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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목격한 네가, 아주 잠시라도 비참해지면 좋겠거든

ㅁㅁ |2023.03.03 00:53
조회 116 |추천 0
30년 전 겪었던 학교폭력의 트라우마가 종종 떠오른다. 그건 좀 다른 유형의 가해였다. 나는 그때 키가 작고 성적이 좋았기에, 필연적으로 한 여자 애와 중학교 3년간 엮여서 고통을 받았다.

'가해자'는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어 의족을 한 여자 아이였다. 그 아이는 키가 작았으며 열등생이었다. 그래서 키 순서로 우리는 늘 짝이 되었으며, 학년이 바뀔 때마다 선생님들은 나를 그 아이와 짝지어 놓고, 공부를 가르치라는 미션을 부여했다. 그 아이 엄마는 박ㅇ스 한 박스를 들고 자주 학교에 오셨다. 물론 그 박스에는 박ㅇ스만 들어 있지는 않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과외비'는 나한테 주셨어야 맞았던 것 같다.ㅎ

그 아이는 자존심이 유난히 강했고, 비열함도 소름 끼치게 충만했다. 자신의 아픔을 타인에게 과장하는 재주도 몹시 뛰어났다.

에피소드 몇 가지를 말하자면...
고무줄 놀이를 할 때 그 아이는 의족을 한 다리로 늘 최고 단계까지 갔다. 그리고 점심 시간에 피구나 오징어게임을 할 때는 너무나 뛰어난 활약도 보였다. 그런데 체육시간만 되면 세상 슬픈 표정을 짓고, 플라타나스 나무 아래에 앉아 쉬는 특혜를 누렸다.

그리고 성적표를 받는 날이면 그 아이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나를 괴롭혔다. 나는 평균 점수가 36점인 성적표는 난생 처음 봤다. (그렇다고 내가 그 아이의 성적을 비하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열등감에 기름을 붓지 않으려고 살얼음판을 걸었다. 단지, 몸이 불편한 것 뿐인데 왜 머리의 게으름에 대해서까지 배려를 받으려고 하는지는 물론 이해할 수 없었다.) 굳이 내 성적을 스스로 찾아 확인한 다음, 칼로 나의 책상을 난도질해 놓거나 지우개를 던지는 히스테리는 정말 예사였다.

또한, 매일 온갖 달콤한 간식들을 가져와서는 딱 나만 빼고 반 아이들과 나눠 먹는 그 유치함이란!

게다가 그 아이는 온갖 유언비어로 나의 인권과 영혼을 파괴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께도 부모님께도 그 일들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일단 그런 일을 당하고 있다는 걸 말하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고, 말한다고 해도 믿어줄 사람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매사에 똑부러지는 성격인 내가, 그런 아이 때문에 우울과 고통 속에서 매일을 견디며 산다는 걸 누가 이해해줄 수 있었을까? 그런 정서 자체가 당시에는 없었던 것 같다.

'장애'라는 말이 가진 연민의 크기는 나의 고통을 넘어서는 거대한 산이었다.

그래서 내가 택한 탈출구는 워크맨과 이어폰이었다. 늘 이어폰을 꽂고 지냈다. 음악을 들은 적은 없다. 단지, 그 아이와 패거리들이 어떤 말을 지껄여도 '난 너희의 말을 듣고 있지 않다,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나름의 소극적 저항(?)이었다고 할까?

30년이 넘었지만, 종종 수많은 '다리'들이 내 목을 짓누르는 악몽을 꾼다. 학폭 관련 뉴스나 드라마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폭력은 정신적 심리적인 고통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의미다. 그리고 가해자가 꼭 사회적 강자인 것도 아니다.

이 오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만간 어떤 방식으로든 그녀를 대면하려고 한다. 가해자에게는 기억조차 없는 과거일 수 있겠지만, (아주 솔직히 나는) 그저그런 혹은 비참에 가까운 그 아이의 현재를 기대한다. 그것이 30년간 괴로웠던 나에게 주는 최선의 테라피일 것 같다. 다행히(?) 동창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당연히(!) 너는 그저그런 인생을 사는 것 같다.

기다려. ㅅㅎ야! 곧 찾아갈게. 내 인생을 목격한 네가, 아주 잠시라도 비참해지면 좋겠거든. 복수도 귀찮고 낭비같아. 그냥 니가 알아서 더 망가지길 빌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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