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홀로코스트를 기억해야 하는가?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은 오늘날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되새기게 해줍니다.
1월 27일은 소련군이 아우슈비츠(Auschwitz)를 해방한 날을 기념하는 유엔의 홀로코스트 추모일입니다. 유엔 본부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념하는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이 유일한 추모일은 아닙니다. 일부 국가는 자국의 홀로코스트 역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날짜를 기념합니다. 전 세계 유대인들은 히브리력으로 니산월 27일을 기념하는데,(욤 하쇼아, יום השואה) 이 날은 유월절 직후이자 1943년 바르샤바 게토(Warsaw Ghetto)봉기와 가까운 날짜로, 이 참혹한 사건들을 기억하기 위한 날입니다.
우리는 “왜 70 여년 전에 시작되어 유럽 거의 전역을 휩쓴 홀로코스트를 기억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것이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홀로코스트의 본질이었던 악, 조직적인 악, 국가가 후원한 악, 산업화된 살인, 대량 학살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홀로코스트의 상징적인 발명품인 죽음의 수용소와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의 임무는 대량 학살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우리와는 다른, 가학적이고 범죄적인 사람들이 있었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 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변호사, 의사, 목사, 경제학자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이 배운 기술을 이용하여 더욱 효율적인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열정적이었고, 어떤 이들은 마지못해 살인에 가담했지만, 결국 모두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
이러한 일이 일어났기에 우리는 희생자들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불가능과 끔찍함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을 강요받았고, 자신의 운명을 바꿀 힘이 거의 없는 무력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수동적이지 않았습니다. 저항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고, 용기는 여러 방식으로 발휘되었으며, 무기는 최후의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중립의 무관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무력한 희생자와 압도적으로 강력한 살상 기계 사이의 투쟁에서 중립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무관심은 사형 선고와 같습니다. 방관자는 또한 범죄를 방조하는 자입니다.
홀로코스트를 알아가면서 우리는 악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게 되어, 감각이 마비되고 절망에 빠지며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홀로코스트는 분명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만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집과 마음을 열어 희생자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잠잘 곳과 빵 한 조각, 따뜻한 말 한마디, 숨을 곳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선행이 가능했을까요? 왜 어떤 사람들은 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그들을 '용감한 사람들(Upstander)'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기억하며,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홀로코스트는 서서히 시작되었습니다. 오랜 편견은 차별로, 차별은 박해로, 박해는 투옥으로, 투옥은 절멸로 이어졌습니다.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로 절정에 달한 대량 학살은 유대인으로부터 시작된 것도 아니고, 유대인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 집단의 권리 침해는 그 집단에만 국한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학자들은 홀로코스트의 여러 단계를 밝혀냈습니다. 그 결과 인간성 말살과 대량 학살이 뒤따르기 전, 박해와 차별이 시작되는 초기 단계에서 대량 학살을 막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무리 불안정하더라도 민주주의는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민주주의 통치에 대한 의지가 약해질 때, 정치적 반대자들이 적으로 간주되어 모든 정당성을 박탈당할 때, 폭력이 용인되고 결국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데 사용될 때, 시민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제한될 때, 그리고 민주주의 제도가 약화될 때 민주주의는 훼손될 수 있습니다.
슬프게도 홀로코스트가 제기한 문제들은 과거의 일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아르메니아인(Armenian)들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Jews)들의 운명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 유엔이 법으로 금지한 범죄인 '제노사이드(Genocide)'는 1945년 이후에도,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억압과 죽음을 피해 도망치는 난민들은 여전히 지구 대부분 지역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으며, 종교 간 증오와 종교 내부 갈등 또한 만연해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해는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쉽지 않습니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직면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에 대한 연구는 삶을 위한 것이며, 이 악행에 대한 연구는 선과 도덕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홀로코스트는 신앙을 산산이 조각냅니다. 신에 대한 믿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세속적인 믿음,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믿음, 심지어 역사의 흐름이 정의를 향해 나아간다는 가르침까지 부셔놓습니다. 홀로코스트는 해답을 거의 제시하지 못하고 수많은 질문을 던지지만, 이러한 질문들은 그 악에 맞서는 도덕적 투쟁을 촉구합니다.
홀로코스트는 희생자들, 즉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외침은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곳에 있었던 자들과 그렇지 않았던 자들로부터, 기억의 절박함과 그 고통과 괴로움, 의미의 존재와 부재를 듣습니다. 우리 시대에 살아간다는 것은 그 부재와 함께 그 잊을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By Michael Berenb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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