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검게, 사무치는
함성호
잡년아, 울지마라.
웃지마라, 미련한 것.
마른 지풀 같은 니 머리칼에 흰 꽃가루가 하염이 없고
니는 그만 눈을 감는구나 나는 잠속에서 긴 꿈을꾼다 잡년아
잡년아, 그리운 니가 하염없이 내 잠속에서 꿈을 꾼다
무사해라 부디,
검붉은 숯불처럼 사그리 타 들어가는 니
뜨거운 살집이 이 시리게 그리웁고
검푸른 바다의 수심처럼 니는 자꾸 깊어만 가는구나
해저의 심연에서 나는 고요히 자라며 바다를 태워먹고
잡년아,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갖힌 니 모습 이젠 보이지 않는다
시원스럽게 토해내지도 못한 채 분해되지 않는 화학주처럼
피가 나게 긁어도 시원치 않은게 사랑이다 잡년아
잡년아, 니가 가는 먼 길은
겨울 바닷가 초저녁의 불투명한 호박색으로 저물어가고
확확, 나는 목이 타고 눈에는 불이 일어
니 떠나고 난 자리에 날개 터는 소리만
(푸드득) 불꽃 피어 푸른 밤으로 솟구치더라.
잡년아, 타오르는 불의 중심처럼 사무치는 고온이면서도
뜨겁지 않은 게 사랑이다,
이, 잡년아.
1963년 강원도 속초 출생
1990년 [문학과사회] 등단
‘21세기 전망’ 동인, 웹진 PENCIL, 계간 <문학 판> 편집위원
시집으로 <56억 7천만 년의 고독> <聖 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