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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짓고도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이 있으셔서 자기들이 죄를 짓고 있다

천주교의민단 |2025.05.22 22:51
조회 31 |추천 0
그게 하나님께서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예비하신 것이다이런 관점이 어디에서 문제가 생기나요?

죄를 지었다는데문제가 있습니다.그것은지옥에 가는 일이라서...
하나님께서계획을 이루시려고..라기 보다는그 죄를 지어서그 죄로 인해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회복시켜 주시는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늘 그 하느님의 정의가이루어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맞지만결국 어떻게 됩니까?
죄 지은 사람은죄인일 뿐이다그래서 그 날에 그런 일이 많다고 하신 것이죠그게 그렇게 너희가 되도록하나님께서 예비하셨다..이런 게 문제라는 것입니다.하느님께서는 다른 성경 구절에서 분명히 밝히신 적이 있습니다.그런 말 하지 말라고
찾아보시면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 지을 기회를여시어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예비하셨다는 생각이잘못된 판단이라고식별해야 합니다.
고해성사가 없으니까성경 본문 이해가밑도 끝도 없이이상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나오는 것이 비상계엄령이 문제가 없고내란이라든지서울 1만 명이런 것들이 실제로 발생했다면하나님께서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그리 되었다라는 것을원래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러실 수 있는지이해를 못하다가 알게 되었다개신교 간증에 그런 것이 많죠?그런데 그것은 전부 피해자가 간증한 것입니다.가해자 말이 아니죠..가해자를 보면가해자는 죄를 지었습니다.반드시 지옥가는 것이죠...예수 믿고지옥 가게 되는 그것이왜 나오나
그 믿음의 정의가 틀렸기 때문이어서흔히 시험 볼 때 공부할 때 많이 들으실오개념이라서망하시는 것입니다.
로마 10,9에서 믿음을 자기가  정한다..거기에 고해성사는 다 날려 먹으니까..그래야 하니까..실천해야 하는 믿음이라든지행동하는 믿음김대중 대통령님의 행동하는 양심그게 멋있고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끌지만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실천도 그렇죠행동하는..그런데 그런 것도존경은 받지만구원에 이르는 것은믿음이다..이게 오류가 되는 것을읽지 못하는 것은고해성사는 자기 죄를 남에게 말하는 그런 것이죠?사악하다고 생각하는거지그게 문제 있다..어떻게 그것을 믿으라는 것이냐가 1차적 생각이 되니까신부님들께 왜 고해성사를 보라는 것이냐가톨릭도 아니고 발음을 괴상하게 영어로도 하는 것도 아니고로마캐도릭이ㅋㅋㅋㅋ그 어디 발음인지 모르겠어요 사실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게 어느 나라 발음이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로마 캐돌릭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영어로 캐썰릭, 캐떨릭 이런 식으로..좀 그런데캐도릭은 어디서 나오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가지고 사악하다..그러는 것이고그러면 뭐가 신앙의 진리로 설득될까요?하나님께 직접해야지왜 사람인 신부님께 하느냐신부님도 죄인인데우리 소강석 목사님께서는 한동안 저것을 읽으신 것 같습니다.단테가 지은 연옥이 나오는 그 소설..그런데 교황님도 고해성사 보고 그러면 아니지 않느냐..서번트 리더십 거부의 차원이 더 강해 보이는 그 말씀이신데..그게 그것은 일단 둘째로 치고고해성사에 대한 개신교 설명을 들으면얼핏하게 되는 그 말은누가 들으면진짜 그런 줄 알겠다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죄송하지만 말이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냐하면교황님도 고해성사 보시는데..뭐 교황님께 그러면 신부님이라고 생각하고고해성사를 본다는 것 아니냐교황님이 그런 자격이 있다고 보니 너는교황님도 죄를 지으셔서 고해성사 보는데?그러면서 빼먹으시고 계속 생각을 전개하시면서 다들건너 뛰고 있으시면서그 다음에는 말이 안된다..그런데 사실 일단 예언자라고 안하시고 선지자라고 하시잖아요전광훈 목사님은...그 목사님 따르시는 분들은..윤석열 대통령님의 미래를 미리 알려주셨다..그런 것이 더 중요하시고 그런 것이개신교에서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그 전광훈 목사님도분명히 인지를 하신 것 맞는데그 개신교에서 원래 고해성사를 뺀 그 흐름에서일관된 인식이 형성이 안되고 두 흐름이 나뉘어서 따로 전개된다는 흐름이발견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공동 번역으로 말씀 드리면 야고 2,26-27에서 분명히 이제 행동하는 믿음으로 해서그게 나오는데 그것을 행함이라고 해서 하시든..그래서 구별하지 말고 보면인지는 하셨는데 개신교가 고해성사를 요한 20,21-23에서 달리 해석해 내면서구약으로 오게 되면에제 33,3에제 33,1-33에서 그것이 이제 개신교 성경 이름으로는에스겔입니다.거기 보면..분명히 죄인에게 그 잘못이 있으면 그 잘못에 대해서일러 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게 되면그 죄인이 그럴 때 죽어야 한다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면그 죄인은 자기의 죄 때문에 죽게 되겠지만그 죄인이 죽은 책임을나는 너에게 반드시 묻겠다그런 말씀이 있고에제키엘이라는 예언자는 죄인이죠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 앞에 죄인인데그 바른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그런 논란이잖아요?
그런데 성경책에 보면이사야도 그렇고그 전부 죄인인데 바른 말하라고파견이 되고 있죠하느님께서 보내셨다..
그런데 어떻게 되는 것이죠?그러면 안된다..개신교 분들은 그러면 안된다..이유는..네 눈의 들보를 먼저 보라고 해서공격해서 막는다..신약에 있으니까 그게..그런데 그게 고해성사가 빠지니까그렇게 생각하시게 된다는 것입니다.그게 옛날에 한국천주교회의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회장을 지내신 분이신부님께 그런 지적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이명박 정권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신부님들께서 바른 말씀 이전에 자신의 죄를 신부님들께서도 먼저 돌아보셔야 하지않느냐..얼핏 들으면 맞는 말씀처럼 들리도록다른 구절들을 인용할 수 있죠남을 뭐 판단하지 말라남을 심판하지 말라형제에게 화를 내지 말라성을 내지 말라..그런데 그게 신자 생활하다 보면자기가 너무 나댔다라는 자기 시선이 자기를 사로 잡는 경우라든지아니면 실제로 무슨 자기도 돌아보고 그러는 것은 맞고 그래서 고해성사를 보니까..그런데 그 고해성사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 잘못을 지적한다는 의미가 있는데그것을 빼는 믿음에 의한 구원이그 실천이 빠져나가고 난 믿음이어서..자기를 돌아보는 것은 하느님 뜻인데남에게 뭐라고 한다는개 이게 도대체가 사람이 인격이 모자른 사람이어서 그러지 않니..?그런데 그게 양쪽 비교를 하면가톨릭 신자는 늘 고해성사를 보고그러면 요한 20,21-23을 근거로해서만 말씀을 드리면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에죄책감이 사라져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라는 주장이 가능하죠적어도 많이 줄었다가 가능하겠죠?그리고 거기에는 11사도에게 하신 말씀이신데 그게 부활 직후라서..그 때 이후에도 짓는 죄는 죄야..나를 믿음으로 해서 자동으로 죄가 사해진다는 것은한 번도 말씀을 안하십니다..거기에 마르틴 루터의 전통이 발견되는데너무 병이어서 고해성사 보기 힘들어서 고해성사를 빼는데로마 10,9만 읽고 로마 10,17은 빼니 마태 7,21-23에서 그냥 건너 뛰고야고 2,26-27 보니 야고보서는 빼야 맞지 않나..로마 10,17을 빼고 읽은 상태에서 결정해서야고보서 1장 2장 얼마 안되고야 이것을 빼야하겠다..그래서 실제로 빼고성경을 보다가 다시 모르겠어요 하여튼 요한 묵시록의 뒤에 맨 뒤에 더하고 빼면 안되니까다시 넣었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야고보서를 빼는 경향의 마음의 흐름이 있는개신교가 되어 있죠...그러면 남에게 너 이것이 잘못이야그것을 하지 마그런 것은 이웃 사랑입니까아니면 단죄한 것인가요정죄..한 것인가요이웃 사랑입니다.친구가 충고해준다도 있잖아요..그런데..그것이 죄가 되는 이유가행동하는 믿음이라고 공동 번역에 나오는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왜 나오나..로마 10,9-17에서 마지막 구절을 못 봤다..그리고 요한 20,21-23을 고해성사로 보지 않고로마 10,9가 너무 반가운 것이죠..지금..고해성사 보는 거 아니네써 있잖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면 고해 성사를 빼는게 주요 목적인 사람이지금 마르틴 루터인데..그러려면이 사람은 병적인 죄책감이 있는 것입니다...지금..황창연 신부님께서 소개하신 그 사연과 같은 정도..고해소 이쪽에서 끝내고 다시 저쪽으로 와서 또 다시 고해성사를 보겠다..그런 정도로 이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정도이니까매일 4시간 고해성사를 보면서도 벌벌 떠는 거죠이제 죽으면 지옥이다 이렇게...그래서 루터는 병적인 죄책감인데그 루터를 따라가면서 고해성사를 안보면죄책감이 남아서..죄를 용서 받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써 있다는 것을근거로 하면 그러니 죄책감이 쌓여 간다..그러면 이제 뭐 하나 잘못하지 않았느냐 그러면 버럭 화나죠..너는 잘하니?그러는 너는?ㅋㅋㅋㅋㅋㅋㅋㅋ
너나 잘 하세요테스형 노래까지 부르면서..그래서 천주교 신자는성당 누나나성당 형이너 이것 잘못했다고 생각해..그러면 바로 이제 고해성사를 봐야하겠다그 생각부터 드는 거죠..그런데?그럴 때 개신교는 발끈하는 것이죄책감이 평소에 쌓여 있다천주교 신자는 사라졌죠 죄책감이개신교 분들은?믿음으로 구원되어서예수가 어떤 분인지 아느냐내 이런 큰 죄도 용서해주신 분이야이게 되니까 굉장히 지금 감사가 당연히 더 크죠..그런데 죄는 사해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그렇게 되는 요한 20,21-23에서..23절에서..이제 버럭 이렇게 된다..그러니 에제 33,9인가 하여튼 33,3인가..헷갈리네..에스겔그 부분이 흔들리는 거죠..그렇게 써 있는대로 읽히지 않고또 뭐가 있습니까?구약은 율법이다가 있으니까건너 뛰기 시작하시고구원은 거저 얻는 것이다이런 신약 구절이 또 있으니거기로 건너 뛰시면..다 말이 된다..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예를 들어 뭘 잘못했어요어린이가 엄마한테 좀 전에 거짓말 했다그래서 엄마한테 가서 아빠한테 가서잘못했다고 말로 용서해 주세요 하면..부모님 다 용서해 주실 때그게 거저 용서해 주신 것이지..무슨 댓가 치르고 용서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죠..그런데 개신교 분들은 그게 부담이 되는 루터의 전통에 따라고해성사 보고 하는 것은 댓가를 치르는 일이 되는 정도의 그 엄청난 부담이라서그것을 거저 구원을 얻는 것과 다르다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사실은 나를 정죄하는 것이라서단죄하는..그것은 거저 얻는 구원이 아니라고 할 때그 쌓인 죄책감을 이고 가서..이건 율법이다그러게 생긴 것이그만큼 죄책감이 커서..연세가 올라가실 수록 죄가 더 크다면..고해성사는 엄청 부담되고그런 것을 거쳐야 죄가 용서된다는 것은상당한 단죄의 부담감을 가지시게 되는 것이어서그게 어디 거저 얻는 구원이니그건 남을 혹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율법이야가 자연스러우시겠죠...
그래서 결론이 뭐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론이..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심리적 부담이결국 고해성사하면거저 용서 받는 것이다라는그 개념 형성이 어렵다고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려우시다구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에게 야 미안해그래서 바로 야야너하고 나 사이에 뭐괜찮아 괜찮아그게 무슨..공짜로 해준 거지..그런데 그것을 사과를 요구한다든지 하면그게 단죄나 정죄한다 막 이렇게 심각하게 보는거죠..그래서 인성이 나쁜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는 원인이발생해 있다..남들과 갈등이 심해지고그런 위에 자꾸 가시면수요 집회에 대해 일본인들이 잘못했다..그러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는 개념이 온다..하나님의 의가 아니고사람의 의이다그런 것을 세우다 보면거기에 할머님들께 죄를 짓는다..그것을 깨달아서 뉘우치기는 불가능한 거죠..종교적인 믿음신앙으로 그렇게 태도나 관념이나 상황 판단에서그게 평생을 거쳐 오시는 할머니가그것이 죄라고는 안되는 것이고그것이 죄라고 보는 개신교 분들은하나님께서 그렇게 두시는 것이하나님께서 예비하심이 있어서 그래..그래서 지친다 이제 국민들은.
사실은 개신교 분들이신 것 같다가톨릭 굿뉴스 그 분들이..그러니 철통같이 서부 전선이고그 분들 군대 식으로..군가....
그런데 그게 사회적으로 약자를 무관심하게 돌려내는 것이라서그 분들은 지옥에 가신다..그러면 그 분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시나요?절대 안되게 되어 있죠믿음으로 구원되어야 하고구원이 예정되어 있으니 나머지는 신경 끄자신경 끄는 종교기독교..개신교그러니 사람들이 화를 내고 싫어하는 정서가 발생하고그러는 거죠..그런데 그래야만 구원된다는 것을어려서부터 주입 당하여 세뇌가스라이팅 되셔서빠져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그 분들과는 대개 사적인 인간 관계는 피하라고 조언을 드리는 이유가뭐 갈등이 생기거나 하면그 분들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는 일이 없다..지치고 힘겹고이수정 교수님의 피해자 중심주의는 그것이 사회에서 힘을 잃고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의 밥이 되는..그런 일이 늘 나오는 그 이유가..개신교 때문에옛날 탐관오리 이런 단죄보다 더 어렵게 되는종교적 이유가 있게 되는거죠그러니 개신교 들어온 지 30년 만에조선은 망하고야 말았다..이전에 병인 박해 신유 박해 2번으로2만 여 조선 천주교회 순교자가 나와 천주교가 무너진 가운데일제 강점기로 들어가고거기에서 노기남 대주교님의 판단은 너무 큰 순교가 있어서이대로 일제에 저항하기에는 역부족이다..그래서 타협이 들어간 교회사의 아픔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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