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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땅과 하늘

phantom |2026.01.02 06:09
조회 11 |추천 0

 

하늘과 땅, 땅과 하늘

아버지 야아콥이 세상을 떠나기 전, 요셉은 두 아들 에프라임과 므낫쉐를 데리고 존경하는 할아버지 야아콥에게 축복을 받으러 갔습니다. 므낫쉐는 요셉의 장남이었기에 더 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었지만, 야아콥은 깊은 지혜로 에프라임이 더 큰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보내어 에프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므낫쉐의 머리에 얹으니, 에프라임을 므낫쉐 앞에 세우셨다(창세기 48:14-20)."

토라는 야아콥과 요셉 사이에 이 이상해 보이는 행동에 대해 벌어진 대화를 묘사합니다. 요셉은 당시 시력을 잃은 아버지가 단순히 실수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오류를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거절하며 이르시되 내가 아노라 그(므낫쉐)도 민족의 중심이 되어 크게 될 것이요 그의 동생은 그보다 더 크게 될 것이라 하시니라"(창세기 48:19)

누구나 한 번쯤은 "도대체 어떤 손을 누구의 머리에 얹느냐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축복의 효력이 오로지 그 내용과 의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토라는 분명히 그와 반대되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손을 누구의 머리에 얹느냐가 그 축복의 효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이쯔학 아비누(יִצְחָק אָבִינוּ, 이쯔학,우리 아버지)가 에싸브를 축복하려 했을 때에도 비슷한 개념이 나타납니다. 그는 에싸브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가져오라고 명령하고 “내가 그것을 먹으면 내 영혼이 너를 축복하리라(창세기 27:4).”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도 음식을 먹는 것이 아들에게 축복을 전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우리는 토라와 유대교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 중 하나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현실과 형이상학적/영적인 현실, 이 두 가지 현실을 지닌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느 한쪽이 없으면 인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가장 효과적으로 섬기려면 우리 존재의 두 가지 측면을 함께 활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더욱 깊습니다. 물질 세계에 사는 인간으로서 네샤마(נשמה, 영혼)는 이 물질계로 내려오고, 육체는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우리의 주된 기능 영역은 물질계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물질계를 올바르게 사용하고 그 안에서 제대로 기능할 때에만 영적인 영역에 온전히 접근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야아콥이 에프라임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은 행위는 그토록 큰 의미를 지녔습니다. 야아콥은 자신의 더 강한 팔을 사용하여 에프라임을 축복함으로써, 자신 안에 내재된 강력한 영적 힘을 끌어낸 것입니다. 육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영적인 힘을 발휘하고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우리의 육체적 능력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쯔학이 아들이 가져온 진미를 맛볼 때, 그가 경험한 육체적인 만족감과 기쁨은 그의 영적인 열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육체적 행위를 통해 영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육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만약 육체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영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육체적인 쾌락의 저속함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오직 토라에 따라 육체적인 행위를 하고, 그 행위에 고귀한 목적과 의미를 불어넣을 때에만, 육체는 영적인 영역에 접근하고 그 영역을 확장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토라가 육체적인 행동과 관련된 수많은 미쯔바(계명)를 강조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육체적인 행동은 우리의 존재 전체에 영성을 불어넣는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러한 육체적인 행동을 통해 우리는 영성에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마음속에 새기면 우리의 모든 육체적인 행동에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그리고 미쯔바를 세심하게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행동에 목적과 의미를 끊임없이 불어넣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를 더욱 잘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 최고의 위대함과 영성을 성취하려면 육체를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들이 있습니다. (물론, 금욕은 인류의 멸망으로 이어지므로, 소수만이 이러한 "거룩함"을 얻을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그들에게 경배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유대인들은 그것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말합니다. 토라는 우리에게 우리 존재의 모든 부분이 육체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온전히 인식하도록 가르칩니다. 우리는 육체적인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영적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By Rabbi Yehoshua B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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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jewishlearning/22386597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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