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생각또생각_0

snstop |2023.09.11 17:11
조회 32 |추천 0

...

세상에서는 철학자가 많은 나라가 좋다고 생각하고 문학이 앞섰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가장 고민과 걱정이 많은 나라에 철학자가 발생합니다.

독일 같은 나라는 철학자가 많은데 그 이유는 전쟁을 일으키니 고민하고 걱정하는 가운데


 


‘아, 인생이 무엇이냐,

사는 게 무엇이냐,

도대체 죽는 것이 무엇이냐,

전쟁은 왜 해야 되냐,

가만히 있으면 서로 사는데 왜 저 놈은 나를 자꾸 죽이려고 하냐,

나는 또 가만있을 수 없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죽이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이러다 보니까 철학자들이 많이 생긴 것입니다.

철학은 무엇인가?


 

쉽게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인생을 논하고 다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철학은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철학자 니체는 


 


‘인생이 무엇인가? 인생은 왜 살까? 계속 생각하다가 결국 인생길을 찾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니체가 인생길을 찾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니체는 관념 철학만 하다가

‘신은 없다. 신은 죽었다.’ 했습니다.

행해 보지도 않고 관념에서 끝났습니다. 고로 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그 차원에서 실제로 행하고 대해야 확인됩니다.

그리고 니체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타락의 길을 가고 부패되도 하나님이 가만히 있으니,

“신은 없다. 신은 죽었다.” 했습니다.

신은 인간이 타락하고 부패되면, 오지 않으십니다.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신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니체 철학에 속한 자들은 비판을 잘합니다.

이체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안 믿으니, 그 사고와 행위가 죽은 시체가 되었습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하고 ‘자신’에 대해서 가르쳐줬습니다.

“자기를 먼저 알아야 된다. 자기를 제대로 봐야 남도 보니까.”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적으로 ‘자신’에 대해서 가르쳐줬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더 근본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그 들보 박힌 자가 남의 눈 속에 티를 빼내려는 행동이다!”

하고 비판하는 자들을 한 마디로 지적했습니다.

극과 극의 비유가 되었습니다.

들보라고 하면 집 가운데 가장 큰 나무, ‘대들보’를 인식해야 됩니다. 대단히 크고 극적인 비유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처럼 가장 큰 모순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골에 가보면 큰 집채에 대들보가 있는데 그 대들보 위에 석가래를 놓습니다. 또 그 대들보 위에 집을 지은 날짜도 적어 놓습니다.

이들 유대 종교인들에게 대들보만한 것이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사실상, 말은 되지만 실제로는 이해하기 곤란한 말씀입니다. 그 유대 종교인들에게 무슨 들보가 들어 있었을까?

그것은 자신들이 4천년 동안이나 기다리고 바라고 기대하고 소망했던 메시야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몰라보았던 것입니다. 이 들보가 제일 크다고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오히려 힐문하고 비판했습니다. 또 이방인들을 개 취급, 바보 취급, 천치 취급 했던 유대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종교의 무지자들, 바보들이었습니다.

이것을 두고서 예수님은 들보가 들어있다고 비유하며, 하늘의 비판을 그들에게 내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지적했던 티만한 사건이 무엇이었을까요?

이미 예수님을 믿고 따라 다녔던 사람들에겐 인간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 종교인보다 신앙생활을 잘 못했습니다. 그런 것이 눈에 거슬린 것입니다. 또 제사장도 아닌 자, 예수님이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고 하니,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말씀에 꼬투리를 잡으며, 오히려 잘못된 이단이라고 치부하면서 결국 십자가에 비참하게 못박아 버린 것입니다.


 

사람 눈에 티가 박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눈을 자꾸 비비게 되고 아픕니다. 혹여라도 고춧가루 하나만 들어가도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번갯불이 번쩍거립니다.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수님을 두고 함부로 비난하고, 흠집을 내려고 설교할 때 반박할 거리를 찾고, 심판거리를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유대 종교인들의 눈에 들보가 들어 있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미 그들의 마음에 들보가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의 법도나 형식적인 제사만을 중시하고, 그러니까 그들은 무서운 말들을 하고 돌아 다녔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인간이 자기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 큰 도인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무지는 누구에게나 해당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누구에게나 해당되지 않겠습니까?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