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나서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같이 살고싶다
늘어나고 색바랜 체육복같이 살고싶다
연필자국 투성이 필통같이 살고싶다
액정 깨진 스마트폰같이 살고싶다
가방 구석에 처박힌 가정통신문같이 살고싶다
엄지발가락에 구멍난 양말같이 살고싶다
김빠져서 탄산 하나도 안 남은 콜라같이 살고싶다
쾅쾅 두드려도 굳어서 안 나오는 목공풀같이 살고싶다
떨어뜨려서 가루마냥 산산조각난 섀도우같이 살고싶다
맨 첫장만 풀고 버려진 문제집같이 살고싶다
느리게 돌아가는 고장난 시계같이 살고싶다
손바닥 자국으로 가득한 시뿌연 거울같이 살고싶다
시들시들해진 화분 속 이름모를 식물같이 살고싶다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전기파리채같이 살고싶다
신은지 몇시간도 안 돼서 올나간 스타킹같이 살고싶다
너무 향이 진해서 버림받는 향수같이 살고싶다
연필깎이를 열면 나오는 나무색 찌꺼기들같이 살고싶다
이따금씩 자기혼자 깜빡거리는 천장에 전등같이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