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 국문과나 문예창작 같은걸
전공해본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반어법이니 은유법이니 하는
문법적 기교같은 것은 구사할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다만 저희집안 내력과 곡절을
조금은 차분한 감정으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천상 저희엄마 소개부터 해야겠네요
저희 엄마...
사실은 명문대 음대를 나오신 분이고요
어릴 때 꿈은 성악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보니 저희 엄마가 6자매중 첫째인데
사실 그 시절에 첫째가 음대를 간다는데 말리지도 않았고
게다가 딸 6명중 거의가다 4년제 대학까지
들어간 정도라면
그 시절 어느정도 먹고살만하고
사회적 지위도 어느정도 있는
그런 집안이었다고 봐야하겠죠 ?
실제 저나 동생들이 어릴 때 간간이
엄마나 이모들한테서 들은 외갓집 예전 이야기는
가령 외할머니께선 젊은시절 어디 파티나 행사 같은데
갈일 있을때는
‘옷 뭐입고 갈까...’ 그것부터 고민하는
그러고보면 딱 전형적인
자유당 시절 고관대작 부인같은
그런분이셨나 봅니다
그런 저희 외가가 몰락한게
대략 4.19-5.16 풍파를 거치면서고
그 와중에 외할아버지가 충격으로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는 생전 손에 물한번 안 묻혀보고 사신 분이시라
6자매중 맏이였던 저희 엄마가
음대 재학중에 더 이상의 학업을 포기한채
몸소 생활전선에 뛰어들며
동생 다섯을 돌보는 소녀가장 역할을
해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대기업에 다니는 저희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해서 저희들을 낳으신거고요
뭐...요즘 젊은 여자들이 볼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저희 어머니,아버지 젊은 시절만해도
여자는 시집가면 그전에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남편 내조하고 자식들 낳고 키우는 전업주부
그걸 당연한 사고방식이자 가치관으로 받아들이던
그런 시절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대를 이을 아들 하나는 있어야한다’
저희 부모님 윗대만 해도 그걸 당연한 상식으로
여기던 세대
다만 저희 아버지의 경우엔 4형제중 막내라
그렇게 꼭 ‘대를 이을 아들 하나는 있어야한다’
그런 강박관념에 시달릴 위치는 아닌데
실제 저희 큰아버지는 슬하에 딸 둘을 낳으셨지만
둘째 큰아버지가 아들 둘
셋쨰 큰아버지가 1녀1남을 낳으셨기 때문에
막내인 저희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가
굳이 ‘대를 이을 아들 하나는 있어야한다’
그런 강박관념에 시달릴 위치는 아니었어요
그러니 ‘아들 낳아야한다’는 집착은
시부모님보다는 아버지가 더했다고 봐야...하려나...
아무리 그래도 그 시절이면 이미
‘둘만낳아 잘기르자’를 국가시책 정도가 아니라
무슨 보편적인 사회윤리쯤 되는걸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던 시대인데
- TV에서 광고를 그리 해대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애는 둘만 낳아야지 그 이상 낳으면 안된다는걸
하지만 저희 엄마는 저희 아버지 성화에 못이겨서
일단 그전까지 다니던 직장이고 음대고 뭐고 다 그만둔채
전업주부로 살면서
저...그리고 밑에 동생 둘...
그렇게 딸 셋을 내리낳고
그리고 급기야 아들 하나가 생겼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랑 남동생은 일곱 살 터울이 지네요
그 사이로 저는 여동생 두명이 더 있는거고요
그래도...딸 셋 낳고...아들...그러면 거기서
끝날만도 한데
저희 아빠...
아무리 그래도 아들 하나는 부족하다 생각하셨는지
‘하나만 더 낳자’ 그래서 남동생 밑으로 두 살 터울인
아들...은 아니고 또 아쉽게도(?) 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딸-딸-딸-아들-딸
와...아무리 그래도 둘만낳아 잘기르자 시절에
5남매라니...
이 정도면 저희 아버지 배짱도 알아줄만하네요
여하튼 막상 그렇게 5남매까지 낳고나선
이제 힘에 부친다 생각하셨는지
더 이상 동생을 낳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저는 국민 학교 들어갈 나이
차츰 그때부터
엄마의 주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정확히는
제가 국민 학교 들어갈 무렵
한 7-8세 정도때부터이네요
그리고 따지고보면 훨씬 그전부터
엄마의 콤플렉스는 시작된 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 부모님 세대 아무리 여자는
결혼하면 직장 그만두고 남편 내조하며
아이낳고 키우는걸 보편적인 가치관으로
생각하던 시대라 해도
실제 사례를 쭉 살펴보면 뜻밖에
가령 교직원이나 문화,예술계 종사자등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봐주는 아량같은게 있었나봅니다
이중 교직원이나 대학교수 같은건 여기선 논외로 치더라도
문화,예술계는 가령 40-50년대생 정도만 되어도
결혼후에도 쭉 탤런트나 가수,성악가등으로 활동하면서
나이 60-70될때까지 존경받는 원로,선배 배우나 연예인으로
남아있는 경우 적잖이 있으니까요
저희 엄마 같은경우는 그 유명한 명문여대
E여대 음대출신
엄마 동기생이 6( )학번이긴 한데...
그때 E여대 음대 정원이 40명 정도였고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중 한 절반정도는
결혼후에도 제법 현역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나봅니다
그러니까 대개는
성악가나 음대교수 아니면 작곡가나 음악평론가
혹은 방송사 PD나 음반업계 종사자 혹은 개인학원을 내서
아이들 레슨 같은 것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중요한건 그렇게 결혼후에도 자기 직업 가지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동기생 (대개는 음악계열) 커리어우먼들을 보면서
자신은 어느덧 아이를 서너명 낳고 결혼한지도 어느덧
7-8년 세월(첫째가 7살이라면서 왜 결혼생활이 8년이냐 ?
고 묻는 조두류는 설마 없겠죠 ? ^^;;;;)
어느덧 나이 서른 넘어서 40을 바라보는
그냥 초라한 아이키우는 엄마 그냥 ‘아줌마’로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과
당당하고 신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70년대 30대 여성들의 모습
(그 시절 극히 일부일지언정 –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그 신선미는
더더욱 돋보였을겁니다)
자연스레 비교되면서...가령 그 시절 흔한 대학동창들 계모임
이런데 나가면서 느끼는 콤플렉스나 무너지는 자존감
그런 것은 어찌할수 없었을겁니다
그래서 제가 대략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그래도 유치원생 정도면 제 엄마가 하는 그런 이야기
말귀는 알아들을 나이라 생각한건지
엄마 또는 외가의 살아온 지난일들 이야기
어릴 때 성악가가 꿈이라 음대진학 한일하며
하지만 4.19-5.16 거치며 집안이 몰락하고
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 하던공부 포기하고
이후 지금의 우리아빠 만나 모든걸 포기한채
전업주부로 아이키우며 그때까지 살아올 수밖에 없던 이야기
그런걸 이따금씩 힌트라도 주듯 운을 떼면서
‘너...혹시 엄마 못이룬 꿈을 대신 구현해줄수는 없겠니 ?’
이러시더이다
그...아마 70-80년대 나오는 일본 순정만화
전형적인 설정이던가요 ? 아마 기억하시는분들 있을거에요
특히 악녀로 설정된 서브여주 엄마가 그런 설정인 경우가 있는데
그러니까 설정이 대개 예체능 종사자이고
실력이 부족한건지 노력이나 재능이 부족한건지
젊은시절 해당 분야에서 1,2등을 못해보고 비주류로 밀려났던
그런 서브여주 엄마가
‘자기 못다이룬 꿈’을 자기 딸에게 대신 구현시키려고
관철시키는 설정...
- 헌데 이런식으로 썰을 풀다보니
저희엄마를 사실상 전형적인 일본 70-80년대 순정만화의
‘악녀 서브여주 엄마’로 만든 셈이라
좀 거시기하긴 하네요 잉 ^^;;;;
다만 엄마 성격이 그래도 그렇게까지 독하진(?) 않았는지
아주 강요하다시피 한건 아니고 넌지시 운을 떼듯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비단 저뿐만 아니라
둘째...그리고 셋째에게도...
초등학교 들어갈무렵부터 하나하나 운을 띄우더라는겁니다
후우...
그러니 우리엄마한테 애가 다섯인건
피차 다행이라고 봐야하는걸까요 ?
여하튼 엄마입장에선 선택지(?)가 다섯이나 되고
자녀인 우리 입장에서도
‘그거 꼭 제가 해야해요 ? 다른 누구 시키면 안돼요 ?’
서로 미룰수는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는거니까요
일단 중요한건 첫째인 저는 물론 둘째나 셋째까지도
음악쪽으로 성공해서 엄마의 못다이룬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라는
그걸...내켜하지 않았던것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저는 어느덧 중학생
둘째와 셋째는 초등학생
넷째인 남동생도 어느덧 유치원 다니고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이 되자
엄마는 나름 민주적이고도 공정한 ‘제비뽑기’를 하나 실시했습니다
하루는 저희 셋 그리고 유치원 다니는 남동생은 물론
아직 다섯 살인 막내까지
5남매를 모아놓고
‘제비뽑기’를 시키더이다
일단...(솔직히 잘 하지도 못하는 종이접기 실력으로)
대충 만든듯한 종이비행기 다섯 개를 내놓는거에요
그리고 말씀하시더이다
‘네개는 공부라고 써놓았고, 하나는 음악이라고 써놓았어.
그러니 공부를 택한 사람은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고싶은 공부 하고
대신 ’음악‘을 뽑은 사람은 엄마뜻대로 해주는거다. 알았지 ?’
그러니까...엄마의 못이룬 꿈을 대신 관철시켜주기 위해
‘음악의 길’을 택할 아이를 뽑는
제비뽑기였습니다
그런 엄마의 표정과 야릇한 미소
대충 종이비행기 형태라고 봐줘야할 종이접기 다섯장
그걸 바라보는 저희 5남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
다만 아직 다섯 살인 막내여동생은
그런 상황이나 엄마의 말을 제대로 이해못하는지
그냥 엄마 앞에서 언니,오빠들과 재미있는 놀이나 게임이라도
하는걸로 여겼는지
해맑게 웃고있더이다
솔직히 그 순간...엄마의 야릇한 미소보다
아무것도 모른채 해해거리는 막내 여동생(다섯살)의
해맑은 미소가 더 소름끼쳤습니다
엄마가 ‘하나 ! 둘 ! 셋 !’을 외쳤고
저희 5남매는 각자 나름 쓸데없이 시간을 끌고싶지 않았는지
대충 눈에 보이는대로 종이를 하나씩 집어들었습니다
엄마의 ‘펼쳐보라’는 주문이 있자
약 2-3초 정도의 시차가 있었을지언정...
일단 그렇게 하나하나 펴보았습니다. 각자...
근데 그 2-3초 정도의 시차가 어쩜 그렇게
한 수십수백년 시간은 흐른것마냥...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일단 전 눈 한번 딱 감아보고 바로 펼쳐보았어요.
괜히 시간끌 것 없으니...바로 뭐라고 쓰인 종이를 뽑았나
확인이나 해보자는 심사였죠
그리고 ‘공부’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자
‘살았다 !!! 이얏호 !!!’
환호성을 질러댔습니다
최소한 제 엄마가 자기 못다이룬꿈 관철시키려고
자기 아이에게 강요하고 강제시키는 그 지옥같은 삶
그걸 가진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아 죽겠는거 있죠 ? ^^;; (* 아무래도 1970-80년대
일본 순정만화를 너무 많이봤나봅니다)
다만...제 너무 좋아 날뛰는 모습이 엄마 눈에는
하도 어처구니 없어 보이던지
그저 말없이 피식 헛웃음만 터트리시더군요
그래도 어느덧 중학생이 된 맏이
- 옛날같으면 ‘살림밑천’ 소리도 듣는
무엇보다 제 엄마마음 누구보다 잘 이해줄 것 같아
세상없는 자기 분신쯤으로 여겼을 첫째부터
대놓고 ‘엄마의 강요대로 엄마가 못다이룬 꿈 대신 관철시켜주는
그런 삶을 살진 않을거야 !!!’ 그 심정을
대놓고 드러낸 셈이니까요
사실 저 혼자만 좋아서 마냥 기뻐만 할 수는 없는 일이라
바로 평정심을 되찾고 다른 동생들을 샆펴보았습니다.
뜻밖에 저 다음으로 종이를 펼쳐든게 제일 어린 다섯 살
막내여동생이더군요.
아직 다섯 살밖에 안된 막내는 아직 이 상황이
그저 언니,오빠,엄마랑 하는 재미있는 놀이쯤으로 여겨지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이 어느덧 한글을 깨쳤는지
‘엄마 !!! 나도 뽑았어. ’공부‘야 !!!’
자랑스럽게 펼쳐보이며 말하더이다
엄마도 막내에 대해선 이제 다섯 살밖에 안된게 뭘 아랴
하는 심정으로 체념한 듯 ‘됐다’며 손을 내저으시더이다
이어서 둘째와 셋째
그러고보니 둘이 거의 동시에 펼쳐본 것 같은데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표정이
역력히 눈에 들어오더이다
가만...헌데 그럼...
사실상 남아있는 사람
‘음악’을 뽑은 사람은...
5남매중 유일하게 사내아이면서
위로는 누나가 셋 아래로 막내 여동생이 있는
저희집 넷째. 남동생이네요.
네명의 누이들보다 다소 늦게...
원래 동작이 굼떴던건지 아니면 종이접기 펼치는게
좀 서툰건지는 모르겠지만
2-3초보다는 길게...하지만 5초보다는 좀 안되는 시간
여하튼 다른 누이들보다는 확실히 늦게 펼쳐본게 분명한
넷째...남동생
바로...처절한 울음소리가 터져나오더이다.
“ 우아아앙~~~!!! 시러어어~~~!!! 으아아앙~~~!!! ”
일곱 살 정도면 그래도
제 엄마가 자기 못다이룬 꿈 관철시키기 위한
그런 아바타 ? 혹은 희생양 삼겠다는 것이
뭘 말하는것인지 이해를 전혀 못하는건 아닌지
그렇게 처절하게 울음 터트리더이다
- 어쩌면 제 누나들 방에서 우연히라도 주워봤을
70-80년대 일본 순정만화 영향탓일수도 있구요 ^^;;;;
- 적어도 그냥 어린 나이에 TV 드라마나 영화 보다가
‘가수가 되고 싶다’느니 ‘탤런트 되고 싶다’느니
이렇게 철없이 내뱉는 경우하곤
분명 다른 이야기잖아요
어쨌든 동생은 그렇게 처절하게 울어대는데
그런 마음을 엄마는 아는지 모르는지
5남매중 유일하게 아들이면서
공교롭게도 유일하게 ‘공부’가 아닌 ‘음악’이 적힌
종이를 뽑은 아이를
‘어이구 귀여워라 !!! 어이구 역시 내 X끼 !!! 역시 내 아들 !!!’
이러면서
한참을 좋아서 물고빨고 그러시더이다
솔직히 우리집안...뭐 어쨌든 아빠는
그래도 ‘대 이을 아들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딸 셋 낳은 끝에 본 아들이기도 하지만
엄마야 그래도 여자이니까 그런식의 옛적 어른들 사고방식
반발심도 어느정도 있었을테고
그래서 솔직히 딸인 저희들에게 오히려 애정을 쏟으면 쏟았지
그전까진 유일한 아들이라고 해서 남동생에 대해서
딱히 기대를 하거나 하는 그런 눈치는 분명 아니었는데
- 오히려 딸인 저희들 셋 붙잡고 툭하면
집안이 몰락하고 저희 아빠한테 시집와 아이키우면서
어린시절 꿈을 다 접었다...그 이야기를
지겹도록 노래(?)부를 지언정...
최소한 남동생에게는 딱히 그런 어떤 기대는
하지 않던게 엄마였는데
‘엄마가 못이룬 꿈 대신 이뤄다오’ 하는 식의 이야기에
대놓고 싫은기색 내비치던 저희와 달리
그래도 유일하게 ‘공부’가 아닌 ‘음악’을 택한게
공교롭게도 아들인 저희 남동생이라서인지
여하튼...
엄마가 남동생을 그렇게 이쁘고 귀여워하며 좋아라 하는 모습
...아마 그날이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쯤되면
누나들인 저희 태도도 문제가 없지 않았다
솔직히 인정해야 할것같은데요
동생이...막상 그렇게 제비를 뽑고나서는
한 사흘은 진짜 처절하게 울어댔습니다
최소한 그 길이 ‘지옥길’이란건 아는지
‘공부’를 뽑고나선 그 뒤로도 한동안은
그냥 언니,오빠들이랑 재미있는 놀이한걸로 인식하는건지
여전히 해해거리던 다섯 살 막내 여동생과는 달리
일곱 살 넷째 남동생은
그야말로...사흘을 울었습니다
헌데 이쯤되면 막내는 그렇다치고 누나인 저희들
‘엄마...OO이(남동생 이름)가 저렇게 싫다고 우는데
...엄마, 차라리 제가 희생할께요. OO이가 저렇게 싫다는데
그걸 그렇게 굳이 시켜야겠어요 ?’
누구 하나쯤은 자기가 희생하겠다며 대신 나섰어야 하는건데
우는 동생을 안쓰러워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것은
그 길이 지옥길이란 것을
어느덧 중학생인 저는 물론
국민 학교 5학년 둘째, 2학년 셋째
다들 인식은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생은 딱하지만...그렇다고 내가 대신 그 지옥길
가고싶지는 않다
그게 그 무렵 누나들 셋의
솔직한 심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흘을 우는동생 수수방관만 하고있던 저희들...
그게...
저희집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제 동생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
미리양해겸 말씀을 드리자면
제가 일단 동생의 일거수 일투족을 24시간 감시하고 다니거나
늘 곁에 붙어 다니는 존재도 아니고
또 동생과 딱히 평상시 그리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누는
살가운 누나도 아니었던 이상
동생에게 있었던 그 모든 것을 알기엔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말해 동생이 합창단을 했건, 오디션을 보러 돌아다녔건
또는 그 외 어떤 활동을 했건
거기서 구체적으로 무슨일이 있었고
또 어떤 고민이나 고뇌가 있었거나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그런걸 다 알기엔 한계가 있다는거죠
전 일단 엄마로부터 들은 동생의 이야기
또는 동생이 밖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하는 행동이나 분위기
또 제가 개인적으로 어쨌든 직,간접적으로 알고 지내는
해당 관계자로부터 들어 아는 이야기
그게 전부일뿐
동생 내면의 모든 것을 알기엔 한계가 있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건 전적으로
큰누나의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남동생의 이야기란 점만
이해해주시고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일단...이것도 뭐 나중에 알게된 이야기이지만
애초에 엄마의 구상은 동생을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으로 넣은뒤
그 경력을 밑바탕삼아서 나중에
기획사 오디션이나 이런걸 거쳐서
10대때 청소년 가수로 데뷔시킨다던가
대략 이런 그림을 그리고 계셨던걸로 압니다
- 다만 그러고보니 이해가 안가는건
여하튼 애초 저희 5남매 모두 데려다놓고
‘공부’와 ‘음악’중에 선택을 하게 하셨던거잖아요
어차피 저의 네 동생 모두 아직은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 혹은 미취학 아동 그래서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부터 시작하기에
무리가 안 가는 나이긴 하지만
저는 그때 이미 중학생이었는데
만약 그때 제가 ‘음악’을 뽑았다면 그땐 어떻게 되는거였나
그게 좀 이해가 안가긴 했습니다
만약 중학생인 제가 그때 ‘음악’을 선택했다면
그땐 ‘어린이 합창단’이 아닌 다른 플랜이 구상되어
있기라도 헀던것인지
여하튼 그렇게 ‘음악’을 뽑은 넷째 남동생
그...한 1년여정도 무슨 음악학원인지 과외선생님 비슷한
1년여 레슨과정을 거쳐서
이후 당시 유명했던 한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원’에 합격은 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가 합창단에서 동생이 겪었던 일을
일일이 다 알수는 없어요
전 어디까지나 제3자이면서 가족의 일원인
큰누나 입장에서 동생의 일을
적을 따름입니다
일단 초창기 동생의 합창단원 생활이
많이 힘들었었던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보통 동생은 방송국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아무소리없이 제 방으로 들어가선 한동안 나오지 않던가
밤에 혼자 숨죽여 우는일이 많았던 것 정도는
기억을 합니다
그러고보면 동생이 방송국 일을 하러 오고갈때는
엄마가 차로 태워 데려다주곤 했는데
울거나 혼자 힘든 것을 하소연하는것조차
엄마 눈치가 보여 쉽게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합창단 초창기엔
얼핏 이야기를 들으니 동생이 노래를 안 부르더라는겁니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합창 연습이나 공연을 할 때
노래는 안 부르고 입모양만 벙긋거려서
여러차례 지적을 받은걸로 압니다
엄마조차도 그 문제로 동생을 여러차례
질책했으니까요
사실 무슨 이게 초등학교 반대항 노래자랑도 아니고
엄연히 그만한 방송국의 녹화든 생방송이든
방송을 통해 나가는 공연일진대
- 방송이 아닌 다른 행사장용 공연이라도
마찬가지인거고요
그런 방송국 합창단 멤버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죠
그 일로 합창단 지휘를 맡는 선생님이나 담당PD도
여러차례 질책하고 혼낸걸로 아는데
‘그런식으로 할거면 그만두어라’는 말까지
나온걸로 압니다
- 방송국 PD중에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 많다는 것 정도는
대충 저도 귀동냥으로 들어 압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 동생이
노래를 못부르는건 아니에요
여하튼 한때 음대까지 다녔던 엄마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동생이고
게다가 그만한 방송국 합창단에 합격까지 할 정도면
여하튼 실력은 분명 있는 아이겠죠
헌데 그런 동생이 왜 처음 한동안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것인지
동생 나름의 어떤 심술이나 심통인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어떤 속사정이 있었던것인지
동생이 합창단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이야기는
아쉽게도 시간이 한참 지난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생이 더 이상 방송국 합창단을 할수 없는 시간이 오기도 했어요
그게 그러니까 동생이 3학년...4학년을 거쳐 어느덧 5학년
합창단 생활을 한지도 대략 3년정도의 시간이 지난거네요
어차피 어린이 합창단은 초등학생때밖에 못하는거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 뜻밖의 돌발상황이 하나 벌어졌는데
실은 동생이 합창단으로 있는 방송사가
갑자기 문을 닫는일이 생겼습니다.
- 그 당시의 정치적 사정...
다만 방송국은 문을 닫아도 연예인을 비롯한 합창단이나 악단,무용단등은
폐방된 방송국을 흡수통합하기로 한 방송사가
거의 다 받아주는걸로 합의가 된걸로 아는데
다만 연예인중에도 개인적인 반발심으로 흡수되는 방송사로
안간사람도 있지만
어린이 합창단에도 그때 개별적인 사정으로
해당 방송사로 가지 않은 친구들도
여럿 되는걸로 압니다
사실 엄마는 그래도 새로 다른 방송국 합창단으로라도 넣어주려고
부단히 노력한걸로 아는데
그때 동생이 처음으로 아니 본격적으로
합창단을 ‘하기싫다’는 의사를
엄마한테 단호히 밝혔습니다
그러고보면 동생이 그렇게 엄마의 성화로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이 되고
3년의 시간이 흐른것인데
(내적으로는 어떤 고민과 갈등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때까지 군소리없이 제 엄마뜻대로 따라주던 동생이
처음으로 그렇게 반항을 한거죠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
더 이상 ‘하기싫다’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엄마의 격노가 시작되었습니다
따지고보면 우리 엄마 젊은시절 못다이룬꿈
그거 투영시키고자 선택된 아이
헌데 그 아이가 더 이상 합창단을 안하겠다고 하니
엄마 입장에선 그야말로 자신의 여생을 걸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음악의 길’로 성공하도록
그렇게 대장정에 들어간건데
그 첫단계나 다름없는 ‘어린이 합창단’을
3년이 지나지 않아서 – 아무리 그 무렵 어떤
정치적 속사정으로 방송국이 문을 닫는일이 있었다해도 -
합창단을 더 이상 안하겠다고 나오니
엄마의 분노와 격노 그리고 좌절감과 절망은
이루말할수 없었던거죠
솔직히 저뿐만 아니라 다른 여동생(총 3명)들도
엄마가 저렇게까지 무서운 사람이었나 싶었을정도로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그날 처음보는것이었습니다
사실 ‘음악’과 ‘공부’의 기로에서 제각기 선택을 한 그날
그게 그때 기준으로도 벌써 5년전 일이긴 했는데
덕분에 딸들인 저희는 어쨌든 ‘공부’를 선택한거니까
공부를 제대로 하든 안하든 딱히 저희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고
오직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음악으로 성공시키겠다는
그 무서운 집념과 일념을 보여준 것이
지난 5년 곁에서 지켜본 엄마의 모습이니까요
대신 상대적으로 딸인 저희들은
엄마의 관심과 집착에선 상대적으로 멀어져있어
나름 그런대로 자유분방하게 살수 있었던
어떤의미에선 또다른 방식의 역차별(?)이었다고나 할까요
여하튼 지난 5년세월 그렇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쏟아부은 정성과 노력이었는데
그걸 안하겠다고 하니 엄마는 그냥
이렇게 가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게 낫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것인지도 모르죠
동생을 한 일주일 방에 가두고서
그대로 ‘죽여버리겠다’며 만약 합창단을 더 안한다고 하면
‘너는 더 살 이유가 없으니 죽어야 한다’
그야말로 눈에서 불이 일면서 그 난리를 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저희 딸 넷은...어떻게든 불같이 화가난 엄마를
말리거나 달래봐야겠다
또는 어떻게든 불쌍한 동생을 구해줘야겠다
그런 생각보다는 ‘무섭다’는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엄마가 저렇게까지 무서운 사람이었다니...
그리고 만약 5년전 그날 ‘음악’을 선택한 사람이
남동생이 아닌 자신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자신도 언젠가 엄마한테 저런꼴을
당할수도 있었다는 것 아닌가 그 생각을 하니
저도, 둘째도 셋째도...그리고 남동생과 두 살 터울지는
막내 여동생도...
막내도 어느덧 초등학교 3학년이니
이런 상황을 전혀 이해못할 그런 나이는 아니죠
아무것도 모르는 다섯 살 어린나이때는
언니,오빠들과 무슨 재미있는 제비뽑기라도 하는줄 알았는데
실은 그게 자신와 오빠의 운명을 갈라놓는 순간이었다니
어느덧 중학생,고등학생이 되어있는 누나 세명뿐 아니라
막내도 그렇게 모골이 송연해져서
눈에 불을 켜고 아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달려드는 모습을
지켜보며...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괜히 무슨 불똥이 자신에게 튈지몰라
두려워서라도 말이죠
뭐 일단 그렇게 일주일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나서
엄마가 지친건지 동생이 지친건지
대충 절충안(?)이 나오긴 했어요
엄마 입장에서도 이러다 자기 여생을 올인하려고 쏟아부은
그 하나뿐인 아들을
정말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어린이 합창단’은 더 안하겠다는 동생의 요구는 수용하기로 하고
그대신 한 1-2년정도 쉬다
나중에 중학생이 되고나서부터
본격적으로 가수로 데뷔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에 들어갈테니
그렇게 알라고 하더군요
하긴 이때는 이미 10대에 데뷔한 고등학생 가수가
이따금씩 생길때이니
중학교 시절 한 2-3년 준비해서
고등학교때 가수로 데뷔시킨다는 엄마의 구상은
- 게다가 어쨌든 방송국 합창단 경력도 3년이나 되는 아이니까
그렇게 무리는 아닐것이란 판단을 했나봅니다.
그전에 설명을 또 좀 덧붙여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자식을 자신의 못다이룬꿈을 관철시키려는 도구로 삼아
어떻게든 가수로 성공시켜보려는 엄마의 그 과도한 집착에
학을떼고 질려서인지
나머지 4자매는 가급적 방송,연예계와는 연을 맺지 않으려하고
가급적 평범한 여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왔는데
둘째와 셋째의 경우엔 생각보다 공부쪽으로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이후에는 평범한 직장여성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여하튼 둘째와 셋째도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으니
넷째인 남동생도 어느덧 고등학교생이 되었다는 이야기겠죠 ?
네, 맞아요. 동생이 그때쯤 본격 가수로 데뷔를 했습니다
대략 그게 고1인가 고2때 같았는데
다만 데뷔과정이 좀 특별했습니다
실은 그 무렵 어떤 방송사에서 좀 특별한 이벤트를 하나 했는데
재야에 숨어있거나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그런 무명가수나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기위한 기획이었다고나 할까요
복면을 쓰고 방송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그걸로 시청자와 방청객의 선택을 받는 그런 프로가
마침 하나 만들어졌어요
동생을 거기에 내보낸겁니다 저희 엄마가...
뜻밖의 이변이 생겼어요
복면을 쓰고 처음 방송에 나간 무명의 신인이었던 동생이
해당프로에서 연전연승을 달리기 시작한거죠
방송에서 자체적으로 ‘연승제도에 제한을 두어야하는 것 아니냐 ?’는 말이
나올정도로
동생은 8연승...9연승 그렇게...그야말로 파죽의 연승을 달렸습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그 문제로 좀 논란이 되었었나봅니다
사실 앞서 잠깐 언급헀듯이 저희 집안은 엄마와 남동생을 제외하곤
가급적 방송,연예가와는 연을 맺지 않으려는 그런 삶을 살아갔는데
다만 저같은 경우엔 대학동기생중...방송가에 물건을 납품하는 일을
맡게된 친구가 있었어요
근데 그 친구가 해당프로에서 구성작가를 하는이와
그 과정에 친분이 좀 생겼었나봅니다
- 그 방송작가 입장에선 제가 그 복면가수 누나란 것은
모르는 상황일텐데...아무튼 그 친구에게
여러 가지로 불만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사실은 띄워주기 용으로 그리고 복면쓴 신인 남자가수를
꺾을 목적으로 대표적인 보컬 여가수를 몇 명
비밀리에 출연시키기도 했는데
그런 가수들까지 나중엔 제 동생이 꺾어버렸다는거에요
그...뭣이냐...페미니 뭐니 이런 논란까진 안가더라도
그런대로 잘 나가는 유명한 여성 보컬가수들까지
복면쓴 남자신인에게 계속 꺾이는 상황까지 벌어지니
해당프로 피디나 여성작가들이 많이 자존심이 상했었나봅니다
-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제가 추정컨대는 아무래도 제 동생이
연승을 달릴수 있던 비결은...아무래도 젊은 남자가수 목소리에 반한
여성 시청자나 방청객들이 잔뜩 몰표를 주었을 수도 있는건데 말이죠
여하튼 문제는...눈치없는(?) 젊은 여성시청자나 방청객들이
젊은 남자가수인 이 신인에게만 계속 몰표를 주고 있어서
심지어 대놓고 이 신인가수 연승을 꺾겠다고 내보낸
대표적인 실력파 보컬 여가수들까지 연달아 패해버리는 상황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짜 당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진것이죠
근데 상황이 이쯤되면 제 동생의 태도도 이해가 안가는건 사실이네요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 마음이 바뀐건지 어떻게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어릴 때 제비뽑기에서 ‘음악’을 택하게 되니까
싫다며 며칠을 울어댔던 동생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을 할때도 안한다고 싫다며
꽤 많은 힘든 시간을 보낸것만은 분명한 제 동생인데
막상 그렇게 가수로 데뷔하고 나니 어떤 자존심이나
승부욕같은거라도 생겼는지
상식적으로 그런대회에서 적당히 설렁설렁 해서
그렇게 연승가도를 달리진 못할거잖아요
아무리 생각없는 여성 시청자,방청객들이 젊은 남자가수 미성(美聲)에 반해
몰표를 주는 상황이라도 말입니다
여하튼 대충 8연승...9연승까지 갔을 때
방송사측이 특단의 조치를 내려
해당프로를 중지시키는 바람에
제 동생의 연승가도는 9연승에서 아쉽게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원래 기획의도는 재야의 무명의 숨은 신인 여가수나
이런이들을 발굴하고자 기획한 기획의도가
여자의적은 여자라는 것을 증명케하듯
되려 이름있는 실력파 보켤 여가수들까지
제 동생에게 연거푸 꺾이는 – 여성 시청자들이 몰표를 줘서
그런 상황이 발생했으니까 말이죠
여하튼 최소한 제 동생에게 그 당시 승부욕만큼은 확실히
있었다는 이야긴데...제가 그래서 동생의 그런 심리는
참...알다가도 모르겠다는겁니다.
싫다고 할때는 언제고 또 그런 오디션형 프로그램에 나가선
그렇게 승부욕과 투지를 불태웠는지 말이죠...
얼마후 동생은 또 다른 프로에 섭외가 되었어요
이 프로는 타 방송사에서 하는 그리고 성격은 역시
오디션과 경연의 성격이 반반씩 섞인 그런 프로였죠
그리고 출연자의 구성은 좀 특이하게
당대 잘 나가는 베스트급 보컬 여가수에서부터
재야나 무명의 다시말해 밤무대나 지방행사 같은데를
전전하는 여가수중 그런대로 실력좀 있다고 소문난 가수들까지
대략 30명 가까이가 캐스팅이 되어서
서로 대결을 벌여서 최종 베스트를 선발하는
대략 그런 성격의 프로였습니다
게다가 좀 특이하게 30명 출연자 대다수가 여가수인데
유일하게 남자인 제 동생이 일종의 청일점처럼
캐스팅이 된것입니다
왜 이런식의 캐스팅을 했는지는
제가 방송사 제작진이 아닌이상 알수 없는거고요
다만 여기서도 뜻밖의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이 프로 역시 방청객과 시청자 투표로 베스트를 뽑는
그런식이긴 했는데
그런식의 경연을 대략 3차까지 벌여 베스트를 선발하는
그런 프로였습니다
다만 나중에 알게된것이지만 이 프로는 만들게된 내막이 좀 있었어요
단순히 국내 여가수들끼리 대결을 벌여 베스트를 뽑는게
주목적만은 아닌
실은 국제대회에 내보낼 목적으로 그 주목적에 어울릴만한
여가수를 뽑는게 더 큰 목적이었죠
그러니까 단순히 국내용이 아니라
국제무대 나가서도 외국인들에게 충분히 호소력이 있는
그런 여가수를 뽑는거였는데
- 따라서 사실상 이 프로에서 애초로 베스트로 밀기로 한 가수는
따로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헌데 여기서도 눈치없는 방청객+시청자(대다수 젊은 여성들인)들의 투표로
뜻하지 않은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실은 바로 유일한 남자가수 출연자였던 제 동생이
경연 초반부부터 눈치없고 주책없이 계속 1위로 앞서나갔던거에요
원래 국제대회용으로 다른 젊은 여가수를 띄울 목적이었던 제작진 입장에선
적잖이 당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진겁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패자부활전이다 뭐다 하면서
적당히 순위조작을 유도해보려고도 했고 하지만
워낙 압도적으로 제 동생이 여성 시청자들한테
몰표를 받는 상황이라 제작진의 ‘적당한 보이지 않는 조작’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졌던겁니다
결국 낙담한 제작진이 동생에게 눈치를 좀 준 모양입니다.
‘ 왜 당신이 여기 있느냐 ? 우리가 당신 잘난체하라고 이런거
만든줄 아느냐 ? 여자들만 있는 무대에 남자 혼자 있으면 쪽팔리지도 않냐 ?
그쯤했으면 이제 당신이 적당히 좀 빠져줘라...당신같이 그렇게 눈치없게
살아선 가수는커녕 어디가서 평생 밥벌이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
뭐 그런식으로 압박이 들어왔고
그러자 동생이...
본격적으로 깽판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깽판이라기보단 더 정확히는
우리집에 진정한 비극이 시작된겁니다.
동생이 일이 이렇게 되게까지 만든 근본원인을
자신을 그렇게 가수로 성공해서 엄마 못이룬꿈 대신 이뤄달라는
자기 못이룬꿈 투영의 대상으로 자기아들을 선택한게
따지고보면...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다는 생각은 저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동생이 자신의 원망과 분노를...
풀어낼(?)줄이야...
그날...아니 정확히는 그 무렵
엄마는 동생의 보호자(?)겸 매니저 노릇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동생이 성인이 되고부터는 서로 안 맞는게 많았는지
아니면 동생이 가급적 자기 마음대로 자유분방하게
움직이고 싶었는지
엄마는 그때부터 동생의 매니저 역할로 방송활동을 지원하기보단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저같은 경우에는 차츰 자라서 성인이 되어갈 무렵부터는
역시 엄마랑은 안 맞는 부분이 많아서
따로 나와서 자취를 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는 둘째와 셋째는
직장생활을 하며 집에서 엄마랑 아직 함께 살때였고
남동생과 두 살터울인 막내는 아직 고등학생으로 역시
엄마랑 함께 살때였죠
다만 그날이 평일 낮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둘째와 셋째 다 직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었고
오히려 고등학생 막내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느라
늦게 귀가할때였어요
방송활동을 마치고 오는거였는지 중간에 펑크내고
그냥 온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대로 아직 정오 지나서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인데
집으로 들이닥친 동생이
엄마를...살해했습니다. 그것도 닥치고 그냥 단도직입정으로
그때 둘째와 셋째는 방에서 자기네들끼리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엄마를 살해한 동생은 그리고 바로 제 둘째누나와 셋째누나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누나 두명마저 살해했습니다
그러고보면 다분히 계획적이었는지...
학교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막내가 밤늦게 귀가할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낮에 살해한 엄마와 둘째,셋째 누나 시신이 방치되어있는 그 집에
막내가 한밤중에 귀가할때 역시 살해해버린거에요
식구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있던 저는
뭔가 좀 이상한 예감이라도 들었는지 밤늦은 시간에 집에 가보았다가
이미 끔찍한 살해현장이 되어버린 집안을 보고는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치듯 나와서는
동생을 바로 신고해버렸습니다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제가 동생의 심리상태를 100% 정확히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근본적으로 동생의 방송활동을 닦달하며 집념과 집착을 보인건
저희 엄마였고
저는 그냥 평범한 학창시절,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떻게든 엄마의 자식 하나를 음악으로 성공시켜야겠다는
그 집념, 그 집착에 엮이지 않으려고
가급적 한발 물러서서 저희집안 상황을 곁에서
지켜만 보는 입장이었고
성격탓인지...동생들에게 그리 살가운 누이나 언니도
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래도 어쨌든 식구니까...
동생이 합창단에서 왕따를 당한다던가
또는 밤에 혼자 힘들어하며 우는 모습 정도를
이따금 먼발치서 지켜본게 전부일뿐
여하튼 엄마가...쓰러진 자기집안 일으키려
동생들 돌보랴...이후 시집가서는 자식들 키우랴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게되면서 접어야했던
음대에 진학해 그쪽방면으로 출세하고 싶었던 꿈을
대신 자신의 자식에게 투영시키려 한 집념...집착...
그렇게 선택된 남동생
하지만 어린이 합창단에서 겪은 왕따와
이후 고등학생 가수로 데뷔했지만 두 번의 경연성 프로그램에서
있었던 오해와 해프닝
단지 그것만으로는 동생이 그렇게 끔찍한 살해행위를 해야만 했던
동기나 이유가 다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요
앞서 처음에 언급했지만 전 국문과나 문창과 출신도 아니라서
문법적 기교도 부족하고 상상력도 떨어지는 사람이라
그냥 덤덤한 감정으로 지난 20년 넘는 세월
저희집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설명할 뿐입니다
여하튼 그렇게 저희집안은...몰락한거죠. 망한거죠 뭐
엄마...여동생 세명은 모두 그렇게 남동생에 의해 비참하게 죽어갔고
동생은 존속살해혐의로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아
가수데뷔는커녕...영원히 감옥에서 나올수가 없는 그런 신세가 되었으며
가족 구성원중 유일한 생존자가 된 저도
솔직히 그날 받은 충격에서 손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
그저 망연자실하게...사회에 제대로 적응도 못한채
살아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다만...이제와서 새삼 곱씹어보면
엄마의 그와같은 집착이 결국 우리집안 비극의 출발이라는 점
엄마의 못다이룬꿈 자식에게 투영키시려다
벌어진 비극...
다만...세상에 그런 부모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 저도 들어는 봤지만
직접 본 경험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가 않아요
있다면 그게 1970-80년대 동네 만화방에서 보았던 일본 순정만화라던가
아니면 인터넷의 어느 정치커뮤니티에
어떤 정치잉여가 자기 딸네미를 돌도 지나기전부터
‘이 다음에 커서 5선의원이 되거라...’ 뭐 그런다는 식의 이야기는
한 몇계단 건녀 귀동냥으로 들어본적 있어도...
저희 엄마같은 집착은
사실상...저희집안 사례 말고 제가 직,간접적으로는
접해보지 못한 것 같으니까요
저희 집안
이 시점에서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었다’고 말한다면
믿는 사람 거의 없겠죠 ?
네, 다만 아쉬운 것은
애초부터 엄마의 자기 못다이룬 꿈 대신 이루게 해주기 위한
그 집념과 집착만 없었더라면
우리 5남매 그래도 큰 문제나 분란없이 그럭저럭
오순도순 살아갈수 있었던
그런 집안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그 아쉬움에 있을 따름입니다
어쩄든 저희 집안은 그렇게 몰락한거고...
다만 제 입장에서 우리 집안이 이렇게 결단난게
결국 다 엄마의 그 지나치게 집요헀던 집념과 집착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제 동생이고
제가 평상시 그렇게 동생에게 살갑거나 잘해주던
누나도 아니었음에도
근본 원인과 책임은 결국 다 엄마에게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