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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네 단계

phantom |2026.01.16 17:15
조회 17 |추천 0

 

해방의 네 단계

해방이라는 경험이 펼쳐짐에 따라 하나님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유대교적 '해방 신학'을 논한다면, 그 뿌리는 바로 이곳, 하나님이 모쉐에게 행하신 두 번째 계시가 담긴 파라샤 바에라(Parashat Vaera)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모쉐의 첫 만남은 호렙산의 타지 않는 떨기나무 아래서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주저하는 예언자 모쉐에게 자신을 처음 소개하셨습니다. 이제 모쉐는 자신이 태어난 땅이자 동족들이 노예 생활의 고통을 겪고 있는 미쯔라임(Mitzrayim, 이집트)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 '궁극적 존재(The Ultimate)'는 다시 한번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쯔학과 야아콥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내 이름 여호와로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노라…” (출애굽기 6:2-3).

하나님의 이름들

처음 읽을 때 이 구절은 상당히 기이하게 다가옵니다. 발음할 수 없는 성스러운 이름인 '여호와(YHVH)'는 창세기 전반에 걸쳐 자유롭게 사용되었으며, 모쉐가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하나님이 직접 사용하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족장들과 모쉐가 이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중세 유대교 주석가인 라시(Rashi)는 여기서 "알리지 아니하였느니라(lo nodati)"를 "알려지게 되지 않았다"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즉, 쟁점은 하나님의 특정 '호칭'이 아니라, 이 순간 전까지는 결코 "알려지지 않았던" 하나님다움(Godliness)의 한 속성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그 누구에게도 계시되지 않았던 무언가가 지금 모쉐에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이름(여호와, YHVH)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주목할 첫 번째 사실은 '여호와, YHVH'라는 이름의 충만함이 바로 유배와 억압의 전형적 장소인 미쯔라임(Mitzrayim, 이집트)땅 한복판에서 알려졌다는 점입니다.

'여호와,YHVH'는 '과거였고(Was), 현재이며(Is), 미래일(Will Be)'이라는 시제들을 포함하며, '생성(Becoming)'과 '가능성(Possibility)'을 내포하는 역동적인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억압과 해방의 본질에 관한 메시지와 함께 모쉐에게 계시되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들었노라. 그들이 애굽인에게 억압을 받고 있느니라. 내가 나의 언약을 기억하였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너희를 애굽인의 수고에서 이끌어 내고 그들의 억압에서 구원하리라. 내가 내 팔을 펴고 큰 심판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출애굽기 6:5-7)

해방의 4단계

하나님은 여기서 모쉐에게 해방 과정의 네 단계를 설명하십니다. 이 단계들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구출하다(Taken out)”는 억압적인 상황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시디즘(Hasidism) 주석가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한 것이 구원의 첫 단계를 형성했다고 봅니다. 즉, 이전까지는 너무나 굴종되어 있어 자신들이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빼내다'는 자신이 억압받고 있음을 깨닫고, 고통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이해하는 능력을 뜻하기도 합니다.

건지다(Delivered)는 내면화된 억압을 다루는 개인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물리적 탈출뿐만 아니라, 우리를 여전히 노예 상태로 묶어두는 내면의 해방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해방은 개인의 차원에 머물 수 없다. 비록 내가 신체적·정신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유를 얻는 데 성공한다 해도, 억압적 상황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따라서 '구원(Redeemed)'이란 타인과 함께 협력하여 억압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고, 어떠한 형태의 노예화나 타락을 초래하는 요인들을 뿌리 뽑기 시작하는 더 큰 과정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존재를 섬기는 거룩한 사명을 위해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으리라"는 말씀은 개인적·공동체적 자유의 궁극적 목표를 가리킵니다: 부와 권력, 자기 과시 같은 제한된 인간적 목표를 넘어, 궁극적 가치를 지닌 존재를 섬기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되어짐의 힘', '가능성의 근원'을 섬긴다는 것은 지구상의 모든 거주자가 육체적 안녕과 영적 충족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구상하고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으로 '끌려가는(taken to)' 것은 존재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폭력과 지속적인 억압이 만연한 이 역사적 순간의 제약을 넘어 해방의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노예 상태에서 자유의 상태로 이동하는 현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것이 공동체의 노력임을 분명히 합니다. 즉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자유

메시지는 다음의 구절로 끝납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를 미쯔라임의 노예 생활에서 이끌어 내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되리라.”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새로운 방식으로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해방(liberation)이라는 전개되는 경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될 것이며, 생명의 근원(Source of Life)과 새로운 차원에서 연결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알려지게 되십니다.

By Rabbi Toba Spitzer

▶글 전체 목차는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jewishlearning/22386597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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