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삶의 중대한 결정 앞에서 '이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가?'를 중요한 잣대로 삼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인생의 모든 순간은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저는 그 '되돌릴 수 없음'에도 분명한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주식 투자로 큰돈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뼈아픕니다. 하지만 다시 일을 하고 저축을 해서 그 손실을 메워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건강을 해칠 정도로 살이 쪘다면, 엄격한 식단과 운동을 통해 이전의 몸 상태에 가깝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실패나 잘못된 선택은 완전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만회가 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실수를 교정하고 상황을 개선할 여지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출산'은 이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출산은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절대적이고 합법적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사건입니다. 한번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저희의 삶은 아이가 없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모든 경로가 차단됩니다.
이것은 다른 어떤 삶의 변화와도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러한 비가역성은 부모에게 하나의 절대적인 과제를 부여합니다. 바로 '무조건적인 수용'입니다. 태어난 아이가 어떤 기질을 가졌든, 어떤 건강 상태에 있든, 나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되든, 저는 그 모든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 상황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나의 삶을 잠식하더라도, "이 아이는 내가 낳았고, 나는 이 아이를 사랑하니까 괜찮다"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합리화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는 깊은 회의감을 느낍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즉 비가역적인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 방식으로서 아이를 사랑해야 한다면, 과연 그 사랑을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행복해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기 합리화의 과정이 과연 '진정한 행복'일까요?
저에게 사랑과 행복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오는 필연적 감정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가꾸어 나가는 자율적인 감정이어야 합니다.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사랑해야만 하는' 의무감을 갖는 관계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제가, 저희 부부가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결정은 아이를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한 인간의 삶이 걸린 '출산'이라는 사건의 비가역적인 무게를 누구보다 무겁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나 자신을 밀어 넣고, 거기서 파생된 감정을 사랑과 행복이라 이름 붙이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삶의 자율성을 지키며, 제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관계들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