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은 은미 바로 옆방에 방을 배정 받았다.
새날은 정좌를 하고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모든 사물의 소리들을 파악 하기 시작했다.
시계소리.. 밖에 경비원들의 두런 거리는 말소리... 미미하고 세세한 소리들을 가늠하고.
초점을 은미 방으로 모았다. 음악 소리가 들리고 음악 소리를 지우자.
은미의 숨소리 마저 들리는 듯 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는지 새날은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기력이 많이 소진 되었는지. 새날의 하얀 와이셔츠는 땀에 젖어
새날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새날은 그대로 옷을 벗어 던지고는 샤워부스로 들어갔다.
한참 샤워중에 이질 적인 소리가 들렸다.
사쁜 거리는 발걸음.
쏟아지는 샤워 물줄기 속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들을수 없는 발소리..
가벼운걸로 보아 은미 같았다.
새날은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방안 중앙에 서서 은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새날의 알몸을 빤히 쳐다 보았다.
헬스에서 만든 인공적인 근육이 아닌 오직 운동으로만 단련된 잘빠진 미끈한 새날의 몸을
은미는 홀린듯 바라보았다.
새날 : 뭘 그렇게 보는거지?
은미 : 흡, 뭐 좀 가리고 나오시든가.....
새날 : 여긴 내 방이고 난 너를 초대 한적이 없는데 ?
엄밀히 따지자면 새날은 은미에게 고용된 입장이지만.
그런건 애초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새날은 거만하게 말했다.
은미 : 날 보호하는게 당신 일 아닌가요? 고용주 한테 너무 무례하시네요.
새날 : 널 보호 하는게 내 일이지. 하지만 네가 고용주는 아니야.
까불지마.
단호하게 말하고는 더 이상 상대 하기 싫다는듯 새날은 옷을 입었다.
자존심 상한 은미가 뭐라 말하려는 순간.
새날이 옷을 입는 움직임에. 미세한 근육마저 구렁이가 꿈틀대듯 일렁이는 모습에
은미는 할말을 잊고 멍히 보고만 있었다.
새날 : 아직 볼일이 남았나?
은미 : 아... 음, 첫 인사는 이정도면 됐겠네요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았지만.
은미는 새날의 방을 나와 가만히 문을 닫고 문에 기대어 서서 숨을 가다듬었다.
재수없을 만큼 거만하고 냉소적이지만. 왠지 싫지않은 두근거림이 낮설어졌다.
서울 도심에서 그리멀리 떨어지지 않은 외곽지역.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외지인은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된 사유지가 있었다.
그 사유지 안에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단아하게 지어진 건물이 있었고.
흔한 CCTV 대신 여러명의 경비원이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건물의 상단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고급스러운
간판이 걸려있었다.
'' 단연정 ''
철저하게 회원 관리되며 내 놓으라하는 재계인사와 정치인들의 은밀한 대화가 이루어 지는곳.
이곳의 소유주는 누군지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 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대화나 다녀간 인물들은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되고 있었다.
회원들 조차 누가 회원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비밀에 가려진 이곳에.
은미 할아버지인 최 회장이 누군가를 기다리는듯 시계를 초초 하게 들여다 보고있었다.
이윽고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리고.
영화배우가 울고 갈 정도의 미모를 가진 아가씨가 한 사내를 안내하며 들어왔다.
최 회장은 자신의 연배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깊이 숙여 그 를 맞았다.
그 남자는 얼굴을 보면 누구라도 알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여당 총재인 곽운규 였다.
최회장 : 어서오십시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ㅎㅎㅎ
곽운규 : 아이구.. 최회장 오랜만 입니다. 별고 없으셨죠?
최회장 : 다 의원님 덕분 아닙니까. ㅎㅎㅎㅎ
곽운규 : 제 덕은요 최회장님이 처세술이 남다르질 않습니까. ㅎㅎ
최회장 : 과찬이십니다. ㅎㅎ
그런데...... 긴히 하실 말씀이란....
곽운규 : 네.. 요새 골치 아픈 일이 생겨 버려서..
회장님께 긴히 부탁 드릴 일이 있습니다.
부탁이라 말은 하고 있으나.일방적인 통보고 명령이었다.
최회장은 입맛이 썻으나 웃는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최회장 : 부탁이라뇨 그런 말씀 마십시요 저야 도와 드릴수 있다면 영광이지요 ㅎㅎㅎ
곽운규 : ㅎㅎㅎ 역시 회장님은 배포가 크십니다.
흠 ! 저.. 얼마전에 ㅁ 기업에서 비공식으로 기부금을 받은것이 있는데.
그 일로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고 있어요.
최회장 : ㅁ 기업 쪽입니까?
곽운규 : 아니 그런것 같진 않구. 아무래도 자잘한 깡패들 같은데..
최회장 : 아니 어쩌다가...
곽운규 : 헛허, 말 하기가 좀 쑥스럽지만, 내 회장님의 인품을 믿으니까
솔직히 말 하리다.
ㅁ 기업쪽에서 접대를 받았는데.. 이 아가씨가 그쪽 깡패들과 연이 닿아 있었나
봅니다. 내가 거물이다 보니까 이것들이 돈이 될줄알고 들러붙는단 말이지.
몆푼 쥐어주고 무마시킬려 하는데 이것들이 떨어지질 않아요.
최회장 : 그깟 깡패 떨쳐 버리지 못해서 제게 이런 부탁을 하실리는 없겠고...
곽운규 : 핫핫핫. 역시 최회장은 눈치가 빨라.
이 놈들이 사진을 돌려주질 않아요. 몆 놈을 족쳐 봤는데.
아주 지독한 놈들이라 입을 열지를 않거든,
최회장 : 그럼... 사진만 찾으면 되는 겁니까?
곽운규 : 사진하고 원판을 아예 없애야지. 그리고, 그 놈들이 녹취록을 가지고 있다는구만,
ㅁ 기업하고 거래하는 녹취말이야. 최회장도 알다시피 티끌만한거라도
최지철 의원 쪽으로 들어가면 안된단 말이지.
내가 나섰다가 시끄러워 지면 곤란해 지니까
최회장 : 알겠습니다. 빠른 시간안에 처리하죠 걱정 마십시요 ㅎㅎㅎ
내일 그 놈들에 관한건 무엇이든 넘겨주십시요
전화번호 라든가 아지트 라든가.
곽운규 : 아.. 이제 속이 시원해 지는 구만. ㅎㅎㅎ
내일 비서편에 보내 주도록 하지.
그리구 말야 저번에 말한 홍천 개발권은 아무 걱정말게 내가 손을 써 놓을테니까.
최회장 : 번번히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손녀분 과자라도 사주십시요
최회장은 어물 거리며 은근한 손놀림으로 가방을 건냈다.
언제나 처럼 사양하는 듯 하다가 돈가방을 챙긴 곽의원이 나가자,
최회장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 거머리 같은놈... ;;
최회장은 마시던 술잔을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탁자위에 놓았다.
은미는 강의실에 앉아 아련한 눈길로 창문을 통해 강의실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은미가 아무리 찾아도 은미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 넓은곳 어느곳 인가 새날은 있을것이다.
항상 그래왔다. 악몽을 꾸고 신음 소리만 내어도 새날은 귀신같이 알고
옆에 있어줬다. 말로 달래고 손길한번 준적 없지만.
그렇게 옆에 있다는것 만으로 은미는 안전함과 평온함을 느꼈다.
그의 존재 만으로도 무한한 신뢰와 믿음이 생겼다.
옆에서 핵폭탄이 떨어진다해도 새날과 함께라면 무사 하리라는 다소 엉뚱한 믿음.
그동안 할아버지의 정적 으로부터 끝없는 테러를 당해 왔었다.
새날이 오고부터는 달라졌다.
처음에는 그저 테러가 뜸해 졌겠거니 했었다 한데,
누군가 은미를 해치려 하면 새날이 귀신같이 알아내고는 은미도 모르는사이에 처리해 버리고는했다.
새날은 은미에게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예전에 누구들 처럼 옆에 붙어서 지켜줬으면 좋으련만....
그가 보고 싶은데도 그를 볼수 없는것이 서글펐다.
찾아도 보이지 않는 그를 생각하며 학교앞을 나오려는데 누군가가 앞을 가로 막았다.
종석 : 은미야 !
은미 : 어 ! 선배님.
유도부에서 이름깨나 알린다는 유도부 주장 종석이었다.
은미가 싫다는데도 마구잡이로 사귀자고 졸라서 은미는 인사를 하면서도 난처한 기색이었다.
종석 : 잠깐 얘기좀하자.
은미 : 어, 나중에요 선배.
종석 : 나중은 무슨 ! 맨날 피하기만 하면 어쩌자는 거야?
종석은 다짜고짜 은미의 손목을 잡으려 들었다.
은미는 몸을 뒤로 빼며 말했다.
은미 : 선배 ! 가까이 오지말아요 다쳐요.
종석 : 다쳐 ??? 내가 ?? 아 !
네 경호원인가 나부랭인가 말하는 모양이구만.
나도 소문은 들어 알고 있지. 하지만 난 만만치 않을텐데?
소문이란 그랬다. 같은과 남학생이 은미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어느틈에 나타난 새날에게
손목이 부러졌던것이다.
종석 : 오늘은 담판을 지을꺼야 이리오라구.
새날 : 그 손목놓지.
무심한듯한 목소리가 어느틈에 들렸다.
동요없는 맑은 눈을 한 새날을 바라보며 은미의 가슴은 심하게 요동을쳤다.
종석 : 아 ! 경호원이 납시셨구만,
새날 : 돌아가라.
종석 : 안 돌아가면 어쩔건데? 내 손목도 부러뜨릴건가? ㅋㅋㅋㅋ
새날 : 죽고 싶은가 보군.
새날이 종석을 향해 한발 다가서자 은미가 새날을 잡았다.
종석이 어떻게 된다는거야 뻔한거고 종석을 위해서가 아닌 새날을 위해서
시끄러워 지는것을 막고 싶었다.
은미는 새날의 눈을 마주보며 고개를 저었다.
;; 하지말아요..... ;;
새날은 은미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주머니 에서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손에 감은후,
옆에있는 돌로만든 벤치를 내리쳤다.
돌 벤치는 스티로폼 으로 만든것 처럼 큰 소리를 내며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것을 보자 종석은 믿을수 없다는듯 얼음이 되어 부들부들 떨었다.
새날 : 아직 할일이 남았나? 가당치 않은 객기 부리지 말고 꺼져 !
종석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저 만치 달아났다.
은미 : 꼭 그래야 해요? 위험한것도 아니고. 왜 매일 폭력 적으로 해결 할려고 하느냐구요 !
그냥 연애 하는 거잖아요. 난 연애도 못해요?
새날은 언제나 그렇듯 쫑알 거리는 은미에게 대꾸조차 안하고 대기 시켜둔 차에 은미를 집어 던졌다.
출발한 차안에서 멀어져 가는 새날을 보며 궁시렁 욕을 해댔지만.
새날이 자신의 말을 들었다는 것에 은미는 날아갈듯 기뻤다.
;; 그런데 그는 어떻게 따라 오는걸까 ? 항상 먼저 와 있던데.... ;;
절로 노래가 흥얼거렸다. 얼굴도 한번보고... 내 말도 들어주고...
좋았다. 좋을수 밖에 없다.
은미가 잠든 숨소리를 확인한뒤 새날은 아래층 서재로 내려가 가볍게 노크했다.
걸걸한 최 회장의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최회장 : 어서오게 새날군.
새날 : ............
정렬 : 자네 ! 어르신 말씀 하시는데 무례하게 !
최회장 : 아, 놔두게. 말이야 없으면 없을수록 좋지. 허허허.
이 주소로 가서 거기있는 놈들한테 사진과 녹취록을 찾아.
찾는 즉시 없애 버려라.
언제나 처럼 새날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서재를 나왔다.
정렬이 나오는것을 기다렸다가 새날이 무심하게 말했다.
새날 : 부탁이 있습니다.
정렬 : 응 ? 자네가 나에게 ?
새날 : 고아원에 함께 있었던 다혜 찾아 주십시요.
정렬 : ??? 그거야 자네가 찾으면 되지.
새날 : 고아원은 예전에 문을 닫았습니다 원장도 실종 됐구요.
그 일은 정렬도 알고 있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최 회장의 지시아래 원장을 없애 버린 장본인이 정렬이기 때문이다.
정렬 : 친 동생 이었던가?
새날 : 아닙니다.
정렬 : 그런데 왜 .... ?
..... 음.... 알겠네 내 알아보도록 하지.
새날은 어느 빌딩앞에서 차를 세웠다.
각지게 날선 블랙 스리피스 슈트, 운동으로 단련된 날렵한 몸매의
깍아 놓은것 같은 날카로운 이목구비와 깊게 가라앉은 서늘한 눈빛....
훝어 내리듯 빌딩에 시선을 두었다가 거침없는 발걸음을 놀렸다.
1층은 재즈카페 였다.
이층으로 올라가자 건장한 사내들이 복도서 부터 서성 거리고 있었다.
새날이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기자.
잔뜩 경계를 하며 사내들이 새날을 애워 쌌다.
사내 : 여기는 아무나 오는곳이 아닌데 뭔 일로 오셨소?
새날 : 사진 찾으러 왔다고 전해라.
사내 : 사진 ? 혼자 ? ㅎㅎㅎㅎ 간이 부었군.
새날 : 피라미는 꺼지고 얼른 안으로 알려, 사진 찾으러 왔다고.
사내 : 워 ~ 쎄게 나오시네?
뭐 아뭏든 알려는 드리지 ㅋㅋㅋㅋ
사내가 잠시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온뒤 새날에게 들어가라며 고개를 까딱였다.
새날을 에워 싸듯 사내들과 안으로 들어가자.
새날의 두배는 넘는것같은 덩치의 사내가 중앙 쇼파에 느긋이 앉아있었다.
새날에게 겁을 주려는듯 여러 사내들이 칼이나 쇠파이프등을 손에 들고 있었다.
새날은 두목으로 보이는 거구의 사내앞 의자에 앉았다.
두목 : 배짱은 있는 놈이네?
새날 : 사진 찾으러 왔다.
두목 : 그건 그런데 .... 나에게 줄 뭔가가 없군.
새날 : 난 너와 협상을 하러 온게 아니야.
두목 : 핫.핫.핫. 이놈.. 배짱이 있는게 아니라 어리석구만... 큭큭,
못 주겠다면 어쩔텐가?
새날 : 이 자리에서 목을 부러뜨려주지.
두목 : 크 ~~~ 핫핫핫 컥 !!!!
기가 막히다는듯 크게 웃던 두목은 순간 새날의 빠른 놀림과 함께 거품을 물며 거구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사내들은 일순 어리둥절 했으나.
새날의 얼굴이 크게 확대 된다 하는 순간 모두 나가 떨어졌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느낄 새도 없었다.
칼을 쥔 놈은 자신의 칼에 목이잘려 피분수를 뿜고 있었고,
쇠 파이프를 든 놈은 그 파이프에 머리가 깨져 나뒹굴었다.
새날은 손속을 두지 않았다.
순식간에 8명을 쓰러 뜨리고 혈이 눌려 오줌을 지리고 거품을 품어대는 두목앞에 앉았다.
혈이 눌린 두목은 그 고통보다 자신의 부하를 순식간에 해치우고도
숨소리조차 거칠어진 흔적이 없는 새날을 보고는 공포에 질려 버렸다.
새날 : 나에겐 협상은 없어 ........
무심하듯 느리게 말하는 새날의 목소리에 두목은 공포에 질려 사진은 커녕
자신의 사타구니를 달라고 해도 넙죽 줄 상황이었다.
저 괴물만 빨리 없어져 준다면.......
두목은 잘 돌아가지 않는 눈알을 굴려 금고를 가르켰다.
번호를 알아 내고는 사진과 녹취록을 꺼냈다.
새날 : 이게 다 인가 ?
두목 : 으.으.으.
새날은 두목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두목의 머리는 마치 썩은 수박깨지듯 부서져 버렸다.
새날은 라이터를 켜 사진을 태우려다가 멈추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이윽고 결론이 난듯 새날은 사진을 안주머니에 넣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건물을 빠져 나왔다.
책 중에서 가장 기이한 건 사랑이라는 책이지요. 기쁨은 몇 쪽 안 되고
책 전체에 흩어져 있는 고통과 이별이 한편을 이루고요.
재회는 쓰다 버린 것 같은 조각난 장이니까요.
- 괴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