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로 가득찬 미니홈피 연쇄살해범 인권변호자?
나의 미니홈피에 악플이 무수히 달려도 괜찮다. 오히려, 광장에만 올렸던 <흉악범은 자식 사랑하면 안 되나?>를 공개적으로 오픈해 놓겠다. 악플을 달고 있는 분들은 나에게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된 유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란다. 나는 유가족의 입장에서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 아파하고 그 글을 작성하였다. 나에게 아플을 달고 계신 분들이여, 당신은 용산철거민 참사로 돌아가신 7명의 고인을 아는가? 나는 그 사건으로 희생된 6명의 고인의 명복을 빌었고, 경찰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현재 그대들이 분노하는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흉악법 강씨는 아무리 당신들이 부정해도 인간이며,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이다. 흉악범이라고 자식 사랑도 비난할 성질은 결코 아니다. 물론 범죄 직전에 피해자 및 유가족을 생각 못한 것은 사랑의 근원이 부족했던 흉악범죄자가 비난 받아야 할 몫이다. 그러나, 사랑의 근원이 부족한 강씨나 흥분된 상태로 보다 큰 사랑을 망각한 그대들도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인격훼손에 대해 우려를 표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대들이 아무리 감정의 논리로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대들 철학에 논리적 모순이 없도록 주장해야 할 것이다. 나의 가족이 흉악범에게 살해되었다면, 어찌하겠냐는 반론에 대답한다면, 두 가지 입장에서 대답하겠다, 첫째, 나는 개인적으로 무척 슬픔에 빠질 것이다. 둘째, 그렇지만 그 흉악법도 인간이라 법적 처벌이 이뤄지기를 바라지만, 그의 인간에 고귀한 인권에 대해 훼손되는 것은 반대할 것이다.
불과 몇 년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7살 소년이 죽어가자. 그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죽기전 장기를 적국인 이스라엘의 7명의 사람들에게 새 삶의 희망을 주었다고 한다. 진정한 사랑은 그런 것이다. 개인적 감정으로, 전체적 이성을 붕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성이 붕괴되는 그 헛점에 독재자가 존재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흉악범이 자식 사랑할 수 있는 권한은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하리라
인권이 소중한 이유 (나의 방명록에 작성된 글에 대한 답변)
토막살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니, 예전에 영화 양들의 침묵이 생각납니다. 전쟁터나 살해범들들이 자행하는 범죄를 보면서, 인간들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 차마, 생각하기 싫지만 현실입니다. 그런데, 범죄자의 잔혹한 살해방법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감정논리에 빠져 인권을 훼손시키기 시작하면, 강물이 무너져 내리는듯 인권의 댐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인권이 없으면,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랑도 있을 수 없습니다. 강씨와 같은 흉악법죄가 우리 사회에 있는 것은 사실이나, 선량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다시, 말해 희망의 미래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빈대 잡자고, 초가집 태우듯, 작금의 사태로 인권에 대해 우리가 스스로 부정한다면, 자신을 비롯하여 후손을 포함한 사랑하는 사람의 인권도 부정될 수 있다는 논리가 형성됩니다.
제가 기계론적으로 인권의 논리를 적용하는 것 같지만, 지금도 끊임업시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훼손시켜, 썩은 고깃덩어리 먹이감 얻으려는 악어처럼 기다리는 더 큰 흉악한 범죄집단이 있다는 것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현실정치 비판은 삼가고..)는 600만명의 유태인을 학살했습니다. 토막살인 하지 않고 600만명 죽였으니, 그가 강씨보다 괜찮은 살해자?입니까?
광기의 독재자로 인해 독일의 국민들이 유태인 학살이라는 폭력, 인권 탄압에 동조했습니다. 하나의 인권이 다수의 인권을 지키게 됩니다. 가까운 예시로, 당신의 집안에 여러 문과 창문에 잠금장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열러 있는 곳으로 강도와 도둑이 찾아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