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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새들

누렁이 |2006.11.16 15:29
조회 14 |추천 0

노새들

유미애

네 발로 달려온 여자들이 목을 축이고 있다
푸른 우물 옆에 갈기를 누이고 스타킹을 벗어
수많은 행성을 지나온 발의 못을 뽑는다
단봉낙타의 봉처럼 굳은 등을 핥으며
언젠가 돋을 날개자리 가득 달빛을 받는다
봉오리 부푼 시절, 이미 짐꾼이 되었던 그녀들
미끈한 다리를 꺾어 짐 싣는 모습 낯설지 않다
보퉁이 몇개는 청춘의 한 때를 절망으로 바꾸기도 했다
우물을 들여다보던 또 몇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우물만이 등 굽은 여자들의 슬픔을 알고 있는 듯했다
몸 바깥은 사막, 하늘엔 물집 같은 별이 떠 있고
모래 언덕 한쪽에선 오늘도 선인장꽃이 핀다
제몫의 등짐을 지고 모래폭풍 속을 떠돌기도 했지만
날개는 돋지 않았고 우물엔 꽃잎이 쌓여 있었다
길을 읽고 휘청거린 날들이 지도처럼 등에 음각될 때
다시 방울을 울리며 사막을 달려야 하나보다
노란 물집 위에 새로 박는 편자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비와 오라비는 반듯한 등으로 세상을 건너라 하고
우물처럼 패인 눈으로 히힝히힝 그녀는 울고 있다
아직 젊거나 이미 늙었거나
낙타의 봉처럼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을 진 저 여자들
모래바람 속 또 다른 별로 흩어지고 있다
내 어깨 위로 발굽소리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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