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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살률 때문에 말해야 하는 신이 있다.

까니 |2025.04.13 20:12
조회 31 |추천 0

 

 

실제와 허상.

쓸모없는 것 다 빼고 얼마나 잘 정리하였는가.

 

 

 

 

 

부처를 믿고, ㅈㅅ하는 것이란, 극도의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실제를 보여준적도 없는데, 자기생각에만 빠져 믿고서,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모두 다 생은 한번뿐이라고 하시는데도,

실제란 증거를 보여준 적이 없는 부처를 믿고,

 

함부로 생을 마감하다니....

 

 

단 한마디로 귀결된다.

증거가 없다.

 

불교는 증거가 없단 말이다.

 

 

 

 

 

실제를 보여주시는 하느님을 위해서라도 생을 마감하는 것은

성인으로 등극할 정도로, 극도로 힘든일인데,

 

실제를 보여준적도 없는 부처를 위해서, 어처구니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은

이 둘의 현명함의 비교가 얼마나 극명한가.

 

 

지금이라도 그런 마음이 있다면,

다 잡아라.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어리석으냐는 말이다.

“실제로 도와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허상에 허상을 믿는 것이다.”

 

 

 

객관적으로는 전생, 환생은 없다.

다만, 주관적이라면 전생 환생은 있다.

 

그러나, 주관적인 사람들이 전교에 꼴찌들이나 갖는

자기마음대로의 생각이다.

 

의사가 주관적이다? 사람을 여럿 죽인다.

그래서 시험지의 정답은 항상 객관적이다.

 

 

 

 

 

 

전생? 환생?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는 전혀 없으니

나는 강하게 말할 수 있다.

 

 

 

 

전생?환생?

 

나보고 믿으라고?

나는 말한다. 증거를 가져오란 말이다.

 

 

 

 

 

그러한 이론 따위는 나도 얼마든지 지어낼수 있다.

전생, 환생은 나도 지어낼수 있다.

 

 

 

 

 

다만 불교도 실제로만 말하여라.

 

하느님처럼, 실제라는 증거라면, 얼마든지 믿어주겠다.

심지어 불교가 실제로 말한다면, 나부터도 나의 종교의 개종도 가능하다.

 

 

 

그러나 나를 개종시킬수 있을 것 같으냐.

불교는 실제로 말한적이, 단 한번도 없는데 말이다.

 

 

 

 

불교는 실제로 보여준적이 없다.

믿음? 아니다. 그건 착각이다. 본적이 없는데도 믿다니...

 

 

 

그건 심한 착각이다.

 

 

 

나는 착각에 내 목숨을 걸을 용기가 없다.

 

얼마나 어리석어야 있지도 않은, 환생과 전생에 빠져

자기 목숨을 내버리는 것에 자신있어하는가.

 

 

 

실제로만 이야기하시는 하느님을 선택하여라.

나는 실제로만 이야기하시는 하느님을 선택하겠다.

 

 

 

 

아니면, “한번도 불자를 생각해주지 않았던 불교는 허상이 너무 심한 종교인 것 같다”라는

나의 합리적인 의심을 다 저버리고, 고집으로 끝ᄁᆞ지 부처의 존재에 모든 것을 걸고

목숨까지 걸수 있을 정도라서 실제라는 증거가 없는

 

불교를 믿을 것인가.

 

 

 

 

“실제로 보여준다”라는 “실제”라는 확실한 답이 없으니,

“불교는 허상이다”라고 보는 것이

 

객관적이라는 사실임에는

누가 뭐라고해도 굳게 또한 변함이 없다.

 

 

 

 

 

실제로 도움을 주기는커녕,

실제처럼 다음생이 있는 듯 사람의 정신을 착각하도록 악용하여,

 

불교가 도움을 준 것은, 우리나라의 저 하늘까지 지솟은 ㅈㅅ율에

도움을 준 일 밖에 없다.

 

 

 

 

왜 실제를 이야기하지 않은,

부처라는 신에 얽매여 사는가.

 

 

 

극도의

교만과 허영심이 아닌가.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센 신이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삶은 단 한번이고,

 

또 단 한번 태어난다고 하지 않은가.

 

 

“실제로만 이야기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보아라”라고

충고할 뿐이다.

 

 

 

 

이야기만 듣지 말고, “성령회관”이라는 진짜 체험으로 만나본다면,

천주교인들의 믿음은 두배가 넘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한다.

 

 

 

“한번도 성령회관에 간 적이 없는 천주교인이 상당하다”

 

 

 

 

현실이라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같은 공간안의 우리나라라는 장소에서도,

 

실제 기적과 치유라는 신세계가

“성령회관”이라는 공간안에서

 

펼쳐진다는 이야기이다.

 

 

 

개신교가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1000만의 신도를 넘게 가진 적도 있었다.

 

 

 

불교처럼 허황되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개신교도 성령만 있어도 이러할지언데,

성령, 물과피. 세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천주교는

 

“성령회관의 능력이 어떠하겠는가”하고

한번도 궁금하지 않는가.

 

 

심지어 오웅진 신부님은 눈으로 응시하여 안수를 주심으로인해,

하느님의 힘이 눈의 응시로 주어져,

 

그 사람은 거대한 하느님의 힘 앞에

ㅁㅅ라는 “개신교의 (대)장”과는 다르게 응시만으로

 

멀쩡한 사람이 쓰러진다.

 

 

꽃동네에 가보아라.

쓰러진 사람이 몇줄인가도 알아보아라.

 

 

 

 

큰 믿음을 주려면, 오웅진 신부님의 쓰러진 행렬들을

실제로 보는 것 밖에는 없음으로도,

 

실제로라는 믿음을 준 적이 없는,

불교는 그 자체로도 또한 실제에서도 크나큰 탈락이다.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님의 안수를 받고,

길게 다 쓰러져 있는 행렬들을 보란말이다.

 

 

그들이 왜 쓰러졌겠는가. 이런 게 신이다.

이런게 절대자의 힘이란 말이다.

 

 

 

기적은 실제이고, 암의 치유도 실제이니,

나는 허상에 가까운 신인지 인간인지 모르는 부처라는

 

안도와주는 미지의 존재보다는

실제만 말씀하시는 하느님만을 굳게 믿겠다.

 

 

 

게다가 나는 사후세계를 위하여,

 

우리나라의 가장 세다고 객관적으로도 증명이 되고 또

그렇다고 낱낱이 밝혀진 우리나라의 가장 센 신이신 하느님만을 믿겠다.

 

 

그게 객관적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악신을 이기신 “천주교의 하느님”이시다.

“개신교의 하느님은 아니었다.

 

개신교는 심하게 말하자면, 성령뿐이었지,

또는 하나(1)에 미치지도 않는 소수점이었지

 

종교조차도 아니었다.

 

 

 

일반인들의 모임이 맞는 말이다.

슬퍼하지 말아라. 그게 객관적인데 내 탓이 아니다.

 

 

답은 언제나 객관적인데,

객관적인 것을 추구하는게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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