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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있는 여성을 좋아하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가요?

쓰니 |2023.02.06 22:33
조회 385 |추천 0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생 남성입니다.솔직히 말하자면 찌질하고 소심한 사람입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연애에 딱히 관심이 없었고, 왜 하는 지도 몰라서 그냥 공부만 했었습니다.그러다 고3이 되어서 기숙사에 들어가게 됬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고2가 되어서 처음 그 애를 봤을 때는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은 없었습니다.그 애가 여름 즈음에 같은 학교에서 남친을 만났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저와 그 애는 같은 동아리 였습니다.인문계 고등학교이고, 다들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서 막 활동적인 것들은 안 했습니다.그냥 책 읽고, 독후감 같은 것을 써서 서로 읽기도 하고, 토론도 하는 그런 재미없는 평범한 동아리였습니다.
그 애가 고3이 되어서 회장으로 나갈 때 저에게 부회장이 되어달라고 말했습니다.그리고 다른 반 회장이었던 그 애의 남친과 그 애와 저는 친해졌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애를 중심으로 친해졌습니다.
저는 그 때 말수는 없지만 혼자 생각을 많이 하는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그리고 소위 말하는 감수성도 그 때 처음 느꼈습니다. 참 맹랑하고 어리석은 감수성이었습니다. 
그 애가 좋아진 건 갑작스럽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누구를 상처주는게 싫어서, 그리고 내가 상처받는게 싫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소심했기 때문에, 내가 그 애를 좋아한다는 비정형의 감정조차도 불안하고 낯설었습니다.
그 애는 참 멋있고, 가혹한 사람이었습니다.그 애 남친은 같은 동아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동아리 시간이 끝나고 기숙사에서 저녁을 먹기 전까지 시간에 그 애와 저는 종종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애는 자기가 고1 때 전학오기 전 학교에서 여학생을 차별대우 하는 선생님과 맞섰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해주기도 하고, 자기가 대학생이 되면 어떤 전공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다고도 자랑스럽게 말했고, 어쩔 때는 자기 남친이 이해가 안 간다면서 남친 흉을 볼 때도 있었습니다.저는 얘기를 한다기 보다는 들어주는 성격이었고, 가끔씩 추임새를 넣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애를 좋아한다는 끔찍한 마음이 새어나갈까봐 정말 무서웠고, 동시에 그 애와 함께 차가운 시멘트 벽에 기대어 저녁 어스름을 보는 것이 참 설랬습니다.
저의 뭣 모르는 순진함은 무형의 폭력이었습니다.저와 그 애와 그 애의 남친은 운이 좋게도 모두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었습니다.그리고 12월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때는 같이 술도 마시고 놀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세상 모든 사랑노래가 내 얘기인 듯 하다가도 나는 그 감정에 결코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외톨이보다 더 외로운 주변인이라는 걸 느꼈던 그날, 저는 마음 속의 불안함을 꺼내고야 말았습니다.
술자리가 파하고, 술이 취해서 계단에서 혼자 앉아있는 저에게 그 애가 찾아왔습니다.무슨 고민이 있는지 물었고, 저는 간악하게도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서툴고 못 나고 이기적인 마음을 겨우 뜸들이는 진지함으로 포장하려 했었습니다.너를 좋아한다는 말을 옛날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무심코 떨어트리는 손수건처럼 던져 놓고 저는 혼자 집에 가버렸습니다.
저는 다음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애에게 문자를 남겼고,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그리고 그 애의 남친에게 전화가 왔고, 그 애는 내가 불편하다며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내용의 장문의 문자를 저에게 보냈습니다.
연민조차 바랄 수 없는 결말이었습니다.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자책과 후회가 산처럼 제 머리를 짓눌렀습니다.
저는 주인공 옆에 있는 조연도 아니었고, 중요한 순간에 주인공 커플을 찢어놓는 악역도 아니었습니다.애초에 저의 삶은 아름다운 드라마나 노래가 아니었으니까요.
평범한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관심조차 없고, 심지어 경멸하는 감정의 부스러기를 저는 소중한 조약돌처럼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활달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의 잘못에도, 지나간 것에도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남친이 있는 여자에게 고백하고 무참히 망신을 당한 것도, 창피하지만 곧 스쳐지나갈 작은 쪽팔림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거운 감정에 짓눌려 끝없이 자책하고 자책하고 자책했습니다.참 어렸고, 불쌍할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고, 자기혐오가 반성인 줄 아는 무식한 세월이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그 우울함은 머리 속에서 방황했고, 학교 내에 있는 상담센터에 들려서 몇 개월 동안 상담을 받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자기방어인지 그 애와 함께 있었던 추억들이 이제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가끔은 그 애의 이름이 무엇인지 잠깐 헷갈릴 때도 있었습니다.지나간 첫사랑에 대한 미련 같은 건 흔적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때 느꼈던 그 무섭고 떨리는 감정이 준 트라우마는 잔상처럼 남아있습니다.남친이 있는 선배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마다그 트라우마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 사람과 더 친해지면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걸까? 혹시 지금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고 있는 건가? 나는 그냥 이 사람과 친해지고 있는 건데, 왜 나는 공연한 두려움에 휩싸이는 건가?
그 때보다는 굳세진 이성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면서 그 트라우마를 잠재우지만, 가끔 사랑노래를 들을 때 멜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그 트라우마가 저를 부도덕한 인간으로 만듭니다.
자랑할 게 아닌데도, 욕먹을 게 뻔한데도, 이렇게 쭉정이 같은 글을 쓰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마음이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제 맘 속을 들여다봐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혹시 이런 마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적절히 고칠 필요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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