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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몸이 좋지 않네요.
아마도 내일도 많이 아플 것 같아서
내일 연재 분을 미리 올립니다.
해골 가족은 월요일에 뵙구요,
키위는 내일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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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거 피 아니야. 케찹이야.”
나는 살인 흉기를 둔갑한 오징어를 그 자리에서 씹어 먹으며 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했지만 교복 앞가슴에, 입에 묻게 된 붉은 케찹은 나의 몰골을 더욱 기괴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잠시 후 케찹 묻은 손으로 허공을 저으며 교무실로 끌려갔다.
간단히 조사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온 나는 교실을 떠나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교실을 떠나기 전 나는 그나마 평범한, 그저 말랐을 뿐인 학생이었지만 이젠 오징어로 낯선 학생의 머리를 내리친 맛까지 가버린 여자가 된 것이었다. 어제보다는 조금 잠잠하겠지 했는데 오전의 사건으로 내 주변은 수군거림으로 가득 찼고, 재무의 여자친구 앞에 ‘오징어로 사람 머리를 내려친’이란 수식어가 붙어버렸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가득 메운 구경꾼들 때문에 평화의 도시락도 까먹지 못하고 엎드려 자는 시늉을 하며 버티고 있었지만 3교시가 끝나자 화장실은 가야했다.
유일한 벗인 평화를 바라보았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여전히 3교시 수업을 연장하며 잠을 자고 있었다.
혼자 가보자 결심을 하고 교실을 나섰다. 복도에 늘어서 있는 아이들의 손이 모두 나의 머리를 원하고 있는 듯 보여서 머리가 빡빡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겨났다.
은근히 떨며 걷고 있는데 우리 반 미리가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화장실 가니?”
“응.”
“같이 가자.”
왜 친한 척을 하는 것일까? 미리의 행동이 정겹지 않고 오히려 불안감만 가중시켰다.
“우리 반에 성수그룹 손녀딸이 있다는데 누군지 알아?”
소곤거리는 미리의 말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모르는데. 누구야?”
“나도 몰라. 혹시 네가 알까 해서 물어본 건데.”
미리는 정신 나간 애였구나. 전교에서 소문에 느리기로 평화와 1, 2위를 다투는 나에게 물어보다니.
미리는 잠시 조용하더니,
“너 아니야?”
라고 기습 질문을 해왔다. 기습적으로 물어보면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고 있는 표정으로.
“나 아니야.”
“그러니. 난 탤런트랑 스캔들도 나고 하니까 돈 많은 집 딸인 줄 알았지.”
드러내놓고 실망하는 미리에게 그래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오히려 이런 스캔들 나지 않았을텐데.
그 기분에 화장실에서 다녀왔어도 시원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복도 많은 그녀는 누굴까? 평화에게 물어봐야지. 물론 물어는 볼 것이지만 별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시간.
예정대로라면 도시락을 일찍 먹고, 점심은 매점에서 사먹어야 했지만 도시락이 없었던 것도 그렇고,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가득 메운 아이들이 부담스러워 평소보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매점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은 매점이었지만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홍해가 가라지듯 아이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너 같은 애 옆에 있기 싫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었지만 나름대로 편하고 좋았다.
‘우쑤! 재무랑 친하게 지내야겠는 걸.’
국물만 남은 라면에 마지막 남은 김밥을 찍어 먹으며 어제 일에 대해 간략하게 말을 해 주었다. 기집애 흠칫 놀라겠지. 처음으로 부러운 눈빛을 받아보겠군.
“그래? 김밥이 모자르다. 더 먹을까? 아니면 고로케 먹을까?”
“너 내 말 들었어? 천만 원이라고.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천만 원을 준대.”
“들었어. 그게 니 돈이지, 내 돈이냐? 나중에 돈 받으면 나 매일 점심 좀 사줘라.”
친구가 팔려가도 김밥을 먹으며 잘가라 손 흔들 평화였음을 잊고 있었다. 남의 천만 원보다는 자신에게 생긴 공짜 노트에 목숨을 걸 아이였다.
“우리 반에 성수그룹 손녀딸이 있다더라. 너 누군 줄 모르지?”
“나 알아.”
“진짜? 누군데?”
“고로케 사주면 알려줄게.”
알뜰한 당신! 역시 돈이 최고인 거다. 평화를 보며 천만 원에 대한 강렬한 유혹을 느끼고 있었다.
평화는 고로케를 목에 다 넘기고서는 입을 열었다.
“다 먹었잖아. 이제 말해줘. 그게 누군데?”
“나야.”
순간 고로케를 홀라당 먹어버린 평화를 노려보는 내 눈에는 불꽃이 일었다. 먹기 위한 집념은 높이 평가하고 싶었지만 거짓을 뱉은 그 입은 용서를 할 수가 없었다.
“이게 고로케에 목숨을 걸었구나. 다 먹고 오리발인 게냐? 얼른 토해내.”
순간 이성을 잃고 평화의 입속에 내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나도 먹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 지 꺼만 사준 걸 보고도 한입도 안주고 다 먹더니 이제 와서 뭐라고?
“빨리 토해. 내가 먹을 거야.”
“아, 아. 야!”
평화는 넓은 어깨에 힘을 실어 나를 밀쳐냈고, 나는 그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나라니까. 우리 할아버지가 그 회사 다니셔.”
“네가, 진짜?”
“그렇대두.”
“근데 너 왜 나랑 친하게 지내? 너 정도면 돈 많고 이쁜 친구들 사궈도 되잖아.”
“음.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멍청해서 나랑 친구인 거구나. 고맙다. 친구야!
잠시 후 평화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서는 옥상 화단가에 나란히 앉았다.
“네가 부자라서 정말 좋구나.”
“왜?”
“내 친구가 나처럼 돈으로 고생하는 꼴은 안 봐도 되니까. 그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거든.”
잠깐이었지만 평화의 눈 속에는 감동의 회오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일부러 그 사실을 숨기고 소탈하게 사는 네 모습도 정말 감동이다.”
“일부러라니? 일부러 숨긴 적 없는데.”
“그럼 그 누더기 핸드폰과 소금에 절은 너의 행동은 뭐야?”
“내가 뭘?”
“왜 내가 간식을 두 번이나 사야 네가 한 번을 사는 건데?”
“그야 누가 내든 무슨 상관이야? 비싼 것도 아니구.”
“내가 망고 음료수를 돈이 없어 못 먹었다고도 얘기했잖아. 돈 없는 나에게 얻어먹고 싶든?”
“나도 지갑을 집에 두고 오거나 하면 돈이 없을 때도 있는데.”
순가 떠오른 것은 세계사 시간에 들은 어느 여왕인가 공주의 이야기였다.
백성들이 쌀을 달라며 민란을 일으키자 쌀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지 왜 저런대요 했다는.
바로 옆에 가난을 이해조차 못하는 진정한 노블레스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너도 아르바이트 해서 천만 원 받는다며?”
전혀 부티가 나지 않는 평화가 말했다.
“그건 네 알 바가 아니고, 나 돈 좀 빌려줘. 머리를 갑자기 짧게 자르고 싶어.”
“우리 아빠가 친구한테는 돈 빌려주는 거 아니라고 했어.”
“친구가 돈이 없어 머리도 못 자르는 형편이라 돈 내줬다고 해. 이따 같이 가는 거다.”
“그럼 나 가는 미용실 가자. 포인트 적립해야 된단 말이야.”
어느 때보다 천만 원에 대한 강한 유혹이 생겨나고 있었다. 바로 옆 친한 친구도 날 전혀 이해 못하는 부자 친구라니. 하지만 구질구질하게 평화에게 가난에 대해 설명을 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모르면 더 좋은 세계니까.
방과 후 평화가 날 데려간 곳은 압구정에 있는 고급 미용실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오셨어요. 사모님은 며칠 전에도 다녀가셨는데.”
평화의 얼굴만 보고도 제일 높아 보이는 여자가 알랑거리는 것이 평화의 존재감을 더욱 느끼게 해주었다.
“저는 머리 안하구요, 친구만 머리 자른데요.”
“이 친구 분?”
여자는 미용실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세상에 교복이 있다는 것에 처음으로 감사하며 앞으로는 남의 학교 교복까지 사랑하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다듬기만 해드려요?”
“아니요. 짧게 잘라 주세요.”
“음. 너무 마르셔서 짧은 것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저에게 맡겨 주시겠어요?”
제일 높은 여자가 손수 자랄 줄 모양인지 내 옆에 바짝 붙었다. 좋은 냄새도 나는 여자라 그냥 그러라고 했다.
“머리 결이 뻣뻣해서 그냥 컷트만 해서는 스타일이 안 나올 것 같은데 검은 색으로 매니큐어도 해드릴까요?”
머리에 매니큐어를 바른다고? 많이 무서웠지만 모르는 척 하기 싫어 그냥 그러라고 했다.
“평화님도 클리닉 한 번 받으세요. 친구 분도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알았어요.”
평화는 이 이쁜 원장에게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괜한 말실수라도 할까 말을 아끼며 아까부터 괜히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우리가 잠시 쉬는 동안 언니들의 알랑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손톱을 다듬어 주질 않나 눈썹 정리를 해준다고 하질 않나 난생 처음 받는 기분 좋은 서비스에 기분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샴푸를 하고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원장 언니가 드라이까지 마치자 주변 사람들 모두 예쁘다고 난리들을 떨었다.
둥근 느낌이 있긴 했지만 분명히 남자 머리였다.
“보이시한 느낌이 나네요. 정말 잘 어울려요. 저도 이런 개성이 숨어있는 줄은 몰랐는 걸요. 키도 크고 말랐으니 모델을 해보셔도 될 것 같아요. 제가 소개시켜 드릴까요?”
“진짜 다른 사람 같아요. 남자 같아 보이기도 하고, 정말 중성 느낌이 나네요.”
이건 남자잖아.
가슴이 없긴 해도 남자처럼 보이지는 않았었는데.
숨겨져 있던 내 남성스러움을 꺼내 버린 그녀들은 내 주변에 몰려들어 상술이 너무나 과한 입발림을 해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