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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에 잠기다...

냉동딸기 |2025.05.25 20:53
조회 531 |추천 3

 ‘나쁜 남자’ 바그너, 예술에선 위대한 개척자

바그너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반전은 난관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에서 위기의 순간마다 기대하지 않았던 귀인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바그너의 삶에서 최고 반전은 루드비히 2세와의 만남이었다. 바그너가 빈에서 막대한 빚을 지고 채권자들을 피해 변장까지 하고 도망을 다니고 있던 시절 루드비히 2세 덕분에 그의 처지가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바그너의 글을 탐닉하고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통해 그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던 루드비히 2세는 18세에 왕으로 부임하자마자 바그너를 찾아와서, 그 많던 바그너의 부채를 모두 청산해 주고 아무런 의무나 조건 없이 거금의 연봉을 지급했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바그너가 작곡 중인 ‘니벨룽의 반지’ 연작에 관한 얘기를 듣자마자 6만 마르크에 달하는 거액의 작곡료를 하사했고 작품의 저작권까지 미리 3만 굴덴에 사주었다.

바그너의 거처는 왕이 머무는 슐로스베르카 성의 호숫가 맞은 편에 있어서 그는 왕과 매일 같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바그너에 대한 왕의 사랑은 점점 더 커져서 급기야 그를 위해 ‘로엔그린’을 모티브로 한 성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디즈니 성의 원형으로 유명한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그것이다. 이 성의 거의 모든 방은 바그너가 연출했던 오페라의 무대 장면들로 꾸며졌다. 루드비히 2세가 못 말리는 건축광으로 터무니없이 국가 재정을 낭비하는 바람에 41세에 정신 질환자로 몰려 폐위를 당하기는 했지만, 바그너에게만큼은 강력한 권력과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의 예술적 이상을 이해하는 더할 나위 없는 후원자였음이 분명하다.

바그너의 큰 흠결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히틀러로부터의 숭배 역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사에서 그 어떤 예술가도 히틀러 같은 강력한 최고 권력자에게 그토록 전폭적인 찬양을 받은 사례를 찾기 힘들다. 비록 그것이 그의 사후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해도 그렇다.

강력한 독일 제국을 꿈꾸었던 히틀러에게 바그너는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라 게르만 민족의 위대함을 예술로 증명한 천재이자 영웅이었다. 독일의 민중적 영웅 서사시와 설화에 토대를 둔 작품을 통해 독일 정신과 민족적 정체성을 구현했던 바그너만큼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예술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바그너가 자신의 삶과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반유대주의적 태도를 견지했던 것도 히틀러가 바그너를 예찬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9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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