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림(Purim)과 욤 키푸르(Yom Kippur) 사이의 놀라운 연관성
푸림과 욤 키푸르는 완전히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고대 랍비들은 이 두 명절이 사실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말합니다.
대속죄일(Yom Kippur, 욤 키푸르)과 푸림(Purom)보다 더 다른 두 명절을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속죄일은 지난 한 해의 잘못을 반성하고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엄숙히 지내는 속죄의 날입니다. 푸림은 유대 민족이 대량 학살을 꿈꾸던 광기 어린 자로부터 탈출한 것을 열광적으로 기념하는 날입니다. 속죄일은 금식하는 날인 반면, 푸림은 잔치를 벌이는 날입니다. 속죄일은 엄숙하고, 푸림은 떠들썩합니다. 속죄일은 금기 사항(음식, 성관계, 목욕, 호화로운 옷)으로 가득하지만, 푸림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욤 키푸르에는 유대인들이 자신의 필멸성을 성찰하지만, 푸림에는 죽음의 손아귀에서 기적적으로 벗어난 것을 기립니다. 욤 키푸르에는 새해를 깨끗한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해 자기 자신과 마주하지만, 푸림에는 악의적인 공격자들과의 성공적인 대결을 축하합니다.
그러나 랍비 시대 이후로 유대 전통은 이 두 명절을 끊임없이 연결해 왔으며, 이들이 사실 하나의 동전의 양면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 주제는 고대 랍비 문헌, 근대 초기의 신비주의 문헌, 빌나 가온(Vilna Gaon)의 저작들, 그리고 요세프 솔로베이치크(Joseph Soloveitchik) 랍비와 같은 현대 유대 사상가들의 저술에서도 발견됩니다.
유대교 최고의 신비주의 경전인 조하르(Zohar)는 이 예상치 못한 조합의 단서가 바로 명절 이름 자체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명절이 푸림(פורים)이라 불리는 것은 욤 하키푸림(יום הכיפורים, 속죄일) 때문이니, 장차 사람들은 속죄일에 기뻐하며 그 날에 요구되는 고통을 기쁨으로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티쿠네이 조하르 57b:4)
욤 키푸르(Yom Kippur)에는 복수형인 욤 하키푸림(יום הכיפורים)을 포함해 여러 히브리어 이름이 있습니다. 키푸림(כִּפּוּרִים)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속죄를 의미하지만, 모음 하나를 바꿔 카푸림(כִּפּוּרִים)으로 읽으면 그 의미는 "푸림과 같다"로 바뀝니다. 조하르는 이것이 욤 키푸르의 미래 목적에 대한 암시라고 말합니다. 그때 욤 키푸르는 고통의 날이 아니라 기쁨의 날이 될 것이니, 마치 푸림과 같을 것입니다.
욤 키푸르와 푸림이 연결되는 세 가지 추가적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둘 다 제비뽑기(lots)와 관련이 있습니다
푸림의 이름은 하만이 유대인 전체를 학살할 날짜를 정하기 위해 던진 제비(פור, 푸르)에서 유래했습니다. 푸림 이야기에서 한 민족의 운명이 단 한 번의 주사위 굴림에 달려 있었습니다.
제비는 고대 속죄일 의식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성전이 서 있던 시절, 대제사장은 두 마리의 염소를 데려와 제비를 뽑아 그들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한 마리는 속죄일 제물로 희생되었고, 다른 한 마리에는 공동체의 죄가 상징적으로 전가된 후 광야로 내몰렸습니다.
두 경우 모두, 우연이 우리의 운명에 피할 수 없는 역할을 한다는 불편한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 좋든 나쁘든 말입니다.
2 둘 다 왕의 면전에 들어가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고대에는 대속죄일의 절정이 대제사장이 성전의 가장 안쪽 성소인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을 대신해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을 직접 마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은 온 백성을 용서하시고 다가올 한 해 동안 그들의 안녕을 보장하실 수도 있었고, 대제사장을 죽이실 수도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공개적으로 몸을 씻어 정결한 상태를 이루고 특별한 의복을 입는 동안, 공동체는 금식하며 그가 하나님께 성공적으로 중보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했기에 이 의식은 기대감으로 가득했습니다.
푸림 이야기에서 에스더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왕의 궁정에 소환받지 않은 채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녀는 왕이 자신의 방문을 반기지 않을 경우, 이 불청객이 자신의 죽음을 의미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중대한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에스더는 사흘 동안 금식하며 온 유대 공동체에게도 자신을 위해 금식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왕좌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경우 모두 공동체가 큰 고통 속에 있으며 그들의 운명이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한 대표자가 위험한 임무—초대 없이 왕좌의 방에 들어가는 것—를 수행해야 하며, 그것이 백성을 구하기 위한 올바른 선택이길 바랄 뿐입니다. 이는 위험하고 절박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백성들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합니다.
3. 그들은 "영원한" 명절들이다
고대 랍비들은 푸림과 대속죄일만이 성경에서 영원히 지켜질 것이라고 명시된 유일한 명절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모든 명절은 미래에 폐지될 것이나 푸림의 날들은 폐지되지 않을 것이니, 이는 기록된 바와 같다: "이 푸림의 날들은 유대인들에게서 영원히 폐지되지 아니하리라." (에스더 9:28)
엘라자르(Elazar ) 랍비는 말했습니다: "또한 대속죄일(Yom Kippur)도 영원히 폐지되지 않을 것이니, 기록된 바와 같으니라. '이는 너희에게 영원한 규례가 될 것이니,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하여 일 년에 한 번씩 행할 것이라.'" (레위기 16:34, 미드라쉬 미쉬레이 9:1)
메시아 시대에 유대인들은 더 이상 많은 명절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랍비들은 생각합니다. 그들은 영원히 자유로워질 것이므로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유월절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대 민족에게 닥친 비극들을 기념하는 티샤 베아브(Tisha B’Av)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니, 더 이상 비극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안식일, 즉 신성한 안식의 날이자 가장 중요한 명절이라 할 수 있는 날조차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날이 안식일처럼 평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안식일은 장차 올 세상의 맛보기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미드라쉬에 따르면, 유대 민족이 메시아 시대에도 유지할 두 명절이 있습니다. 바로 때속죄일(욤 키푸르)과 푸림입니다. 이 날들은 순수한 영성과 순수한 육체의 날입니다.
동전의 양면
탈무드는 대부분의 유대교 명절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신성한 계명을 따르는 것이지만, 동시에 즐거움과 잔치, 축하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푸림과 대속죄일은 예외로, 각각 명절 관습의 한 측면을 극단으로 치닫게 합니다. 대속죄일은 영적 고양을 이루기 위해 모든 육체적 욕구와 쾌락(음식, 성 등)을 포기하는 날입니다.
반면 푸림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잔치와 즐거움을 극한까지 허용하는 날로, 탈무드에 따르면 축제 참가자들은 명절의 영웅 모르드개와 악당 하만의 이름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취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유대교 사상에서 이 둘은 모두 영성과 신성한 봉사에 이르는 중요한 길입니다. 어느 하나 없이는 유대인의 경험은 불완전할 것입니다.
유명한 탈무드 가르침에 따르면, 시나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했습니다. 좌절한 하나님은 산 전체를 뽑아 올려 그들의 머리 위로 위협적으로 매달아 놓으셨습니다:
“…그들이 산 아래 가장 낮은 곳에 섰더라.” (출애굽기 19:17)
랍비 아브디미 바르 하마 바르 하사(Avdimi bar Hama bar Hasa)가 말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거룩하신 분, 복되신 분께서 그들 위에 산을 통처럼 뒤집어엎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음을 가르칩니다. “너희가 율법을 받아들이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거기가 너희 무덤이 되리라.”
라바(Rava)가 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하수에루(Ahasuerus) 시대에 다시 기꺼이 받아들였으니,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정하여 자기들과 자기 자손과 그들에게 합류한 모든 자에게 지켰다.” (에스더 9:27),
그리고 그는 가르쳤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자신들이 받아들인 것을 정한 것이다.”(안식일 88a)
라바가 가르쳤습니다: 시나이 산에서 유대인들은 토라를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과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겠다는 약속을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백 년 후, 페르시아 땅에서 광인의 손아귀에서 거의 확실한 죽음에서 벗어난 직후—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 이루어진 탈출이었습니다—유대인들은 마음을 바꿨습니다. 바로 이 순간, 최초의 푸림에 그들은 온 마음을 다해 언약을 받아들였고, 기꺼이 이를 수락했습니다. 그러므로 푸림은 유대 민족이 토라에 대한 헌신의 정점을 기념하는 명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명절이 됩니다. 대속죄일이 회개와 신성한 봉사로의 귀환에 관한 것이라면, 푸림은 아마도 그 이상을 실현한 최초이자 가장 훌륭한 사례를 보여주는 명절일 것입니다.
By My Jewish Lea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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