운 데”가 어디인가?

필자도 오랫동안 이 문제를 놓고 생각을 했는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바깥 어두운 곳은 음부이다.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나름대로 주님의 충성된 종이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한 달란트라는 돈을 받았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소중하게 보관해 두었었다. 그는 당연히 자기는 구원받아 천국에 갈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한 행위는 주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죽어 음부로 떨어졌다. 와서 보니 그가 바랐던 밝고 밝은 낙원이 아니라 어둡고 뜨거운 불이 이글거리는 음부였다. 그는 자기가 음부로 떨어진 것을 알고 슬퍼하며 후회하며 울며 이를 간다.

바깥 어두운 곳이 또 한군데 있다.

이곳은 주님이 재림하시고 이 땅에 천년왕국이 세워졌을 때, 그 천년왕국 밖의 세상이 바깥 어두운 곳이다. 그 무서운 환난이 다 지나갔고 겨우 겨우 운 좋게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죽지 않은 것만을 기뻐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얼마 동안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자기들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천년왕국 아닌 그 바깥쪽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원통해서 이를 갈며 슬피 운다. 그러나 어찌하랴.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마치, 장자권에는 관심도 없던 에서가 장자의 축복이 동생 야곱에게로 넘어간 것을 알고는 뒤늦게 울고불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듯이 말이다. 

그리고 에서가 에돔 민족을 이루고 하나님을 멀리 떠났듯이, 그리고 지금은 이들의 후손이 아람 민족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듯이, 천년왕국 바깥쪽 어두운 곳에 사는 이들의 후손들이 천년왕국이 지난 다음에 있을 사단과 하나님의 마지막 싸움인 곡과 마곡의 싸움에서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곡이 되는 것이다. 

계시록 14장 9-11절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 곧 666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셔야 한다.

이들은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고난을 받는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간다.

또, 이들은 밤 낮 쉼을 얻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또 무엇을 뜻하는 건가?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간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 연기 속에서 세세토록 곧 영원히 고난을 받는다는 말씀인가?   

또 이들은 밤 낮 쉼을 얻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의 뜻은 이들이 지옥 불 속에서 영원토록 죽지도 않고 고통을 받는다는 뜻인가?

솔직히 말해서 필자도 이 말씀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해답이 나왔다.    

먼저 11절의 다음 말씀부터 풀어 보자.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은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사람들은 왜 666표를 받는가?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다. 좀 더 풍족하게 살기 위해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진해서 혹은 할 수 없이 그 표를 받는다. 표가 없으면 적그리스도 치하에서는 정상저인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표를 받고 나면 어떻게 되는가? 편하기는커녕 그 때부터 고통의 나날이 시작된다. 이 표를 받은 사람들은 적그리스도 정권에 의해 감시당하고 혹사당하고 하루도 편히 쉴 날이 없다. 어디 그 뿐인가. 그가 환난 중에 죽으면 그의 영혼은 음부로 떨어지는데, 이마나 손에 666표를 받은 사람들은 각별한 대우를 받는다. 어떤 각별한 대우를 받는가?  지금까지, 구약 시대나 은혜 시대 중에는 666표를 받고 음부에 들어온 영혼들은 없었다. 음부란 괴롭고 고통스러운 곳이다. 사단의 표인 666표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음부에서는 그래서 지금까지 없었던 각별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모르긴 해도 가장 혹독한 고통이 이들을 위해 준비되고 이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잠시 잠간의 편안함과 편리함을 위해 666표를 받았다가 이들은 이 땅에서도 또 죽어 음부에 내려가서도 밤낮 쉼을 얻지 못하고 고통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이들은 천년왕국의 그 천년이 지나기까지 음부에서 그 고통을 당하다가 천년왕국의 천년이 끝나면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부활하여 지옥 심판을 받고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양이 보는 앞에서 영원한 지옥 불 속에 빠져 그 불쌍한 영혼은 불타서 영원히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음부에 들어가서 천년 동안이나 그 고생을 하고 그 끝은 부활이나 영생이 아니라 영원한 멸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고생 끝에 낙이 아니라, 고생 끝에 영원한 멸망인 것이다. 이것이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을 표를 받은 자가 당하게 될 모습인 것이다.

다음은 11절 전반의 말씀을 보자.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음부에서 고통 속에 천년을 보낸 짐승의 표 받은 자들의 영혼은 그 천년이 지나면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부활한다. 그리고 지옥 판정을 받고 불과 유황이 타는 불 곧 지옥 불 속에 던져진다. 이들은 그 불에 타서 영원히 소멸되고 만다. 즉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 이들을 태운 불과 유황 곧 영원 지옥의 불은 악의 삼위일체인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산채로 삼킨 채 세세토록 타오를 것이다.   

이어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그러니 아무리 어렵더라도 인내하고 짐승표를 받지 마라.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를 믿는 것이요, 이들이 바로 성도들인 것이다.


우리의 변명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의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 그때까지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오지 않아서 예수를 믿지 못하고 죽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떻게 되나?

참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아온 질문이다.

예수를 몰라서 못 믿었는데, 예수 믿지 않았다고 지옥에 빠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한다면 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갖고 있다.

여기에 대한 목사님들의 답변은 대개 이렇다.

“할 수 없지요.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아 천국엘 가는데, 안 믿었으니 할 수 없이 지옥으로 갈 수 밖에요. 그러니 부지런히 전도해서 예수 몰라서 못 믿고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지요.” 

혹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예수를 몰라서 못 믿음 사람에게는 양심의 심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양심에 비추어 착하게 바르게 산 사람이라면 구원이, 그렇지 못하고 악하게만 산 사람이라면 지옥 형벌이 있겠지요.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살다가 죽어 예수를 믿지 못한 자들이나, 지금 예수를 알고도 믿지 않아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나, 혹은 교회 안에는 들어왔으니 그 믿음이 미치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나 똑 같이 죽으면 똑 같이 음부로 내려가 행한 대로 벌을 받으며 있다가 마지막 백보좌 심판대에 서서 심판을 받아 불못 속에 들어가 타 죽고 만다.

그럼, 왜 교회에는 믿지 않고 죽으면 뜨거운 지옥 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다고 가르치는가?

만일, 믿으면 천국 가지만, 안 믿어도 지옥엔 안 간다고 한다면 교회에 나올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을 정확하게 가르치기보다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해야 지옥행이 겁이나 사람들이 교회에 나온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도 많아지고...그러면 이것이 하나님 뜻에 더 합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믿지 않으면 모조리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뜨거운 지옥 불 속에서 `앗 뜨거워!' 하며 고통을 받는다고 말하게 된 것일 테고, 그렇게 말하다 보니 그것이 참인 것처럼 되어버렸던 것일 것이다.

또한, 믿으면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가고, 믿지 않으면 음부에 떨어져 고생하는 것을 천국과 지옥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즉 낙원을 천국으로, 음부를 지옥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하긴, 믿지 않고 죽으면 곧장 지옥으로 떨어져서 그 뜨거운 지옥 불 속에서 영원토록 고생한다고 우리가 그렇게 믿어도, 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을 해 줘도 별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거나 특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믿게 하는 동기가 되어 준다면 오히려 고지식하게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더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은 진실인 것이다.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초신자라면 또 몰라도 말씀을 깊이 깨닫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알 것은 바르게 알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구원받은 영들은 낙원으로 올라가고, 구원받지 못한 영들은 음부로 내려간다.

은혜 시대가 가고 주님이 재림하시면, 낙원에 있던 순교자들은 부활하여 휴거되고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여 땅으로 내려와 주와 함께 천년동안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 한다. 믿는 자들이 고대하고 기다리는 천국은 바로 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인 것이다.

믿고 구원받아 낙원에 있는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순교자가 아닌 자들은 천년왕년의 그 천년이 차기까지 낙원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천년이 지나면 백보좌 심판대가 개설되고 모든 죽은 자들이 그 앞에서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구원받는 영들은 영원 천국으로 올라가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생명책에 이름이 없어 멸망할 자들은 불못 속에 던지운다. 그 불못 속에서 그 영들은 불타 소멸되고 만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나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하나님 창조의 뜻에 합당치 아니한 자들은 다시 창조 이전의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불과 유황 못 곧 영원 지옥에는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이렇게 셋이 뜨거운 유활 불 속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한 악의 삼위일체로서 영원토록 죽지도 못하고 고통을 당해야 한다. 구원받은 영들은 하나님 아버지 보좌가 있는 영원 천국에 들어가 아버지와 아들과 천사들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린다.

그 영원한 안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 성경도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이 없다. 우리 인간의 두뇌로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질문이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다 음부로 갔다가 백보좌 심판대에서 심판을 받아 그 영혼이 타 소멸되고 마는 것이라면, 예수를 믿지는 않았으나 양심적으로 아주 착하게 산 사람도 죽어 음부로 갔다가 백보좌 심판대에서 심판 받아 불못 속에 들어가 타서 소멸되고, 예수를 판 가룟 유다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인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 또, 이스라엘을 못살게 괴롭힌 바벨론, 로마의 왕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유대인들을 그렇게도 많이 학살한 히틀러......등 등, 이들도 다 음부에서 고생은 하겠지만, 마지막 백보좌 심판대에서 심판을 받아 지옥 불 속에 들어가 타서 소멸되고 만다면 이거야 너무나 불공평한 것은 아닌가? 그런 자들은 다 지옥 불 속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생각해 보라. 사람을 한 명 죽인 죄인이나 한꺼번에 100명을 죽인 살인마나, 그에게 가할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은 오직 사형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못된 짓을 한 인간들이나, 하나님의 역사를 그토록 훼방한 마귀의 자식들이나, 단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뿐인 가엾은 사람들이나, 더구나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못했던 불쌍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나, 그들이 받아야 하는 형벌은 동일한 벌, 곧 그들의 영혼이 죽는  것, 곧 영의 멸망인 것이다.

악인들은 그들의 죄로 인하여 그 영혼이 지옥 불에 던지워 멸망당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 생명을 얻지 못한 자들은 생명이 없으므로 껍질뿐인 그들의 영혼이 지옥 불에 소멸되어 또한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지은 죄나 악행은 음부에 있을 때 그 죄나 악행에 상당한 고통으로 갚아 주시는 것이다.


예수를 모르고 믿지 못한 자가 지옥 불에 떨어져 멸망당하는 것이 억울한 일이라고? 아니다. 그들에게는 생명이 없으므로 생명 없는 흔적뿐인 그들의 영이 지옥 불 속에서 타 없어지는 것뿐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인간들을 창조하셨으므로 그들을 다시 무로 돌아가게 한다고 해서 억울해 할 일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참으로 의로우시고, 그의 심판은 참으로 공평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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