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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왔던 나의삶, 죽지 못해서 살았었다.

잡초 |2009.01.08 18:21
조회 27,856 |추천 14

 

 

안녕하세요.(__)(__)

요즘 너무나도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형님 누나 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어 드리고 싶어서 올렸던 글인데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건 저의 한국어 실력이 탄로 났다는 부분에 대해서 참 안타깝습니다.

급하게 쓰다보니 오타가 났는지 띄어쓰기가 안되었는지 확인을 못했네요.^^;;

 

 

http://www.cyworld.com/pcbankba

 

제 싸이주소입니다.

많은분들과 일촌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연이 된다면 그분과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인연이란건 정말 소중하단 생각을 하며 살아가거든요.

 

가장 큰 상처를 주는것도 사람이지만 가장 큰 위로와 사랑을 주는것 역시 사람이기에

전 사람이 너무나 좋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함께 아파해주는 우리 대한민국사람들이 너무나 좋습니다.

 

오늘도 힘내서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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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팅만 하다가 이렇게 용기 내어서 글 올립니다.

 

전 올해 28살에 청년입니다.

현재 중국 광저우에서 스포츠관련 단체복과 의류 용품들을 직접 제작 또는 사입해서

한국의 매장과 다음까페 오픈마켓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전 2남1녀중 장남으로 장흥이라는 조그만한 농촌 시골마을에서 태어 났습니다.

아버진 알콜중독자 셨고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를 저희 3남매를 식당일을 하시며 우리를 키우셨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술에 쩔어 사셨고 그럴때 마다 폭력과 집안의 물건들을 부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폭력과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셨던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때부터 집안일과 동생들을 제가 책임져야 했습니다.

신문배달을 시작 했습니다.

하루에 2시간씩 한달동안 꼬박 일하며 2만원이란 돈이 저의 월급이였습니다.

그 돈은 저희 가족의 한달 생활비였습니다.

반찬도 사고 당연히 아버지 술도 사드려야 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흐르더군요.

몇번이나 자살을 시도 했는지..

그렇지만 죽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다시 마음을 잡고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턴 중국집에서 설거지와 배달을 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하루일당 1만5천원.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때부턴 노가대를 뛰었습니다.

힘든일인 만큼 일당도 많더군요. 하루일당 4만원

 

그렇게 전 저의 어린시절과 중학교 고등학교 사춘기 시절을

아버지의 술취한 모습과 폭력을 당하며 공부와 노가대를 병행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꿈과 비젼이 있었습니다.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체육선생님이 되기 위해선 대학교를 가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실업계를 다녔던 탓에 수능에서 제가 원하는 대학을 갈만한

점수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때 위장취업을 나가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노가다를 뛰었습니다.

그 돈으로 재수학원에 등록을 하고 올 수능시험을 위해서 죽도록 공부 했습니다.

 

전 당당하게 제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수능도 그리고 실기 모두다 제가 원하는 만큼에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합격하니 그 다음부터가 문제더군요.

그래서 또 노가다를 뛰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돈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대학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행복했던 대학생활은 1학기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2학기 등록금을 낼 수 없어서 학교를 포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곤 정말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노가다, 충전소, 주유소, 세차장, 공장, 배달, 용역청소, 하우수 등등

 

그리고 농구가 너무 좋아서 만들었던 까페가 많은 회원들이 가입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 그 까페에서 농구화를 공동구매를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자금은 없었지만 무대포 정신으로 그당신 농구화를 판매하는 인터넷쇼핑몰들의 전화번호를 모두 수집해서 몇일간 전화한 끝에 함께 공동구매를 추진할 업체를 찾았습니다.

(그 당시 저희 까페 회원수가 2만5명에서 3만명정도 되는걸로 기억합니다.)

 

미리 그 업체에서 농구화 리스트를 받고서 그 리스트를 가지고 까페에서 공동구매를

추진 했습니다.

먼저 입금을 받고 일정수량의 주문을 받으면 제가 컬레당 1~2만원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공적으로 공동구매는 진행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는 제가 직접 그 업체에 제품을 수입해서 단독으로 공동구매를 진행 할 수 있었습니다.

 

전 그렇게 제 인생의 첫 사업을 시작 했습니다.

어린나이에 나름대로 많은 돈을 벌었던거 같습니다.

차도 사고 술집, 피시방, 보쌈족발집을 차례대로 운영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어린나이에 욕심과 의욕만이 앞서서 였던지 모두 망하고 말았습니다.

거기다 친구에게 사기까지 당해서 2천만원 가까이의 빚도 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죽고 싶도록 암울했던 나날들..

몇달간을 술에 쩌들어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포기 할 수 는 없었습니다.

인생의 경험이라 생각하고 인생수업비라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도서관에 가서 책만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읽게된 중국관련 무역 서적에서 전 비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2년전에 중국 광저우에 왔습니다.

저희 자체 브랜드를 출시할 목표를 가지고 이곳 중국에 왔습니다.

단돈 2백만원을 가지고 이곳에 왔습니다.(비행기값, 3달치 집값을 주니 얼마 남지 않더군요)

중국어 한마디 하지 못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전 자신 있었습니다.

모이자란 중국조선족 싸이트에서 알게된 조선족을 직원으로 쓰면서 이곳 중국 생활을 시작 되었습니다.

 

정말 죽어라 일하고 공부 했습니다.

항상 집안엔 중국어 강의가 컴터에서 흘러 나왔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동안에도 저에 귀에 이어폰은 빼지 않고 중국어를 공부 했습니다.

 

중국 도매시장에 나와있는 축구복과 농구복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렸습니다.

한국에 사무실이 따로 없었기에 단체복 주문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전 한달에 5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몇달되지 않아선 순이익이 천만원가까지 벌때도 있었습니다.

모든 빛을 정산하고 한국에 매장겸 사무실을 오픈 했습니다.

촬영과 포토샾이 가능한 직원들도 뽑고 스포츠회사 다운 모양을 갖추려고 노력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일했습니다.

작년엔 그동안 너무나 사고 싶었던 아파트와 차를 장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주식이 많이 떨어졌지만 나름 중국주식에 관련된 공부를 해서

중국만과기업 주식도 2천만원 투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매달 20만원씩 들어가는 펀드와 적금..

 

 

올 저의 목표는 영어공부를 위해서 필리핀에 가는것과 일어공부를 위해서 일본에 가는겁니다. 중국어를 공부하고 나니 정말 커다란 매력이 있더군요.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많은 중국 사람들을 사귀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의 가장 큰 목표는 저희 고향인 장흥에 멋진바다가옆에 2층 팬션을 짓는겁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돌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28살이 되시기까지 식당일과 수많은 일들을 하시며 저희 3남매를 지켜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대학교때 돌아 가셨습니다.

나이를 먹고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사람이 나빴던게 아니라 술이 나빳던 겁니다.

지금은 어려서부터 잡초가 될 수 있게해 주셨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전 아버지 덕분에 죽을만큼 힘들일이 아니며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항상 모든일에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긍정의 힘을 배웠습니다.

 

전 올해 꼭 멋진 바닷가옆에 멋진 2층 팬션을 짓어서 저희 어머님과 그리고 저희의 새가족이 되신 새 아버지가 그곳에서 고기도 잡으시고 농사도 지으시면서 팬션도 관리하시고 돈도 버시면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오면서 수십번 자살 시도를 했고 그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럴때마다 다시 마음을 새로 잡았습니다.

난 잘할 수 있다. 난 잘해 낼꺼다.

정말 멋진 사람이 되서 평생 우리때문에 고생하신 어머니 호강시켜 드리자.

세상에 나보다 가지지 못한 그들에게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자.

 

"어떤한 상황과 환경속에서 꿈과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간다면

 분명 우린 상황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두려워 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행동하십시요. 그리고 죽도록 노력하십시요."

저도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겠습니다..

 

 

 

 

 

 

 

 

 

 

 

 

 

 

추천수14
반대수0
베플메뚜기|2009.01.08 18:27
그 열정, 마음가짐 잃지 마시고 끝까지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본 받아야 겠네요 홧팅~
베플25헛인생|2009.01.10 17:05
'빛을 정산하고' , '호광시켜 드리자' ... 눈에 띄는 오타들을 차마 지적할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 속에서 글쓴이가 더 멋져보인달까. 원하는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던 절망적인 상황을 추측할 수 있다. 그 속에서도 꿋꿋이 일어선 글쓴이.. 닉네임에서부터 글쓴이의 강인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저런 집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목표없이 25년 헛인생을 산 내가 새삼 부끄러워진다.. 2009년에는 글쓴이 반 만큼의 근성이라도 가지고 살도록 노력해야지.. 다른 톡커님들도 모두 화이팅..!
베플친구|2009.01.10 12:37
소름끼칠정도로 멋진 분이네요. 잘 되실겁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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