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는 15년 만난 남자와 헤어졌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세월이고, 말도 안되는 끝입니다.
헤어진지는 2년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헤어진 이유를 주변인들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앓아오다 이제는 대나무 숲에 털어놓듯 모두 잊고 살아가고 싶은 마음에 글을 씁니다.
19살때 부터 같은 학교, 같은 반의 친구 사이로 지내다 사귀게 되었습니다.
둘다 선생님들께서 좋아하는 학생이라 둘의 연애를 귀엽게 봐주시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학교 대표 커플처럼 지내왔습니다.
같이 도서관을 다니고, 학원을 다니는 등 학업에도 소홀이 하지 않고 그렇게 학창시절을 같이 보냈습니다.
20살이 되어 각자 다른 대학에 다니게 되었어도 잘 지내왔고, 그 친구가 군대를 갔을 때도 서로 애틋해하며 잘 만나왔습니다.
그 친구는 전역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고민할 때도 함께 했고, 저는 취직하고 그 친구는 학생일 때도 잘 만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직장인이고, 그 사람은 학생이라 금전적으로 제가 더 많이 쓰게 되었지만 저는 아깝지 않았고, 그 사람 또한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마워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알바하며 모은 돈으로 저에게 선물을 사주고, 어떻게든 해주려는 모습이 예쁜 사람이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상황에서도는 저는 자소서를 함께 봐주는 등 서로를 도와가며 지냈습니다.
원하던 대기업에 합격하였고 모든게 행복했습니다.
저에게 모든걸 주고 싶어했고, 취업 전의 제가 해준 것들을 갚기라도 하듯 작은 선물은 물론 명품백도 여러개 선물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결 같았고, 주변에서도 부러워하는 커플이었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으며, 청약을 넣은 아파트에 당첨되어 브랜드 아파트까지 있는 남자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아파트가 당첨된 순간 당연하게 저와 함께 하는 미래를 이야기했지만, 막상 입주일이 다가와도 결혼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습니다.
항상 다정하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회사일이 힘들다고 주말에도 만나지 않게 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쯤에 부서 이동이 있을 때라 저는 그런 그가 안쓰러웠고,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주말이니 푹 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만나지 않는 주말에는 하루종일 잤다며 연락이 잘 되지 않았지만 많이 피곤한가보다 하고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은 차가 없고, 제가 차가 있었는데 어느 날은 출장을 가게 되었다고 차를 빌려줄 수 있냐고 했습니다.
저는 당연하게 흔쾌히 빌려준다고 하였고, 하루종일 쉰다고 만나지 않던 주말에 차를 위해 밤 늦게 저희 집에 방문 했습니다.
집 앞으로 온 그 사람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제 차를 가지고 차가 있는 김에 본가를 간다고 하여 그러라고 했습니다.
차를 빌려간 날은 토요일이었고, 일요일은 승진 시험 등으로 공부를 한다고 하여 만나지 않았습니다.
자동 주차비 결제를 등록해 놓았는데 일요일 저녁쯤 주차비가 자동 결제 되었다는 알람이 왔습니다.
그 알람을 받고도 저는 차를 끌고 도서관을 갔나보다 하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문득 어디를 갔을까하고 상세 내역을 보니 을왕리 공영주차장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시간에 을왕리까지? 하면서도 친구랑 머리 식히러 갔나 보다하며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아무 생각해도 이건 아닌거 같아서 하루종일 연락 없던 그 사람에게 어디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동문서답으로 미안하다. 내일 다시 연락하겠다고 답이 왔습니다.
다음 날이 되자 그는 연락 한통 없었고, 저를 직접 만나지 않고 저희 집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키는 우편함에 넣었다는 연락만 오후 늦게 왔습니다.
우선 만나자는 애원에도 그는 답이 없었고, 무슨 일이냐 물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다 알고 있지 않냐는 대답 뿐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블랙박스를 켜보니 지워진 상태였습니다.
상시녹화는 지워졌지만 주차 중 충돌 영상이 남아있어 확인하니 여자와 함께더라고요.
손이 덜덜 떨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이 가짜인 줄만 알았는데 정말 몸이 차가워지고 손이 떨리고 아무 생각이 안들었습니다.
저에게 차를 빌리고 늦게 들어간 그 날 제 차로 그 여자와 함께 장을 보고 그 장 본 장바구니를 들고 같이 본인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밤새 그 여자와 함께 집에 있던 그 둘은 다음날 일찍 같이 제 차를 타고 집을 나서는 모습도 찍혀있었습니다.
누가 들어도 어려보이는 여자의 목소리 였습니다.
그 여자는 저와는 다르게 많이 애교스러웠고, 다정했습니다.
한결 같다고 믿던 사람이라 다른 여자를 만났을거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못했는데 블랙박스를 확인 후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의 ㄴㅇㅂ 계정에 접속했습니다.
이 전에 알고 있던 비밀번호로를 입력하니 로그인이 되었고, 정신을 놓고 이것저것 찾아봤습니다.
쇼핑 내역에 1년 전 구매한 브랜드 에코백이 있었고, 젊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라 배송지를 보니 전혀 연고 없는 대구의 어떤 여자 이름으로 발송되어 있었습니다.
받는 사람 연락처도 적혀있고 저장해보니 20대 중반 정도 밖에 안되 보이는 예쁘장한 여자였습니다.
그 쇼핑 내역은 물론 다른 내역들도 많았습니다.
혼자 여행이 좋다며 종종 제주도, 부산 등 국내 혼자 여행을 다녔었는데 호텔에서 지낸 줄만 알았는데 게스트 하우스 예약 내역들이 있었습니다.
국내 여행 뿐만 아니라 해외여행도 혼자 많이 다녔는데 항상 혼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배달을 주문한 내역들도 보였는데 모두 식재료 배달이었고, 스테이크나 파스타 재료들이었습니다.
저와의 카톡 날짜와 맞춰 보니 그 날들은 모두 저와 만나지 않고, 집에서 쉰다며 연락이 없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는 요리를 꽤 하는 편이었고, 아마도 여자에게 집에서 요리를 해줬던 흔적 같았습니다.
예약 내역에는 제가 그토록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한번도 가지 않았던 캠핑카 예약 내역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저에게는 회사에 출근한 것 처럼 연락했었는데 캠핑 여행을 갔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했고 전혀 그럴거라 생각 못한 사람이라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고, 그 어떤 연인보다 굳건한 사이라 생각하고 지냈습니다.
내역들을 보면 한 명이 아닌 것 같았고, 최소 1년 반 이상을 다른 사람들을 만나 온 것 같았습니다.
바보 같이 그 순간도 그와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제가 본 모든 것들을 이야기는 하지 않으며 그를 붙잡으며 애원했습니다.
한 명이 아닌 여러명을 진지하지 않은 한낱 호기심에 그랬을거라는 생각으로 차라니 낫다며 합리화하였습니다.
미련한 저는 그를 붙잡았고, 그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날의 이야기는 둘다 암묵적으로 하지 않은채 1년 넘게 더 만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데 만나는 동안 그 일을 잊고 지냈습니다. 정신적 충격이라는게 이런건지.. 바보같이도 현실이 아닌 것만 같은 생각에 저는 전혀 그 일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내왔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정말 멍청한 사람인데 그때는 왜그랬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기억 상실증이라도 걸린 것 마냥 잊고 지냈습니다.
만나는 동안 예전 같은 마음은 아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는 한결같이 다정했고 값비싼 선물은 계속 해주고, 데이트 비용의 대부분은 그가 지불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해서 그랬던거 같습니다.
어느 주말에 외곽으로 데이트를 갔고, 식당에 웨이팅이 있어 기다리는 동안 그는 화장실에 갔습니다.
꽤 오랜시간 나오지 않아 창피함을 무릎쓰고 남자화장실 가까이에 가보니 그는 통화 중이었습니다.
내용은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혹시나? 설마?하는 마음 반, 장난 반으로 그가 돌아왔을 때 누구랑 통화한거냐는 가벼운 제 한마디에 당황한 그 사람에 돌아 온 말은 그냥 가자. 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진지하게 물은 것도 아니었고 누구랑 통화했어~?라고 가볍게 물은 질문에 별거 아닌 대답이 듣고 싶었는데 그냥 가자는 그 사람의 대답.
애써 외면하고 싶지 않아 우리 사이에 대해 묻지 않았는데 그제서야 이제 못할 것 같다는 그 사람.
무슨 말이냐 하니 다 알고 있지 않냐, 아무리 노력해도 나에게 마음이 생기지 않는 다는 그 사람.
우선 시간을 갖기로 했고, 한참 후에 만난 그 사람과 아무렇지 않게 데이트를 하고 그 날을 마지막으로 이별했습니다.
내가 조금만 여우 같았으면 우리가 이러지 않았다고 했고, 진작 결혼했으면 이러지 않았다는 그 사람.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서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저는 프로포즈 해주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 했었습니다.
오래 만났는데 프로포즈가 무슨 소용이냐 할 수 있겠지만 평생 한번 뿐인 순간인 결혼 전에 이정도의 노력은 받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지금 이정도의 노력도 못 받으면 결혼 후에는 더 못 받을거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제가 말한 프로포즈는 인터넷에 보이는 그런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프로포즈도 아니었고, 그냥 꽃다발이라도 하나 주면서 일상에서 정식으로 진지하게 결혼하자 이야기하는 그런거였습니다.
그 사람은 그 프로포즈가 굉장히 부담이었는지 프로포즈가 뭐라고 그랬냐고.. 그냥 결혼하지 그랬냐며 저를 탓하는 이야기들 뿐이었습니다.
서로 미웠지만 해 온 세월이 긴 만큼 둘다 울면서 헤어졌습니다.
15년을 함께 해온 그 세월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결국은 제 탓으로 헤어진 그 사람입니다.
주변 친구들도, 부모님도 그 사람을 굉장히 좋게 생각하고 있어서 헤어졌다고 하니 다 제가 문제라 생각하고 많이 아쉬워 했습니다.
주변에서의 저의 이미지는 항상 당당하고 똑부러진 스타일인데 이렇게 바보같고 멍청하게 지냈을거라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차마 그 사람 문제라고 말도 못하고 자연스레 서로 마음이 떠나 헤어진 것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오래 만나 온 만큼 주변 지인들이 많이 엮여있어 그 사람을 나쁘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헤어진지 3개월 후 연락이 와서 만나고 싶어했지만 저는 거절했고 메세지로만 몇마디 주고 받았는데 그때까지도 그 사람은 헤어진 이유가 제 탓이었습니다.
프로포즈가 뭐가 중요했는지를 이야기 했고, 20대 중반 재미로 봤던 궁합에서 저희 둘은 결혼이 불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그걸 굉장히 믿었나봅니다.
결국은 모든게 다 핑계였던 사람이었고, 그토록 기다렸던 그 사람 연락이었는데 그 날의 계기로 미련 한톨 남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렀고, 제 옆에는 그 사람은 비교도 못할 만큼 더 다정하고 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조건 그 사람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더 좋은 사람이 함께해서 행복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결혼이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의 주도로 척척 진행됩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 덕분에 많이 행복하지만 가끔 치밀어 오르는 울화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털어놔봤습니다.
그동안 그 사람에게 쏟았던 시간과 감정이 매우 아깝기도 하지만, 지금 이 사람을 만나려고 보내 온 시간 같고 이제라도 헤어져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헤어진것을 후회하는건 전혀 아니고, 미련도 없지만 긴 세월 함께 한 만큼 상처 아닌 상처는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 누구보다 더 행복하게 지낼거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오랜 시간 함께 한 그 사람이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 반과 이 선택을 평생 후회하며 살았으면 하는 반이 공존합니다.
혼자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니 속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