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목처럼 안 보고 사는게 답인 내 가족을 만나야 하나 해서요..
저는 양가 부모님 집안에서
첫 딸로 태어나서
아빠쪽은 위로 친척오빠들이 많았고
엄마쪽은 사촌오빠 밖에 없던
첫 손녀딸이었어요
제가 태어난 시기에 대기업 부장급 급여가 150~170대였고
저희 아빠는 그렇게까지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친척어른들이 첫 손녀딸이라고
제 꺼 사주라고 용돈이며 옷이며
다 브랜드꺼로 선물해주시고
친척오빠들은 저 안고 내 동생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대요
저희엄마가 그 때 회상하면서
그 때 아빠월급으로는 못 사는것들도 선물들어오고
저축도 큰 금액으로 많이 해서
이사 오는데 너(나)가 참 많이 보탬이 됐어
넌 그 때 너가 할 효도 다 했다
이런 말 자주 하셨어요
3년후에 제 여동생과 작은 아빠 첫 딸 태어나면서
옛날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첫 손녀딸이라는 이름은 아직도 힘이 있는지
저도 많이 이뻐 해 주셨어요
그렇게 몇 년 지나고 저희 집은 딸만 셋인 집이 되고
그 사이 저는 자라면서
저희 엄마아빠에게 좋은 말만 듣는 딸이 아닌
천덕꾸러기가 되었어요
아빠가 둘째여서 서러웠다고
제 첫번째 동생이자 세 자매 중 둘째인 동생이
하고 싶다고 하는거 사달라는 거 해달라는거
무조건적으로 해주고
엄마는 막내가 자기랑 많이 닮았고
자기 인생에서 막내랑 지낼시간이 가장 적다고
가장 좋아해주셨어요
제가 사달라는거 갖고싶은거는
밑에 동생들이 기를 쓰고 사주면 안된다고 엄마아빠한테
말하면서 차라리 자기들꺼 사달라고 하는거만 보고 자라서 그런지 물욕도 없고 내가 벌어서 사게 되면
니가 써 봤자 얼마나 쓰냐며 차라리
동생한테나 사주고 용돈챙겨주지 라는 핍박만 들었어요
정말
살면서 해준거 없이
사람 하나 꺽고 무시하고 짓밟고 깔아뭉갰던 사람들이
제 부모고 동생이에요
아빠는 저 중고생때 돌아가셨어요
제가 초6때부터 바람난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가 제가 중학생때 그 여자가
저를 설득해서 저희 엄마랑 이혼하게 만들겠다고
학교까지 찾아온 적이 많아서 저는 하교를 뒷문으로
월담해서 도망다니고 그랬어요
그러다 둘이 차타고 어디 갔던건지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눈물도 안났어요
그냥 내 앞에 떨어지는 아빠사망보험금은 얼말까?
그거만 생각했어요
살면서 저한테 좋은 기억보단
늘 저를 때리고 때렸던 기억만 남아서
그거 받고 혼자 살 생각까지 했는데
미성년자라서 지급이 안 되고 엄마쪽으로 갔어요
진짜 안 맞아 본 거 찾는게 더 빠를 정도였어요
각목,당구 큐?큐대?그거,스테인레스 야구배트,나무로 만든 야구배트등 안 맞아 본 거 찾는게 더 빠를 정도예요
그렇게 그거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가
출산하고 나니 엄마아빠가 더 이해가 안됐어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게 이쁜 내 아이한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그렇게 하고도 하나도 안 미안해하는 모습
내 아이가 울면 세상이 다 무너지는 거 처럼
맘이 아픈데 그 사람들은 왜 나한테 그랬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낸 결론은
나는 딱 그 들이 원하는 좋아하는
돈 많이 받아오는 자식이여서 그랬나보다
그런데 그걸 다 했으니 이제 내가 쓸모가 없어졌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거리를 두고 안 보고 살았어요
코로나 핑계
아이아빠 출장핑계
다 대면서 안 본지 거진 10년.......
이제는 가족이 얼굴 안 본지 오래니
이번 설에 보자네요...
그러면서 11월부터 속을 뒤집어 놔요
너가 잘하는거 없으면서 니가 뭘 애를 가르치냐부터해서
여러가지로 속을 뒤집더니
12월에는 전화해서는
제 앞으로 떨어진 아빠사망보험금은
네 동생들 전세집 자금에 보태썻대요ㅎㅎㅎㅎ
너가 언니니까 네 동생 혼자사는데 그거라도 해줘야
보탬이 되는게 맞지 않냐고 하네요...
그거에 대해 고까워 하지 말라네요...
요즘 솔직히 잠이 안 와요
못 자겠어요
만나면 이제 저에게
자기 용돈및 생활비와 동생들 용돈 챙기라고
할 거 뻔한데 뭐라하고 안 만날수 있을지
그거 고민하느라 머리가 복잡하고 맘이 복잡해서
잠도 안 와요
진짜 담 생엔 나랑 부모자식연으로 엮이지 말고
자기들이 이뻐하는 자식들과 천년만년 살았음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