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유산..위로가 필요해요

소나기 |2024.07.07 00:31
조회 1,065 |추천 2
제 나이 만 34살이에요
결혼한지 3년이 지났네요
극T인 남편 그리고 T 와F사이 어딘가인 저^^..
결혼전에 저희 오빠는 아이가 꼭 있어야하나?
둘이 행복하면 되지않나?라는 사람이였고
저 또한 그말에 긍정적이며 ,안생기면 그냥 둘이 살자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였어요
오빠 친구 부부들은 거의 시험관으로 아이가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였어요
다들 아이를 간절히 바라던 분들이였어요
누구나 아이가 쉽게 생기는건 아니구나 새삼느끼게되었죠
그러다 3년만에 저희부부에게 아이가찾아왔어요
아이는 계획으로 갖는게 아니라는 어른들에 말을 새겨듣지않았지만
저희는 계획하에 아이가 생겼어요
당연한건줄만 알았죠
임신한걸 오빠에게 말하자 저만 알수있는 오빠의 특유의 행복한
모습을 보았어요 기대안한것과 달리 내가 이제 아빠? 라는 기대감과 기쁨 ,부담감 저만 알수있는 오빠의 그 미묘한 모습을요..
병원에서 5주차 밖에 되지않아 애기집만보였고
2주후 아이 심장소리를 들을수있다 했어요
우린 태어날 아이에 잠자리부터 시작해서 ..
딸일까? 아들일까? 누구를 닮았을까..
출산예정일과 저희 첫분양된 아파트 입주날과 비슷해 걱정도하고 회사다는 저는 임신한 탓으로 축하와 복지를 한번에 받으며
나름 편안과 행복한 나날을보냈어요.
또한 저희오빠는 말로 표현은 안하지만 집안일을 줄곧 해주며, 내걱정 안하는것처럼 하면서 매일 산책도 가고 먹고싶은건 꼬박꼬박사먹였어요
아 이래서 임신하면 이 행복을 누리라는거구나 하고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너무 좋았었죠.
그럼에도 저는 안전과민증?같은..게 있어요
저희언니가 첫째를 막달이 다 되서 유산이된적이 있어요
그날 저는 밤늦게 그소식을 형부에게 전화로듣고 남편과 울며
택시를타고 갔죠
누워서 배를 쓰담으며. 아가미안해 엄마가..하며울고있는 언니를보며 저는 충격과공포와 이루말할수없는 슬픔에 언니를 보자마자 무너져 소리를지르고 목놓아 울었죠
그날 배뭉침으로 주사를맞고 오후에 잠시 입원에 있다가 아기 심장이 멈췄다는데 의료사고는 아닐까하고 화가나더라고요
언니가 병원침실에 누워서 배를부여잡고 울부짓는데 정작 그병실밖에 야간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는 한두번 본게 아니라는듯
아무감정이 없는 사람들처럼 누구시냐며 환자와무슨관계냐며
필요이상에 질문외엔 감정없는표정으로 저를 보더라고요
화가난 형부또한 울며 그산부인과에대한 의료행위를 단절하고 다른 큰 여성병원으로 긴급응급차를불러 갔어요
오래된 동네 산부인과였는데 흥분한 저희입장을 공감을 못해준탓이였을까요 너무 차갑기만한 병원의 대처에 화가나더라구요
그날저희언니는 제왕절개가아닌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보냈어요
후에 태어날 아이가 자연분만으로 나오길바랬거든요
같은여자로써 존경스러움과 대단한 모성애라는 생각이들더라구요
그하루를 수술실앞에서 저와 저희남편은 뜬눈으로밤을새며 태어나도 보질못할 아이를 기다렸죠 타지역에 사시는 친정부모님이 전화가왔어요. 전화를 통화를 하는데 그맘을 누가알까요 딸에아픔을 한숨과 걱정스런 말로 급하게 오시는 그맘을요..
하루가지나고 언니가 입원실로 들어오고 같은병실 다른환자로 누워있었죠
누군가에게는 축복받는환자로 언니는 슬픔을 가진채로말이죠
그날 언니가 필요로하는 물품을사러 병원밖으로나갔어요
4월 벚꽃이 한창 만개한날이였어요
길거리 사람들은 행복한모습으로 가족들과 벚꽃을보며 행복해했죠
사진으로 그날을기록하는사람들 저마다 웃음꽃이 가득했죠
저는 그날 그거리를 슬픔에 가득한채로 걸었어요 제가 태어날 달이기도한 그날을 아직도 잊을수가없네요
그후 언니는 또한번의 초기 유산을 겪고 3번째 예쁜 조카가 나왔어요 저희가족은 누구보다 기뻐했어요
제 첫조카이기도 하지만 어렵게 얻은만큼 제 눈에는 너무이뻤거든요.
그런반면 언니의 임신과정을 봐온 저로써는 내심 걱정이 많았어요
나또한 언니처럼 안될거라는 보장이없다..
앞써 말했듯이 안전과민증.. 혼자 아무한테는 말은하지않고
임신하는 그짧은 기간동안 걱정이많았어요
아기 심장소리를 들을수 있을까? 잘자라줄수있을까?
남들처럼 평범한 임신과정을 볼수있을까?
나름 영양제도 잘먹고 나쁘다는건 안했는데..
제걱정이 너무했던 탓일까요..
아기 심장소리를 듣자던 2주가흐르고 초음파 속에는
아이가 없었어요.. 의사가아닌 제가 초음파를보자마자
의사선생님이 먼저 말씀하기도 전에 제가 알아버렸어요..
아기집에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아 ~올것이 왔구나..
설마..아닐거야.. 제발 ..내가본게 아니길..
그짧은 몇초 제머릿속 생각이 현실된..
의사선생님께서 아이가 보이질않네요..
아기집은 있는데 아기가 안보여요..
비정상임신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염색체 이상 이런저런이유로 아기가 크질못한거 같다며
3일후 다시 보자하셨죠 그때도 보이지않으면 계류유산이며
소파수술을 말씀하셨죠
병원에서는 담담했던제가.. 차안에서 펑펑울었어요..
앞전에 오빠가 그랬거든요 ..저희언니 그런과정을 봐왔기에
혹시나 행여라도 언니랑 비슷한상황이 와도 너무힘들어하지말자고
너의 잘못이 아니니까 더 건강하게 아이가 오려는거라며
너무 슬퍼하지말자고 ..약속했었거든요..
근데 막상 이런상황이 닥치니.. 그게안되더라고요 ..왜하필..나일까
수많은 사람들중에 왜 나일까..화도나고 슬픈감정이 주체가 안되더라고요.. 그차안에서 괜찮다고 위로하는 오빠말이 들리지않았어요
내탓같아서 미안하기도하고 그래도 기대했을오빠한테...아무말도 할수가없고 울기만했어요
3일간의 저는 90프로는 포기상태였죠.
10프로는 인터넷에 특이사항.. 추후 아이가 보였다는둥..
이런저런 얘기로 위로를받았으며..
다행이라면 다행인게 아이에모습 ,심장소리를 듣지않았던것이
차라리 나을수도 있었겠다라며 ..위안삼았죠
그런데..모든게 몸관리를 좀더못한 내잘못같고
아이를 갖기위한 노력도 하지않고 아니라기 생각한 그냥 오로지
제잘못같아서 ..10프로 희망도 점점..사라졌죠
3일후 아이가 보이지않았고 그이튿날 소파수술을했어요
생각보다 짧은 수술시간 수술보단 시술과같은 개념이였고
전신마취를 해야했어요 수술대 위에서하는거라 수술실 옆 대기실에서 영양제를맡고 기다리는동안 수술실안에서는 분만이 한창이더라구요.. 아이의 탄생을 고스란히 들을수밖에없었어요
누군가에게는 축복과 행복한날.. 수술대 위에서 아이집을 없애고
그 느낌은 겪지않아본 사람들은 모를거에요..
아니 왜 우리언니 ..나까지 한번에 축복을 주는게..어려운건가...
너무 화가나고 만감이교차하더라고요..
집에 돌아오는길 오빠한테는 애써 괜찮은척했어요
천천히 건강하게 다시 준비하자며. 웃어보였죠
집에와서 씻는데 거울에비친 제모습이 한없이 불쌍해보이더라고요
배를 쓰담으며 5주간 고생한 저에게 위로해보았어요
더 건강하고 강한 엄마가되자며..
가족들한테는 괜찮은척 하고있어요
그래야 제가 덜힘들거같아서요
회사에서도 지인들한테도 더이상에 위로를 하지말라고 했어요
저는 정말괜찮으니..
근데 혼자있을때면 괜찮은척하는 제가 바보같아보여요
이렇게라도 말하니 속이 좀 후련해지네요...^^
저한테도 건강하고 이쁜 아이가 곧 찾아오겠죠?







추천수2
반대수0

임신/출산/육아베스트

  1. 아이 성장/발달 관련댓글0
더보기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