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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기 그리고 찾기

phantom |2026.03.03 18:52
조회 10 |추천 0

 

숨기기 그리고 찾기

매년 투 비쉐밧(Tu B’Shvat)에서 푸림(Purim)을 거쳐 유월절(Passover)로 넘어갈 무렵이면,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투 비쉐밧은 겉보기엔 생명이 없는 것들도 땅속에서는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 직후 우리는 파라샤 테짜베(תְּצַוֶּה)를 읽는데, 여기서는 모쉐 라베이누(משֶׁה רַבֵּינוּ)의 이름이 본문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 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부분입니다. 구원의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도 깊이 새긴 인물이 행동으로는 존재하지만 이름으로는 사라진 채, 토라는 이 파라샤를 구원의 계절을 맞이하는 바로 그 시점에 배치합니다.

우리는 푸림(Purim)을 맞아 에스더서(Esther)를 펼치며 또 다른 사라짐을 발견합니다. 두루마리(scroll)는 정치적 술책, 전멸의 칙령, 극적인 반전을 기록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갈라진 바다는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음성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연회와 불면증, 용기와 타이밍을 통해 펼쳐집니다.

유월절 세데르(Passover seder)에서는 출애굽을 놀라운 세부까지 재현합니다. 재앙들, 이집트에 내린 심판, 갈라진 바다. 그러나 하가다(Haggadah: 경전)에는 모쉐의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구원의 중심적 인간 주체는 자신의 이야기 속 배경으로 물러섭니다.

이 텍스트들은 수세기 떨어져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에스더기보다 먼저입니다. 랍비들은 그 둘 모두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하가다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유대력에서는 이들이 나란히 놓이며, 우리가 구원에 대해 가장 명백히 이야기하는 계절로 접어들 때 그 이름들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눈에 띄는 인물들에게 끌립니다. 우리는 희망과 두려움을 특정 인물에게 부여합니다. 정치 지도자, 군사 지휘관, 문화적 아이콘은 전체 사회가 기대를 투사하는 상징이 됩니다. 성경은 놀라운 일관성으로 그 본능에 맞섭니다. 테짜베((תְּצַוֶּה)에서는 지도자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에스더(Esther)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가다에서는 인간 영웅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테짜베와 하가다에서 부재는 우리가 메센저를 구세주와 혼동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모쉐는 이야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지만, 그 근원은 아닙니다.

푸림은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것은 예언자의 이름이 아닙니다. 바로 신성한 이름 그 자체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정치적 현실 안에서 펼쳐집니다. 모든 것은 타이밍과 절제, 용기, 그리고 역전을 통해 움직입니다. 그럼에도 푸림 이야기는 하나님 없이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의 손길은 이야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단지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다윗 왕은 이 경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אַל־תַּסְתֵּר פָּנֶיךָ מִמֶּנִּי בְּיוֹם צַר לִי הַטֵּה־אֵלַי אָזְנֶךָ בְּיוֹם אֶקְרָא מַהֵר עֲנֵנִי׃

“내 환난의 날에 내게서 얼굴을 숨기지 마소서. 내게 귀 기울이소서. 내가 부르짖을 때 속히 응답하소서.” (시편 102:3)

‘헤스터 파님’(הֶסְתֵר פָּנִים, hester panim), 즉 신성한 얼굴을 숨김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임재가 분명하지 않은 시기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성경은 그 경험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공개적으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숨김은 버림이 아닙니다.

모쉐의 이름이 빠졌다고 그가 부재한 것은 아닙니다. 에스더서에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무관심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하가다의 절제가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의 실체를 훼손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부재는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주의를 환기시켜, 화려한 장면에서 벗어나 더 깊은 무엇으로 이끌어냅니다.

투 비쉐밧은 이 주제를 조용히 제시했습니다. 잠든 듯 보이는 것 속에도 생명은 존재합니다. 표면 아래에서는 이미 과정이 진행 중입니다. 우리가 푸림과 유월절에 이르면 그 교훈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이름들이 사라지는 것은 그 뒤에 있는 인물들이 물러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By Sara Lamm (editor for TheIsrael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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