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의 아버지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사람이다.
몸의 절반이 말을 듣지 않았고,
재활이라는 이름의 긴 시간을 견뎌야 했던 남편이자
나이 어린 아기의 아버지였다.
그 시기에 배우자는 해외에 있었고,
아기과 함께 한국으로 하루라도 빨리 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제대로 걷지도, 말하지도 못했지만
가족만큼은 지키고 싶어서 그 선택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배우자와 나이어린 아기가 한국에 도착한 뒤
우리의 삶은 빠르게 무너졌다.
배우자는 환자인 남편이 싫다고 반복적으로 이혼을 요구했고,
집안에는 갈등과 불안이 쌓였다.
그리고 어느 날,
배우자는 생후 16개월 아기를 데리고
집을 나갔다.
나는 뇌경색 후유장애로 움직이기조차 어려운 상태에서
그 집에 혼자 남겨졌다.
그 후 아기과 배우자는
국가가 운영하는 이주여성 보호시설로 옮겨졌다.
나는 아기의 아버지이자 법적 친권자였지만,
아기가 어디에서 어떤 보호를 받고 있는지
공식적으로 통지받지 못했다.
그 보호는 며칠이나 몇 주가 아니었다.
아기와 배우자는 약 1년 동안
그 보호체계 안에서 함께 머물렀다.
그리고 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수사와 기관 판단을 통해
배우자가 가정폭력 가해자로 확인되어
해당 시설에서 강제 퇴소 조치를 받았다.
그 1년은 무엇이었을까.
아기에게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그리고 친권자인 아버지에게는
어떤 의미의 시간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아기를 만나지 못한다.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있는지,
공식적인 통지조차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권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특별한 지위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나는 다만
병든 몸으로도
아기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한 아버지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을 비난하기보다
제도에 묻고 싶다.
왜 이 제도는,
중증 질병을 가진 배우자를 남겨둔 사람이
가해자로 판명되기 전까지
1년 동안 아무런 교차 검증 없이
피해자 보호의 이름으로 운영될 수 있었는가.
왜 이 제도에는,
아기의 법적 보호자인 친권자에게
최소한의 통지와 확인조차 하지 않는 구조가 존재하는가.
만약 이런 제도가 꼭 필요하다면,
왜 그 안에는 오판과 남용을 막기 위한
독립적인 검증과 사후 점검 장치가 없는가.
국가가 운영하는 보호 제도라면,
최소한 아기의 안전과
부모의 법적 권리가
동시에 확인되는 장치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오늘도 묻는다.
이 제도는 누구를 보호하고 있으며,
그 보호의 이름으로
누가 배제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도,
아기를 보거나 울음소리 조 차 듣지도 못한 채
그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