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좋아하던 동아리 후배가 있었다.
군대에 가기 전, 우리는 약간의 썸을 타고 있었고
분명 고백할 수 있는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내 욕심으로 그녀의 시간을 붙잡고 싶지 않
다는 핑계로 나는 그저 혼자 마음을 눌러 담은 채 입대를 선택했다.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군대를 다녀와도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제대하고 나서 보니 그녀는 여전히 혼자였다.
스스로에게 계속 유예를 주던 나는 고백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한 술자리에서 동기를 통해 흘러 흘러 듣게 된 이야기 하나.
내가 군대에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와 같은 동향 남자애 면회를 갔다가 어찌 동침을 했고,
그걸 그 ㅅㅋ는 자랑처럼 떠벌리고 다녔다는 말이었다.
그말을 듣고, 그 순간,
몇 년 동안 조심스럽게 쌓아 올렸던 나의 마음이 소리도 없이 무너졌다.
조심스럽게 품고 쉽게 꺼내 보이지도 못했던 마음이 누군가의 허세 섞인 무용담으로 술자리 안주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날의 한잔 소주보다 더 쓰더라.
나는 너무도 조심했고, 그래서 늦었다.
말하지 않은 마음은 결국, 아무에게도 도착하지 않았고, 내 마음속에서 맴돌뿐이었다.
이모든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내안에서 후회는 맴돈다.
정작 위로받아야 했을 그녀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 채, 나는 조용히 물러났다.
기회가 있어도 다가가지 못했고, 상처를 알면서도 외면했다.
그건 용기없던 나의 미숙함이었고, 그녀의 상처 앞에서 도망친 비겁한 침묵이었다.
안녕, 잘 지내니.
이 짧은 인사를 건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네.
제대하면, 조금 더 어른이 되면,
아니면 내가 좀 더 준비가 되면...
그렇게 스스로에게 관대했던 수많은 ‘유예’들이
사실은 너에게 다가갈 용기가 없었던
나의 비겁함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해.
군대에 가기 전, 나는 그게 너를 향한
최선의 배려라고 믿었어.
기다림이라는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
내 욕심으로 너의 찬란한 시간을 붙잡고 싶지 않아서
나는 입을 닫았지. 하지만 그 침묵이 결국
너를 혼자 두게 만들었고,
내가 없는 사이 너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세상은 무너져 내렸어.
어느 술자리에서 들었던 그 잔인한 이야기들.
소중한 네가 누군가의 가벼운 자랑거리가 되어
떠돌고 있을 때,
나는 네 상처를 감싸 안아줄 자격조차 없다는
생각에 또 한 번 숨어버렸지.
첫 번째 후회는 말하지 못한 나의 미숙함이었고,
두 번째 후회는 네 상처를 알면서도 도망친 나의 침묵이었어.
내가 배려라고 믿었던 그 모든 고요함이 실은
너를 가장 외롭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전히 이맘때 겨울이면 마음 한구석이 시려오곤 해.
이제는 결코 너에게 닿지 못할 말이지만..
부디 지금의 너는,
시린 계절을 지나 누군가의 다정한 진심 안에서
매일이 봄 같기를 기도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