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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횐상괴담] 수험지옥

ㅇㅇ |2025.08.10 00:36
조회 118 |추천 1
아침 6시 기상.
얼음장같이 찬물로 머리를 감는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하지만 잠이 달아나니까 좋은 거라고
믿는다.

아침 7시, 집을 나선....
아니다, 고시원을 나선다.
창문 하나 없어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는 이 방으로부터 탈출한다.

바람이 춥다.
지난 365일, 그 1년으로부터 10년 전부터 내 겨울을 책임진 색바랜 패딩이 날 지켜준다고 믿는다.

아침 7시 15분, 도서관 학습실에 자리
를 잡는다.
오늘 하루도 이 자리는 나의 자리가 된다. 포스트잇도 떼지 않은 채 그대로 붙어 있다.
학습실이 열리고 닫힐 때까지 내 가방은 이 사각형의 공간에 걸쳐져 있다.
이 공간이 나를 끝내 성공의 길로 인도해 줄 거라고 믿는다.

아침 8시, 배가 고프지만 참는다.
공부 중이다. 돈은 없다.
춤고 배고픔, 거기다 외로움까지-
그러나 이 괴로움은 시험일 뿐 통과하기만 하면 달콤한 보상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침 10시, 졸리다. 히터를 틀어줘서 다행이지만 공부하기엔 답답할 정도로 따뜻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큰 소리로 항의하는 사람은 없다.
왜, 저기 졸고 있는 저사람 봐라,
저 사람은 떨어질 거잖아.
한 명이라도 더 자면 좋은 셈이지.
내가 붙고, 저 사람 떨어져야 하니까.
이것도 의지를 테스트- t.e.s.t,
시험하는 거라고.
나는 오늘 저 사람을 이기고 나 자신의 졸음 역시 이겨냈기에 승리는 나의 것이 되리라고 믿는다.

12시,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믿는다, 믿는다.
1시... 2시. 믿는다, 3시, 믿는다.
믿고, 믿어본다, 믿기로 한다, 믿어야 한다, 믿어야만 한다, 믿어야 하니까,
믿지 않으면, 죽는다, 죽을 거 같으니까,
믿는다, 믿으니까, 죽고 싶다, 죽으면, 죽기로, 아니, 무슨 소리를,
믿자, 믿지 않으면 죽는다,
그래 그래, 잘하고 있다, 참아라, 이겨내라.
오늘의 무게를 견더라.
왕관을 쓰려는 나는 그 무게를 견더야 하노라, 왕이여, 주사위를 던지셨으니, 결과에 승복, 아니, 이겨야 해,
지면 죽는 거야, 졸면 죽는 거야,
졸지마, 졸지마, 방금 약간 졸았지, 너 죽을래-

콜록콜록,

19시,
삼각김밥 하나에 샌드위치를 먹었다.
편의점 음식이 좋지 않다지만 음료수까지 딸려 오는데 어쩔 수 없다.
다 해도 4,000원이 안 되는데 밥, 빵
마실 것까지 주니 나로선 이만한 선택은 없다고 믿는-.

집어치워.
믿지마, 현실을 쳐다봐.
나의 이 비루한 현실을 직시해.

20시, 다시 책상에 앉아 있지만 공부가 되지 않는다. 이미 절반 이상이 이 학습실을 떠났다.
의지도 약한 인간들 같으니,
이길 거야, 내가 이길 거라고 믿는-. 집어치워.
믿을 수 없어, 나보다 잘하나 봐.
어떡하지.
다 아니까 집에 가서 예능 한 프로 보고
치킨에 맥주 한 잔까지 해도 나보다 아는 게 많아서 그렇나 봐.
여유 좀 봐, 어떡해.
나보다 잘할 거라고 믿는다.
아니, 믿지 마!

21시, 게슈탈트 붕괴
믿, 미-드, 미디움, 미디움은 중간
내 성적도 중간인가, 정상과 비정상,
나는 그 중간쯤에 있으니 중상,
내 상태는 치명상, 으흐흐
게슈탈트 붕괴는 근데 사실 속설일 뿐이라된데.
그럼 난 게~붕이 아니라 그냥 멘봉? 멘탈이- 우르르르.
아,뭐 하다 이랬지. 아.
MID가 접미사로 붙는 단어..
이거 시험에 나올까? 안 나오면 헛공부 하는 거야? 그럼 헛공부하는데 지금 15분째 투자한 거야?
가리고 외워보자. 이게 분명히...
그러니까.. 아, 하나도 모르겠네.
외워지질 않아.
22시, 안 될 거라고 믿는다, 같이 학원 다니던 친구 놈의 1차 합격이 2차에서 잘 안될 거라고 믿는다.

학자금도 다 못 갚은 주제에 알바한 돈으로 학원에 다녔던, 그러다 학원을 그만두고 혼자 머릿속으로 들었던 강의를 되새겨가며 공부하고 있는 내가 합격하리라 믿는다, 절실한 자를 하늘이 도와주리라 믿는다.

전화가 온다, 아버지, 느낌이 안 좋다.
그 느낌을 믿는다.
이 시간에 오는 전화는 늘 취기에 절어 있다는 내 경험을 믿는다.
전화를 받는다, 그래도 아들이라면 전화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내결정을 믿는다.

니 머하노ㅡ , 공부 중이에요, 피식
공부는 무슨, 뼈 뿌라져 죽을 소리 씨부리네, 말만 공부 공부, 니 올해 몇 살이고,
서른요, 장가갈 나이에 니 머 하노, 취업하면 장가가야죠, 말은 잘하네, 누누이 말 하지만, 대갈통이 안 따라주모 기름쟁이를 해라캣제, 공장에서 일하면 장가가기더 어려워져요, 아는 놈이 아직 그러고 있나,
붙을게요, 언제, 이번 시험에 붙으면 되잖아요,
지랄도 풍년이다 자속아, 술 드셨어요?, 니 같으면 오늘 같은 날 안 쳐묵굿나, 무슨 날요, 니 할아버지 제삿날, 니 엄마랑 나랑 제사 다 지냈다 장남이란 자슥이 못 나가지도 둘 다 고개를 못 들었다 알긋나,
몰랐어요. 말씀하셨으면 내려갔죠.
오긴 어딜 와, 붙기 전엔 집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마라, 아버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조상 보기 부끄러우니까 그따구로 할 거면
사람 노릇하기 전엔 내려오지 마라고! 끊는다, 다음 달엔 50만 원밖에 못 부친다, 우리도 어렵다, 제발 우리도 살자, 어, 아버지,
고시원비 내면 그럼 한 푼도 안 남아요
네?

23시. 날 위로하는 이 아무도 없음을 믿쉽니까~? 예이~
날 이해하는 이 아무도 없음을 믿쉽니까~? 예에이~
나 없어도 눈물 짓는 이 누구도 없음을 믿, 믿, 믿쉽니까-! 예헤!
맞습니다~ 형제자매 동포 여러분-. 올라가십시오, 도서관 옥상으로 당장, 더 빨리, 더 빨리, f.a.s.t~
빠른 도착, 이제야 1등을 해보네요, 샴페인을 터트려볼지어다.
아주 붉은 샴페인이 터지겠지요,
그것 참 멋있겠군요!
대가리 잘 달려있나 확인하시고 더듬더듬,
아 이거, 공부할 땐 제대로 달려 먹었나 의문이었는데,
이렇게 만져보니 아주 무겁고 튼실한 게 뇌는 제대로 생겨먹은 모양이지요.
수박이었으면 잘 팔렸겠으나 아쉽게도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나 경쟁과 경쟁 끝에 도태되어 시장에서 팔려먹지 못 한 쉬어빠진 과일이 되었습니다 그려,
경쟁과 줄세우기가 팽배한 이 사회에 태어나 고생하디 고생하셨습니다만
귀하의 도전은 그저 경쟁률 높여주기에 불과했으며-,
저 많고 많은 학원가, 많고 많은 수험서 회사의 배를 불리는 데 일조하시어 대한민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시며
정작 본인은 날백수, 공시충으로 희생하신 이 시대의 위인이 아니십니까?

"허억. 허억."

심장이 뛴다, 두렵다.
흥분과 두려움이 날 지배하고 있다, 발이 땅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뇌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본능이 이성을 압도하고 있다.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살아있기를 명령한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다,
삶이 날 여기로 밀어냈으니까,
죽음이 날 받지 않을 권리는 없다.
나는 이승의 난민이다.
저승은 나를 받아줘야 한다.
이승이 날 택하지 않았으니 모두를 받아 주는 저승은 나의 이민 신청을 받아줘야 한다.
이 괴로움을 견디며 살아온 나를 품어줘야 한다, 따뜻하게 맞이해다오.

"허억. 헉-, 헉."

아주 조금 다가섰을 뿐인데 심장은 더욱 빨리 뛰고, 두려움은 몸을 핥는다.
공포의 감정은 혓바닥처럼 날 게걸스레 핥고, 또 감아 오른다.
돌아가면 다시 그 7,8,9,10-
그렇게 넘기는 하루가 한 주,
한 주가 한 달.
한달이 일 년을 만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나의 도서관 자리는 약 1.3m 남짓,
나의 자리는 대한민국 성인 남자 평균
키만큼도 안 된다.
그 자리가 나를 만든다고 볼 때 나의 나이는 서른 살, 나는 불완전 변태한 애어른에 불과한 건가.

"하악, 학! 으아아. 으으."

조금만 더, 합격에 다가서는 느낌도 이와 비슷하겠지,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그 간극이 날 미치게 하겠지,
하하, 이 떨리는 느낌도 비슷하려나, 이것과 그것이 비슷하다면 이것만이라도 이뤄봐야겠지,

"엇, 으어어어!

우...
성공은.. S..'U..'C...C"..

....

"아악!"
누구야, 누가 날 밟고 지나가, 어라? 멀쩡하네? 왜지.

"아. 깜짝아. 이봐요, 형씨.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누워 자고 있습니까? 당신은 자리 안 잡아요? 뒤에서 들으면 손해에요.
"뭐라구요."
"일어나요, 빨리. 지금 17시에요."
"5시? 저 어젯밤부터 여기 있었는데?"
"5시는 무슨 소리래. 이분 정신 못 차리네. 여기 하루는 99시간인 거 잊었어요?"
"네?"

99시간이 하루라니, 무슨 뚱딴지 같은...
정신은 자기가 못 차리는 것 같구만.

"저 사람 누구야?"
"몰라, 아마 얼마 안 된 신삥인 거 같은데? 17시라니까 오후 5시냐는데?"
'빙신, 또 한 명 지옥에 떨어지셨네."
"그래도 우리가 쟤보단 빨리 붙어야 하지 않겠냐?"
"가자. 자리 잡으려면 서둘러야지."
"오늘 명부지리학이랑 사자심리학하고. 또 뭐더라? 시험 치는 과목."
"저승법령일걸, 개정된 거 정리해준다고.. 교통사고 사망자 사후세계 전입지원 특별법 이번에 개정됐잖아."
"아, 망했네. 무슨 매주 법이 바뀌냐."

무슨 소리야, 무슨- 수험지옥?
발밑에 밟히는 이것들은 다 뭐..
으헉, 볼펜으로 이뤄진 사막이잖아.
잠, 잠깐만, 나뭇잎은 전부 포스트잇이고....지나가는 저 사람은 대체,
어째서 갓을 쓰고 있지?

"소인은 수험지옥에서 사후세계 전입을 돕는 일을 맡고 있소, 꽤나 선비인 척하고 있으나, 실은 수백 년째 급제하지 못했으니 이젠 조상들의 넋이 먼저 썩어 문드러졌겠지요. 하하하.
양반과 상것의 차이가 없어졌다는 대한민국이란 곳에서 오셨겠구려, 그러나 우습지 않소. 여기 오는 이 모두 스스로 상것이라고 칭하는 것을. 아. 농이오. 하하하!"
"여기가 어딥니까?"
'극락은 아닐 것 같지 않소이까?'
"지옥입니까?"
"많고 많은 지옥 중 수험지옥이오."
"누가 절 여기로 보냈습니까?"
"눈물도 안 나는 모양이구려. 숨을 거두었다는 데도 혼과 육신이 분리되지 않고 숨구멍으로 바람이 드나드니 이상하지요?
그러나 이게 죽음이오. 살던 곳과 별반 다르지 않소!
다만 이곳의 하루는 아흔아홉 시간이란 점은 기억하시오."

꿈인가, 나 공부하다가 잔 건가,
전화도, 떨어진 것도 꿈이었을 거야,
"어허, 거 부모님이 주신 육체인데 어찌 스스로의 뺨을 상하게 하는 게요? 꿈이 아니니 깨려 할 필요 없소.
그대를 이곳으로 보낸 건 어디 보자,
인사기록표 좀 참고하겠소. 명부행정부 인적관리국 사자지원과-, 전입3팀... 계장은 김득헌.. 주무관은 유상호.. 혹시 그대도 공무원이란 과거시험에 응시하다 이리 온 거요?
보통 그 공부하다 못 이기고 자살한 자들이 이리로 오기 때문이외다."

"..맞습니다."

"허! 잘도 왔구려. 나 역시도 수백 년째 낙방 중이오.
요즘 오는 사자들은 바다 건너 왜놈들의 말도 잘하고 눈이 파랑다는 색목인들의 말도 잘하는데, 어찌 그 명석한 실력으로 낙방들을 하여오는지 모르겠구려. 아무튼 아까운 나이에 그런 선택을 한다니 아쉽구려.
이 서류를 내일까지 읽고, 지장을 찍으시오. 서류를 한 번 접고 접힌 곳 위아래 양쪽에 걸치도록 확실히 찍으시오. 신청인란에도 찍으시구려."

"이게 다 뭔가요?"

"법정 서식이라 다 받아야 전입을 할 수 있소. 참고로 성불하기 위해선 성불고시에 합격하는 방법이 있고,
그게 아니면 이곳에서 관리로 일하며 살거나, 나처럼 관리들 밉에서 소일거리를 맡거나, 그마저도 못 하면 영원히 과거 시험, 그대들의 말로는 고시를 준비하는 수밖에 없소. 그래서 이곳이 수험지옥인 거요."
"지옥이라구요, 지옥..."
"믿기지 않소? 뭐 지옥은 달군 쇠로 지지고, 가시로 된 길을 걷고, 그리 생각했소? 이게 지옥이오.
살아보시구려. 나 역시 그대처럼 나의 육신을 버렸지만, 그 죗값은 내가 벗어나고자 했던 압박 속에 영원히 가뒤지는 거였소. 그러던 삼백 년 하고도 강산이 몇 번이나 지난 어느 날,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이렇게 일하고 있소."
"시험, 시험에 합격하면 그 성붙이란 걸 할 수 있습니까?"
"물론. 한 해에 한 명 성불할 수 있소. 이곳의 수험자는 무려 일 억이 넘소."
"시험 과목은요?"
"이백칠십 과목 정도 되오.'
"예?"
"7농이오. 오백 과목이오."
"오백!"
"과목당 천 개의 문제가 나오니 열심히 해보시오. 이곳은 왜놈도 있고 온갖 오랑캐란 오랑캐는 다 있소. 그야말로 이 세상의 공부하다 죽은 모든 넋이 이곳에 다있으니 과거시험도 원하는 언어와 문자로 치를 수 있소."
"공무원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원래 염라대왕이 명부에 온 자들의 생을 심판하지만, 이 우주를 떠도는 넋이 워낙에 많은지라 요즐은 지옥 3.0 시대를 맞이하여 업무가 많이 이관되었소. 그래서 명부행정부가 생겼고 실과 밑에 수많은 계가 염라대왕의 일을 전결하여 처리하고 있소. 그대를 여기로 보낸 것 역시 9급 지옥서기보였소. 아직 시보도 못 멘 걸로 아오."
"어떻게 되냐니까요!'"
"왜 역정을 내고 그러시오, 거 서류를 내일까지 읽어보라 하지 않았소, 다 적혀 있으니 참고하시고 이만 가시오. 시험일 10년 전에 공고가 나고, 1년 전부터 원서 접수를 받는다는 것만 알고 계시오. 한 번 낙방하면 십 년이외다. 십 년."
"뭐라구요!"
"서류 읽어보시오- 이만 가시오. 다음 사람 찾아가야 하오.
소인도 실적을 채워야 보고를 올릴 것 아니오.
이곳 공무원들은 99시간 중 90시간을 일하고 퇴근하는 게 보통이오, 그렇게 수백 년을 살아도 성불할 수가 없으니 다들 일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성불고시 준비를 하지요. 건투를 빌겠소."
"저기요! 저기요!"

그러는 동안 내 주변으론 책이 담긴 지게를 진 수험생들이 줄을 지어 언덕을 오르고 있다.
끝없는 그 행렬은 사람이 개미만큼 작
아 보일 때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곳은 수험지옥.
90시간을 일하고 9시간 퇴근하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지옥.
그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선 성불고시를 통과해야 하는
저마다 10년씩 공부한, 어쩌면 수백 년을 공부했을지도 모를 무한의 경쟁자들을 상대로,
500과목의 시험을 과목당 1천 문제씩
치뤄내야 하는 수험지옥.

원래 혼자였던 나는 슬퍼할 겨를없이,
버려진 지게를 주워 들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눕은 수험서 몇 권을 집고,
볼펜 사막의 볼펜 몇 자루를 들고,
포스트잇 나뭇잎을 한 움큼 떼서,

1.3m.
내게 꼭 맞을 자리를 찾기 위해,
그 긴 행렬에 동참한다...
추천수1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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