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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아빠는 아빠가 되고 싶었단다

도리 |2026.03.23 08:51
조회 23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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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처음이라서 그랴

"저 정도면 죽은 거 아니니? 

너랑 자리 바꿔야 되는 거 아냐?"


밥 먹을 때, 그리고 네가 왔을 때만 빼고는 벽 보고

누워만 있는 아빠가 꼴 보기가 싫었는지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화를 내는 외할머니였어.


"엄마... 도리아저씨 더운 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출산한 사람 앞에 두고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게 말이 되니?"


지금 생각하면 백번 이해가 되지. 

당신 딸이 출산 직후라 힘들어하는데, 신랑이란 사람은

송장처럼 누워있으니. 이 결혼을 잘 시킨 건가 싶으면서도

얼마나 딸이 안쓰러웠겠어. 


'나 안 자는 거 알고 일부러 그러시나..?'


하지만 그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어. 

그냥 내가 미워서 그러는가 보다 싶었던 거지. 


"어머니 저희 왔어요. 도리? 간병하다 쓰러진 거야?"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게 병실문이 

살짝 열리는가 싶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너희들 이모하고 이모부였지. 물론 그때 두분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서 아빠가 형님, 누님이라고 불렀었지만 말야.


"뭐야? 도리 왜 이래? 어디 아픈 거 아냐?"

"더우셔서 꼼짝 못 하시겠단다! 내가 울화가 터져서 진짜"


사람들 숨소리, 비닐봉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그 상황에서 외할머니의 화내는 소리를

못 들을 리 없었지.


그런데 아무리 더워도 왜 그렇게 누워있었냐고? 

맞아. 솔직히 말하면 일어날 수는 있었어.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어색하고, 두려웠고,

무서웠던 것 같아.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사는 건 좀 어떠냐? 

회사는? 아빠노릇 잘할 수 있겠냐? 부모님은 뭐라시냐?

등 여러 가지 질문들에 대답할 자신이 없었고,


그렇다고 살갑게 외할머니를 대할 성격도 못됐고,

간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너무 막연하고 막막하단 이유로


정말 중요한 때, 정말 힘들 때, 아빠가 제일 필요할 때

엄마옆에서 아무것도 못 해줬던 아빠였어.


그리고,


외할머니와의 연결고리는 그렇게 점점 벌어져갔어.


"엄마! 도리 듣겠네... 도리야 일어나 봐 

... 애 깨워도 되는 거 맞지?"


"듣던지 말던지!"


아빠를 살짝 흔들며 깨우다 멈칫하며

깨워도 되는지 물어보는 이모. 더 이상 자는 척을 

할 수 없겠다 싶어 잠에 취한 척, 아직 잠이 덜 깬 척

발음을 일부러 뭉그러트리고,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일어났어.


"으으.. 어? 오셔쒀여?"


"으휴.."


아빠 모습을 보며 한숨을 크게 내쉬며 일어나서는

밖으로 나가시려는 외할머니. 


"엄마 어디가?"

"더워서 냉수 마시러 간다 왜?"


외할머니가 나가시자 이모는 비닐봉지에서 먹을 것을 꺼내

냉장고에 넣으면서 아빠에게 음료수를 하나 건넸어.


"덥지? 엄마 원래 말투가 저래 화난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외할머니의 말과 행동에 혹시라도 마음이 상했을까 봐

배려해 주는 이모였지. 


"이야~ 덥긴 덥네 여긴 한여름인데 에어컨도 안 틀어줘?

뭐야? 이거 안 켜지네?"


그때 이모부가 병실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어디서 찾았는지

에어컨 리모컨을 연신 누르면서 묻더라고.


"오빠 산모한테 에어컨바람이 그렇게 안 좋다고 하더라요~"


"이야.. 도리 더위 약하잖아? 나도 더운 거 못 참는데

도리가 더 심하지 않나? 그래서 이렇게 됐구나?"


결혼 전 연애할 때부터 자주 보던 사이라 친했던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어. 

에어컨을 켤 수 없단소리에 내 행동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모부였지.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뜩이나 덥고 좁은 병실에 그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으니 답답하고 더운 게 마치 

찜질방에라도 온기분이었지. 


이젠 연기가 아니라 너무 덥고 졸려서 앉은 상태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애! 누워서 자라!"

"아 좀 엄마 말 좀 이쁘게 하라니까?"


"애는 내가 뭘 어쩃다고 자꾸 나한테 뭐래?"

"그러다 도리 이제 우리 집 안 온다고 하겠다."


"내가 구박을 했니 뭘 했니? 졸고 있길래 

누워서 자라고 한걸"


나 때문에 이모하고 외할머니가 옥신각신 하는 

모습을 보니 잠이 달아나서 자세를 고쳐 앉았지만

멍한 눈빛만은 어쩔 수 없었지.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엄마 우리 가볼게?"

'와.. 좋겠다.. 여기서 나갈 수도 있고...'


이곳에서 나간다는 말 하나에 너무 부러워서 

물끄럼히 쳐다보고 있는 아빠와 눈이 마주친 이모는


"도리도 가자?"


"네?"


"어딜 데리고 가! 애엄마가 여깄 는데 애아빠를!"


같이 나가자는 이모의 말에 내심 기쁘면서도


'일어나도 되나?' 


싶어 외할머니와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애 땀에 절은 거 봐 물에 빠트렸다가 

잘 말려서 다시 갖다 놓을게~ 도리! 가자니까?"


"그래, 도리. 요 옆에 아버님이 말씀하신 계곡 있는데

거기 사람도 별로 없고 좋다더라. 시원하게 몸 담그고 오자

이게 도리 신발인가? 도리! 옷도 챙기고~"


신발장에서 아빠 신발을 꺼내며 재촉하는 이모부.

여전히 눈치를 살피며 따라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엄마는 조용히 웃으며 허락을 했어. 


"아저씨 갔다 와~ 언니한테 맛있는 것도 사달라고 그래~"

"야이년아~ 걱정 마 니 신랑 안 굶겨!"


외할머니는 그 모든 게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그렇게 병원을 빠져나와 이모차에 오르는데

마치 몇 년간 감옥생활하다 출소한 사람 마냥

왜 그렇게 홀가분하던지. 아까까지 힘없이 축 쳐져

죽을 날 기다리는 사형수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여행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설레기까지 하더라구.


얼마나 달렸을까?


계곡에 다다른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계곡에

뛰어들었어.


이모부 말대로, 아니 외할아버지 말대로 사람도 별로

없어서 마치 우리가 전세라도 낸 것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장구치며 여기저기 헤엄치고 다녔지. 


"이야~ 도리 안 데리고 왔음 어쩔뻔했냐?"

"그러게? 병원에서 봤던 도리랑 너무 다른데?"


그러거나 말거나, 아빠는 물에서 나올 생각을 안 했어. 

아니 어쩌면 물에서 나가면 다시 바로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10분, 20분, 한 시간이 넘도록 

물에서 나가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지. 


"다 놀았어? 좀 시원해?"

"네..."


2시간가량 물속에 있었을까? 해도 점점 떨어져 가고,

체력도 바닥나가고, 무엇보다 배가 너무 고파서

더 이상 물놀이도 못하겠더라고. 


"도리 다시 방전됐네? 이거 효과가 없는데?

마녀! 우리 저녁 뭐 먹어?"


마녀. 알지? 이모 별명이야. 한번 화가 나면 말릴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 화나게 한 사람을 어떻게든

철저하게 괴롭히는 이모의 못된 성격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불려 온, 네 엄마가 지어준 별명이라 하더라구. 


조금 나중 일이지만 이모의 이런 성격과 아빠의

고집 때문에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한 번도 얘기 못한

큰 사건이 하나 발생해. 

이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줄게


기회가 된다면...


"올 때 보니까 해물짬뽕집 있더라 거기 어때? 

도리 짬뽕 괜찮지?"

"네...(하아...)"


짬뽕이던 자장면이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 

이제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부터 삼키는

아빠였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천천히 짬뽕을 먹고 

다시 병원 앞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얼마나 내리기 싫던지

그대로 그냥 집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 엄청 컸지만

엄마를 두고 그럴 순 없었어. 


"조심히 들어가세요."

"도리~ 고생해. 미진이 퇴원하면 또 놀러 가자~"


멀리 사라져 가는 차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됐을 때

아빠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한숨과 함께 

연기를 내뱉었어. 


하지만 어쩌겠니? 들어가야지. 터덜터덜 들어가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회사 일도 머리 아픈데...'

'장모님은 또 구박하시겠지...?'


힘없이 유리로 된 병원 로비 문을 여는데 아빠의 얼굴이

살짝 스쳤어. 며칠 안된 시간 동안 참 많이 초췌해져 있더라.

눈엔 생기가 없고, 피부는 푸석하고, 살짝 앞으로 굽은 어깨는

아빠 스스로 보기에도 좀 안돼 보였어. 


사실 말야. 출산휴가 기간 동안 내내 그렇게 있었던 것 같아. 

아빠가 되면 뭔가 사람이 바뀌고, 좀 더 어른스럽게 변한다고

수없이 많이 들어왔는데. 정작 내가 아빠가 되고 보니까

그런 게 전혀 없더라고. 


내가 아빤가? 하며 스스로 의심하고, 부정하고. 

뭔가 부딪혀 볼 생각보다는 피할 생각만 하고.

스스로 하기보다는 누군가 이해해 주고 대신해주길

기대하는...


참 어린 아빠였지. 


"오~ 어때 아빠 된 기분이? 아기 많이 이쁘던데.

다행이야 오빠 안 닮아서"


출산휴가 마지막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할머니댁에

들려서 고모를 태우는데. 차에 오르자마자 평소처럼 

수다스럽게 질문세례를 퍼붓는 고모였지. 

아니, 어쩌면 평소보다 더 신나게 떠들고 있었던 것 같아. 


"아빠는 무슨. 난 실감도 안나더라."

"무슨 아빠가 이래? 우리 아빠였으면 꼬집었다!

아주 아프게 꼬집을 거야. 살이 떨어져 나가게"


"그건 고문 아니냐...?"

"노노! 사랑을 담으면 그건 고문이 아님."


"그럼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해?"

"사랑하니까랑 사랑을 담은 거랑은 틀리잖아? 

헐? 오빠 지금 내 사랑을 의심하는 거야?"


'아... 시끄러워..'


시끄러운 고모와의 대화에 평소 같으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병원에 갇혀있었던 그 시간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였을까? 아빠의 마음은 뻥 뚫린 고속도로처럼 시원했어. 

아직도 퇴원을 못하고 그 좁은 병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엄마와 외할머니는 완전히 배제한 체 말이지. 


"아내와 아들이랑 함께한 즐겁고도 행복했던 휴가는 

이제 끝나고 내일부터 출근이네? 

어때? 복귀하는 소감이?"


'행복한 휴가 같은 소리 하네. 속도 모르고.'


아주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워

이불에 몸을 비비면서 잘 려고 하는데 문득 

병원에서 힘없이 아빠를 바라보던 엄마 눈빛이 

생각이 나는 거야. 


'내가 좀 너무했나...'


엄마한테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올라올 때쯤 

아빠에게 화를 내시던 외할머니의 모습도 

같이 떠올랐지. 


'됐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잖아 잠이나 자자'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해버리고는 간만에 편하게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아.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도 

못한 채로 말이지. 


"도리 왔냐? 애기는? 잘하고 왔어?"


다음날, 출근하는 아빠를 보자마자 아빠에게 인사를 거는

팀장님. 이상했지. 일개 사원일 뿐이고 다른 부서인 데다가

이제 프로젝트 메인은 내가 아니잖아? 그런데 살갑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동안 아빠가 봐온 팀장님은 뭔가 이익관계가 아니면

챙기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거든. 


"세찬이 데리고 흡연실로 와봐"


잠깐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김 과장과 흡연실로 오란말만

남기고 흡연실로 향하는 팀장님이었어.


무슨 일일까? 잠시 생각을 해봤지만 일주일 가량 쉬고 온

아빠가 예측할 수 있는 건 전혀 없었지. 


"저.. 과장님 팀장님이 흡연실로 모시고 오라고..."

"너 이 새끼..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화났다기보다는 뭔가 짜증 난단 말투로 아빠를 다그치는 

김 과장. 


'뭐지? 내가 짠 게 뭔가 잘못됐나?'


라는 생각과 함께 김 과장과 흡연실로 들어갔어. 

먼저 들어와 담배를 피고 있는 팀장님. 

그런 팀장님을 보고 서 있는 김 과장과 나.

팀장님은 김 과장과 아빠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혼자

크게 웃으며 입을 열었어.


"하하하 왜 그러고들 있어? 편하게 펴."


편하게 피란말에 자동반사처럼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지. 

첫 한 모금을 내뿜었을 때 정말 듣기 싫은 말을 팀장님은 

하고 계셨어.


"도리야. 생각을 해봤는데 너는 이 프로젝트에서 빠지는 게

좋겠다."


청천벽력 같았지. 단독프로젝트에서 밀려, 메인 개발자에서

밀려, 이젠 아예 빠지라니. 팀장님이 어렵고 말고

예의고 뭐고 필요 없었어. 그냥 재채기하듯이 물어봤어.


"왜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팀장님은 잠깐 당황하는가 싶더니

계속 말을 이으셨지. 


"너 이제 애도 키워야 하고 정신없을 거 아니냐?

야근은 계속할 수 있겠냐? 나도 지금 결과가 빨리

나와야 되는데 계속 기다릴 수도 없는 입장이고"


"그러니까 인마 빨리빨리 했어야지"


김 과장의 비아냥거리며 맞장구치는 말보다 아빠를 더

주저앉힌 건 팀장님의 말이었어. 하나도, 단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던 거지. 


"세찬이는 그래도 이 바닥에서 오래 해 먹었으니까

조금 더 빨리 결과가 나올 거고 너도 편하게 회사 다니고

이거 윈윈 아니야? 너무 서운 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음에 기회 되면 한번 다시 뭉쳐보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어.

흡연실을 나서는 팀장님 뒤를 멍하니 쳐다보는 수밖에.

그저, 담배만 물고 있는 거 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너 때문에 나만 더 바빠졌잖아~ 아유 도리 이 짐덩어리"


농담인 듯 비꼬는 듯 한 김 과장을 바라보는 것 밖에는 말이야.

화가 나는데, 소리치고 싶은데. 화를 낼곳도, 소리칠 대상도

아빠에겐 존재하지 않았어. 


'내가 그렇지 뭐'


나 자신을 탓하는 것 말고는 말야. 


"도리 안 바쁘면 전화 좀 받지 이제?"


여전히 전화가 빗발치는 사무실 안. 

그동안 프로젝트 덕에 전화업무에서 배제되었다만

이제 그 방패가 사라졌으니 다시 전화업무가 우선이 

되어버렸어. 


하지만 그 기분으로 전화나 제대로 받겠니?

한두 통 받고 한참을 멍하니 있고, 또 한두 통 받고 

담배피러 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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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아저씨 돌아가면 우리 아기 출생신고 해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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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엄마가 얘기했던 출생신고가 생각이 나더라고


'퇴근하고 가면 늦을 텐데...'


어차피 일도 손에 안 잡히는 거 에라 모르겠다 싶어

바로 김 과장에게로 향했지. 


"저.. 과장님..."

"도리! 왜 또? 이번엔 또 무슨 사고 쳤어!"


"아니.. 저 출생신고 좀 하고 와도 될까요...?"

"하아.. 이 짐덩어리 휴가기간에 뭐 하고..."


"그게.. 출산한 곳이 지방이라... 멀리 있어서..."

"갔다 와... 난 사이다."


역시나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하는 김 과장을 뒤로하고

회사를 빠져나왔어. 


"출생신고 하러 왔는데요."

"네. 저기 가시면 출생신고서 있어요.

작성해서 가져오세요."


안내받은 대로 출생신고서 찾아서 작성하기 시작했지.


'출생자.. 한자가... 어떻게 쓰더라...'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가면서 그리듯이 한자를 써넣었어.

그다음으로 부모 인적사항을 적는 란이 보였지.


'부... 부... 부...'


아버지 부. 단 한 글자 '부'를 속으로 몇 번이고 다시 읽는데

갑자기 출생신고서 위로 물방울이 하나 뚝 떨어지더니

계속 떨어진 그 물방울로 어느새 출생신고서가 젖기 시작했어.


'어...?'


맞아. 아빠 눈에서 떨어진 눈물방울이었지. 

한가정의 가장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며, 한 아이의 아빠.

그 사람의 이름을 적어야 하는데. 그게 내 이름인데.

너를 처음 만난 날부터 그때까지 전혀 아빠 같지 않았던

아빠인 척도 못했던 내가 너무 부끄럽고 초라해서

내 이름을 적어도 되는지 몇 번이고 망설였던 것 같아. 


'도... 리...'


그렇게 울먹이면서 겨우 작성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할머니 한분이 

말씀하시더라.


"뭐여.. 사망신고서 작성하는 줄 알았네...

애비 된겨? 축하혀? 뭘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린댜?"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휴지를 건네주시던 할머니.


"감사합니다..."


휴지를 받아 들며 인사를 하던 아빠의 등을 어루만지며

할머니가 하시던 그 말씀을 아빠는 아직도 기억한단다.


"애비 노릇하기 힘들제? 우리도 다 그랬지~

근디 하다 보면 다 하게 되더라고. 처음이라서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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