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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제 5장

레모네이드 |2004.03.20 08:38
조회 1,646 |추천 0

 

5장

 

 

 

커다란 유리로 만든 유리문이 안개가 걷히듯이 눈앞에서 조용히 사라지자 가진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는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병원을 개원한 후 거의 찾아온 일이 없던 병원장의 아내가 서늘한 눈매를 하고 들어서자 안내데스크의 아가씨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가진에게 인사를 건네며 고개를 숙이며 인터폰을 드는 것이 보였다.

 

[아니에요. 원장님이 오늘은 외부강의때문에 늦게 병원에 오신다고 들었으니 귀찮게 하지 말아요. 그러니까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하세요.]

 

[네? 네에...]
 
가진이 신은 구두의 날카로운 마찰음이 원장실로 가려면 타야하는 엘리베이터 대신, 업무과가 있는 로비의 끝으로 향하자 로비에 있던 직원들이 동시에 공포에 찬 표정으로 숨을 죽이자 가진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걸었다.

'그래, 나만 모르고 다들 알고 있었다는 소리군?  당신이라는 남자... 사람 비참하게 만드는 솜씨에 치가 다 떨려.'

어느새 업무과 사무실이 들여다보이는 창문 앞에 선 가진은 업무과의 문을 노크하거나 누군가를 부르려는 기색도 없이 그저 유리창문 건너편에 커다란 유리데스크 뒤에 심플한 디자인의 의자에 앉아 서류를 시선을 집중시중하고 있는 여자를 고요히 노려보기만 했다.

 

[사무장님.]

 

[응?]

 

[저기 밖에 사모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데요.]

유정은 서류에 집중해 있는 눈을 들어 긴장한 어투로 말을 전하는 여직원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다들 사모님이라고 불리는 여자가 자신을 비웃고 서있는 게 보였다.
'드디어 터졌나 보군'
[채연씨, 나 잠깐 자리를 비워야 하거든. 그러니까 전화오면 돌려 줘.]
옷걸이에 걸려있는 하얀 모피코트를 들어 팔에 꿰며 유정은 창밖의 가진을 향해 미소를 날렸다.
'사모님, 당신이 아무리 그래봤자 난 무서운 게 없는 여자야.'

[사모님. 저를 만나러 오신 거 맞죠?]

 

[네]
자신이 입은 하얀 여우코트처럼 겉은 연약하고 결백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유정이 예쁜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을 나서자, 가진은 차갑고 예의바른 미소를 지어 유정을 의아한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네가 강한척 해도 사람이고 여자 아니겠니?'

[유정씨가 나한테 직접 설명할 것이 있는 걸로 아는 데요?]

 

[그런가요? 모르겠는데요?]
'웃기고 있네'

[

일단 원장실로 가죠. 여기서 다른 사람들 재미있게 해줄 생각은 없거든요.]

 

당연히 밖으로 나가자고 할 것 같아 태민이 사준 코트를 걸쳤건만 이 사모님이라는 여자는 미쳤는지 자신을 원장실로 부르는 것이 아닌가?
[사모님, 곧 원장님 들어오실 시간인데요?]

 

[그래서요? 아내가 그것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이야기도 아니고 나는 시끄러운 카페 같은 곳에서 유정씨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왜? 네가 사랑하는 태민씨가 볼까 겁나니?'
가진은 눈가에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업무과와는 반대편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뭐. 사모님이 하시는 일에 직원이 뭐라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네 남편은 어쩔 건데?'
일부러 원장의 아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유정은 자신들을 쳐다보는 직원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턱을 도도하게 쳐들어 보이자 로비에 있는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만드는 소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 사이에 등골이 서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직원전용 엘리테이터의 문이 닫히고 기계의 미약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가진은 입가에 걸었던 미소를 싹 거두며 유정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비위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유정씨 얼굴을 보니 구역질이 나네.]

 

[그런가요, 사.모.님? ]

일부러 약올리려고 '사모님'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한 유정은 5층에 도착을 알리는 벨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리자 자신이 먼저 내려 병원장실로 앞서 걸어갔다. 그리고는 원장실의 문을 힘차게 열어 보이며 가진에게 고갯짓을 했다.
[들어가시죠.]

 

유정이 어떤 짓을 하던 가진은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방에 들어서 접대용 쇼파의 상석에 스커트를 정리하며 앉은 가진은 유정이 문을 닫고 소파 쪽으로 다가오자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게 말을 붙였다.
[커피 한잔 부탁해요.]

 

[지금 이 분위기에서 서로 기분 좋게 커피나 마실 여유는 없는 거 아닌가요?]

 

[지금 분위기가 뭐 어때서요?]
'왜? 내가 네 머리채라도 잡고 욕이라도 할 줄 알았니?'

 

'어째서 저렇게 여유가 있는 거야?'
[저는 집에서 한가하게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여자가 아니고 직업여성이랍니다. 그러니 얼른 끝내죠?]
슬슬 조급증이 나기 시작한 유정은 유정이 앉은 소파의 반대편에 앉으며 짜증을 냈다.

 

[그럼 나 혼자 마시죠.]
상대 여자가 초조하던 말던 무관신한 태도로 대꾸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가진은 유정에게 등을 돌린 채 각종 의학서적이 그득한 책장 곁에 준비된 타이머가 달려있는 커피메이커가 주인을 기다리며 만들어 낸 풍부한 향의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한 잔을 웨지우드 커피 잔에 조심스럽게 따라 그윽한 향을 들이마시며 말을 시작했다.
[내 남편 앞에서 사라져 줘야겠어요. 그것도 영원히!]

 

[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나요? 그 잘난 아내라는 자리 말고는 말이지]

 

[당신이 말하는 아내라는 여자는 당신에게 이럴 자격이 충분히 자격이 있어요. 그리고 당신에게는 그런 자격이 없으니 내 남편과 비밀스러운 정사를 하는 이유가 아니겠어요?]
여전히 유정에게 등을 돌린 채  방안을 구경하며 커피를 마시는 가진은 여유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끌었다.

 

[아내? 밥이나 차려주고 빨래하고 다림질이나 하는 것은 가정부라도 충분한 거 아니에요?
당신은 가정부나 다름없는 여자라구. 하지만 나는 그에게 있어서 사업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완벽한 여자라구. 또 모르지 당신이 아이라도 낳을 주제라면 모를 까. 애도 낳지 못하는 주제에!]
자신이 아이문제를 들고 나오기 무섭게 가진의 등이 긴장하는 것을 보자 유정은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태민씨가 그러던 가요? 나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그래, 당신이 병신이라 그렇다고. 하기사 섹스에 재주도 없는 여자가 애라고 잘 만들겠어? 그 정도면 알아서 이혼하고 물러서야 하는 거 아냐?]

 

이제는 아예 반말로 나가는 유정의 말을 들으며 가진은 그녀에게 돌아섰다.
[이혼이라........]

 

/꽝!!!/

 

[누구 마음대로 이혼이라는 소리를 입에 올려!]

 

분명 밖에서 귀를 들이대고 대화를 다들은 것이 분명한 태민이 서슬이 퍼런 얼굴로 방으로 들이닥쳐서는 고함을 질러댔다. 그것도 자신의 애인인 유정에게 말이다.
'당신이라는 남자, 정말 비열하군'
[누가 당신의 아내인지 나도 모르겠군요. 지금까지 유정씨가 말한 것으로 봐서는.]

 

[내가 말했지.  이 세상에서 법적인 아내는 당신뿐이라고! 난 죽어도 당신하고 이혼같은 거 못해! ]

 

분을 삭히지 못하고 그렇게 아끼는 팔에 걸치고 있던 수입 양모로 만든 코트를 바닥에 집어  던지며 자신을 쳐다보는 두 여자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판결을 내버리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 본 가진은 커피 잔은 커피테이블에 내려놓으며 태민에게 입을 열었다.
[당신의 사랑은 참 편리한 사랑이네요. 아내에게도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사랑을 - 아! 그걸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 사랑이라는 조건하에서 말이지만- 주고, 그리고 당신의 애인에게도 당신이 필요한 만큼만 주고]


[그래도 사회가 인정하는 사랑은 당신 뿐이야. 저 여자는 아니라구. 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참을 거 같아?]

 

처음부터 가진은 유정이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일부러 유도심문을 했다. 그것도 태민이 들어올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서 타이머가 있는 커피메이커의 커피를 마시며 말이다.
믿었던 남자의 배신의 충격으로 기절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있는 남편의 애인이라는 여자얼굴을 측은한 눈빛을 보내던 가진은 검은색 에나멜로 만들어져 차가운 느낌을 주는 샤넬의 작은 핸드백에서 금속성 소리는 내는 물건을 꺼내어 천천히 유정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에 무엇인가를 넘겨주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반쪽이라도 지키고 싶다면 말이죠.......이처럼 행복한 추억이 담긴 물건은 항상 소중하게 간직하는 거예요. 나라면 그렇게 해요.]

 

/짤랑/

 

유정은 자신의 손에 차가운 소리를 내며 들어 온 물건을 눈을 내려 확인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지독한 년!!!]
그것은 자신이 태민에게 아내에게 줘 버리라고 했던 '볼보'의 자동차 열쇠였던 것이었다.

 

[모르기는 모르지만 유정씨 당신이 시작한 일이야. 원래대로라면 저 사람은 나에게 이 물건을 나에게 줄 사람이 아니거든. 그러니 당신이 사주했다는 것이 맞겠죠?]
'네 사랑도 결국은 별거 아니였어. 내가 남편이라는 남자에게 받았다고 믿었던 사랑처럼 말이지.'
자신이 넘겨 준 물건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길길이 뛰는 남편의 애인에게 등을 돌린 가진은 우아한 자태로 남편이 막고 서있는 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정말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발끝을 올려 그의 귀에 낮고 가벼운 목소리로 중얼거린 후, 남편이 숨을 쉬는 것조차 잊었는지 얼어붙은 듯 자신을 노려보는 그를 그의 애인과 뒤에 남겨 둔 채 유유히 방을 떠났다.
[나 때문에 아이가 없는 걸까요? 과연 그럴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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