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대학 등록금 만큼은 스스로 책임을 지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아르바이트는 거의 일상이었던 것 같다.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해보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995년 제대후 1년간 했던
칼국수 배달이다
가게 이름은 “명동칼국수”, 위치는 종로 5가역,
허름한 건물 2층에 있었고 주인은 교회 장로였다.
오전오후는 칼국수, 저녁은 족발이 주 메뉴였고
내가 맡은 일은 배달이었다.
시급은 3,000원이다.
[종로5가역 6번 출구 이디야 커피 2층이 칼국수 집이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냥 평범한 음식점으로 보여진다.
이 가게의 숨은 특별함은
바로 배달하는 대상이다.
종로5가에는 대형 마켓을 형성한
특별한 몇 개 업종이 있다.
첫번째 업종은 바로 “약국”이다.
“종로5가 보령약국~”이라는 라디오 광고는
다들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 같다.
약 300여개의 약국이 모여 있는
말 그대로 약국의 성지 같은 곳이다.
[간판은 바뀌었지만 약국은 그 위치에 그대로 있다]
두번째 업종은 “포목점”이다.
광장시장 2층에 주로 모여 있는
포목점 수가 5,000여개에 달한다.
작으면 1평 남짓 되는 포목점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모여있다.
[일반인 들은 들어가면 출구를 못찾기 일수다]
세번째 업종은 “옷가게”다.
평화시장으로 대표되는 시장에는
약 2,000여개의 옷가게 들이 모여 있다.
[끝에서 끝까지 약 200m는 족히 되는 거리에 매 층마다 배달할 가게들이 모여 있다]
약국, 포목점, 옷가게 등 그 숫자만 보더라도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곳이 칼국수를 배달해야 할 곳이다
너무 많은 가게들이 몰려 있다 보니
배달할 곳을 외우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특히 포목점은 “XX포목점” 식의 가게 이름이 아니라
“대동 가-12” 이런 식으로 되어 있어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한가지 어려운 점은 옷이나 천을 다루는 업종이다 보니
혹시라도 칼국수 국물이 튀기라도 하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각별히 배달에 조심을 해야 했다.
경력이 늘어나면서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도 될 정도로
나는 배달의 달인이 되어갔다.
쟁반 하나에 4그릇의 칼국수를 담을 수 있었는데
그런 쟁반을 5칸까지 들고 다녔으니
한번에 20그릇을 배달할 수 있는 셈이다.
배달하는 인원이 15명 정도되는
배달량이 꽤 많은 가게였지만
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
거의 매일 1~2명씩은 그만두곤 했다.
나는 10시 출근 8시 퇴근 풀타임을 일하며
1년을 버텼고 1,000만원 정도 되는
큰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당시에 등록금이 250만원 정도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사실 칼국수 배달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양한 군상들을 경험했고
또 그런 경험으로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1년이 넘는 동안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
나는 그때 그 “명동칼국수”를 찾았다.
주방 이모 중에 한분은 나이가 들어서 은퇴를 하셨고
주인 아저씨는 여전히 우렁찬 목소리로 일을 하고 계셨다.
다들 반갑게 맞아 주셨고 보쌈도 서비스로 주셨다.
그리고 또 5년 정도 지난 즈음에
방문했을 때는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