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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하다 ep6. 칼국수 배달의 지옥 종로5가!!

Mr깡 |2026.05.08 15:00
조회 53 |추천 0

집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대학 등록금 만큼은 스스로 책임을 지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아르바이트는 거의 일상이었던 것 같다.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해보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995년 제대후 1년간 했던 

칼국수 배달이다


가게 이름은 “명동칼국수”, 위치는 종로 5가역, 

허름한 건물 2층에 있었고 주인은 교회 장로였다. 

오전오후는 칼국수, 저녁은 족발이 주 메뉴였고 

내가 맡은 일은 배달이었다. 

시급은 3,000원이다. 


[종로5가역 6번 출구 이디야 커피 2층이 칼국수 집이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냥 평범한 음식점으로 보여진다. 

이 가게의 숨은 특별함은 

바로 배달하는 대상이다. 

종로5가에는 대형 마켓을 형성한 

특별한 몇 개 업종이 있다. 


첫번째 업종은 바로 “약국”이다. 

“종로5가 보령약국~”이라는 라디오 광고는 

다들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 같다. 

약 300여개의 약국이 모여 있는 

말 그대로 약국의 성지 같은 곳이다. 


 [간판은 바뀌었지만 약국은 그 위치에 그대로 있다]


두번째 업종은 “포목점”이다. 

광장시장 2층에 주로 모여 있는 

포목점 수가 5,000여개에 달한다. 

작으면 1평 남짓 되는 포목점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모여있다. 


 [일반인 들은 들어가면 출구를 못찾기 일수다]



세번째 업종은 “옷가게”다. 

평화시장으로 대표되는 시장에는 

약 2,000여개의 옷가게 들이 모여 있다. 


 [끝에서 끝까지 약 200m는 족히 되는 거리에 매 층마다 배달할 가게들이 모여 있다]


약국, 포목점, 옷가게 등 그 숫자만 보더라도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곳이 칼국수를 배달해야 할 곳이다


너무 많은 가게들이 몰려 있다 보니 

배달할 곳을 외우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특히 포목점은 “XX포목점” 식의 가게 이름이 아니라 

“대동 가-12” 이런 식으로 되어 있어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한가지 어려운 점은 옷이나 천을 다루는 업종이다 보니 

혹시라도 칼국수 국물이 튀기라도 하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각별히 배달에 조심을 해야 했다. 


경력이 늘어나면서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도 될 정도로 

나는 배달의 달인이 되어갔다. 

쟁반 하나에 4그릇의 칼국수를 담을 수 있었는데 

그런 쟁반을 5칸까지 들고 다녔으니 

한번에 20그릇을 배달할 수 있는 셈이다.


배달하는 인원이 15명 정도되는 

배달량이 꽤 많은 가게였지만 

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 

거의 매일 1~2명씩은 그만두곤 했다. 


나는 10시 출근 8시 퇴근 풀타임을 일하며 

1년을 버텼고 1,000만원 정도 되는 

큰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당시에 등록금이 250만원 정도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사실 칼국수 배달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양한 군상들을 경험했고 

또 그런 경험으로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1년이 넘는 동안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 

나는 그때 그 “명동칼국수”를 찾았다. 

주방 이모 중에 한분은 나이가 들어서 은퇴를 하셨고 

주인 아저씨는 여전히 우렁찬 목소리로 일을 하고 계셨다. 

다들 반갑게 맞아 주셨고 보쌈도 서비스로 주셨다. 


그리고 또 5년 정도 지난 즈음에 

방문했을 때는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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