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노력한다는 것에 힘을 실어야 한다.
품성에게는 성당에 먼저 도착하고
시작한 시간은 중요치 않다.
성인들도 시간으로,
게다가 불필요한 업적들로 가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품성만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이든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중에는 뛰어난 사람은 어느 분야에도 존재하기 때문이지만,
나중에 새로 창조된 세상에서는
자신이 어떻게 될 지는
하느님께 맡겨드려야 하는 것이란 말이다.
사람이 똑같은 사람으로써,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왈가왈부할 것이 안된다.
앞서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사람은 알 수 없는 대죄를 짓고 있을지도,
사람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허점들과 실수들... 때문에 말이다.
게다가 하느님과 인간의 시선과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 말이다.
성경에도 그렇게 써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야훼의 말씀이시다.
하늘이 땅에서 아득하듯
나의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ㅡ 이사야 55장 8ㅡ9절
인간의 주제를 정확히 정하자.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불교처럼 불합리하게
전생의 업적을 가지고만 논하는 것이 아닌 지금,
바로 지금을 이야기 하신다.
하느님께서 악신을 이기신 지금,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오늘을.. 지금을... 노력하라.. 라고 말이다.
하느님의 사후세계는
자신이 노력한 댓가만큼
사후세계가 변화된다는 것에 있어서는 불교보다는 공평함이 매우 크다.
하느님께서는....
지금의 노력이,
지금 순간의 수고가,
노력한만큼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데에서는 공평하단 말이다.
나도 노력을 하고,
모두가 노력을 하고 있다.
사람의 가장 깊은 심연까지도 살피시는 하느님께는
신자가 된 후의 나날들보다,
더 깊숙한 심연 속을 들여다보시고,
사람의 품성까지 살피신다.
개신교 기도의 대가들의 책에서는,
기도가 기도하는 사람의 품성에 의해
하느님께 그 기도가 받아들여지는가 받아들여지지 않는가가
달려있다고 한다.
개신교라고 무시하고
혹은 오직 천주교가 제일이라고
무조건 내치면,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그것은 교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