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마(שְׁמַע) 기도 중에 눈을 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쉐마의 처음 여섯 단어를 읊을 때 오른손으로 눈을 가리는 것은 유대인들이 공통적으로 행하는 관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간단히 말해서, 그렇게 하면 시각적 방해 없이 제대로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Shulchan Aruch, Orach Chaim 61:5.)
쉐마(שְׁמַע)의 첫 구절을 암송할 때, 다른 기도 부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올바른 의도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구절을 암송할 때, 단순히 그 의미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멍에를 받아들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된 실재라는 생각에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의도는 너무나 중요해서, 이 구절을 암송하면서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다시 암송해야 합니다.
눈을 가리는 관습은 미슈나(Mishnah)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랍비 예후다 하나시 (Yehuda HaNasi: 유다 왕자)는 쉐마의 첫 구절을 낭송할 때 눈을 가렸다고 합니다. (Talmud, Berachot 13b).
눈의 방향
그러나 일부 초기 주석가들은 랍비 예후다 하네시(Yehuda HaNasi)가 쉐마를 낭송하는 동안 눈을 가린 이유를, 세상 전체에 걸쳐 신의 주권을 인정하기 위해 모든 방향을 바라보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랍비 예후다는 쉐마(שְׁמַע)를 낭송하는 동안 자신의 정확한 눈 움직임을 감추고 싶어 눈을 가렸습니다. (탈무드, 베라콧 13b)
눈먼 소녀의 비밀
카발리스트들, 특히 아리잘(Arizal)로 알려진 이쯔하크 루리아(Yitzchak Luria) 랍비는 쉐마(שְׁמַע)의 첫 구절을 암송할 때 오른손으로 눈을 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리잘은 이것이 조하르(Zohar)에 나오는 매우 불가사의한 "수수께끼"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조하르에 따르면, 겉보기에는 당나귀 몰이꾼으로 보이는 "한 노인"(סבא, 사바)이 여행 중 랍비 요시(Yossi)를 만나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랍비 요시는 그 질문들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동료 랍비 히야(Chiya)는 그 질문들에 숨겨진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직감했고, 더 깊이 파고든 끝에 그 노인이 사실은 그들에게 가장 심오한 신비로운 비밀들을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이해하기 가장 어려워했던 "수수께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눈이 없는 아름다운 처녀는 누구인가? 그녀의 몸은 감춰졌다 드러나기를 반복하며, 아침에 나타났다가 낮 동안 사라진다, 존재하지도 않는 장신구로 치장한 그녀는 누구인가?
이 "수수께끼"의 의미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습니다. (The Riddle of the Saba). 하지만 쉐마(שְׁמַע)의 해석과 관련하여 아리잘의 설명을 단순화하자면, "처녀"는 신성한 속성인 말쿠트(מַלְכוּת, 왕권)를 가리키며, 이는 때로 신성의 여성적 측면인 쉐키나(שְׁכִינָה)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맥락에서 그녀는 또한 "라헬(Rachel)"이라 불립니다.
카발라적 우주관에는 네 가지 영적 세계가 있으며, 그중 아찔루트(אֲצִילוּת, 발현)의 세계가 가장 높은 차원에 있습니다. 이 영역에서는 어떤 것도 물리적 형태나 색깔을 가지지 않으며, 시각 또한 존재하지 않습나다.
우리가 쉐마(שְׁמַע)를 암송할 때, 우리는 마인 누크빈(מַיִם נוֹקְבִין. 여성의 물)을 아찔루트의 세계로 승화시켜 여성성과 남성성의 결합, 또는 영혼과 쉐키나의 결합을 위한 토대를 마련합니다. 마인 누크빈이 시야를 초월하는 아찔루트의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에, 쉐마(שְׁמַע)의 첫 구절을 암송할 때는 눈을 감아야 합니다.
우리가 (왼손잡이일지라도) 특별히 오른손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비(חֶסֶד, 헤세드)의 속성과 마인 데후린(מַיִּין דְּכוּרִין, 남성의 물")을 상징하기 때문인데, 이 또한 이 "수수께끼"와 관련이 있습니다.
시각 장애인들은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탈무드 전체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사기 나호르(סגי נהור)라고 불리는데, 이는 "빛이 충분한" 또는 "빛으로 가득 찬"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육체적인 시야가 종종 내면의 영적 시야와 상충하고 약화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유일성, 즉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된 실재라는 생각은 종종 우리의 오감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며 주변 세상을 경험하는 반면, 신성은 추상적이고 영적인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쉐마(שְׁמַע)를 낭송하고 하나님의 유일성을 선포할 때, 우리는 참된 현실이 우리의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자연스럽고 직관적으로 경험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언하는 것입니다. 눈을 가리는 것은 우리가 육체적인 것에서 벗어나 영적인 것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Kli Yakar, Numbers 24:4; Mishnat Chachamim 23:495)
쉐키나(שְׁכִינָה)가 얼굴 위에 임합니다
우리가 쉐마(שְׁמַע)를 암송하고 하늘의 멍에를 받아들일 때, 신성한 임재인 쉐키나(שְׁכִינָה)가 우리 얼굴 위에 임합니다. 신성한 임재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우리는 얼굴을 가립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쉐에게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바위 틈에 두고 내가 지나갈 때까지 내 손으로 너를 가리리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기 33:22)
심판과 자비
쉐마(שְׁמַע)의 첫 구절에서 우리는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여호와는 한 분이시니라”라고 선포합니다. (신명기 6:4). 이 선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힘과 심판의 속성과 하나님의 자비의 속성이 실제로 하나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을 가립니다. 이는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사실은 긍정적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Kol Arye, Vayigash).
물론, 우리는 이 긍정적인 현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그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By Rabbi Yehuda Shurpin
Art by Yitzchok Schmuk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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