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부터 싸운다. 발단은 아침 준비를 하는데 밥이 없다는 것. 아내는 9시 반즈음에 느즈막하게 일어나 아침밥상을 차렸다. 그런데 밥통을 열더니 밥이 없다고하며 슬슬 시동을 걸었다.
나는 어제 아침 7시까지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주간근무를 하고 저녁에 퇴근해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아내는 파트타임으로 하는 회사 업무로 논문을 제출해야 한다고 독서실에 있다가 아이들 축구클럽 하원을 해주고 나는 저녁 준비를 했다. 저녁 준비를 하는데싱크대가 난장판이 되어 있고 밥솥에는 밥이 그대로 눌어붙어 있었다. 이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밥을 딱 한끼 먹을 정도로 조금만 했다. 금방 한 맛있는 밥만 있어도 그날 식사의 절반은 성공이다.
그래서는 압력밥솥에 밥을 다시 하고, 엄마가 챙겨준 비지장을 데우고, 구운김, 물김치 등을 꺼내서 저녁 준비를 했다. 특히, 콩자반, 오징어볶음, 시금치무침은 구분된 접시에 먹을 만큼만 조금씩 덜어놓았다. 아내는 매번 그러는데 항상 과하게 꺼내놔서 버리게 만든다. 어쨌든 그렇게 저녁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저녁을 안 먹은 지 꽤 되었다. 그래서 내가 이해한다. 나는 나와 아이들 밥을 스스로 챙겨서 먹었다. 아내는 저녁을 안 먹으니까.. 거기까지는 이해한다.
어쨌든 그렇게 밥을 먹고 정리는 했는데, 오늘 아침.. 느즈막하게 일어난 아내가 아침식사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화를 낸다. 어제 왜 밥을 조금만 했냐고... 정상적인 가정에서, 아내는 식사 준비를 할 때 밥통부터 확인을 할 것이다. 꺼내 놓은 반찬도 다 엄마가 해준거다. 도대체 왜 나한테, 그것도 새해 첫날 아침에 화를 냈는지 모르겠다. 나도 화가 나서 받아쳤다.
그러면서 집안 일에 대한 것까지 번졌다. 내가 아내에게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본인의 책임을 다한 후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1순위는 파트타임 원격근무와 기술사 시험 공부, 2순위는 종교활동, 그 다음은 관심사항이 아니다. 그러니 집안은 쓰레기 냄새로 진동하고 먼지가 쌓여간다. 아이들에게 옷을 뒤집어 벗어놓는다고, 물건을 제자리에 안 놓는다고 내가 이 집 하녀냐고 소리를 질러댄다.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고 나서 집에 와서는 안방 구석에 짱박힌다. 나는 아이들 매일 숙제를 시키고 학습을 완료하면 그 때 게임을 같이 하던가, TV를 보여주던가 한다. 그러고 있으면 갑자기 안방에서 나와서 청소기를 씨끄럽게 돌리면서 집안 정리를 안 했다고 큰 소리치며 난리를 친다. 같이 치우자는 이야기 한마디 없이 그냥 공격이 들어온다. 나는 화가 너무 난다.
내가 도대체 왜 그렇게 밖으로 도냐고,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하고 싶은 일 하라고 수차례 부탁했다. 그러니 둘째인 딸한테 자아실현하는 엄마를 보여주려고 한다고 답한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집안일하고 설거지 제 때하는 게 자아실현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싶다고? 그러면 왜 00공사는 내가 그렇게 반대했음에도 그만뒀나?
공부하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래서 00공사를 들어갔고, 그리고 나랑 결혼했다. 이제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했으니 고시를 다시 시작해야지. 남편과의 상의?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 관심도 없다. 나는 여기에서부터 마음의 상처를 너무 크게 받았다. 나는 가정을 꾸리기 위해 서울 본사에 있다가 지방으로 인사이동을 했다. 단 하나의 목적, 아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으로 오기 위해서다. 아내와 같이 살기 위해. 그런데 아내는 그런 나의 노력과 고민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을 하지 않았다. 회사에 적응은 안 되고, 고시만이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아내는 회사를 그만뒀다.
그런데 이제와서 자기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겠다고, 월봉 50만원 받는 일을 하고, 집안 일 다 내팽게치고 기술사 공부를 하고 있다. 딸에게 엄마의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단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개인으로서의 성공이 가정의 안정과 가족의 행복보다 우선시 되는 가치인가? 나는 모르겠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러더니 갑자기 딸에게 큰소리를 친다. 너는 대학교도 가지 말고, 집안일만 하고 살라고. 나는 기가 찼다. 이게 아이한테 할 소리인가? 자기가 할 일을 안 하고 집안에서 냄새나고 빨래가 쌓여가는 상황을 그대로 두는 것은 아이에게 좋은 교육인가?
나는 아내에게 이용당한다. 고시 공부를 하기 위한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해, 본인 부동산 투자를 위한 현금과 신용을 확보하기 위해, 본인 자아실현을 위한 육아 도우미로, 그렇게 아내는 나를 이용한다.
아내는 페미니스트다. 입맛에 맞는 것만 고른 페미니스트다. 82cook 사이트에 자주 들어가는데 거긴 여자만 가입할 수 있다. 한 번은 아내가 컴퓨터에서 보고 남겨둔 페이지를 보게 되었다. 집안 일에 관한 것이었다. 맨날 저런거 보고, 돼지책 보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 집안 일은 남자가 도와주고 같이 하는 거라고. 신발 그 돼지책과 82cook 때문에 집안이 난장판이 됐다.
나는 말한다. 회사 일에 업무분장이 있듯이 집안 일에도 업무분장이 있다. 회사에서도 주 담당자 보조 담당자가 있다. 담당자는 그 일을 관리한다. 그 일을 직접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필요하면 구성원에게 도움을 청해 같이 할 수 있다. 나는 아내에게 혼자 다 하라는 게 아니라, 체계를 만들고 집안일을 가족 구성원과 나누어 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하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씨도 안 먹한다. 당초에 계획이라는 걸 세우고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결혼하자마자 경제권을 아내에게 넘겼다. 나는 전통적인 가정의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이행되기를 바랐다. 맞벌이의 경우도 생각은 했었다. 아내가 공사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가사분담을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있었으나, 아내가 결국 내 의견을 무시한 채 퇴사를 한 이후에는 가사분담에 부정적이다.
모든 사람은, 모든 지구상 모든 생물은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반대했고 아내는 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고시도 실패했다. 그리고 몇 번의 공무원이 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그 때 왜 그랬냐고. 그랬더니 연구사는 분석하는 것이 주 업무인데 자기는 그거 잘 못 한다고. 나는 한숨만 나왔다. 나는 뭐 지금 잘해서 회사 다니고 있나?
이런 글을 적고 있는 내가 너무 불쌍하다. 처량하다. 아아들만 아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