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공부는 좀 했음. 반에서 2~3등 했었고 수능도 딱 그렇게 봤음. 그리고 예상한 대학의 예상한 학과에 들어가 예상한 연도에 졸업했음. 컴퓨터, 한국사 등 자격증도 많이 따놓고 토익 점수도 마찬가지임. 살면서 공부가 힘든 적은 없었음. 하기는 싫었지만 막상 하면 그리 어렵지는 않았음.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게 재밌기도 했음.
그렇게 4년제 인서울 칼졸업하고 바로 회사 들어가 인턴부터 시작했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함.
나는 내가 서류 파일 제목 붙이는 거 하나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입사한 이후에야 알았음.
서식이 있고 그 서식 안에 뭐 '1분기 보조금' 이런 식으로 적은 후 잘라내서 테이프로 표지에 붙이는 간단한 작업임. 진짜 초등 저학년도 하는 작업인데 그걸 꼼꼼하게 못해서 테이프에 기포 생기고, 다시 붙이려고 떼내면 표지 표면까지 같이 찢어져서 대환장함. 자로 밀어보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하면 자에 힘이 균등하게 안 들어가서 어디는 깔끔하고 어디는 기포가 생김. 결과적으로 그리 보기 싫은 모습이 됨.
이걸로도 모자라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싹 다 리스트업해도 하나씩 빼먹는 게 생김. 갑자기 들어오는 일이나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면 리스트 업 해놓은 게 무의미해짐.
심지어 리스트 업 하면서도 꼭 해야 할 일을 빠뜨리기도 함. 오늘은 A, B, C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메모장에 적어놓는데 사실 내가 진짜 해야 할 일은 D까지 있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님. 그래서 매번 다시 생각해보자 내가 또 뭐 빠뜨린 거 없나? 몇 번을 되짚어봐도 없음. 근데 나중되면 아 맞다 그거 했어야 됐는데; 이런 식임.
그리고 뭘 자꾸 깜빡함. 예를 들면 이번 주 금요일에 미팅이 있는데 생각없이 다른 일을 잡아버린다거나, 목요일이 공휴일인데 목요일로 예약을 잡을 생각을 함. 그리고 오늘 3시에 뭘 해야 되는데 뭔 자신감인지 알람도 안 맞춰놓고 깜빡한 적도 많음. 난 내가 그 일을 깜빡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음;
놀랍게도 이게 다 하루만에 일어난 일이고 난 근무한지 1년 반이나 됨.
이쯤되면 지능 문제인가 싶은데 학교 생활은 문제없이 했고,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내용도 대체로 잘 이해하는 편이었음. 적어도 내 지능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한 적은 없었음.
그런데 회사에선 대체 왜 이럴까 나도 이해할 수가 없음. 회사만 가면 뇌에서 뇌척수액 대신 참이슬이 흐르는 것 같음 진심으로;
안 혼나는 날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