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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어머니의 긴 회고록

쓰니 |2026.01.19 12:38
조회 140 |추천 1
- 어느 어머니의 긴 회고록-
창밖으로 지는 노을이 길게 방 안까지 드리워진다. 젊었을 적엔 저 노을을 볼 틈도 없이 살았다. 산등성이를 넘으며 장사를 하고, 흙먼지 날리는 길 위에서 자식들 입에 들어갈 쌀을 고민하던 그 치열했던 세월이 이제는 아스라한 꿈만 같다. 나는 이 집안의 성벽이었다. 여자라는 이름은 일찍이 지우고, 가문의 투사라는 갑옷을 입은 채 누구에게도 틈을 보이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살았다.
내 인생은 늘 전쟁이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전쟁터에서 나 혼자 싸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밖으로 돌며 재산을 일구고 전략을 짤 수 있었던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집안의 기틀을 지탱해 준 가족들의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나는 내게 주어진 역할 하나를 감당해 내는 것만으로도 벅찼기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깊이 둘러볼 여력이 없었다. 그것이 당시 내가 지닌 삶의 한계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곁에 있는 남편을 본다. 평생을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았으나, 우리는 참으로 다른 세상을 걸어왔다. 이 사람은 가장의 위엄을 지키고 자식들의 성공과 화목이라는 겉모습에 만족하며 살았지만, 그 풍경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진흙탕을 굴러왔는지 정녕 알고나 있을까. 때로는 이 사람의 침묵이 원망스러웠다. 집안의 세세한 갈등을 외면한 채 '좋게 지내라'는 말로 방관하는 모습이 나를 더 독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 그를 탓해 무엇하랴. 이 사람 또한 그 시대가 만든 질서 속에서 가장이라는 무게를 침묵으로 견뎌왔음을 이제는 안다. 이제는 서로의 고단했던 등을 말없이 토닥여줄 때가 되었다.
큰딸, 내 딸을 생각하면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듯 아프다. 장녀라는 이유로 동생들 매를 대신 맞고, 내 서슬 퍼런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내 곁을 맴돌며 하소연하는 건, 어쩌면 어린 시절 충분히 받지 못한 내 사랑을 이제야 갈구하는 서글픈 몸짓일 게다. 딸아, 네 희생은 형제의 성공 아래 묻힌 것이 아니라 내 심장 깊은 곳에 흉터처럼 남아 있단다. 이제는 그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누구보다 너 자신을 위한 평화를 찾길 바란다.
집안의 장자가 제 길을 찾아 관습을 끊어냈을 때, 처음엔 마음이 서늘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며, 귀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느냐. 자식이 제 가정을 지키려 단호해진 것이 어찌 누구의 탓이겠느냐. 그저 거친 세상을 살아내느라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가 지나온 고단한 세월의 탓이겠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평온함은 사실상 그동안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왔던 가족 모두의 인내와 희생 덕분에 가능한 것임을 이제는 가만히 느껴본다.

이제 나는 내 손에 꽉 쥐고 있던 통제권이라는 고삐를 놓으려 한다. 내가 만든 '형제 우애'라는 이름의 연극에 자식들을 강제로 세우지 않겠다. 가족들이 각자의 아내를 지키고, 스스로 일군 가정 안에서 온전한 휴식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내가 일군 이 가문이 마땅히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였음을 이제는 인정한다. 
내가 쏟아붓던 피해의식이나 지난날의 원망이 그들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식들아,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해라. 어머니인 나는 이제 '희생의 주인공'이라는 무거운 배역을 내려놓고, 너희가 차려주는 따뜻한 차 한 잔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평범한 노인으로 살아가련다. 나를 옥죄던 그 무거운 굴레를 이제는 노을 속으로 함께 흘려보내자.굽이진 길을 돌아 이제야 평지에 들어선 기분이다. 
우리가 함께 건너온 그 거친 강물이 이제는 잔잔한 호수가 되어 우리 모두를 품어주길, 그리고 그 호숫가에 앉아 우리 서로를 '고생했다'는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제야 비로소 가슴 속 응어리가 풀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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