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쾌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신다
까니
|2025.03.17 11:44
조회 72 |추천 1
살다보면, 쾌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가 있다.
쾌락이 없다고 알려진 가톨릭.
그러나 최근에서야 쾌락이
아예 하느님께서 배제만 하시는,
오로지 하느님의 증오의 대상이었다면,
하느님께서는 결혼의 쾌락을 아예 인정하시지 않은 결과를
결과물로 보이지 않으셨겠는가.
결혼의 쾌락이 하나도 없어야 정상이며,
또 다른 방법으로는 결혼을 아예 없애버리는 등
둘중에 하나는 꼭 실행시키셔야 했다.
하느님께서 쾌락을 싫어하셨다면 말이다.
그러나, 둘다 아니지 않는가.
쾌락에 하느님께서는 증오하시거나 싫어하신다는 증거가 없어진 것이다.
“오히려 그건 사실과 반대다”라는
하느님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왜 지혜를 가지고 바라본적이 없느냐.
쾌락을 단순하게만 내가 싫어하신다고만 바라보았느냐.
이 성경구절도 있음을 깨닫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듯이,
심지어 성경에서는 이 지혜서7장27,28절로 말씀하신다.
이 성경구절이 지금에서야 드러나게 해 주셨단 말이다.
“지혜로 바라보아야 하는 때도 있다”는
새로운 시각의 눈을 열어주셨단 말이다.
바로, 지혜서 7장을 바라보자.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지혜를 써서, 쾌락을 다른시각으로 바라보니,
하느님께서 쾌락을 증오하신다면,
결혼의 쾌락이 하나도 없어야 정상이며,
또 다른 방법으로는 결혼을 아예 없애버리는 등
위의 쾌락의 예시 둘 중에
최소 하나는 꼭 없어져야 하는데도,
둘다 아니지 않은가.
둘다 존재하지 않은가.
쾌락에 하느님께서는 증오하거나 싫어하신다는 증거가
지혜를 써서 본 또다른 시각의 눈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는 이야기이다.
깊게 생각해보니, 또 다른 결과물도 나왔다.
다만 거룩하다면,,,, 허락하셨다.
결혼도, 결혼의 쾌락도 아예 없애버리지 않은 사실이
이를 쾌락이라는 존재를, 지혜로 바라보라고 말하는 중이다.
다만, “쾌락을 억누를 수 있는 절제”라는 하느님의 덕목을 필수로 가져야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복과는 비교도 안되게
매우 긴 시간동안 젊음으로 인해 행복할 수 있을뿐,
“쾌락 자체를 싫어하시는 하느님은 아니시다”라는 사실이
비로서 최근에서야 밝혀지며, 이는 전세계에 퍼지도록
논란의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두가지 사실이 논의가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이기셨으니,
전세계의 1/2이 하느님의 종교들의 신자수이니
반드시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쾌락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서 말이다.
거룩하다면, 쾌락이 아예 없어야 할 결혼도
쾌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더 큰 금새 사라지지않는 행복이 될려면은,
하느님의 절제라는 덕목도 존재해야 함도 필수임을 알려주는가.
“금욕 역시 절제란 덕목”이며, 이 부부생활중에 금욕을 앞세워
젊음을 유지하도록 신경을 기울인다면,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부부생활이 가능하다는 실제 사실이 존재하며,
접이불루라는 성행위가 알려주는 지표는
쾌락이 죄가 이니다란 사실뿐이다.
접이불루후에도 현자타임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절제라는 강력한 하느님의 힘과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려고하는 필사적인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노력이 있다면,
늙지도 않는 “지속가능한 젊음”과 “접이 불루라는 성생활”을 통하여
쾌락도 끊임없이 노화와 관련없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론이 새로 생긴 것이다.
“쾌락과 함께여도 늙지 않는다.” 라는
크나큰 포인트와 함께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중에 십계명에 이러한 실제 힘이 숨겨져 있으니,
어찌 접이불루를 통한 성생활을 경험한 부부들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을 수 있으랴.
금욕을 해 보았는가.
금욕도 하느님의 십계명과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십계명의 가장 핵심은, 다른 말로 하자면 가장 지키기 어려운 계명을 하나꼽으라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며, 이는 “정을 함부로 배출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더좁은 범위로 줄일 수도 있으며, 이는 실제 생활에도 젊음과 상관이 너무나 깊다.
신의 십계명의 신비다. 금욕이란.
서양에서는 왜 금욕돌풍이 크게 일어났는지 알수 있는가.
이 하느님의 십계명의 가장 중심이자 핵심인,
“간음하지 말라”라는 크나큰 포인트는
“젊음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키포인트”였다.
십계명을 다 지킨다면 말이다.
십계명을 다 지키려면, “간음하지 말라”도 필수로 지켜야 하니까 말이다.
십계명의 가장 키 포인트는
다른 것들은 다 쉽거나 쉽게 제어가능한 반면에,
가장 어려운 “간음하지 말라”가
“십계명을 다 지키는 완성에 다가가지 못하게 완벽차단”이라는
블로킹을 강력하게 해 버리니
지금까지 십계명을 지킨 자는
성인 성녀 말고는, 거의 없다가 맞을 것이다.
아니면, 왜 이제야 밝혀졌다는 말인가.
“ㅈㅇㅎㅇ도 십계명을 어기는 행위다”고 가톨릭에서는 아주 오래전에서부터
주장하고 있지 않았는가.
십계명을 지키는 것은,
이 “간음하지 말라”라는 철벽방어로인해
다 지키는 자는 극소수만 빼고 없었다.
십계명의 “간음하지말라”라는 계명 혼자서
모든 하느님께 충성을 다 하려는 마음과
어떻게든 하느님을 위해서 이 철벽을 뚫으려는 공략을
다 철벽같이 방어해냈을 뿐만 아니라,
십계명이 심지어는 ㅈㅇㅎㅇ까지도 죄라며
막았으니 말이다.
십계명의 키 포인트가 금욕의 중점에 서 있으며,
이를 서양인들은 매우 잘 알고 있는 사실이란 증명이 된다.
돌풍이 서양에서 있었다는 사실하나로도
이는 금새 증명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쾌락은 매우 중요한 삶의 지표임을 우리는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를 “1800만의 ㅇㅎㅌㅈ”과 한국의 “동물의 왕국”시절을 지나오게 한 장본인이
쾌락이다.
그런 쾌락이 하느님께서 증오하시거나 매우 싫어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만으로도 다음 사실을 발견해낼 수 있다.
“하느님께서 쾌락을 증오하시지 않으시며,
절제로 이끄실뿐, 하느님께서 쾌락을 싫어하시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더욱더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
“천국에도 하느님께서 싫어하시지 않는 쾌락이 있기 때문이다.”는
새로운 사실에 돌입하고 있는 중이다.
쾌락 덕분에 나쁜일도 많이 일어나는 둥,
매우 매력적인 쾌락이 하느님께서 싫어하지 않는다라는 사실.
이는 아무도 주위를 기울이지 않았을뿐,
“하느님의 비밀을 캐어내어라” “지혜로 밝히보아라”라고 하고 있었을뿐,
우리 주위에 항상 있었던 하나의 사실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하느님을 믿어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
분명한 이유이자 지표가 된 것이다.
“하느님께서 쾌락을 싫어하시지 않는다.”란 사실이 밝혀졌다는 사실의 존재가
이렇게나 별거아닌 듯하나, 실은 중요한 것이다.
쾌락은 좋은점과 나쁜점을 다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오해를 가장 심하게 하였지만, 객관적으로만 바라보라.
하느님께서 쾌락을 싫어하신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객관적으로만 바라보자.
객관적으로만 바라보니, 이러한 명쾌한 해답이 나왔다.
이는 지혜를 가지고 바라보아야 함을 알려주는 다음 성경구절과 같다.
앞서 이미 밝힌바 있는 성경구절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지혜로 바라보기를 바라시는, 지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느님께서
숨겨놓으신 것이다.
지혜란 빛이 밝혀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숨겨져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쾌락을 싫어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착각을 하여 지내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