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 1년 안 된 새댁입니다. 이번에 시댁이랑 여행 다녀와서 생각이 참 많아집니다. 이대로 괜찮을지... 솔직히 저는 괜찮을 자신이 없어졌는데...
일단 시댁과 친정 집안 분위기가 많이 차이납니다. 친정 부모님은 자식 셋 30~40이 될 때까지 가족들끼리 술 한잔 한 적이 없습니다. 각자 친구들끼리 어울리지 가족 식사자리에서 술이 들어온 적이 없고 술 선물이 있거나 해서 들어와도 각자 한 잔 정도씩 하고 취하도록 먹지 않습니다. 보통 6시쯤 저녁 먹고 산책 좀 하다가 9시에는 집 들어와서 10시에는 불 끕니다. 각자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서로 집에 방문해도 자는 건 호텔가서 잡니다.
시댁은 술을 좋아합니다. 운전할 일만 없다면 점심 반주도 즐기십니다. 저녁에는 12시, 1시까지 술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하는 건 일상다반사입니다. 시아버지가 시어머니 이름을 "OO아!" 부르며 뭘 시키는 일이 많고 (반찬 더 가져와 같은) 농담도 잘 하시고 치부라고 생각될 수 있는 치부 얘기도 곧 잘 하십니다. 친정부모님 연애하는 얘기는 아직도 모르지만 시부모님 연애사는 저도 잘 알 정도예요.
지금까지는 그저 시댁이 정겨운 집안이다, 재밌다 그런 정도로 살았어요. 시아버지도 남편도 성격이 좀 욱하는 면이 있어서 큰 소리 날 때도 있지만 시어머니께서 잘 중재해주시고 하셔서 크게 문제가 된다고 느낀 적은 없었구요. 시어머니께서 남편이 원래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저와 결혼하고 나서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 너무 좋다고 하셨고 (저는 잘 모르겠으나) 시아버지가 저를 무척 좋아하신다고 많이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시아버지가 남편과 시어머니 말은 안 들어도 제 말은 듣는다구요.
저도 좋게 좋게 생각했으니까 시댁에서 여행가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2박 3일로 일정을 잡고 렌트카와 숙소를 저희가 예약했습니다. 여행이 가까워 왔는데 아무도 일정을 짜는 것 같지 않아서 제가 나서서 했습니다. 어딜 가고 싶은지 여쭤보고 여행지를 넣어서 일정을 짰고 남편과 공유했습니다. 시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컨펌을 받으라고 했고 제가 시댁 단톡방에도 올렸는데 아무도 주의깊게 보지 않는 것 같았고 그러려니 했습니다. 해당 일정표에 차는 뭘 빌렸고 숙소는 어디인지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차는 스포티지, 코란도, QM6 그런 급으로 빌렸는데, 시아버지가 차에 타자 마자 "아니 왜 차를 좀 큰 걸 빌리지 이런 걸 빌렸어?"
시부모님 뵌다고 저희 강아지 그 전날에 미용실 가서 목욕이랑 미용 싹 했는데 강아지 한 번 안아 보시더니 "얘 목욕한지 오래됐지?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은데?"
맛집에 갔는데 웨이팅 있는 거 보시고 "뭐 이런데서 먹어? 딴 데 없어?" (그래도 최대한 웨이팅 줄여보려고 제가 한 시간 먼저 가서 줄 섰습니다.)
점심 성대하게 먹고 숙소 들어와서 쉬다가 7시 30분에 저녁먹으러 가자니까 "근데, 저녁을 꼭 먹어야 해?"
시어머니께서 가보고 싶다던 여행지 내려드렸는데 (저도 일정에 넣어만 놓고 뭘 해야하는지 계획 안 했어요. 시어머니께서 생각 있을 줄 알고) "이제 뭘 하면 되는데?"
제가 참다 참다가 "아버님 여행하기 싫은신가보다. 어떻게 터미널에 내려드려요?" 이렇게 장난식으로 말하니까 시아버님이 바로 하시는 말씀이 "그래! 나 터미널에 내려줘! 알아서 집에 갈테니까!"
생각 나는 것만 이렇습니다.
제가 힘들다고 하니까 남편이 미안하다며 시아버님이 저런 소리 할 때마다 받아치는데 시아버님도 지지 않으니까 너무 피로스럽더라구요.
예를 들면 식당이 11시까지 예약이라 빨리 가야 하는데 10시까지 씻지도 않고 계시길래 "아버님 11시 예약이라 10시 반에는 출발해야 해요." 하니까 "나는 씻는 거 5분이면 된다!" 하시고 결국 10시 35분에 제일 늦게 나오십니다.
남편 : 아빠! 빨리 좀 나오라고! 늦었다고! 아버님 : 허, 나는 오늘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돌아다녔어! (실제 4시에 일어나서 돌아다니시다가 8시에 다시 누워서 10시에 일어나심) 남편 : 아니, 누가 그렇게 일찍 일어나래? 어버님 : 너는 몇시에 일어났냐? 지가 더 게으르면서! 남편 : 아니 몇시에 일어난게 무슨 문제야. 지금 아빠가 늦었잖아. 아버님 : 그러게 식당 예약을 뭐 그렇게 급하게 잡았어. 남편 : 11시가 급해? 아버님 : 아직 11시 안 됐어. 남편 : 가는데 30분 걸리니까 그런 거 아냐. 아버님 : 뭐 그렇게 멀리 있는 식당을 잡았어?! 남편 : 멀긴 뭘 멀어, 어딜가도 30분은 걸리지. 아버님 : 30분이면 멀지! (저에게) 안 그러냐? 30분이 가깝냐? 나 : .... 아... 네....
대화가 이런 식이니 옆에서 듣는 저도 짜증이 나더군요.
이 외에도 틈틈히 며느리 앞에서 시어머니 외모 품평, 시어머니의 별로인 외모를 보고 커서 남편이 저를 좋아한다는 얘기...
앞에서는 웃어 넘겼지만 계속 머릿속에 맴돕니다. 내가 이런 시아버지랑 잘 지낼 수 있을까? 당장 어버이 날에도 당연히 올거라고 생각하실 텐데 솔직히 지금 심정으로는 얼굴 보기 싫어요.
남편에게는 시아버지가 다음엔 해외여행을 가자고 했다더군요....
남편은 본인도 아버지 싫어한다며 내 심정 이해한다고, 미안하다고, 당분간 시댁과 마주칠 일 없게 한다고 하던데...
그냥 맘이 복잡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