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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로소이다
해토(解土) 끝에 초상난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엄동설한 꽁꽁 얼었던 대지가 봄이 되어 땅이 녹기 시작하면 초상이 많이 난다는 뜻이다. 사실 겨울이 가고 따스한 봄기운이 감돌 때쯤이면 별스레 초상이 많이 나는 사실을 두고 생겨난 속담일 것이다.
이월 중순경부터 삼월 들어서서 나는 거의 매일 장례 행렬을 보거나 산소 조성공사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느날은 하루 네 번의 장례행렬도 보았으니 속담이 거짓은 아니다. 겨우내 긴장되어 있던 노인들의 원기는 절기의 변화에 쉽사리 적응되지 않기 때문에 추운 계절의 가혹한 시련이 봄 따스한 햇살이라도 내리면 노인들의 경직 되어 있던 신체적 리듬의 긴장감이 갑자기 해이해져 쉽게 변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흔히 이빨 좋은 것도 오복중의 하나라고 한다. 사실 치아가 건전치 못하면 고생스럽기 짝이 없기에 오복중의 하나라 할 만 할 것이지만 문헌에 전래하는 오복은 첫째, 장수를 원하는 수(壽), 둘째 부유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富), 셋째, 일생동안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강녕(康寧), 넷째,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자는 유호덕(攸好德), 다섯째, 모든 소망과 봉사를 이룬 뒤 자기 집에서 일생을 편안히 마치기를 바라는 고종명(考終命)이다.
이것은 <서경> 홍범편에 의하는 말이고, 민간에서 바라는 오복은 <통속편>에 기록되어 있는 수·부·귀(貴)·강녕·자손중다(子孫衆多)이다. 유호덕이 귀로, 고종명이 자손중다로 바뀐 것은, 귀하게 되는 것이 남에게 봉사하는 것이고 자손이 많은 것이 고종명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서민적 성향이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오래전에 답사(踏査) 차 들린 그 지방의 명망 있는 유가(儒家)의 후손인 시골 노인으로부터 또 다른 오복 강의를 귀담아 들은 적이 있다. 위의 오복과 별반 차이는 없으나 그 노인의 말에 따르면 첫째, 자식 복을 말하는 자(子), 둘째, 부유하게 살기를 바라는 재물복인 재(財), 셋째, 남자는 아내를 잘 만나고 아내는 남편을 잘 만나 가정의 안녕을 바라는 부처(夫妻), 넷째, 일생동안 건강하게 살고자하는 건(腱), 다섯째, 자식복과, 재물복과, 부부화평의 복과, 건강한 삶을 살고 난 후 잠자듯이 고요하게 세상을 떠나는 평화로운 죽음을 오복중의 으뜸으로 한다는 사(死)라고 또 다른 오복이야기를 들은 것이 지금도 잊지를 않고 있다.
한 열흘 전 우리 읍내에는 내가 아는 지인들의 초상이 하루차를 두고 세 번이나 연속으로 났다. 고인이 된 세 분의 부고를 받고 장례에 참석을 하니 이 세분의 죽음이 모두 특이하다. 한분은 절친한 친구의 어머니로 구순을 곧 바라보시는 분이였는데 돌아가시기 전 날까지 식사 한 끼 거르는 법 없는 아주 건강한 분이셨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을 버리셨단다. 이분이야 말로 오복 중에 첫째로 치는 사의 복을 누리셨고 허물없이 잘 살아가는 이남삼녀의 자식들과 많은 손자손녀들을 두고 궁핍함 없이 평생을 아주 잘 살아오신 오복을 타고 나신 분의 호상(好喪)인지라 상가는 분위기가 초상집 같지 않고 상주들도 문상객 맞기에 웃음기가 도는 화기애애한 축제 같은 초상이었다.
또 다른 한 분은 오년 선배 되는 분의 남편으로 개업 한의사로 우리지방에서는 지명도도 높은 실력 있는 한의사였는데 선배가 하루 마실 나갔다 오니 남편이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한다. 아직 환갑도 맞지 못한 젊은 생을 스스로 마감한 것이다. 너무도 참혹한 죽음이고 상상도 하지 않았던 어이없는 죽음인지라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상가는 처절한 비통에 잠겨 있었고 그 애통함이 극을 달리고 있었다.
또 한분은 팔순 노인인데 이분이 밭두렁 태우기를 하다가 갑자기 불어온 세찬 돌풍에 불길이 산을 타고 오르자 불길을 감당할 수 없어서 다급하게 피한 곳이 바람 골을 따라온 거친 불길 속이었다. 노인은 곧바로 화마에 휩싸여 변을 당한 것이다. 아들이 한 분 계시지만 지체가 부자유한 상태라 휠체어 신세를 지는 나날이었고 노인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딱한 가정이었다. 순간의 방심과 실수가 생명을 앗아간 죽음, 역시 참혹한 죽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한다. 틀림없는 진실이다. 사실 나도 소년시절 죽음에 대한 공포에 몹시도 두려워한 적이 있었다. 어둠이 너무도 무서워 변소에 혼자가기가 그렇게 두려웠었다. 차차 나이가 들어가며 죽음에 대한 호기심에 고대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책들을 섭렵한 적도 있었다. <사자의 글(書)>이나 <마누의 법전(法典)>, <오딧세이어> 또 바빌로니아의 <에레슈키갈 신화>등에 심취하기도 하였지만 성장기가 지나고 성년으로 성숙함에 따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호기심으로 희석되어 갔다.
하지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황천(黃泉)으로 떠날 때마다 차츰 신변의 적요(寂寥)함을 절로 느끼게 된다. 나 또한 자신의 생명의 궁극(窮極)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곳까지 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건 아무도 모르리라. 단지 바라건 데 옛사람들이 말하는 오복이나 누렸으면 가없는 명활 한 삶이 아닌가 하는 가소로운 생각도 하지만, 시절 하수상하니 모두가 부질없는 꿈이련가 보다.
반넘어 늙었으니 다시 젊든 못하여도
이 후나 늙지 말고 매양 이만 하였고자
백발아 너나 짐작하여 더디 늙게 하여라
이명한(1595~1645), 자는 천장, 호는 백주, 병자호란 뒤에 척화신의 한 사람으로 심양에 끌려가 억류되었다가 풀려나 세상을 비관하고 은퇴하였다. 시와 문장에 뛰어났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2004, 03, 26
김 명 수
잊혀져 가는 풍경
한 오백년 / 노래 장사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