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촌놈이었던 대학 1학년은
“평생 이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아 볼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너무나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나름 지방 텃새를 이겨보려고
과대표 선거에 나갔고
큰 표 차이로 당선이 됐다.
과대표는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고
보람을 느낄만한 자리였다.
축제나 체육대회 같은 행사준비부터
주기적으로 MT도 다니고
학과신문 발행처럼 의미 있는 일들까지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진행을 했다.
이런 아기자기한 매력 때문이었는지
나는 과대표를 총 8번 그러니까 4년 내내 맡았다.
1학년은 선배가 시키는 일은 머든지 해야 했던 때라
축제 내내 주막에서 술안주를 만들어 팔았고
체육대회 때는 남들이 기피하는 응원단장을 해야 했고
가끔 데모를 할 때는 교수님 방에 있는
집기를 빼내는 몸빵까지 해야 했다.
[축제 주막은 대학 다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다.]
나는 선배들에게 호불호가 있는 스타일이었다.
솔선수범 나서는 것을 좋게 보는 선배도 있었지만
서울에서 와서 튄다는 이유로 안좋게 보는 선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좋게 보던 선배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온 선배들이었다.
사실 튀긴 좀 튀었다.
논에 있는 보리를 보고 강아지풀이라고 하질 않나
전라도 사투리를 못 알아 듣기 일 수였다.
그래도 나름 선배, 동기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며
재미있는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군대 가기 전까지 대학 1, 2학년을
나처럼 자유분방하게 지낸 경우도 흔치 않은 것 같다.
대학 때 에피소드를 몇개 소개하자면
밤 10시만 되면 시내버스가 끊기던 때라
술을 먹다가도 부랴부랴 나오기가 일수였다.
대부분 버스를 놓치는 일이 많았지만 운 좋게
타게 되더라도 술에 취해 종점까지 가는 일이 많았다.
시내버스지만 종점은 거의 시골 외곽에 있어
졸기라도 하는 날이면 한참을 걸러 집에 가야 했다.
그날도 종점까지 가게 되었고
내려서 집에 가는 중에 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시골 논두렁만 보이는 곳에서 화장실은 당연히 없었고
지나는 사람도 없어 몰래 숨어 일을 보게 되었다.
일단은 한고비 넘겼지만
꼬이면 계속 꼬이는 법인지 이번에는 화장지가 없다.
두리번 거리다 보니 넓직한 호박 잎이 보였고
호박잎을 모아모아 뒷처리를 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호박잎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가시가 박혀 있었다.
내 엉덩이에는 수백 개의 가시가 박혔고
가시가 박힌 채로 어그적 거리면 집에까지 가야 했다.
[호박잎에 가시가 많은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꺼다]
바퀴에 고무가 빠진 자전거를 누군가 버렸고 나는 술에 취해 그 자전거를 몰고 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