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강약약강 強弱弱強' 이라는 신조어가 널리 퍼지며, 세간 사람들의 이슈이자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강약약강' 이 신조어라고는 하나, 인터넷을 통해 줏어들은 얘기에 의하면, 이 용어는 1980년대 후반부터 쓰였다고 한다. 이는 다들 알고 있듯이, 강한 사람에는 약하고 약한 사람에는 강하다.라는 뜻으로 학교폭력, 직장내 괴롭힘, 군대 고참의 군기잡기,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 네티즌을 대상으로 좌표를 찍은 다음 집단으로 괴롭히는 이른바 '사이버 불링' 쉽게 말해서 '사이버 폭력' 등의 형태로 나타나며,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시대에는 광풍처럼 밀어닥친 '마녀사냥' 의 형태로 성행하기도 했다.
시간관계상 상기 사례들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고,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은 사람들이 피상적로만 알고 있기에, 학교폭력 얘기는 재미있기에, 이 두 가지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먼저 마녀사냥.은 아무 죄도 없는 여자를 마녀로 몰아 잔인한 고문을 통해 억지 자백을 받은 다음 불에 태워 죽이는 공개처형 방식으로써, 내가 역사공부를 하면서 배운 사실 중에서도 가장 치사하고 야비한 짓거리에 해당한다. 중세의 기독교는 타락할 대로 타락하여 교황의 비위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이단 또는 이교도로 몰아세워 잔혹한 형벌을 가하였는데, 마녀사냥은 교황이 이끄는 교회의 부정자금 축적과 권위강화의 수단으로 철저하게 이용되었다.
여기서 마녀.란 마법을 부리면서 사악한 행동을 일삼는 여자를 일컫는데, 현대사회에서는 페미니스트를 포함하는 용어로 정립되었다. 중세의 마녀사냥.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가능했는데, 마법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미신에 불과하므로, 실제 마녀는 존재할 수도 없었고, 따라서 마녀를 고소하는 악종은 무고의 죄.를 저지른 범죄자였던 셈이다. 타락한 교회에서는 그것이 허위의 고소임을 알면서도, 일단 고소신청을 수락하면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아주 잔인한 고문을 하게 되는데, 안에 가시가 박힌 입족쇄를 채우기, 흉터나 점 부위를 바늘로 찌르기, 불판을 걷게 하기, 강물에 빠뜨리기 등등 무자비한 방식의 고문을 통해 억지 자백을 받아낸 다음 이를 구실삼아 화형에 처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중세의 타락한 교회에서 그렇게 몰수한 재산은 교회를 배불리기 위한 부정자금으로 사용되었으며, 군중들은 공개화형에 처해지는 무고한 여자에게 재미삼아 차마 입에 담을 수 조차 없는 상욕을 퍼붓고, 돌을 던지면서 비아냥거리는 등의 비행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저질렀다. 그들은 억울하게 마녀로 몰린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오락거리로 즐기면서 정신적 쾌락을 느끼는 변태적인 심리를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당시의 군중들이 얼마나 사고수준과 인권의식이 떨어지고, 못배운 티를 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미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삼가 원통하게 생을 마감한 그녀들의 명복을 빈다
이어서 학교폭력.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요즘 애들은, 거짓 소문 내기, 감금, 성폭행, 왕따, 사이버 마녀사냥, 푼돈을 주고 그들이 정한 시간내에 물건을 강제로 사오게 하는 이른바 '빵셔틀' 과 같은 치사하고 야비한 방식의 학교폭력을 서슴없이 저지르는데, 우리때는 그렇지 않았다. 때는 1980년대 중후반으로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초록별, 스핑크스, 돈키호테, 피닉스, 미완성과 같은 불량서클이 있었고, 그 서클을 구성하는 애들은 당시 유행하던 펑크머리를 하고, 나팔바지 또는 통바지에 줄을 세워 입고 다녔다. 그때는 요즘애들과는 달리 강강약강 強強弱強 의 방식으로 행동하였는데, 약한 애들을 조금 괴롭히기도 하였지만, 그들이 이루는 패거리들간의 서열다툼을 위해 학교에서 강자라 불리는 애들과도 바람 잘 날 없이 패싸움을 벌였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놈이 강희.라는 놈인데, 중학교 시절 역도부에 들어가서 운동을 하는 둥 마는 둥 하였다. 키는 180이 조금 안됬고, 팔굵기가 20인치에 달했으며, 몸무게도 130키로가 넘는 놈이 마포자루 또는 잭나이프 같은 무기까지 들고, 혼자서 여러놈들과 싸우는 아주 살벌한 놈이었다. 성격도 포악하여 나중에 군대보다도 군기가 센 서울체고 역도부에 들어갔을 때는, 선배도 때리고 다닐만큼 물불 안가리는 성격이었다. 세월은 흘러 학교애들 모임때, 강희는 장안동 조폭에 들어가 이짓 저짓 하다가, 마약을 하도 해서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까지 했던 그놈에 대한 얘기는 모두 사실이므로, 형법 제308조에 규정된 사자 死者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음을 미리 밝혀둔다.
어쨋든 강희를 비롯한 여러 불량서클 애들은 약한 애들한테는 한명당 일이백원씩 삥을 뜯거나, 시험볼 때 안보여주면 한두대씩 때리고 다니긴 했으나, 심하게 괴롭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놈들의 적수는 자신들과 다른 서클에 속해있는 놈들이라 일단 서로간에 시비가 붙으면, 각목, 쇠파이프, 잭나이프 또는 람보칼, 송곳 같은 무기를 들고 싸우는데, 날카로운 무기를 써도 어깨나 등 윗부분을 찍어 크게 다치게 하지는 않았다. 계들이 적수들을 크게 다치지 않게 한 이유는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패싸움을 하다가 선생님한테 걸리면 학생부로 끌려가 반죽음이 될 때까지 얻어터지거나, 맞은 애들의 다친 정도가 심하면 정학 내지는 퇴학을 당하는걸 무서워했기 때문이었다.
중고교 시절의 나는 그놈들과는 달리 강약약약 強弱弱弱 의 행동을 하는 그냥 평범한 성격이었는데, 중학교 2학년 때 하필이면 초록별.이라는 불량서클에 들어간 놈이 뒷자리에 앉는 바람에, 조금은 힘든 학교생할을 했었다. 그놈은 툭하면 백원짜리나 회수권을 한장 꿔달라고 해서 꿔줬는데 갚지도 않았고, 당시 유행하던 나이키 신발을 신고 오면 바꿔신자고 해서, 그놈이 신던 아주 후진 신발을 며칠동안 신고 다닌 적도 있었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쪽지시험을 자주 봤었는데, 선생님이 정해놓은 점수에 미달되는 놈들은 칠판 앞으로 끌려나와 일명 '빳다' 를 열대씩이나 맞는 공개처형을 당했다. 그걸 면하기 위해 그놈은 쪽지시험을 볼 때마다 나에게 보여달라고 해서 보여줬더니, 그 뒤로는 백원짜리나 회수권 한장을 꿔달라거나 신발을 바꿔신자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나는 대한체육과학대학(현 용인대학교) 무도학부 검도전공으로 입학하게 되었는데, 당시 문무를 겸비하신 김영학 교수님 수하에서 무예와 학문을 두루 익히면서, 진정한 무사도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웠다. 그러면서 서서히 강강약약 強強弱弱 의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는데, 세월이 한참 지난 현재까지도 피가 끓어서, 아무리 강하거나 약한 놈이라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생각해보니 노老 는 지금 가린다), 나에게 치사하고 야비한 짓을 하는 놈이면 그자리에서 응징을 해버린다. 인터넷에서조차 내 글(특히 정치나 종교에 관한 글) 에 악플을 다는 놈이면, 나만의 수려하고 공격적인 글빨로 아주 철저하게 밟아준다.
심지어는 2006년경에 다니던 회사에서 그쪽동네 출신으로 이사 직책을 담당하던 놈이 강제로 티타임을 갖자며 아침부터 이유없이 갈구고, 점심도 같이 먹자면서 젓가락질을 비롯하여 반찬먹는 순서까지 지적하며, 심지어는 허구한 날 내가 앉은 자리를 뺏어 앉아서 극히 사적인 훈계까지 해가며 괴롭히기에, 나는 빡이 돌아서 다음날 아침에 직원들 다 보는데서 사표를 내던진 후 목검으로 그 이사놈의 대가리를 후려갈긴 적도 있다. 그걸 지켜본 직원들은 나중에 잘했다면서 환호의 박수를 보냈으나, 나는 그들을 외면하고 무시했다. 왜냐하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고 말해놓고 서로 떠넘기는 쥐새*들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그 사실을 보고받은 사장님은 평소에 나를 신임하고 계셨기에, 그 이사에게 일체의 고소고발은 하지말라고 경고섞인 지시를 하셨고, 따로 나를 불러 다른 계열사로 보내주겠다고 제안하셨으나, 내가 스스로 정중히 거절했다. 지금도 나는 나를 해롭게 하는 놈이 나타나면, 그놈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모가지를 물고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안놔준다. 만일 내가 난공불락 難攻不落 의 최홍만이랑 싸우다 죽더라도, 그놈의 눈깔 두 개는 가져간다는 각오로 싸우기에, 이제 그런 내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아얘 나를 건들지조차 않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忠, 孝, 信, 勇, 仁 으로 요약되는 검도의 5대정신과, 진정한 무사도정신에 대해 이론만 빠삭하지, 정작으로 실천을 하지 않기에 늘 아쉽다.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