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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점점 가라앉는다. 곧 사라질 것 같아 무섭다.

돌이킬수없... |2025.04.06 23:11
조회 1,166 |추천 13
이런 글을 처음 써봐서 길고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밤에 심심한 사람은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읽어봐.

우리 엄마는 내가 세살 때 집을 나갔어. 뭐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었겠지 돈을 많이 못버는 우리 아빠 라던가 무뚝뚝하고 다정한 구석이 없는 우리 아빠 라던가 하는.
아빠는 어린 나 먹이고 입히고 해야하니 돈버느라 바빠서 할머니 손에 맡겼어. 그래서 나는 엄마의 사랑을 잘 몰라. 운좋게 다정한 사람을 만나 결혼했지만 아기 낳고 키우는건 두려웠나봐 그냥 둘이 재미있게 살자 하다가 결혼한지 7년만에 생각지도 못한 아기가 생겼고 거의 두돌 된 아기 행복하고 감사하게 키우면서 살고 있어. 너무너무 예뻐. 내가 낳은 아기라 당연하겠지. 근데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예쁘지 않았을까? 왜 어린 날 두고 가버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우울해질 때도 있긴 해.

우리 아빠는 소위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국민학교 졸업이 다야. 그래서 한글도 잘 모르셔. 단어는 한참 생각해서 겨우 쓰고 문장은 누가 쓴 걸 보고 베껴야 할 정도지. 이런 이유로 나는 살면서 한번도 아빠에게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어. 이런 사정도 잘 모르고 있다가 카카오톡 쓰는 법 가르쳐 드리려고
“아빠 ‘안녕하세요’ 쳐봐. 일단 ‘ㅇ(이응)’ 먼저 치고 그다음 ‘ㅏ’ 누르고.”
이렇게 설명하는데 이것도 잘 못 알아들으시고 너무 부끄러워하셔서 나도 그냥 다음에 해보자 하고 모르는 척 넘어갔어.

우리 아빠 최대 업적이 뭐냐면 나 서울로 대학 보낸거야. 고3 뒷바라지해가면서 야자 끝나고 라이딩 꼬박꼬박 오고 연로하신 할머니 대신 아침밥 해주면서. 친척들이며 아빠 친구들 모두 굳이 서울로 가서 공부해야겠냐 너무 욕심아니냐 핀잔줄 때 우리 아빠가 이악물고 내 서울생활 방세, 용돈, 학비 마련해가며 나 졸업시켰어. 지금 내 나이가 마흔인데 내 고3, 대학생 시절 이야기를 아직도 자랑스럽게 말씀하셔.

그런 아빠가 췌장암 3기래. 우리 아빠 배운 건 없어도 밝고 쾌활하거든? 딸 하나밖에 없는 경상도 남자라 본인이 아직도 어리고 약한 딸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해. 1차 항암 치료 들어가기 바로 전날에 하도 내가 걱정을 하니까 오히려 나 달래주면서
“아빠 반드시 이겨낸다 딸래미 걱정할 거 하나 없다!” 이렇게 큰소리 뻥뻥 치면서 병원 입원하셨어. 나도 우리 아빠는 정말로 잘 이겨 낼거라고. 췌장암 아무리 무섭다하지만 우리 아빠가 저렇게 의지가 넘치고 의학도 많이 발달했으니 나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내가 너무 순진한거였어. 1차 항암 받고 우리 집에 왔는데 아빠가 잠들지도,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고통에 온 몸을 움찔 대면서 그저 눈만 뜨고 계시던 순간이 올 줄은 몰랐거든. 그렇게 눈에 꿀 떨어지며 품안에서 놓질 못하던 본인 손주가 아무리 ‘합부지! 합부지!’ 불러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말야. 급하게 진통제라도 맞아야겠다고 응급실 갔더니 5시간 지나야 겨우 의사 얼굴 볼 수 있었고 그 시간 동안 고통에 몸을 웅크리고 펴질 못하셨어.

이런 사정으로 우리 집에서 모시려다 요양병원으로 들어가게 되셨어. 적어도 거기서는 언제든 진통제를 맞을 수 있으니까.
다행히 실비보험 든 게 있어서 그걸로 병원비 하면 되겠다 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보험 가입 당일로부터 2년 안에 통풍으로 치료받은거 이야기 안했다, 3개월 안에 간농양때문에 응급실 1번 가서 약물치료 받은거 이야기 안했다고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 하겠대.

4월 11일에 해지하겠다고 아빠 핸드폰으로 4월 3일에 카톡 메시지 날라왔더라. 나는 그냥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고, 의사친구? 법조인 지인 하나 없어. 이래저래 검색해가며 금감원에 민원 제기한 상태고 보험사에서 제발 실비보험 유지 시켜주기를 바라며 글 쓰는 것 밖엔 못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제발 알아줘 우리는 보험을 악용하려는 사람이 아니야. 우리 아빠가 마지막까지 사람답게 살다 가실 수 있게 해줘. 그냥 어디가 잠시 아픈 것도 아니고 그 악명 자자한 췌장암 3기 환자야. 너무너무 아픈 사람이야. 나는 아빠를 잃으면 젊은 날의 아빠를 함께 추억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없는 외동딸이야. 그렇게 사랑받았던 아빠의 손주도 너무 어려 좀 크면 외할아버지를 까맣게 잊겠지.

우리 아빠가 배움이 너무 짧아서 보험 약관 고지의무 같은 거 잘 몰랐어 미안해.
우리 아빠는 그냥 믿었던 거야 보험이 사람 살리는거라고. 우리아빠가 마지막만이라도 덜 아프게 가실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물러설 곳이 없어. 더 뒤로 가면 낭떠러지라 뭐든 해봐야겠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여기에다 글도 남겨보는거야. 적어도 같이 화내주고 울어줄 사람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고 우리 아빠같은 바보같은 실수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사진은 내가 한번은 나도 아빠한테 편지 같은거 한번 받아보고 싶다 했더니 아는 사람한테 써달라고 한건지 어떻게 써서 나한테 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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