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인형의 집에서 16년만에 탈출하기

엄마딸아내... |2023.12.01 03:23
조회 146 |추천 0
나를 둘러싼 모든 가족이 다 싫다.

잘하고 싶었다. 기를 쓰고 살았는데 잘못 산것같다.

아이 입시 기간, 공부시키느라 집안 분위기 안좋다고 싸우다가 집 나가서 100일 넘게 혼자 도박하고 골프치고 밤새 놀면서 아이들에게 돈만 주는 남편, 시간 나면 가끔 보는 아빠는 너무 쉽게 좋은 아빠가 된다.

나는 혼자 뇌전증으로 발작하는 아이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고 밤새 발작이 일어날까 선잠을 자고, 학폭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학폭에 시달리기 싫어서 예중 보내보겠다고 밤새 지능이 100이 안되는 애를 붙잡고 가르쳤다. 동시에 예고 입시하는 큰아이를 데리고 새벽잠 설쳐가며 각종 콩쿨을 다녔고 사이사이 서류준비며, 선생님들, 연습실, 공방, 기획사, 학원 등과 소통하고, 입금하고, 일정을 확인했다. 3명의 스케줄을 머리 터지게 조절하며 일까지 했다.

친정아빠는 의붓막내딸이 몰래 엄마한테 돈 빌린 얘기를 하시며 배신감에 속상하다고 하셨고, 나는 그 애(의붓동생)한테 전화해서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얘기하지 왜 몰래 엄마한테 돈을 꾸냐고 했다. 그 애는 당당하게 내가 엄마한테 돈 꾸면 안되냐고 하더니 십수년전부터 나에게 섭섭했던 얘길 늘어놓았다. 그리고 엄마아빠 모두 다 치가 떨린다고 했다. 연 끊고 싶고 우리 모두를 가족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그 애의 남편은 친정아빠께 생활비가 없다며 돈을 꾸어갔다. 생활비가 없는데 그 애는 명품을 휘감고 아들은 100만원짜리 유치원에 다니고, 일은 하지 않는다.
그 애는 파킨슨병에 걸린 친엄마를 무시하고 닦달할뿐, 돌보지 않는다. 엄마는 친딸인 그 애 욕을 의붓딸인 나에게 한다. 나같은 딸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그 애는 언젠가 친정부모님이 새아파트 이사가려고 이모들 뿐 아니라 우리들에게 거짓말을 해서 돈을 빌리려하고 있으니 해결해달라는 말을 나에게 해주었다. 나는 가족 모두 모인 자리에서 총대를 메고 그건 아니라고 했고 새아파트 계획은 무산되었다.

남편은 자기 사업장에서 일하는 친정아빠가 자주 쉬셔서 본인이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월급은 쉬는 날에도 그냥 드린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게 고맙지 않았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해도 주면서 생색내는 꼴이 싫었다.
친정아빠도 불만이 많았다. 툭하면 내가 관둬야지 하시면서 내가 별거중에도, 당신의 목디스크 수술 뒤에도 일을 이어가셨다.

나는 결혼 이후 남편에게 자주 모멸감을 느꼈다.
아이들이 어릴때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나와 같이 돌보면서 월급을 받아가셨고, 처음엔 남동생을 10년 넘게 담보 잡히고, 다음엔 친정아빠를 남편 사업장에 담보 잡혀 팔려간 딸이 된것같았다. 내가 남편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둘 낳으면서 사는동안 친정식구들은 빈손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호텔에 가고, 분수에 맞지않는 차를 탔다.

그런데 그 모든 친정식구들은 나와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다. 나는 태어난지 하루만에 홀트에 버려졌고, 한달만에 입양되었으며, 그 이후 아빠는 여러번의 재혼을 했기 때문에, 나와 남동생, 여동생 셋 다 엄마가 달랐다. 심지어 여동생은 아빠도 다르고 스물여섯이 되던 해에 그 애와 엄마를 만나서 스물여덟에 난 결혼을 했기에 2년 남짓 같이 살았을 뿐이었다.

내가 원한 건 한가지였다. 이 세상에 유일한 내 핏줄인 우리 아이들... 그 아이들한테 번듯하고 안정적인 가족이라는 틀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입양아인 내가, 근본이 없는 내가 매순간 불안하게 넘겨온 삶의 고비를 아이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이모와 이모부, 사촌동생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겁게 느낀다.
아이들은 물론 아빠도 좋아한다. 아빠는 돈을 충분히 주고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살면서 뭔가를 노력해야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지않고 그냥 현재의 쾌락을 즐긴다. 그런 아빠를 보며 아이들은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아빠처럼 살 수 있구나하고...

그렇다면 내가 문제이다. 나는 하루하루를 전투적으로 산다. 그게 불안인지 욕심인지 모르겠다.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물질보다 내면에 쌓는 자원이 너무 절실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아이들을 쫀다. 숙제해라, 연습해라, 책읽어라.. 그런데 아이들은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어 하루 10시간 넘게 스마트폰을 보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못하게하면 나를 미워한다. 시켜먹고 싶은데 집밥을 해준다고 투덜댄다. 아이니까 그럴수 있지만 너무 자주, 극단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에 나는 어김없이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렇게 아이들 옆에 꼭 붙어서 상처를 내고 만다.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는건 쉬운 일 같다.
그냥 하고 싶은데로 하게 두는 것이다.
가끔 만나서 웃으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주는 것이다. 피상적인 대화를 하며, 적절한 리액션을 해주고, 먹고 싶다는 것을 사주고, 맥락없는 칭찬과 격려를 해주는 것이다. 나는 직업이 상담심리사기에, 그런 건 아주 전문적이고 자동적으로 해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요할때 즉각적으로 돈을 주면 나는 세상 최고의 엄마가 된다.

밤새 육아서를 볼 필요도, 아픈 아이를 간호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관리앱을 깔고, 위치추적을 하고, 성장과 영양을 고려한 음식을 만들어줄 필요가 없다. 아침에 굳이 먹기 싫다는 애의 입에 맞는 밥을 차려주고, 5분이라도 더 재우려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줄 필요도 없고, 시험기간에 같이 밤을 지새울 필요도 없다. 공연, 전시, 여행, 체험활동을 알아보고 아이들을 설득해서 전세계를 남편 없이 혼자 누비며 다닐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제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이혼과 동시에 양육권을 포기하고 죽을 때까지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다.
나를 중심으로 걸려있는 친정과 남편의 의존적이고 힘의 균형이 무너진 고리도 끊어내고, 팔려간 여자같은 모멸감을 더이상 느끼지 않으며, 내 두 발로 서서 내 능력으로 온전히 자유로워질 것이다.

만약 그게 안된다면..
나는 차라리 죽는 편을 택하겠다.
그렇다면 이 글은 유서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