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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로망) 치명적인 사랑 [6]

귀여운누나 |2004.03.17 13:12
조회 1,004 |추천 0

 

 

 

 

 

#6. 다시 만난 그녀

 

 

 

 


그녀는 며칠을 같은 시간에 다녀가곤 했다.


갓 구워낸 식빵 앞에서 식빵냄새를 잔뜩 온몸에 묻힌 후 케잌 진열대로 와서 조각 케잌을 하나씩 사가곤 했다.


 그렇게 그녀가 늘 같은 시간에 나타나자 혁도 습관적으로 그녀를 기다렸다.


 그 시간이 되기 전부터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고, 그녀를 위해 진열대, 특히 그녀가 좋아하는 조각 케잌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녀를 좋아한다기보다 그녀가 그의 케잌을 보고 실망할까봐 그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온 신경을 케잌에 집중하여 늘 새로운 스타일의 케잌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생각했다.


그 뒤로도 그녀는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나타났다.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열리는 문소리에  혁의 심장이 뛰었다.


 그는 그녀가 가게 안에 들어오는 순간 이상하게 긴장되었다가도 그녀가 케잌 진열대에 서서 오늘 케잌에 대해 부드러운 찬사를 아끼지 않을 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그런 마력이 있었다.


 그녀와 가까이 있는 사람은 그녀의 사람을 압도하는 듯한 이미지 때문에 어떤 불안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막상 그녀가 던지는 한마디에 모든 불안감이 눈 녹듯 녹고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능력 같은 것 말이다.


어제도 그녀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블루베리를 반 갈라 장식한 위에 키위생살을 갈아 얹고 그 위에 키위시럽을 뜸뿍 뿌린... 조각케잌을 사갔다.


그렇게 그녀를 기다리고 그녀를 위해 새로운 케잌을 준비하고...


요즘 들어서는 쇼핑몰 내 서점에 들러 외국잡지들을 본다.


그리곤 거기서 힌트를 얻어 늘 새로운 시도를 아끼지 않는다.


 좋건 싫건 간에 그는 그녀 덕에 점점 더 좋은 케잌을 만들고 있음에 틀림이 없었다.

 

오늘도 이태리 잡지에서 레스토랑을 소개하던 중에 잠깐 나왔던 것을 응용하여 조각 케잌을 만들었다.


 그리곤 그녀가 보기 좋은 위치에 올려놓고는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 오늘은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


늘 이런 불안감이 있었으나 한번도 그녀는 그의 케잌이 나쁘다고 얘기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그녀의 객관적이어 보이는 냉정한 눈빛을 알기에 항상 긴장이 되었다.


이제 그녀가 올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올 시간이 지났다.....


그녀는 오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올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그녀가 늦게 올 수밖에 없는 개인사정들을 무수히 많이 생각해 내며 그녀가 꼭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날이 밝고 해가 중천에 떠올라 교대 시간이 됐을 때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 무슨 일 일까? '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무슨 좌절 같은 것을 맛본 느낌이랄까?


' 저번 키위 케잌이 별로 였나? ... 예쁘다고 여전히 같은 맨트로 칭찬을 했었는데... 그럼 맛이 별로 였나? '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갑자기 의기소침해졌다.

 

그리곤 근무시간이 되어 다시 가게로 나갔다.


그이 케잌이 팔리고 그 자린 엔 다른 케잌이 놓여 있었다.


 " 여기 있던 케잌 누가 사갔어요? "


" 거기.  거기 뭐가 있었지... 에이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해 "


앞 타임 근무자가 별 생각 없이 대꾸한다.


" 혹시 여자가 사갔나요.?"


" 여자... 여자였지? 아마... "


" 어떤 여자예요.?"


" 그냥 아줌마 같던데... 모르겠다. 내가 뭐 그런 것만 기억하고 있냐? 수고해 "


귀찮다는 듯 얘기하고는 나간다.


" 그녀가 왔던 걸까? ... "


순간 그는 자신의 우스운 생각에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하루 일을 시작했다.


새벽이 다가오고 그는 다시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구수한 식빵이 다 구워져 온 세상으로 퍼져나갈 때쯤 그는 조각 케잌을 만들어 진열대에 올렸다.


 오늘은 노오란 치즈시럽을 뿌린 위에 녹색키위시럽을 살짝 뿌려 모양을 낸 케잌을 새롭게 만들어 그녀가 즐겨 사가는 위치에 놓았다.


 그렇게 시간이 다가오고 평소보다 두 배는 더 긴장이 되었다.


 10분전부터는 온 세상이 정지하고 다 희미해지며 오로지 가게문만이 집중조명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오지 않았다.


 처음엔 실망을 했지만 ...


그렇게 그냥 며칠을 오지 않자 그는 또 습관처럼 그녀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오늘은 몇 주만에 맞이하는 쉬는 날이다.


 터미널에 나와 표를 끊었다.


차시간까지는 3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오늘은 병원에서 지내고 내일 아침 차로 돌아올 계획이다.


이젠 제법 날씨도 따뜻해지고 여기저기 눈이 녹고 땅이 녹아 산언저리 곳곳이 햇볕아래 축축한 빛을 내고 있었다.


옆에 앉은 아저씨가 신문을 펼쳐들고 읽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다가 영원의 기사가 머릿기사로 난 것을 보았다.


' 영원이 우리에게서 사라진지도 2년이 다 돼 가는구나... '


환하게 웃고있는 그의 모습위로 ' 떠오르는 샛별' 이라는 기사가 써있다.


순간 혁의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와 함께 본인이 짊어진 이 힘든 일이 또한 그 때문인 것 같아 가슴에서 울컥 그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며 혈관을 조여왔다.


버스는 어느덧 터미널에 도착하여 사람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혁이도 차에서 내려 다시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때를 훌쩍 넘긴 때 였다.


시장기가 돌면서 눈에서 또 알 수 없는 눈물이 나려는 것을 꾹 참았다.


그냥 병원으로 향한 그는 그녀가 입원해 있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그는 병원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일반병실로 그녀를 옮길 수 없었다.


그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녀는 여전히 막강한 의료기기로 무장한 채 그렇게 사이보그 인간처럼 누워있었다.


 얼굴이 더 창백하고 부어있었다.


" 수연아, 나 왔어?.... 잘 지냈어?.... 보고 싶었지?.... 뭐?  난 안 보고 싶었다고.... 그럼 누가 보고 싶어? .... 힘찬이?.... 잘 지내.... 이젠 제법 컸어.... 이제 조금만 있으면 돌이 다가올 텐데... 그러니까 힘 내... 얼른 일어나서 애기도 보고해야지... "


그녀의 흐리한 초점 없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사지가 스스로 조절이 안돼서 그냥 흐르는 눈물인지 아니면 아이에 대한 간절한 모성애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을 조용히 닦아주면서 슬픈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어머 남편 분 오셨네요... 잘 됐다... 오늘은 남편 분이 목욕 좀 시켜주세요. "


간호사가 한마디하고는 나간다.


그는 뜨거운 물수건을 해와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리곤 그녀의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고 떨리는 손길... 목, 어깨... 그리고 가슴...


그녀의 가슴께를 닦아주면서 힘찬이 생각을 했다.


한번도 어머니의 따뜻한 젖을 받아먹지 못하고 자라고 있는 불쌍한 아이...


그 아이가 문득 어린 날 버려진 자신과 같다 라는 생각을 했다.


' 나도 어머니의 젖을 먹지 못하고 자랐을 까?...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아침...


병원비를 계산하라는 병원측의 요구와 중환자실비를 감당하기 어려우면 일반병실로 옮기라는 경고 아닌 경고를 받았다.


병원비 청구서를 들고 나오는 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버스에 오르면서 절망적이고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버스야... 멈추지 말고 그냥 한없이 가주렴....


그러나 버스는 터미널에 멈춰 섰고 어김없이 사람들은 짐을 챙겨 내리고 있었다.


그도 마지못해 내려서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여 원장아버지가 간신히 재웠다는 힘찬이 얼굴을 한번 본 후에 그도 짧은 잠을 청했다.

 

두어 시간을 자고 난 그는 다시 떠지지 않는 눈을 뜨고는 쇼핑몰로 향했다.


그리곤 무거운 어깨를 놀리며 손님을 맞고 자정에 가까워 오자 평소와 다름없이 빵들을 만들고 굽기 시작했다.


 새벽3시쯤 마지막으로 식빵을 구워 내면서 온천지에 다시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거품을 내어 만든 복숭아크림을 얹은 조각 케잌을 진열대위에 내 놓았다.


그리고는 원두커피를 내리고, 커피 향이 가게 안을 흠뻑 적실 때쯤 가게문이 열렸다.


그때 여느 때와 같은 향을 풍기며 그녀가 나타났다.


 근 한 달여 만인가보다...


그는 반갑고 당황스러웠다.


" 여전히 빵 냄새가 사람을 유혹하는 데요."


" 이 케잌은 뭔가요? 색깔이 아기 살결 같아요. 치즈 크림 이예요? "


" 아뇨. 복숭아 크림이예요."


" 어머 그래요. 맛있겠어요. 하나 주시겠어요."


" 요즘 통 안 보이시더니... "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자신에게 관심이 있냐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 네... 요즘 좀 바빴어요. 외국에  좀 나갔다왔거든요. "


" 네... "


" 근데... 제가 누군지 궁금하세요? "


" 네? ... 아뇨... 뭐... 여기 호텔에서 일하세요? "


그녀가 당돌한 웃음을 웃으면서 얘기한다.


" 저요? 아뇨... 그냥 호텔 투숙객예요.... 저희 아버지가 여기 카지노랜드 호텔 사장이구요."


자신의 이력을 말하는 데 겸손하거나 하지 않고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얘기한다.


그리고 그녀는 나가려다가 돌아와서는 그에게 명함 하나를 내밀면서 간다.


"  생각 있으면 연락 한번 주세요. "


무슨 뜻일까?...


그는 멍하니 한참을 있다가 그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 오렌지 기획 대표이사 홍란주 '


' 오렌지 기획 대표이사?.... '


' 오렌지 기획... '


' 오렌지 기획이라면?...  영원이 있는 소속사... 대표이사?... '


순간 그는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과 함께 잊고 있었던 영원의 존재감을 다시금 느끼면서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 왜지?... '


한참을 이상한 생각과 기분...


끊임없이 떠오르는 그녀에 대한 생각...


 영원에 대한 생각....


으로 어스름 여명이 밝아오는 것 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을 가다듬고는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빵뜨락입니다. "


" 혁아, 아버지다."


" 네. 웬일이세요? "


" 혁아, 힘찬이가 이상해... 몸이 불덩이 같고 밤새 울어대고 어쩌지? "


" 빨리 병원으로 가야죠. 여기 병원에 가게 이리로 데려오세요. 얼른요? "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초조한 마음에 가게 밖에서 서성거렸다.


 원장아버지가 도착하고 원장아버지에게 가게를 맡기고는 쇼핑몰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병원 문은 닫혀 있었다.


' 아뿔싸... 너무 이른 아침이다... 어쩐다. 시내로 가야 할텐데... '


응급실외에는 갈 데가 없다.


그는 부랴부랴 택시를 잡으려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택시는 한 대도 잡히지 않았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에 다가오는 승용차를 향해 팔을 뻗었다.


승용차가 멈춰 서더니 유리문이 내려온다.


그녀다! 홍란주


그는 인사고 뭐고 그냥 안면이 있어 반가웠는지 자신도 모르게 무작정 차에 올라탔다.


주인의 허락도 없이...


" 저기 시내병원으로 빨리 좀 가 주세요. 애기가 많이 아파요... 응급실 있는 병원으로요."


"... "


그녀는 대꾸 없이 백미러로 그의 얼굴을 흘끗 한번 본 후 말없이 달린다.


그리곤 병원에 도착했고 그는 인사도 없이 또 부랴부랴 내려서는 응급실로 향했다.


" 진작오시지... 아이가 이렇게 불덩인데... 밤새 계셨어요. 어릴 때는 열이 나면 위험해요. 장기 손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좀 지켜봐야겠지만... "


그렇게 아이는 하루를 꼬박 입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힘들게 또 하루를 넘긴 혁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이젠 병원 비를 내야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는 데...


천만원을 훌쩍 넘겨버린 병원 비...


어려운 집안살림....


이 모든 것이 그를 옥죄어 왔다.


특히나 너무나 젊고 싱싱한 그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갑자기 라고?...


 아니 절대로 갑자기 생각난 일은 아닐 것이다.


피곤하고 지치고 짜증스런 그는 저녁교대시간이 되자 다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정말 떨어지지 않는 이 무거운 발걸음...


훈훈하게 다가오는 저녁바람이 그의 머릿속을 흔들어 놓는다.


아.... 다 싫다...


걸음은 자꾸 뒤로뒤로 퇴보하고 있다.


휘황하게 빛나는 네온사인을 쳐다보면서 문득 더 소외된 느낌이 들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푹 숙이고 걷던 그는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는 종이 한 장을 빼어 들었다.


' 명함? ... '


' 오렌지 기획 대표이사 홍란주... '


그는 오늘의 일이 문득 생각났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구나...


무슨 용기에선지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했다.


오늘은 기분이 센치한 게 그 답지 않게 용기가 나나보다.


한참 벨이 울리는 데도 그는 유유히 들고 서 있다.


"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다.


역시 차분하면서 당돌한 목소리...


" 여보세요? "


그녀가 재촉을 한다.


" 저... 오늘 아침에 ... 고마웠습니다."


" 네?... 아, 네! 뭘요. 그것 때문에 전화하신 거예요? "


"... "
" 여보세요. 좀 만날까요? 빚진 것도 있으신데 차 한잔 사셔 야죠? "


" 네... "


" 지금은 근무시간 이신가요? "


" 아니요... "


근무시간이지만 혁에겐 오늘만큼은 그런 속박이 싫다.


아등바등 거리기를 포기한 날이랄까?


' 될 대로 되라지... '


" 그럼 호텔 커피숍으로 오시겠어요 "


" 그러죠."


그렇게 혁은 쇼핑몰 옆에 위치한 커피숍으로 향했다.


혁은  창이 넓은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곤 우울하게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한참 만에야 나타났으나  혁은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무심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 미안해요. 내가 좀 늦었죠. 갑자기 중요한 전화가 와서요."


" 괜찮습니다. "


"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신가봐요. 아이가 많이 아픈가요? "


" 아니요.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아침엔 정말 죄송했습니다. 허락도 없이."


" 사실 좀 당황했어요.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가던 중이 었거든요. "


" 그러셨어요. 죄송해서 어쩌죠."


" 다행히 많이 늦지 않아서 큰 지장은 없었어요. 근데 그렇게 젊은 나이에 애 아버지라니 좀 많이 놀랐어요."


" ... "


혁은 대꾸 없이 웃는다.


쓸쓸한 웃음... 공허하고...


예리한 그녀는 그 웃음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놓치지 않고 생각했다.


" 제가 뭐 도와 드릴 일이라도 있으세요? "


혁은 순간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 어머, 처음 보는 사이에 제가 괜한 말을 했죠. 근데... 그 표정 정말 심각해 보여요. "


" 표정이요? 제 표정이 어떤데요? "


" 꼭 그동안 힘들게 정조를 지켰던 여인이 한 순간 그 모든 걸 포기하고 타락의 길로 접어들기를 결심한 것 같은  그런 얼굴이예요. 왜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얼굴 있잖아요.'


혁은 정곡을 찔린 것 같아 무척 놀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면서 웃었다.


" 제 말이 맞나봐요. 그죠? "


" ... "


머쓱해진 혁은 웃으면서 앞에 놓인 물을 마셨다.


" 사연이 많으신 것 같은데... 그 아기는 혹시 누나 아들인데 누나대신 키우는 거 아니예요?  아직 애 아버지 냄새는 안 나는데... "


" ... "


그녀에게 한마디 대꾸도 한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 혁은 싱글거리며 웃었다.


" 점쟁이 신가봐요."


" 저요?  사실 점 집 차려도 잘 할거예요. 저 두 이런 제가 싫어요. 항상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의 내면을 꽤 뚫어 보려고 노력하죠. 그냥 편안하게 앉아서 대화를 해 본적이 없어요. 물론 사람들도 다 저만큼 머리를 굴린다는 걸 아니까요. 사실 이 바닥이 힘들어요. 참 제가 무슨 일을 하는 지는 아시죠? "


" 뭐, 대충은... "


" 저기... 이름이 어떻게 되죠?"


" 혁이요. 강혁."


" 강혁.... 그래서 혁씨를 보고 사실 매력을 느꼈어요. 뭐랄까? 혁씨의 얼굴은 어떤 이중적인 매력이 숨어있는 얼굴 이예요."


" 이중적이요? "


" 네.  천사 같은 모습과 다른 어떤 내면의 모습... 뭐랄까 반항적이면서 악마적인 모습이 섞여있는 그런 얼굴 이예요. "


" 그래서 좋은 느낌을 받았죠 "


" 그래서 매일 오신 건가요?."


" 아니요. 오해는 마세요. 전 케잌이 생각나서 간 거고 갈 때마다 늘 그런 느낌을 받고 왔단 뜻 이예요. "


" 저녁 안 드셨죠? 차 사세요. 저녁은 제가 살 께요.... 나가죠?....  참 근무시간은? "


그녀가 밝고 명쾌하게 얘기한다.


" 오늘은 근무 안 하는 날 이예요. "


" 그래요. 잘 됐네요. 저도 오늘은 좀 시간이 나요. 저 두 늘 바쁘거든요."


그는 그녀를 따라 나섰고 그녀의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동해의 한적한 바닷가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오는 내내 그는 창문을 열어 놓고 불어오는 바람을 한껏 맞으면서 우울한 상상에 잠겨 있었다.


그녀 또한 그의 상상을 방해 할만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기분이 우울할 때가 있고 그럴 땐 굳이 위로 받기보다는 그냥 내버려두길 바라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그 또한 그러리라는 생각에 그냥 내버려두었다.


한시간여를 오는 동안 한마디로 묻거나 하지 않은 그녀...


그녀에게서 묘한 편안함을 느꼈다.


안 그래도 기분전환으로 드라이브라도 하고 싶었는데...


잠깐 동안이지만 그녀는 정말 그의 마음을 다 읽는 것일까?


오는 내내도 그냥 묵묵히 옆자리를 지켜준 그녀...


어떤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던 그를 위한 배려 였을 것이다.


그는 순간 든든한 구원병하나를 얻은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시린 추운 겨울 벌판에 버려진 아이 같았던 그가...


이젠 포근한 방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


그녀에게 느껴지는 묘한 편안함...


마치 태초의 엄마의 자궁 속에서 느꼈던 느낌 같은...


엄마의 자궁 속이라...


엄마의 얼굴도 알지 못하는 그였기에 엉뚱한 상상에 슬픔웃음이 났다.


어쨌든 뭔가 신비로운... 그리고 형체가 없는 모호함...

 

목적지에 도착한 그녀는 먼저 차에서 내려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바닷가의 바람은 제법 시원했고 그녀의 긴 웨이브머리가 어스름 지는 어둠 속에서 신비롭게 흩날렸다.


' 잘 몰랐는데... 그녀에게도 슬프고 외로운 구석이 있구나...'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걷다가는 그를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 어때요. 기분이 좀 풀려요? "


"... "


공허한 웃음으로 대꾸하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냥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다시 돌아가야 할 팍팍한 일상을 생각하자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 어쩐다, 기분이 많이 좋아지지 않았나 봐요? ..... 그럼 제가 다른 처방을 해드릴까요?"


" 무슨 처방이요?"


" 그냥 확 타락해 버려요. 될 대로 대라고 다 던져버리는 거예요. "


' 타락... '


' 타락이 처방이라.... '


생각만큼이나 맹랑한 여자다...


' 묘한 매력이 있는 여자... '


' 타락?... '


'정말 타락하고 싶다...'


' 그녀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구나... '


'그래도 그렇지 처방치고는 좀 위험한 처방인데... '


당돌한 그녀다.


또다시 공허하고 씁쓸하게 더 어두워져 가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바람이 제법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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