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살 여자입니다.
제 부모님은 27살, 23살에 속도위반으로 제가 생겨서 양쪽이 모두 반대하는 결혼을 했고 박터지게 싸우다, 제가 초5때 이혼하셨고 전 엄마 밑에서 2살 터울 남동생과 자랐어요. 아빠는 위자료 주기 싫다고 아예 저희를 모두 버리고 숨었다가 새살림 차리고 이복동생 낳고 또 숨었어요. 엄마는 새벽도매시장, 마트일 하며 저희를 키웠구요. 남편 없는 엄마와 우리 남매를 외가 식구들(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큰삼촌, 이모, 작은외삼촌)이 함께 돌봐주셨지만, 한편으로는 엄마도 외가 식구들도 한마음으로 제 마음을 괴롭혔어요.
1. 제가 태어난 건 제 탓이랍니다.
일단 엄마도, 외가 식구들도 모두 제가 생긴 게 제 탓이래요. 엄마 아빠가 피임을 안한 탓이 아니라요. 저 땜에 엄마 인생이 다 망했으니까 제가 평생 책임져야한다는 말을 모두에게 초5때부터 평생 들었어요. 심지어 엄마는 저와 남동생을 낳고도 5번이나 낙태를 더 했대요. 엄만 그 낙태도 저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저를 잘 키우려고 그 5명을 낙태한 것이니 그 5명만큼 제가 엄마한테 잘해야 한댔어요.
2. 엄마의 성적인 폭언
- 초6 초경 때 엄마한테 말하니, 짜증 팍 내며 남자랑 장난칠 생각 말라더군요. 제 친구들은 초경 때 축하받거나 엄마랑 둘이 밥 먹거나 그렇더군요.
- 중학생 때는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와서 식탁 위에 먹을 게 남아있거나, 옷걸이에 건 옷이 떨어져 있거나, 그외 제가 뭔가 맘에 안 들면 이런 말을 엄마한테 자주 들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니를 내가 키우는 게 아닌데. 니 아빠가 어떤 사람인 줄 아나? 니는 니 아빠한테 보내졌으면 아빠한테 직접 성폭행 당했을 거다. 그런 거를 내가 키워줬는데 이거밖에 못해오나? 아빠한테 가서 키워달라 해라.” 그래서 저는 아빠한테 안 보내지기 위해서, 엄마랑 외가 식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정말 사력을 다해 눈치보며 살았어요.
- 중2 때 저녁에 안 입던 옷 입고 독서실 가니까, 엄마가 저더러 남자 만나러 가냐고 빈정거리며 떠보더군요. 당시에 저는 남친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고 우연히 그날따라 그 옷이 입고싶어 입은 것뿐인데...덕분에 남자 만날 땐 어떻게 입는 건지 중2 때 조금 알게 됐습니다.
- 손가락털, 발가락털, 겨드랑이털 제모 그 무엇도 사계절 내내 못하게 했어요. 제모는 남자한테 몸 보여주려 하는 거라고 엄마가 난리를 치셨거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신체의 모든 털이 다 굵고 굉장히 많고 빨리 자라는 편이었어요. 하얗고 가느다란 예쁜 친구들 손 사이에 제 침팬지 같은 손 내미는 게 저는 정말 싫었어요. 하복 입을 때 긴 겨털은 또 어떻구요? 정말 학창 시절 내내 너무 큰 콤플렉스였습니다. 20살 되고도 손에 털이 수두룩하게 다녀야했고, 겨털 밀때마다 눈치를 봐야했고 엄마가 항상 제가 제모했나 안했나 제 몸을 훔쳐보는 그 시선을 감내해야했어요.
3. 그외에 엄마가 제게 한 일
- 가난도 다 제 탓이라고 엄마, 외가식구들 모두 제 탓을 했는데요. 저는 의아한 점이 참 많았어요. 엄마가 마트일을 할 당시에 저도 마트 알바를 정말 많이 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의류쪽보다는 식품쪽이 페이사 셌엇어요. 그래서 저는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다 했었는데 엄마는 항상 돈이 적은 의류쪽만 하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엄마는 본인 외모가 예쁜데 모양 빠지는 식품 쪽 일을 어떻게 하겠냐고 모양 덜 빠지는 옷 파는 게 낫다고 하더라구요 ㅋㅋㅋ 안 가리고 다 하는 딸을 보면서 어떻게 이 말을 뱉을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엄마 아빠가 이혼하던 초5때부터, 엄마는 뭐만 하면 자긴 자살할 거다, 자살하려고 언제언제 산에 올라갔다 왔다, 묫자리 보러 다니고 있다, 이렇게 본인이 힘든데 왜 너는 전교 1등을 못해오냐, 옷을 안 거냐 어쩌고 하며 아직까지도 본인 자살로 저, 외가 식구들을 협박합니다. 정작 나는 그러는 엄마 본인 때문에 초딩때 부터 아무도 없는 집에서 손목에 식칼을 대봤다 뗏다를 무한 반복하고, 20대까지도 잠 못자고 굶어가며 학원일 두탕씩에 취준 공부를 병행하며 지하철 선로에 언제 투신할까를 늘 생각하고 살았는데...저한테 다큰 어른인 엄마가 자살하니 마니하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였을까요?
- 제가 중학생 때부터 엄마는 저에게, 저는 마흔살까지 연애도 결혼이고 다 안되고 이모 집에 엄마, 아빠가 함께 진 빚 5천만원을 갚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제 인생에 필요한 모든건 또 저 혼자 알아서 해야 된댔습니다. 그 무엇도 저를 위한 인생은 안된다고 했어요. 여기서 아들은 열외더군요.
- 고3 때 수시 원서 쓰는 데 장당 3만원, 5만원씩 들기에 2장만 쓰게 해달라 엄마한테 애원했지만, 공부 잘하면 수시가 왜 필요하냔 말로 혼나기만 하고 한 장도 써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서울로 대학을 가려 하니 엄마와 외가 식구들이 다 나서서, 여자는 서울에 가는 게 아니다 ㅋㅋㅋ, 니가 서울 가면 너네 엄만 어쩌란 말이냐 너는 서울 가면 안된다 그렇게 못해준다며 엄마 옆에 그냥 눌러 앉혔습니다. 이것 역시 제 천추의 한입니다.
- 집에서 통학하며 대학 다니고 나니 엄마가 하숙비를 내라 하더군요. 전기세, 수도세, 식비, 숙박비 남들은 다 받는다구요...엄마가 제가 대학 다니는 데에 보태준 건 처음 들어갈 때의 등록비 단 하나뿐이었는데.
- 대학생 때 학교에서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싸게 해주던데 그 당시 돈이 없었습니다. 등록금은 외가 식구들과 엄마가 해줬지만, 그 이후는 니가 알아서 하는 거라 그래서 학자금 대출을 생활비도 했어야 했어요. 그래봐야 한 학기에 100만원만 생활비로 대출 가능하니 나머지는 방학 때 죽어라 알바를 해서 다음 학기 생활비를 벌어놔야 했습니다. 학기 중엔 죽을동 살동 공부해서 전액 장학금을 따야 했구요. 폰비도 책값도 옷값도 교통비도 식비도 그 무엇 하나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방학 때는 늘 일하고, 학기 중엔 늘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자궁경부암 예방접종비를 빌려달라 한 거였는데, “네가 안 문란하게 살면 그런거 맞을 필요도 없는 건데 왜 돈 달라고 하냐?”는 소리만 들었습니다.
- 재작년에 저는 작은 산부인과의 오진으로 암 소견을 들었었습니다. 결과는 오진이었기에 다행이지만,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1주일 동안 저는 자궁적출까지 알아봤었어요. 그러나 엄마는 역시...이 소식을 듣고도 저에게 전화 한통 없었습니다.
- 작년에 이게 무슨 장난인지 우리 엄마는 자궁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하게 됐고, 설상가상으로 유방암까지 걸렸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그러니 저에게 간병하러 오라고 안하던 반찬 보내더군요. 이때 31살 아들은 취준 백수였습니다. 엄마 수술 후 일주일 을 간병할 보호자가 필요했는데, 엄마한텐 중요한 일정있다 뻥치고 놀러 나간 아들한테 간병 안 받고 저한테 간병 받겠다고 반찬을 보내더군요...저는 또 무너졌어요. 저는 엄마한테 집에서 쫓겨나기 전가지, 엄마가 단순한 수면 내시경 검진 하나 받을 때도 제 모든 일정은 다 빼놓고 엄마 모시고 병원가던 딸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엄마가 아프든 말든 가지 않았습니다.
4. 남동생과 차별
이게 더더욱 제 마음에 생채기를 크게 냈어요. 저는 집에서 쫓겨나던 23살 전까지 엄마가 저한테 어떻게 했어도, 제가 정말 죽을 것만 같았어도 항상 다시 이해하고 용서했어요. 상처받았던 말들이 잊혀지지가 않아도 어제처럼 생생해도 그런 내 마음을 다시 눌렀어요. 엄마 인생도 참 불우했으니까 엄마가 힘들어서 그랬을 거다, 나한테만 그러는 게 아닐 거다 했어요. 헌데 엄마가 남동생에게 하는 걸 보니 저한테만 이러는 거였더라구요. 저는...엄마가 자식에게 다르게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남동생에 대한 엄마 태도를 보며 알게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더 분노하게 됐고, 왜 나한테만 이러냐 하지마라고 따진 적도 많았어요. 그러나 항상 돌아오는 말은 미안하다 차별 않겠다가 아니라, “니는 그럼 동생도 똑같이 당하면 좋겠다는 거냐? 못된 년.” 이었어요. 제가 당한 차별들은 이랬습니다.
-7살 때, 그땐 엄마 이혼 전이었죠. 5살 남동생이랑 싸웠습니다. 그러고 둘이 밤에 한 방에서 자다가 같이 무서워서 엄마 침실로 가서 둘이 같이 잘못했다 하며 울었는데, 엄마가 동생은 안아주고 저보고는...너는 저리 가라고 밀치더라구요. 너무 충격받았던 기억이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이미 남동생과의 차별은 이외에도 너무 많았어서 저는 초2, 3때도 죽고싶다는 일기를 정말로 많이 썼었어요. 그 일기를 본 엄마 반응도 충격이었죠. “죽어봐라, 이 일기 그렇게 광고하고싶으면 너네 학교 방송 틀어놓고 읽어줄게” 하더군요.
- 초6 때 복막염 수술로 10일을 입원했어요. 그땐 아빠가 이혼 후 도주 전이라, 아빠가 보호자로 있었지만 자리를 자주 비웠어요. 그 동안 저는 6인실 내에 있던 할머니와 아주머니 두분이 돌아가시는 걸 라이브로 모두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둘씩이나 어떻게 죽는지 죽을 때 몸이 어떻게 되는지 초6때 다 봐버렸어요. 그러나 엄만 그런 저에게 괜찮은지 전화 한통도 해주지 않더군요...사람 죽는 거 두번이나 보는 동안, 무서운 건 잘 못 느꼈지만 그냥 왠지 그렇게 엄마가 보고싶었었어요. 엄마에게 이 얘길 했더니 엄마는 또, “그럼 니 동생 밥도 굶기고 니 보러 갔어야 된다 이 소리가? 니는 진짜 나쁜년이다.” 하더군요.
- 중2때부터 공부가 제법 재밌게 느껴지기 시작해서 혼자 조금씩 했더니 성적이 모두 수, 체육 하나 우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또 혼났어요. 제가 공부를 잘해서 동생이 기죽어 산다고 동생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건 다 제탓이라고요.
- 중학생 때까지 엄마가 새벽에 출근을 하셔서, 저는 혼자 일어나서 남동생 일어나라 깨우고, 혼자 교복 다려입고 등교했습니다. 헌데 제 남동생은 고등학생 때까지 혼자 못 일어나는 아이였어요. 깨우면 정말 불같이 화를 내고 온갖 짜증을 내며 일어나지 않는 아이였죠. 그래서 얘를 몇번을 일어나라 깨워도 일으킬 수가 없었어요. 할 수 없이 제 지각이라도 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먼저 등교했죠. 그래서 아직도 엄마한테 욕을 먹고 있어요 지혼자 등교하는 나쁜년이라구요.
- 제가 중학생 때, 초딩이었던 남동생이 모두를 속이고 일주일 간 무단결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엄마는 처음으로 남동생 엉덩이를 매로 때렸는데요. 이때 제가 안 말렸다고 역시 아직까지 저는 나쁜년 욕을 듣고 있습니다. 이 동생놈은 정작 평생을 제가 엄마한테 오만 이상한 소리 다 들을 때, 집 오자마자 헤드폰 딱 쓰고 지 방 들어가 문 싹 잠그고 그다음날까지 방밖으로 절대 안나오던 놈입니다. 제가 엄마때문에 힘들다 말하면 자기한테 말하지 말라면서 오만 성질 다 냈구요. 여튼 저희 엄마는 아직도 남동생 엉덩이에 세겨졌던 그 맷자국이 너무 가슴이 아프시고, 저는 못된년이래요.
- 학창시절 내내 집안일은 저만 하라고 했어요. 아들은 하나도 안 시키고 설거지 저만 시키려고 안달내셔서 제가 거절했죠. 할 거면 하겠다 헌데 공평하게 나눠서 하자, 왜 아들을 설거지를 못하냐고 따졌을 때, 엄마는 아들은 설거지 못하는 거기 때문에 못 시키니까 제가 하라고 화를 냈어요. 그래서 제가 나는 초1때도 엄마가 화상 입어서 힘들다고 일주일 넘게 설거지를 했는데, 왜 아들은 고1이 되어도 설거지를 못하느냐 따졌더니, 절대 아들은 못 시키겠다고 그럴거면 자기가 혼자 집안일 다하시겠다 해서 알겠다 했습니다.
- 중학생 때 성적이 나쁘지 않으니 반장철만 되면 담임 선생님들이 저를 불러주셨어요. 반장 부반장 출마 해보라고. 저는 정말 해보고싶었지만, 엄마가 돈 없어서 못 시켜주니까 니가 담임샘한테 알아서 하기 싫다고 저는 미화부장 총무부장하고싶어요라고 하고 그거나 하라고 하더군요. 풀이 죽어 알겠다고 했고, 매년 반창선거철 되어서 불려가면 저는 그냥 미화부장 총무부장이 좋아요 선생님 했습니다. 헌데 고딩이 된 남동생이 하루는, 반장 선거에 나가고싶다고 샤워하며 울더군요 ㅋㅋ 그걸 본 엄마가 바로 엄마가 반장 시켜주겠다고 꼭 출마하라 합디다.
- 고딩 때 수학만큼은 정말 혼자 못하겠다, 인강이라도 좋으니 좀 보게 해달라 3년 내내 부탁드렸지만 돌아온 엄마의 말은 “돈 없다. 그리고 그건 니가 알아서 공부 잘하면 되는거지, 무슨 과외가 필요한데?” 였습니다. 조르고 졸라 고3때 딱 2달은 받는 데에 성공했네요. 헌데 동생은 고딩 되자마자 3년 내내 영수 다 과외 붙여주더군요?
- 저는 14살부터 20대 중반까지 매년 각종 명절, 김장에 동원됐어요. 저는 지금도 명절, 김장하면 치가 떨립니다. 주부들의 명절증후군, 저는 중학생 때부터 겪었어요. 헌데 제 밑으로 제 남동생, 사촌여동생, 남동생 있는데 얘들 아무도 안 오더군요. 얘들은 다들 명절이면 코가 비뚤어져라 술마시고 늘어져 자고, 새벽까지 드라마 보고 친구 만나러 놀러 갔습니다. 밥만 딱 먹으러 오구요, 와서도 수저 하나 놓지 않아요. 헌데도 저희 엄마는 저는 무조건 가서 일을 해야 한다 하고, 외가 식구들 그 누구도 제가 고3 때조차도 안 와도 된다, 너도 쉬어라 한마디 그 누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오는 건 당연한 일인 양, 몇 시에 올거냐, 왜 이렇게 안 오냐, 일 빨리 시작하게 와라 이런 말들은 했어도요.
- 제가 인턴 나갈 때 저는 제 돈으로 30만원치 옷을 사서 1달간 인턴생활 마쳤었습니다. 헌데도 엄마는 제 통장 압수해서 뭐에 썼나 검사 다하고 왜 이렇게 돈 많이 썼냐 헤프다고 혼내더군요. 몇년 뒤 저랑 똑같은 인턴 나간 동생에게는 엄마랑 외할머니가 100만원을 들여 옷을 해주시더라구요.
- 동생 대학생 때 지 혼자 이태리 여행가는 데에 돈이 없어서 엄마가 집의 열달치 월세를 동생에게 줬습니다. 그러곤 당장 낼 월세가 없어서 엄마가 난리가 났었어요. 월세는 정말 적은 금액이었지만 당시 학원 알바하며 취준 공부하던 저에겐 필수로 들어야 할 인강 수강비였습니다. 그 해에 제가 볼 시험 형태가 아예 바뀌었기 때문에 정말 그 인강을 저는 꼭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월세가 없어서 큰일이라고 우는 엄마한테 이걸 그냥 드렸어요. 그리고 그 해에 그 인강을 들었으면 답을 쓸 수 있었던 내용 단 하나를 빠트려 1년을 다시 공부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러고 또 몇년 뒤 저는 엄마에게 다시 욕을 먹었습니다. 꼴랑 그거 줬다구요.
- 인강 못듣고 떨어져 다시 공부하던 해가 23살입니다. 엄마는...학원 알바하며 취준공부하던 저를, 새벽 1시에, 본인을 안 사랑한단 말을 했단 이유로 맨몸으로 그냥 쫓아냈어요. 그때 저는 내가 어딜 어떻게 나가냐고, 잘 거니까 내 방에서 나가달라 기를 쓰고 버텼지만 엄마는 자기 집에서 당장 나가라며 빈털터리이던 저를 버렸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몸뚱아리 하나 들고 나와 강제독립을 하게 됐습니다. 쌀이 덜어진 날부터, 추운 겨울날 생일인데도 가족들 축하 하나 못 받고 이력서 뿌리러 다니다 주저 앉아 엉엉 운 날까지...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그 당시에. 20대 초반 딸을 새벽에 쫓아내던 우리 엄마는 저한테 니 옷 싸서 나가라해놓고 제가 울면서 짐 싸는 동안 드라마 보며 깔깔깔 웃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니 날 낳아준 이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악마, 싸이코패스처럼 느껴졌어요. 그래놓고선 저를 쫓아낸 다음날 외가 식구들한테 전화를 쫙 돌려서는 제가 엄마한테 먼저 연을 끊자고 하며 집을 나가버렸다고 거짓말을 돌리셨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외가 식구들로부터 더 미움받게 되었어요. 시간이 흘러 엄마는 재혼할 남자를 찾았고, 저는 취업에 성공했고, 남동생은 30살 취준생이 됐어요. 그러나 엄마는 저에게 전화해서, 재혼하고싶은데 재혼한다고 30살 취준 아들을 쫓아낼 수는 없고, 재혼할 남자랑 아들이랑 셋이 살자니 눈치 보이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 저한테 고민상담했어요. 저는 30살이고 아들인데 독립해도 된다 말했었죠. 나는 23살에 맨몸으로도 준비없이 예고없이 했다고. 엄마는 저를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 적은 있었을까요?
- 위의 일 이후 큰삼촌으로부터, 엄마가 재혼할 남자 명의로 돼있는 아파트를 남동생에게 주겠다고 맘 먹었단 사실을 들었습니다. 아들은 왜 크고 좋고 보증금도 필요 없는 30평대 아파트에 쫓아내드리는 건가요? 이게 차별이 아니면 뭔가요 대체. 제 마음은 또 무너졌어요.
- 30살 넘은 취준 아들에게, 청년적금을 엄마 본인 돈을 투자해서 만들어주겠다고 했더라구요.
5. 남동생은 저에게
- 남동생이 초5때였나... 동네에 퇴폐업소 전단지가 난무했었습니다. 거기엔 주요부위만 가린 채 노래하는 여자들 사진과 ‘쇼걸’이란 단어가 있었죠. 동생은 이미 이때 저더러 “누나 니는 노래를 잘하니까 쇼걸이나 되라.”며 웃었습니다. 빡 돈 저는 쌍욕으로 응수하며 미쳤냐며 맞대응했죠. 그걸 본 엄마에게 저는 또 혼났습니다. 어린 동생이 그게 뭔지 어떻게 안다고 동생한테 욕을 하냐면서요. 아직도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했습니다.
- 저에겐 2달뿐이었던 과외를 3년동안 체계적으로 받은 남동생은 저보다 좋은 국립대에 들어갔었습니다. 그리곤 술먹고 집에와서 저보고 누나는 대학을 그런 데밖에 못가냐며 비아냥댔죠. 저는 화를 냈고 엄마에게 말도 했지만 동생의 가벼운 사과로 또 강제로 넘어갔습니다.
- 제가 집에서 쫓겨나 밤마다 엄마에게 욕설섞인 문자와 질타와 폭언문자를 받으며, 학원일을 두탕씩 하며, 이모 때문에 강제로 사촌동생 과외까지 하며 취준 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시험을 친 게 6년이 되었을 때 남동생은 저랑 같은 시험을 응시하게 됐습니다. 남동생은 그해에 시험에 시원하게 떨어졌지만 저에게 “누나는 그렇게 시험 오래 쳐놓고도 문제가 안 보이나? 나는 한번 쳐보니까 뭐 나올지 다 알겠던데?” 하더군요. 세월이 흘러 다행히도 저는 7년째에 감사하게 시험에 합격해서 취준이 끝났고, 이 x놈ㅅㄲ는 저랑 똑같은 직업의 그 시험을 9년째 보게 됐습니다 ㅋㅋㅋ
- 32살 취준생인 이 남동생놈은 스마트 기기를 다룰 줄 모르는 엄마가 지한테 배민 주문방법을 알려달라하거나 주문을 해달라한다, 인터넷 뱅킹을 알려달라고 조른다, 30분짜리 연수 듣는 거를 좀 도와달라고 한다는 이유로, 기분이 나쁘다며 매우 씩씩대며 저에게 전화해선, 엄마와 다음달부터 의절하겠다 난리치고 있습니다.
6. 외가 식구들
- 일단 제 말 자체를 그냥 안 들어보려고 합니다. 엄마랑 너 사이에 뭔 일이 있었건 간에 그건 니가 생겼기 때문인거다, 엄마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그런거 우리한테 말하지 마라 듣기 싫다. 그런거 다 필요없고 엄마가 너를 낳아서 고아원에 갖다 버리지 않고 키워줬는데 감히 이러냐라고 제게 말합니다. 이분들은 평생에 저에 대한 기본값이 이렇습니다.
- 외할머니가 외가 식구들의 중심이신데 저에게 잘해주시는 듯하지만 결국은 또 엄마랑 나머지 식구들이랑 한편이셨습니다. 본인 딸이 손녀보다 소중하시니까요. 저만 보면 그렇게 니 애비가 어땠다 저땠다, 엄마 아빠 이혼한지 15년이 넘어도 저는 생사도 모르는 저를 버린 아빠 얘길 할머니한테 들어야했어요. 엄마 인생 다 니 탓이니까 엄마한테 잘하고, 니가 엄마 이해하고 용서해야한단 말도 당근 외할머니가 젤 많이 했죠^^ 정작 본인은 젊어서 가정상담 다니시며 나쁜 엄마들 혼내고 다녔다는 분이, 성당 다니며 신실한 신자라는 분이요.
- 이모는 또 제가 일하며 취준할 때 사촌동생 과외를 해내라 들이밀고, 제 밑의 사촌동생들 진로가 걱정되면 그때는 저에게 연 락해서 조언을 구합니다 ㅋㅋㅋㅋ
- 제가 취업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겨서 외할머니 혼자 사시게 됐습니다. 외할머니가 걱정됐던 저는 그 해 1년간 학원 두 곳에서 일을 하며, 취준 공부를 하며, 사촌동생 강제 과외를 맡았음에도 일주일의 반을 외할머니댁에서 살았습니다. 외할머니에 대한 원망과 상처가 정말 컸지만, 그래도 제 할머니니까 그렇게 제가 챙겼습니다. 그러면서 이 외가식구들이 그렇게 끔찍하게 소중하다는 이 외할머니를 얼마나 안 챙기는지 다 봤습니다. 외가 식구들 그 누구도 갑자기 혼자가 된 할머니를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자식이 우리 엄마까지 넷인데도요. 제 밑의 남동생, 사촌동생들 그 누구도 안 다녀갔습니다. 크리스마스에도 아무도 안와서, 제가 할머니 외로우실까봐 남자친구를 불러서 할머니랑 셋이 미사보며 보내드릴 정도였어요.
있었던 일들 추려도 이 정도라 글이 정신이 없어 죄송합니다...제 가족들은 저에게 이랬지만, 저는 그래도 가족이니 챙겨야한단 사명감과 원망증오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았어요. 푼돈 받는 알바할 때도 꼭 싼 치킨이라도 한마리씩 사들고 집에 가 엄마랑 남동생 먹였구요. 학창시절부터도 엄마 퇴근 후 표정 안 좋으면 다정하게 옆에 가서 무슨 일 있는지 늘 묻고 엄마 직장생활 고민상담 들어줬구요. 남동생 여행간다고 집세 10달치 받아갔을 때도 엄마가 집세 없어서 남동생한테 다시 뜯으려는 거 제가 남동생 곧 군대가야한다고 말렸어요 그냥 내가 안 받겠다고. 취업하고 나서는 외가식구들 생신마다 선물 다 챙기고 늘 찾아뵜었고, 엄마 생일이면 늘 선물 드리고 재혼할 아저씨랑 식사하시라고 식사권 선물도 드리고 등등...저는 가족들을 위해서 더이상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이제.
저도 제가 가족들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챙겼던 만큼이라도 보살핌 받고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란 걸 잘 알아요. 서럽습니다. 너무 지칩니다. 저에게는 제가 아파서, 제가 아플까봐 병원에 가줄 가족은 없고, 본인들이 아파서 제가 필요한 가족들만 있습니다. 제 가족들은 저에게 뭔가 필요한 게 있을 때만 연락해요.
---현황 수정-------------------------------------------------------------------------------------
자기들이 한 건 당연히 할 수 있는 거라 주장하고, 저를 키워준 은혜 모르는 년이라 욕하고, 끝없이 자기들을 제가 챙겨주길 바라고, 안해주면 계속 저를 원망하기만 하는 가족들입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집에서 쫓겨난 시점부터 아예 연락을 끊었다가, 집에 큰 일(외할아버지 돌아가심, 외할머니 치매 소식 등) 생겼다고 슬쩍 연락 올때 가벼운 사과 받고 이젠 안 그러겠지 믿고 연락 이었다가 또 이 사람들 똑같은 걸 확인하고 다시 끊었습니다.
제가 뭘 그렇게 이 집에서 잘못했다고 저 하나 가지고 다같이 샌드백 취급하는지 당한 세월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립니다. 저는 아무리 봐도 남의 집들과 비교해보면 제가 낳음 당한 것 같고, 이 가족들을 평생 죽을 때까지 두번 다신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 남동생이 저랑 같은 지역의 동종업계에 있어 문젭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직장이 좁은 업계라 이놈이 제 직장을 언제든 알아내고 찾아올 수 있고, 제 소문을 이상하게 내고 다닐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단체로 직장에 찾아와 농성하든, 제 직장에 전화해서 제 욕을 하든 할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