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랑 고딩때부터 쭉 사귀었고 대학교도 첫 직장도 같이 다녔어요
사귀는 내내 서로에게 소홀한 적 없었고 권태기도 없었어요
우리 아빠 아팠을 때 제가 외국에서 공부 중이었는데(2년간) 그때 우리 가족 다 챙기면서 아들 노릇 한 것도 남편이었구요
남편은 제 베프이자 제 삶에 너무 당연한 사람이라 다른 누군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네요
그만큼 소중해서 취업하자마자 결혼 서둘렀고요
지금은 결혼한지 7년하고 4개월 정도 됐어요
5년정도는 너무 행복했고 남편도 가정에 성실했어요
명절도 1년마다 번갈아가며 친정 시댁 순서 바꿔다녔고
친정가서도 설거지 음식준비 다 같이하는 좋은 사위였어요
저보다 애교도 많고 살가운 성격이라 부모님이 엄청 예뻐하셨습니다 아이는 안 낳기로 합의 봐서 주말에 같이 여행도 많이 다녔구요
죽을 때까지 행복할거라고 생각했어요 바보같이 그때는
그러나 아니더라구요
첫 직장을 같이 다니다가 결혼 후 저는 이직했고 남편은 그 회사를 계속 다녔는데
경기가 어려워져서 회사는 망해버렸고 이제 나이도 차고 연차도 찬 남편이 이직 할만한 회사가 없다는게 남편에게는 너무 큰 스트레스가 됐었던 것 같아요
퇴직금을 받긴했지만 언제까지 취준생으로 지내게될지 알 수 없어서 전액 저축했는데
그러다보니 생활비는 빠듯해지고 제 월급으로만 살아야하는 상황이 됐어요
대출은 없었지만 한 명의 월급으로 주말에 함께 취미 생활하고 여행다니는건 사치였습니다
퇴직 후 세 달 정도 그렇게 살았다가 카드값 폭탄되는 걸 경험한 뒤 남편은 알바를 시작했는데 거기서 현타를 많이 느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돈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평소처럼 남편을 대했는데 결국 지금까지 취직이 안됐습니다
이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사소했어요
장기간 취준생으로 지내게 된 남편은 세상에서 도태되는 것 같다며 힘들어했고
우리가 자주 먹던거 즐겨 쓰던 것들을 사도 우리 형편에 이런게 맞냐며 계속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심해지다보니 마트 아닌 편의점에서 급하게 물건 사는 것도 편의점이 더 비싼거 모르냐며 싫어했고
1+1 행사로 1년치 생리대 쟁여놓는 것까지 히스테릭하게 구는 째째한 남자가 되어버렸네요
예전에는 생필품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채워놓는 센스있는 남편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히스테릭합니다
불면증도 심해져서 술로 버티는 날들도 많은 걸 알지만 저 마저 무너질 순 없잖아요
그래서 못본 척 조용히 출근하고 아무렇지 않게 퇴근하고 그랬네요
저도 회사에서 힘든일 많을 때도 있었는데
예전같으면 서로 밥먹으며 했던 회사 얘기들을 이젠 남편과 공유할 수도 없어서 혼자 스트레스 받고 혼자 풀고 괜히 눈치나 보는 상황이 됐어요
이게 길어지다보니 저도 남편도 대화가 줄었고
계속 이렇게 지내는건 아닌 것 같단 생각에 모처럼 외식을 계획했어요
가기 전부터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투덜거리는 남편 말에 이미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밥도 먹고 커피도 먹고 경치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도 가면 좋아질거란 생각에 남편을 기어이 끌고 나왔습니다
근데 레스토랑에서 새우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다 먹는 제 모습이 추하다며 그렇게 하지말라고 핀잔을 주네요
예전엔 그런 모습이 엉뚱하고 웃기다며 좋아했었는데요
그 순간 갑자기 이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는 모습까지 꼴보기 싫어한다는건 돌이킬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우리가 함께한 많은 시간 속에
먹는걸 꼴보기 싫어하거나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을 했던 순간이 없어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싸우고 싶지 않아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밥만 먹고 집으로 돌아와서 며칠 생각해봤습니다
남편이 가장 힘들어하는 이 시기에 이혼하는게 맞나 싶어서 죄책감도 들어요
좋은 사람이었단걸 알아서 더 힘듭니다
근데 이 결혼을 유지해도 더이상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단 생각도 들어요
한 번 이혼을 결심하니까 더욱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성급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