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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새로미 |2023.01.11 02:06
조회 157 |추천 3
창세기 2장

 

2장 1-2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천지 = 지구와 달과 해와 별들.

만물 =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들과 식물들과 동물들과 인간들.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6일 동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다.

6 일간의 천지 창조 = 땅에서의 6000년간의 하나님의 인간 창조 역사를 상징.

6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당신의 자녀로 만드실 터전이 완성된 것뿐이다. 

에덴에서 인간 아담을 창조하시고 6000년 동안 인간들을 양육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키우신다.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에 안식하시다.

이것은 동시에 앞으로 6000년 지상의 인간들을 양육하시고 역사하셔서 7000년이 되면 그 역사를 완성하신다는 것을 암시.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까지 약 2000년.   

아브라함에서 예수님까지 약 2000년.

초림 예수부터 재림 예수까지 약 2000년.

6000년의 인류 역사는 1장의 천지 창조부터가 아니라 2장의 아담의 창조부터이다.

 

2절 후반-3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안식하시다 =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창조 역사를 끝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인간 창조의 지상 6000년이 지나면 7천 년 째 되는 천년 동안, 이 땅에 죄가 영속되고 저주가 없어지고 사단은 묶이고 복만 있는 거룩한 시대가 열린다.

= 천년왕국. 인간의 지상에서의 안식.

천년왕국의 1000년이 지나면 영원한 인식에 들어간다.

인간의 안식일 = 하루 쉬는 날 곧 무노동의 날이 아니라, 인간으로 창조하시고 복을 주신 하나님께 피조물로써 감사하며 찬양을 드리는 날.

또 장차 임할 천년왕국과 영원한 안식을 생각하며 즐겁게 휴식하는 날.

 

2장 4-7절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를 공부할 때 제일 먼저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 구절.

1장에서 7일 동안 사람을 위시해서 모든 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안식하셨는데 이것은 또 무슨 말씀이냐?

또 1장 27절의 사람 창조와 여기(2장 7절)의 사람 창조는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일까?

가장 흔한 해석은 이렇다.

1장에서 모든 것의 창조는 끝났고, 2장은 인간 창조를 보다 세밀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해석해버리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 같다.

그러나 뒤에 가서 복잡한 일이 일어난다.

창 4장 14-15절의 말씀을 보자.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만일, 2장의 아담 창조가 1장의 사람 창조를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라면, 카인이 아우를 죽었을 때, 이 지구상에는 아담과 하와와 카인, 이렇게 세 사람 뿐 일터인데, “무릇 나를 만나는 자”는 누구며, 카인을 죽이는 자는 또 누구며,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하신 그 누구는 대체 누구인가? 

그래서 1장의 인간 창조와 2장의 아담 창조는 별개의 것이다, 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럼 1장의 안간 창조와 2장의 그것은 서로 다른 것이다, 라는 전제하에 2장을 풀어 보자.


다시 2장 4-6절의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마치셨을 때의 지상의 모습은 대략 이러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들에는 초목이 없었다. 그러나 1장에서는 이미 세 가지 식물을 창조하셨다. 그럼 어느 쪽이 진실인가?

둘 다 진실이다.

그런데 왜 서로 말씀이 다른가?

그것은 서로 다른 상황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1장에서는 지구 전체를 말씀하신 것이고, 여기서는 그 보다는 조금은 좁은 어느 한 지역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지 않으셨다. 그래서 들에는 초목이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했다.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그리고 이곳에는 사는 사람도 없었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경작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역사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들의 초목도 밭의 채소도 없었다. 곧 아무 것도 없었다.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안개 = 수증기.  물

1장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땅과 물이 있었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땅과 물(안개)이 있다.

 

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흙 = 땅 = 우리의 육신.

하나님은 흙으로 우리의 육신을 만드셨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넣으시다. 사람에게 영을 주시다.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러자 사람은 영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   

1장의 사람들은 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영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2장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

이것이 1장에서 창조된 사람과 2장에서 창조된 사람의 차이다.

1장의 사람은 보통 사람, 동물적인 사람의 창조.

2장의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람의 창조.

1장의 사람 창조는 육신만을 가진 사람의 창조요,

2장의 창조는 육신과 더불어 영을 가진 사람의 창조이다. 

  

하나님이 1장에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2장에서 또 아담을 창조하셨다는 설에도 두 가지가 있다.

1) 말씀 그대로 흙을 가지시고 만드셨다는 설.

2) 흙은 사람을 뜻한다. 1장에서 창조된 사람은 흙이다. 그들 중에 하나를 택하셔서(곧 흙을 취하셔서) 그에게 생기 곧 성령을 불어 넣어 아담을 만드셨다는 설.

하나님은 많은 죄인들 중에 우상 숭배를 하던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셨다. 마찬가지로 많은 흙인 사람들 중에서 그 하나를 태하여 영을 주시고 아담을 만드셨다.

   1)과 2) 어느 주장이 맞는지...각자 생각하시고 선택하세요. 그러나 어느 것을 택하든 결과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5절의 말씀을 다시 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5절의 말씀은 또 다른 뜻 곧 영적 뜻을 담고 있다.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비는 성령을 뜻한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역사는 끝났지만, 아직 지상에는 성령의 역사는 없었다. 

땅에 있는 것 중 어느 것도 성령을 아직은 받지 못했다.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땅에는 아직 나무도 없고 채소(풀)도 없었다. 땅에는 아직 생명이 없었다.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땅을 갈다 = 밭에서 일을 하다.

하나님 일을 하다. 하나님은 과원 주인, 우리는 그 농부.

1장에서 사람을 창조하시긴 하셨으나 그들은 고등 동물로서의 사람일 뿐.

하나님의 영을 받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은 아직 없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2장에서 창조하신다. 그가 아담이다.

즉 하나님의 밭을 경작할 사람을 창조하신다.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안개 = 공중에 가득 찬 수증기. 

이 물이 땅으로 내려와 땅을 축축하게 만든다.

= 사람을 만들 준비가 되다.

흙과 물 

흙과 물은 아담의 육신을 만들 재료.

물이 땅을 적셔야 생물들이 살 수 있다.

물이 땅을 적시다 = 성령이 우리 육신에 임하여 성령 충만 상태가 되다.

= 그래야 참 생명을 얻게 된다.  = 거듭나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다. 

지금도 하나님은 흙과 물을 섞어서 계속 사람이 태어나게 만드신다.

지금도 하나님은 흙에 불과한 인간들에게 당신의 입김 곧 성령을 불어 넣어 주시고 계시다. 

= 계속 영적 사람을 창조하고 계시다.

모든 성경 말씀은 현실적인 뜻과 영적인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먼저 흙으로 빚으시고, 그 다음에 코에 생기(영)를 주셨다.

우리는 먼저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고, 다음에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아 거듭난다.

  육 = 형     영 = 아우

  육 = 구약   영= 신약

구약은 버림받고, 신약은 구원 받는다.

형 에서는 버림받고, 아우 야곱은 구원 받는다.

육은 버림받고, 영은 구원 받는다.

우리는 먼저 육을 가지고 태어나서 성령을 받아 거듭나고 죽어 육은 썩고 영은 구원받는다. 

1장에서 창조된 사람은 육적 사람,  2장에서 창조된 사람은 영적 사람.

1장에서 창조된 사람들은 홍수 심판을 받아 다 지구상에서 멸절되었다.

지금의 모든 인류는 다 2장에서 창조된 사람 곧 아담의 후손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영이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1장에서 창조된 사람과  2장에서 창조된 사람을 비교해 보자.

1장에서 창조된 사람

1장 26절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다.

1)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는 능력.

2) 만물 위에 뛰어난 지혜

3) 자유 의지

  

아담의 범죄로 2장의 사람이 1장의 사람처럼 되고 말았다. 1장의 사람처럼 된 인류를 다시 2장의 사람으로 변하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

2장에서 창조된 사람

2장의 사람은 1장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가지고 있다.

그에게 하나 더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입김.

입김 = 영.  동시에 성령.   영과 성령은 그 질에 있어서 동일하다.

하나님은 영.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게 역사하실 때 성령이 된다.

1장의 사람 = 육신은 살아 있으나 영이 없는 사람.

2장의 사람 = 육신과 영이 함께 살아 있는 사람.

하나님은 1장의 사람도 창조하셨고, 2장의 사람도 창조하셨다.

1장의 사람과 2장의 사람은 외형상 아무 차이도 없다.

다만,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1장의 사람은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 = 번식을 위한 성

2장의 사람은 그 갈비뼈에서 여자가 나왔다.

아담과 하와, 곧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하나님과 성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나타낸다. 

지금도 하나님을 모르고 믿지 않으며 결혼해서 자식이나 낳고 사는 환락이나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은 1장의 사람과 별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

1장의 사람에게는 영이 없다.

짐승에게도 영이 없다.

지금 사람들은 다 2장의 사람 곧 아담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영이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 영이 있다. 

단만, 그 영이 잠을 자고 있는 사람, 영이 죽어버린 사람, 영은 살아서 활동을 하지만 분별을 못하고 악령을 따르고 있는 사람, 영이 깨어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 이렇게 네 종유의 사람이 있다.

  

영은 살았으나 악령을 따르고 있는 자 = 이들의 영은 활동을 하지만 악령을 따르기 때문에 멸망으로 들어갈 자.

영이 죽어버린 자들 = 따라서 실제적으로는 영이 없는 1장의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 하나님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영이 잠을 자는 자 = 영이 잠을 자고 있어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영이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영이 깨어 있는 자 = 영안이 열리고 영의 귀가 열려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

 

8-9절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동방의 에덴 = 지상낙원.  고통은 없고 즐거움만이 있는 땅.

먹을 것이 풍족하고, 기온은 온화하고 따뜻해서 옷을 입지 않고도 살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하셨다.

동방 = 해 돋는 곳.  영광이 빛나는 방향.   하나님 계신 곳.

히브리어로 에덴은 쾌락이라는 뜻.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참 쾌락을 잃고 땅의 천한 육적 쾌락에 빠지고 말았다.

인간의 참 즐거움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육신을 위한 양식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생명나무 =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 선과 악을 구별하게 하는 나무.

선 =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

악 = 하나님을 떠나 사단을 따르는 것.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성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선악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사단을 떠나 하나님을 따른다.

선과 악을 모른다면 우리는 사단을 따르면서도 그것이 악인 줄을 모를 것이다.

선악과도 하나님의 은혜.

아담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 간 것은 아직 선악과를 먹기 전이라서 그것을 먹는 것이 선인지 악인지 구별을 못했다.

선악과를 먹고 나서야 비로써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이 두려워 나무 사이에 숨었다.


10-14절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에덴에서 네 강줄기

1) 비손.   하월라 온 땅.  금, 베델리엄과 호마노의 산지.

2) 기혼.   구스 온 땅

3) 힛데겔. 앗수르 동편 (티그리스 강)

4) 유브라데. 앗수르 서편 (유프라데스 강)

비손 강과 기혼 강은 어느 강인지 알 수 없다.

계시록 22장의 생명수 강은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온다.

어린양 =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생명수 강물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부터 흘러나온다.

생명나무 열매 = 생명.  영생.

선약과 = 선과 악. 율법.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거부하면, 율법 밑에 있어야 한다.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 =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

아담을 만드시고 에덴동산에 두셨다.

=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풍족한 은혜와 사랑 안에 있게 했다.


동산을 적신 이 강물이 네 갈래가 되어 사방으로 흐른다.

하나님의 생명이 온 세상을 두루 흐른다. 온 세상에 생명을 두루 나누어 주신다.

강물 흐르는 곳에는 나무가 자란다. (나무 = 사람)

사람이 물을 마셔야 살 듯, 우리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이 강물을 마셔야 산다.

네 강 근원은 하나다 =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 한 분이다.


강이 넷으로 나뉘다.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첫째 강 = 비손.    비손 = [값없이 흐르다]라는 뜻.

이 강은 하월라 온 땅을 덮다.   하월라 = [자라게 하다]라는 뜻.

모든 것을 자라게 하기 위해 이 강은 거저 값 안 받고 흐른다.

금의 산지이다.   금 = 하나님의 성품.

이 강이 흐르는 땅에서는 금(금 같은 믿음)이 산출된다.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강물로 해서 금 같이 된다.

베델리온 = 진주.  새 예루살렘의 문은 진주.

진주 = 예수님. 거듭난 사람.

호마노 = 하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나타내는 변화된 사람.

비손강은 값없이 흘러서 만물을 자라게 하고 금과 진주와 보석을 낸다.

= 값없이 흘러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자라게 하고, 정금과 같은 믿음과 진주와 보석 같은 거듭난 사람을 낳게 한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둘째 강 = 기혼.  기혼 = 강물의 격류를 뜻한다.  격류 = 풍만.

많은 수량으로 거대한 강이 되어 물이 넘쳐흐른다.

이 강은 구스 땅으로 흐른다.   구스 = 지금의 이디오피아.

구스는 검은 얼굴.  곧 죄인을 뜻한다.

우리도 구원 받기 전에는 다 구스인이었다.

이런 우리를 폭포 같은 강물로 씻어 변화시킨다.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세째 강 = 힛데겔(티그리스)   신속함을 뜻함.

빨리 흐르는 강.  신속한 하나님의 역사.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넷째 강 = 유브라데 = 달고 풍부하고 결실이 많다는 뜻.

생명의 강물로 인해 많은 결실(구원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네 강을 다 모으면 신약 교회의 완전한 모습이 된다.

1) 이 강물로 인해 금 같은 믿음과 진주와 보석 같은 변화된 사람.

2) 검은 얼굴을 한 죄인들이 풍부한 물로 인해 하얗게 변화되고,

3) 이런 하나님의 역사는 신속하며,

4) 이 생명수로 인해 풍성한 열매 곧 구원 받은 사람의 수가 매우 많다.

이 네 강물은 에덴(어린양 예수)으로부터 흘러 나와 땅의 사방으로 흘러  내린다.


에덴동산은 장차 임할 천년왕국의 모형.

에덴에서부터 흘러나온 강물 = 예수님의 생명과 은혜의 강물. 이 강은 마지막 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의 생명수 강이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에 두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새 예루살렘에 살게 하신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명의 강물로 키우시고 변화 받게 하여 새 예루살렘에 살게 하신다.   인간 창조의 완성

새 예루살렘 = 성벽은 보석.  길은 정금.    문은 진주.

이것들은 강물이 네 갈래로 퍼져 흘러 그 땅에서 산출된 것.

* 정금 같은 믿음, 보석 같이 변화된 사람, 진주 같은 모습,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될 곳이 새 예루살렘인데, 이런 사람들은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물 곧 어린양 예수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로 인해 그렇게 된다.


금과 진주와 보석

금 =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닮은 신성한 본성.

진주 = 이물질이 조개 안으로 들어와 오랜 동안 고통을 인내해야 진주가 된다.  죄인인 우리가 오랜 고통을 인내한 후 진주처럼 된다.  진주 = 예수님

보석 = 다이아몬드는 탄소가 오랜 동안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아 형성된 것. 검은 숯과 같은 우리가 오랜 세월 도안 열(고난)과 압력(핍박)을 견디고 보석처럼 된다.

금과 진주와 보석 = 우리가 되어져야 할 모습. 참 성도의 모습.

천년왕국의 주민의 모습.


15-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사람 책임 하에 두시다.

하나님은 낙원을 만드시고 그것을 사람 책임하게 두셨다.

사람에게 책임과 의무가 주어지다. 사람에게만 책임과 의무가 있다. 

하나님은 이 아름다운 지구를 만드시고 그것을 사람들 책임 하에 두셨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아담은 에덴동산을 관리하지 못했다.

그 많은 나무 열매는 임의로 먹어라. 단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은 먹지 마라.

자유는 많고 제약은 적다 = 하나님의 큰 은혜.

생명나무 = 예수님. 생명의 원천.  하나님 자신.

선과 악이 뭔가? 

선 = 하나님을 따르는 것.   악 = 하나님을 떠나 사단을 따르는 것.

하나님을 따르면 생명을 얻기 때문에 선이요, 사단을 따르면 그 멸망이기 때문에 악인 것이다.

하나님을 따르면 생명과를 먹게 된다. 그러나 사단을 따르면 멸망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선이요, 하나님을 떠나 사단을 따르는 것은 악이다.

십계명 1-4까지는 하나님에 관한 것, 곧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섬길 것과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을 섬기지 말 것. 곧 선악과의 선과 악을 말씀하신 것.

5-10 계명은 사람에 관한 것, 곧 사회의 구성원으로 지켜야 하는 계율, 곧 세상의 선과 악.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들은 참 선악의 뜻을 버리고, 세상의 선과 악만을 선악으로 규정했다. 곧 사람에게 좋으면 그것은 선이요, 사람에게 나쁘면 그것을 악으로 규정했다. 말하자면 영적 선악과를 육적 선악과로 만들어 버렸다.

선악과 = 세상의 선과 악. 율법.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최초의 말씀 = 명령.

이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 

하나님은 먼저 에덴을 주시고 다음 하나님의 명령이 나온다.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 =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데 필요한 것들.  선악과를 먹지 않게 하기 위해 다른 많은 나무 열매가 있었다.

에덴에는 먹기에 좋은 각종 많은 나무 열매가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을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고, 그 다음에 명령을 주신다.


18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장의 사람 창조에서는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담을 돕는 상대로서 여자를 만드신다.

아담 = 둘째 아담인 초림 예수님의 예표이다.

그의 배필 = 교회. 성도들.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돕는 존재들이다. 


19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배필을 지어 주시겠다고 하시고는 흙으로 짐승과 새를 만들어 그에게 가져다 주셨다.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하나님은 여기서 또 흙으로 들짐승들과 새들을 만드셨는가?

아니면 1장에서 만드신 들짐승과 새들을 가져다 주셨는가?

어째했거나, 들짐승들과 새들은 흙으로 지어졌고, 아담으로서는 그것들은 처음 보는 존재들이었다.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들을 어떻게 대하나 보시려고.

= 혹시 그 중에서 자기 배필을 고르나 보시려고.

그러나 그 어느 짐승도, 새도 그이 배필이 될 수 없었다.

영적인 뜻 = 짐승 같은 사람, 새 같은 사람은 아담의 배필이 될 수 없다.

= 짐승 같은 사람, 새 같은 사람은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없다.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짐승과 새들에게 이름을 붙이다 = 짐승은 짐승으로, 새는 새로, 만들어진 그대로 그들을 그렇게 취급했다는 뜻.

그럼, 누가 그이 배필이 될 수 있다?

그의 갈비뼈에서 나온 자라야 아담(예수님)의 배필이 될 수 있다.

그의 배필이 되다 = 그의 신부가 되다.

갈비뼈에서 나오다 = 옆구리에서 나오다.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시고 옆구리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시다 = 옆구리에서 나온 물과 피로 거듭난 자라야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다.

예수님 앞에 짐승 같은 인간은 짐승 같은 인간일 뿐, 그의 신부는 될 수 없다는 뜻.

 

1장의 사람 창조에서는 먼저 식물이 창조되고 짐승들과 새들이 창조된 다음에 사람이 창조된다.

2장의 사람 창조에서는 먼저 사람(아담)이 창조되고 그 후에 짐승들과 새들이 나온다.

이 차이는 뭔가?

1장의 사람 창조의 순서는 창조의 시간적 순서다.

2장의 사람 창조는 창조의 목적적 순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기 위해 그 밖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다.

2장에서는 그 창조의 목적의 가장 중요한 사람의 창조를 먼저 말씀하신 것이다.

1장의 사람은 그들을 창조하신 다음 그들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각자 제 능력을 따라 살게 내버려두신다.

그러나 2장의 사람 창조에서는 창조된 아담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시며 살기 좋은 동산을 주시고 말씀을 주시고 배필을 주신다.

1장의 사람은 높은 지능을 가진 고등 동물로서의 사람 창조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 각별히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다.

2장의 사람은 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사람 창조이다.

지금도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20-23절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아담아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이름을 주다 = 그들에게 맞는 지위를 주다.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처소)를 부여하다.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흙으로 여러 짐승과 새를 지으셨으나, 그 중에 아담의 배필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하나님은 아담의 배필을 지으시기 위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다.

아담이 깊이 잠들다 = 예수님이 깊이 잠드시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그 옆구리를 창에 찔려 피와 물을 다 쏟으시다.

그 피와 물로 인해 구원 받은 사람들 = 그의 옆구리에서 나온 사람들 =  그의 배필. 그의 신부.

믿고 거듭나서 구원 받은 자들은 다 예수님 옆구리에서 나온 자들이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다.

뼈. 근본.  예수님의 근본으로 여자 곧 성도를 지으시다.

= 예수님처럼 되도록 지으시다.

계시록에 보면,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이 성전이 되신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은 그 성전의 기둥이 된다.

성전의 기둥 = 예수님의 뼈

“살로 대신 채우시고”

예수님은 살(육)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 그로 인해 우리는 그 분의 옆구리에서 태어났고, 그 분의 신부가 되어 다시 그 분의 옆구리를 채우다. 그의 옆에서 그를 돕는 그의 신부가 되다.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흙으로 빚어 만든 다른 짐승이나 새들을 보고는 그들의 이름만을 지어 주었을 뿐이었지만, 여자를 보자 너무나 기뻐서 외친다.

이 때, 아담은 깊은 잠에서 깨어난 후였다. 

=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다.

잠에서 깨어나신 곧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의 몸에서 태어난 교회를 보시고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신약 교회. 신약 성도는 예수님의 뼈와 살에서 나오다.

구원은 받은 우리는 예수님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그분의 몸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분의 몸 안에 있다.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 그 분의 갈비뼈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 = 앞에서는 여러 짐승들과 새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여기서는 여자를 보고 지어미라고 이름을 붙인다. =  아내로 맞다.


24-25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다 = 예수님과 교회가 한 몸을 이루다.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 예수님이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를 떠나. 

땅에 있는 교회, 성도와 하나가 되다.

아담과 하와가 한 육체가 됨 = 예수님과 교회(성도)가 한 몸이 됨.

아담 = 영     하와 = 육

모든 영은 하나님에게서 왔다.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을 떠나 인간에게 와서 육체와 결합해서 하나의 몸을 이루다. = 예수님.

사람도 영과 육이 하나가 된 존재.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 =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신부.


예수를 믿는 것 =  내가 어버이를 떠나(나를 낳게 한 세상의 모든 것을 떠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벌거벗다 = 가려야 할 죄가 없다.

우리도 예수를 믿고 예수로 옷 입으면, 즉 예수님을 나의 신랑으로 모시면, 예수로 죄가 가려져 부끄러워 아니한다.


창세기 = 인간 창조의 역사.

동시에 장차 임할 예수님의 모습과,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이유와 구원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창세기를 단순한 역사로 보려고 하면 여러 가지 모순에 빠지고 만다.

창세기는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시와, 인간 구원의 원리를 역사적 사실 설명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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