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는 괴상하고 무섭게 생긴 괴물들이 달려들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손에 검이 있었으나 무술을 익히지 못한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잡아먹을 듯이 달려드는 놈들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순간 자신의 앞쪽으로 크게 입을 벌리며 괴물이 뛰어올랐다.
크크크...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을 덮치자 깜짝 놀란 그는 자신도 모르게 검을
들어 앞으로 찔렀다. 그러나 놈은 치우를 비웃는 듯이 옆으로 피하며 바닥에
네 발로 떨어져 으르렁거리다 다시 차고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다른 놈들도
치우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덤벼들었다.
"아....악!!"
치우는 갑자기 여러 군데서 놈들의 공격을 받자 당황했다.
치우는 앞쪽에서 목을 노리고 한 놈이 달려들자 자신도 모르게 검을 회전시키며 쳐냈다.
이것은 뇌전심법에 의해 막개가 치우에게 전수한 칠성지연검 중 원중검으로
강한 회전력을 이용하여 적을 제압하는 검법이다. 아직 치우는 내력운행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큰 힘이 실리지 않았으나 괴물들에게는 큰 효과를
걷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앞쪽에서 달려들던 놈의 머리가 잘려서 날아가자 옆에서 달려들던 놈들도
잠깐 주춤했다. 그러나 놈들의 붉은 눈빛이 더욱 흉폭 스럽게 변하며 갈고리같은
팔을 들어 치우를 내려쳤다.
또다시 순식간에 위기에 몰리자 치우는 다시 한번 검을 회전시키며 막으려 했다.
그러나 이번의 회전은 말 그대로 그냥 검을 돌리는 것뿐이어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아...아야"
괴물의 날카로운 손톱이 치우의 팔을 할퀴고 지나갔다.
처음에 괴물을 막은 방법은 자신도 모르게 칠성지연검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직 검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치우가 계속 칠성지연검을 펼친다는 것은
무리였다. 자신도 모르게 검을 회전시켜서 괴물을 죽이자 또다시 검을 회전시켰지만
그것은 처음의 동작과 힘에서 많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괴물들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지 못하고 팔을 다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
괴물의 무서운 공격은 치우의 가슴을 치고 들오 온 공격이었는데 검을 돌리던 치우의 팔에
맞은 것이다. 만약 가슴에 공격을 당했다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서 살아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크아아아....크크크크....
치우의 팔에서 붉은 피가 튀기자 피 비린내를 맡은 괴물들이 괴성을 질러대며 더욱
사납게 덤벼들었다. 이제는 치우를 덮쳐오는 놈들이 한 두 놈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붉은 눈을 번뜩이며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아! 하느님!! 이렇게 죽는구나!'
눈앞에 시커멓게 몰려드는 괴물들을 보며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자신의 모든 힘을 모아서 다시 검을 휘둘렀다.
옆쪽에서 튀어오르며 공격하던 놈이 치우의 검에 맞고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왼쪽에서 들어오는 놈까지 막는 것은 그에게 무리였다. 어느새 다가온 놈이 치우의
팔을 물었다. 그리고 앞쪽에서 또 다른 놈이 치우의 다리를 기다란 손으로 잡아챘다.
"으아아악!!"
치우는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괴물에게 물린 팔이 너무도 아파서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놈이 그의 다리를 잡아채서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치우가 쓰러지자 주위에 있던 다른 괴물들이 괴성을 지르며 하나 둘씩 달려
들기 시작했다. 치우는 송곳 같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드는 괴물들
보며 정신을 잃었다.
막개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인지 아님 본능적으로 괴물들과 싸우는 것인지 자신도 모를 지경이었다. 내력은 고갈되어 더 이상 끌어올리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아니 자신은 이렇게 여기서 뼈를 묻어도 상관없지만 치우만은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그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괴물들은 집요하고 사납게 공격해 왔다.
막개의 검 아래 죽어 나간 숫자만도 30여 마리가 넘어갔지만 놈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인해전술이라도 쓰는 듯 한 놈이 죽어 나가면 그 다음 놈이 공격해오고 그 놈이 죽으면
그 다음 놈이 불나방처럼 덤벼들었다. 놈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존재 같았다.
놈들의 집요한 공격아래 막개 또한 무사하지는 못했다.
이미 온 몸이 놈들의 손톱에 의해 채찍질을 당한 것처럼 수 십 개의 핏줄기가 생겨났고
다리와 팔에 깊은 상처가 생겨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괴물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을 때였다.
치우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이런! 놈들의 공격을 막느라 치우를 생각하지 못했구나!'
그는 칠성지연검 중 일천무(日天舞)라는 초식을 전개하여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세 놈을 베고 재빨리 치우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그가 치우게게 달려갈 때는 이미
바닥에 쓰러진 치우를 괴물들이 올라타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 놓고 있을 때였다.
괴물들은 마치 맛있는 먹이를 먹으려는 듯이 괴성을 질러대며 치우의 몰려들었다.
막개는 치우의 처참한 광경을 보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가슴속에서
불화산이 끓어오는 듯 분노에 휩싸여 천둥 같은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 갈(喝)!!"
칠성보를 이용하여 빠르게 달려들며 사자후(獅子吼)로 소리치자 동굴이 들썩거렸다.
막개의 거대한 외침에 동굴에 몰려있던 괴물들이 한 순간 놀라서 주춤거렸다.
어떤 놈은 놀라서 자빠지는가 하면 어떤 놈은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놈들까지 생겼다.
괴물들의 잠깐 주춤거리자 그는 칠성보를 빠르게 밟아 다가서며 치우에게 몰려있는
괴물들 향해 가장 강한 살수를 전개했다.
그가 전개한 것은 파천일살(波天一殺)이라는 초식으로 칠성지연검의 마지막에 실린
가장 강하고 자인한 살수였다. 이것을 한번 전개하면 이 검법이 전개된 십 여장 안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적도 친구도 구분이 없는 가장 강하고 잔인한
수법이어서 막개 자신도 이번에 쓰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것은 여태 칠성지연검의 마지막까지
펼쳐 볼 만한 상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수법이 너무 무섭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법을 시행한 당사자 또한 많은 내공을 소모하기 때문에 위험천만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막개가 그 무시무시한 검법을 전개한 것이다. 그의 분노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이 검법을 잘 못 시행한다면 치우 뿐만 아니라 자신도 살아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막개의 사자후에 잠깐 주춤거렸던 놈들이 금새 정신을 차리고 막개와 치우에게
다시 달려들려 할 때였다. 어둡던 동굴에 새파란 광채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 빛은 막개의 검 끝에서 시작되어 동굴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운 파란 빛 이었다. 그 빛에 끌려 괴물들은 모두 멍한 시선으로 막개의
검을 바라보았다. 괴물들에게는 무척이나 신기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순간!
막개의 검에서 퍼지던 파란빛이 수 십 가닥으로 갈라지더니 빠르게 괴물들의 몸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앙..........크아아앙.....크크크
밝고 아름다운 빛에 넋을 잃고있던 괴물들은 빛줄기에 몸을 관통 당해 검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다. 자신이 어떻게 죽어 가는지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며 한 놈씩
쓰러져 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피는 붉은 색이 아닌 검은 색이었다. 마치 검은
기름이 몸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아 살아있는 생물이 죽어 가는 것 같지 않았다.
어두운 동굴 속에 역겨운 비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치우에게 달려들었던 놈들은 이미 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터져서
죽어갔고 막개 주위에 몰려들던 놈들도 수십 가닥으로 몸이 갈라져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막개와 치우의 주위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던 놈들은
팔과 다리에 상처를 입었을 뿐 죽지는 않았다. 무서운 검법에 놀라서 자신들이
들어왔던 동굴로 뿔뿔이 흩어지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괴물들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이 검법이 제대로 전개가 되었다면 살아서 달아나는 놈들은
있을 수 없었다. 살아서 도망간 놈들이 있다는 것은 파천일살(波天一殺)이 제대로
전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법은 많은 내공을 필요로하는 검법이다.
그러나 막개가 이 검법을 전개할 당시 이미 그에게 남아있는 내공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검법을 시행했으니 제대로
검법이 먹혔을 리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 검법을 반이나마 펼쳤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이것은 막개의 한계에 다다른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굴엔 수 십 마리의 괴물들 시신이 흩어져 있었다. 놈들에게서 흘러나온 검은 피에서는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역한 비린내가 풍겨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어렵게 검법을 전개한 막개도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그가 버틸 수 있는 한계는
여기까지 였다. 놀라서 괴물들이 도망갔기 때문에 쓰러진 막개와 치우에게는
다행이었다. 이젠 화섭자의 불빛마저 없어서 동굴엔 칠흑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괴물들의 시체에서 풍기는 역한 비린내와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폭포수가 어둠 속에 묻혀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치우가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한동안 알지 못했다. 눈을 떠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커다란 폭포수 소리만 요란했다. 몸을 움직이려하자 고통이 밀려왔다.
"아아아...으..."
왼쪽 팔은 이상하게 감각이 없었고 다리와 몸통이 무척이나 아파 왔다.
진한 고통이 몸에 퍼지자 그제서야 어떻게 된 것인지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괴물들에게 공격을 당해서 쓰러졌었지...막개 아저씨는 어떻게 됐지?'
정신을 잃기 전에 상황이 기억이 나자 막개가 걱정이 되었다.
"막개 아저씨?.......아저씨?...어디 있어요?"
치우가 소리쳐도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 모든 소리들이
흡수된 듯 보였다.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자 치우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온 몸이 아파서 움직이기도 힘들었지만 힘겹게 일어나 앉아서 자신의 품을
뒤졌다. 마지막 남은 화섭자를 찾기 위해서 였다. 동굴은 너무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화섭자가 손에 잡혔다.
치치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밝게 타올랐다. 화섭자의 밝은
불빛이 동굴 벽에 반사되어 다시 밝아졌다.
치우는 잠시 밝은 빛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동굴을 둘러보던 그는 처참한 광경에 속이 울렁거렸다.
동굴엔 수많은 괴물들의 시신이 뒹굴고 있었는데 모두 그 모습이 처참했다.
어떤 놈이 목이 잘렸고 어떤 놈은 팔이 그리고 내장이 터져서 죽은 놈들도 있었다.
그리고 괴물들에게 흘러나온 검은 피에서는 숨쉬기조차 힘든 역겨운 냄새가
풍겨 나와서 참을 수 없었다.
끔찍하고 역겨움에 정신없던 치우의 눈에 막개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동굴에 한 쪽 구석에 쓰러져 있었는데 온몸이 피투성이 었다.
그 모습을 본 치우는 놀라서 달려갔다.
"아저씨!!"
쓰러져 있는 막개를 살펴보던 치우는 인상을 썼다. 그의 모습은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왼 쪽 팔은 반이 떨어져 나가서 하얀 뼈가 들어나 보였고
옆구리는 터져서 내장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버려서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지 막개 아저씨 머리는 검은 색인데...'
치우는 자신의 상처도 가볍지 않았지만 이대로 막개를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옷을 찢어서 막개의 터진 옆구리를 감싸고 피가 흘러나오는 곳을
지혈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상처가 너무 깊고 여러 군데라 어떻게 막기가
힘들었다. 치우가 상처에 손을 대자 고통에 인상을 쓰며 막개가 눈을 떴다.
"아저씨!!"
"으...사...살...았구나! 그래..."
"아저씨 괜찮아?"
막개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치우를 쳐다봤다.
"노...놈..들은?"
"몰라. 도망간거 같아."
"그...래....놈들이.......다...."
"뭐라고?"
막개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고통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막개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자 걱정된 치우가 그의 입가에
귀를 갖다대었다. 무슨 소리인가 자세히 듣기 위해서였다.
"도....도망....놈.....들이....또...올거야"
"놈들이 또 올지 모르니 도망가야 한다고?"
치우의 말을 들은 막개는 희미하게 미소 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일어날 수 있겠어? 자 내 어깨에 손을 짚어"
막개의 말을 알아들은 치우가 부축해서 일으키려하자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왜 그래?"
"나....난...못..간다"
"무슨 소리야? 아저씨가 안가면 나도 못 가!"
막개의 말에 치우는 소리치며 막개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막개는
고개를 저의며 치우에게 힘겹게 말했다.
"나...난...틀렸다. 더 늦기 전에 어서...제발..."
막개가 안타까운 듯이 말하며 바라보자 치우도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생각해 보아도 살아있는 막개를 이곳에 버려두고 혼자 도망갈 수는
없었다. 그가 다시 막개를 달래기 위해 말하려고 할 때였다.
크크크크크....
또다시 동굴에 그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도망갔던 놈들이 다시 막개와 치우를 노리고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젠장할 놈들이...."
괴물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은 치우는 얼굴이 질리다 못해 굳어졌다.
막개 또한 놈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얼굴이 더욱 일그러지며 치우를
재촉했다.
"빠...빨리...치우야....어서 도망가라!"
막개의 말을 들은 치우는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싫어! 같이 가지 않음 나도 안가!!"
그라고 지금 도망가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치우는 막개의 어깨를 부축하며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러나 이미
모든 힘을 잃은 막개를 일으켜 세우기는 쉽지 않았다.
"힘을내!"
치우가 고집을 피우자 막개는 할 수 없이 고통을 참아가며 힘을 내려 했다.
계속 이렇게 시간만 보내면 괴물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공격당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서든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치우와 막개는 부상당한 서로의 몸을
부축하며 동굴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괴물들이 다가오는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크크크크크....
놈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더욱 크고 가깝게 들려왔는데 숫자가 더욱 불어난
것 같았다. 놈들은 처음 공격할 때 왔던 그 동굴들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힘겹게 치우는 막개를 부축하며 괴물들이 다가오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둘 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 천천히
걷다가는 금방 괴물들에게 잡히고 말 것이다. 답답하고 초조해진 치우는
걸음을 재촉하며 동굴 주위를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그들이 피할 수 있는
곳이 없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쉽게 그런 장소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크크크크크...
괴물들의 소리는 더욱 사납고 거칠게 들려왔다. 금방이라도 동굴에서 뛰쳐나와
그들을 덮칠 것 같이 가깝게 들렸다.
'큰일이다! 놈들이 코 앞 까지 왔다. 아....이대로....'
절망에 빠진 치우는 마지막으로 화섭자를 들고 동굴 안을 더 비추어 보았다.
그때 쏟아지는 포폭수의 물줄기 뒤쪽에서 불빛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다른 동굴 벽들처럼 화섭자의 불빛을 반사하는지 알고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보니 불빛이 더욱 선명하고 밝게 빛나는 것이 이상해 보였다.
그리고 거대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뚫고서 그런 빛이 반사되어서 나온다는 것이
더욱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치우는 더 생각해 볼 것 없이 폭포수 물줄기 뒤쪽으로
움지였다. 물기 때문에 바위들이 미끄러워서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막개까지 부축하고 물줄기 뒤쪽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막개을 자신의 등에 업혀서 묶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바지와
웃옷을 벗어서 그것을 이용해 막개와 자신을 묶었다. 막개는 고통 때문에 정신을
잃어 움직이지 않았다.
폭포수까지 가기는 쉽지 않았다. 기괴하게 자란 종류석들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물기 때문에 올라가다 미끄러지는 수가 많았다. 그렇게 치우가 자신의 온
힘을 다해 폭포수를 향해 올라 갈 때 괴물들이 동굴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크크크크크......
놈들은 동굴에 들어오자마자 코를 벌름거리며 치우와 막개를 찾기 시작했다.
세 개의 통로를 통해서 들어온 괴물들의 숫자는 무척이나 많았다.
얼핏보아도 30여 마리가 넘었다. 놈들은 자신들 동족의 시체를 보자 더욱 흥분이
되어서 괴성을 질러대며 동굴 안을 이리저리 날뛰며 소란스럽게 굴었다.
어떤 놈들은 자신 동족들의 시체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는가하면 검게 흘린 피를
혀로 핥는 놈들까지 있었다.
치우는 어렵게 폭포수 물줄기의 불빛이 반사되는 곳까지 거의 다 올랐다.
아래쪽을 보니 괴물들이 괴성을 지르며 몰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직은 자신들이 위에 있어서 들키지 않았으나 놈들이 찾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어떻게 해서든 괴물들에게서 멀어져야 했다.
불빛이 반사되는 물줄기 뒤 쪽으로 다가간 치우의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물줄기 뒤쪽에 동굴이 뚫려 있었던 것이다. 동굴은 화섭자의 불빛에 이상하게
반응을 하며 밝게 빛났는데 벽 쪽에 붙어있는 광물들 때문이었다.
벽에 붙어있는 광물은 광명석(光明石)의 일종으로 작은 빛에도 반응을 잘하는
돌이다. 이 돌은 야광주와는 다르게 빛이 있어야 그 빛을 이용해서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종류의 돌이다. 이 돌은 작은 빛에도 잘 반응을 해서
치우의 화섭자의 불빛이 폭포수를 비추자 유난히 밝게 빛난 것이다.
동굴을 발견한 치우는 기뻐하며 괴물들에 들키기 전에 동굴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아래쪽의 괴물들이 소란스럽게 괴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크크크크크....크아아아앙....
무슨 일인가 아래를 내려다 본 치우는 놀라서 잘 못하면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어느새 놈들이 치우와 막개의 위치를 알아차리고 기어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젠장!'
더 지체하다가는 놈들의 먹이가 될 거라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치우는 더 생각할 것 없이 폭포수 뒤쪽의 동굴로 들어갔다. 그러나 괴물들은
너무나 빨랐다. 순식간에 바닥을 차고 올라오는데 마치 날아오는 것 같았다.
놈들은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 때문에 미끄러지지도 않고 탄력적으로 튀어 오르며
폭포수까지 다가왔다. 다행히 폭포수 주위가 좁아서 많은 놈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뛰어올라온 놈들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들어내며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었다.
크크크크아아앙...
놈들의 공격은 집요하고 날카로와서 함부로 막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치우는
폭포수 뒤쪽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입구를 막고 있었다. 동굴 입구가 협소하여
괴물들이 여럿이서 덤벼들 수 없었다. 한 두 마리가 간신히 자신들의 긴 팔을
이용하여 공격을 해 왔는데 그럴 때마다 치우가 검으로 쳐내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는 치우 자신도 장담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를 더욱 암담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 있는 동굴이 그리 깊지
않다는데 있었다. 처음 치우가 발견 할 때는 그저 어디든 피하고자하는 마음
뿐이어서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지금 동굴 안으로 들어와 보니 사정이 달랐다.
광명석에서 반사되는 불빛이 무척이나 밝아서 동굴 내부를 모두 볼 수 있었는데
그 깊이가 십여장 밖에 되지 않은 막힌 굴이었다. 그래서 괴물들을 피해
더 깊히 달아 나려해도 그럴 수 없었다.
계속해서 날카로운 손톱을 이용하여 괴물들이 공격해 오자 치우도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이미 몸에 작지 않은 부상을 입었고 왼 쪽 팔은 거의 힘을 쓸 수 없었다.
오른 쪽 손으로 괴물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온 몸이 짜릿하게
아파 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정신을 잃은 막개는 계속 혼수상태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실 그가 깨어난다고 해도 도움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계속 이렇게 공격을 당하다가는 힘들겠다.'
잠시 그가 생각하는 중에 괴물 한 놈이 동굴 안으로 몸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놈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들어내며 치우를 덮치듯이 치고 들어왔는데 그 몸놀림이
무척이나 빨랐다.
잠깐 사이 놈의 시커먼 손이 치우의 가슴을 노리고 달려들자 깜짝 놀란 치우는
온 힘을 다해 검을 밀어 넣었다. 협소한 동굴이어서 치우의 검이 그대로 괴물의
가슴을 뚫고 지나가자 고통에 찬 울음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앙"
그러나 놈은 검에 가슴을 찔리고도 붉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계속해서 치우에게
달려들었다. 놈이 날카로운 손톱을 이용해서 치우의 가슴을 향해 내리치자
깜짝 놀란 치우가 동굴 뒤로 물러서며 발을 들어 걷어찼다. 그런데 용케 발로
찬 것이 치우가 꽂은 검 손잡이에 맞에 더욱 깊이 검이 괴물 가슴에 꽃히게
되었다.
"커...컹!"
더 깊이 검이 가슴에 꽂히자 놈은 붉은 눈을 부릅뜨고 그대로 앞으로 무너져
버렸다. 괴물의 가슴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무척이나 역겹고 고약해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괴물 한 마리가 쓰러지자 뒤에서 기회만 엿보고 있던 다른 놈들이 괴성을
지르며 동굴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놈들은 서로 자기가 먼저 들어가려고 몰려들어
좁은 동굴 입구가 금새 막혀 버렸다. 괴물들은 덩치도 컸고 팔과 다리가 길어서
좁은 동굴에 들어와서는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치우는 또다시 한 놈이 동굴 안으로 들어오자 검을 앞으로 찔렀다. 그러나 이번에
들어 온 놈은 쉽지 않았다. 날카로운 검이 다가오자 뒤로 물러나며 처음에 공격하다
죽은 괴물의 시체를 끌어당겨 앞을 막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치우의 검은
죽은 시체의 가슴에 다시 꽂히고 말았다.
"크크크크릉"
치우의 검이 빗나가자 괴물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들어내며 으르렁 거렸다.
놈은 으르렁거리며 쉽게 달려들지 않았는데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 같았다.
치우 또한 놈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여 검을 들고 경계하며 뒤로 한발자국씩
물러났다.
그때였다.
"크크크앙!!"
괴물이 크게 울부짖으며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자신이 잡고 있던
고물의 시체를 치우를 향해 냅다 던지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묵직한 물체가 시커멓게 덮쳐오자 깜짝 놀란 치우가 뒤로 피했지만
한발 늦어 시체에 맞아서 그만 뒤로 넘어져 버렸다.
"으악!"
그 순간을 놓칠리 없는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뛰어올랐다. 놈은 그대로 치우의
가슴을 향해서 무쇠 같은 팔을 내리쳤다. 정말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치우는 자신의 가슴에 무서운 압력이 다가오자 깜짝 놀랐다. 넘어지는 바람에
검도 놓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괴물의 공격은 무척이나 빠르고 무지막지하여
막기가 힘들었다.
"아!"
위기의 순간!
괴물의 공격에 빠르게 덮쳐 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치우의 앞으로 나서며
공격을 막았는데 괴물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 버렸다.
"크크크아!!!"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화가 난 괴물이 공격을 막은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은 쓰러진 사람의 위로 뛰어올라 그의 팔을 물고 늘어졌다. 괴물의 날카로운
이빨에 물린 팔에서는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고통에 찬 외침이 동굴에
울려퍼졌다.
"아아아아!!"
괴물의 공격에 잠신 정신을 못차리고 있던 치우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괴물에게 당하자 놀라서 소리쳤다.
"안돼!! 막개 아저씨!!"
괴물의 공격을 막아 준 것은 막개였다. 잠시 정신을 잃고 있다가 치우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자 아픈 몸을 이끌고 괴물의 공격을 막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무사 할 수 없었다. 다친 몸으로 괴물의 무지막지한 힘을 감당해 낼 수 없었다.
"크크크크아아아앙"
막개 위에 올라탄 괴물은 괴성을 지르며 막개의 팔을 잡아 뽑아내서 입으로 가져갔다.
놈은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팔을 들고서 입으로 아삭아삭 씹어 먹으며 으르렁 거렸다.
피 비린내가 동굴에 퍼지자 좁아서 동굴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던 다른 괴물들이
미친 듯이 소리치며 비좁은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워낙 좁아서 한 놈만
겨우 들어와 막개의 나머지 한 쪽 팔을 뽑아서 먹기 시작했다.
"안돼!! 이 놈들!!"
치우는 막개의 처참한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소리 쳤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이글거렸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잡고 괴물들을 향해 덮쳐갔다.
"크크크아아앙"
식사에 열중하고 있던 괴물들은 치우가 소리치며 공격해 오자 으르릉 거리며
덤벼왔다. 한 놈은 아직도 뜯고 있던 막개의 팔을 휘저으며 달려들었는데 그 광경을
본 치우는 화가 나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놈들!! 모두 죽여 버릴 거야!!!"
오직 분노에 싸인 치우의 검이 회전하며 괴물들을 향해 공격하자 그 기운이 무척이나
날카롭고 무서웠다. 막개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치우가 자신도 모르게 전수 받은
칠성지연검을 시전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검의 이치가 그렇듯 칠성지연검 또한
무상무념(無想無念)의 경지에서는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치우는 막개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괴물들을
죽이겠다는 일념만 있을 뿐이었다. 그 일념은 무상과도 통하는 이치였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뇌전심법(腦傳心法) 통해 전해 받은 칠성지연검을 펼친 것이다.
매서운 기운이 덮쳐오자 깜짝 놀란 괴물들이 기겁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더 불행이 되어 버렸다.
치우가 펼친 것은 칠성지연검 중 일천파(日天波)라는 초식으로 한번 공격하면
계속해서 앞으로 치고 들어가는 수법이었다. 이 초식은 모두 12초로 되어있는데
이 12초가 모두 끝날 때까지 오직 공격 일변도로 무섭게 돌진하는 검법이라
상대가 뒤로 밀리면 밀릴수록 더욱 무서워지고 매서워진다.
엉겹결에 뒤로 도망치던 괴물들은 치우의 검이 하얀 괴적을 그리며 덮쳐오는
것을 보며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커컹!!"
"캉!!"
순간에 괴물 두 마리의 목이 잘려나갔다. 잘려나간 몸통에서 검은 핏줄기가
치솟아 올랐다. 지독한 비린내를 풍기며 거대한 두 몸둥이가 동굴에 쓰러졌다.
동굴 안은 다시 암흑에 잠겼다.
괴물들의 공격에 의해 화섭자의 작은 불씨가 모두 꺼져버린 것이다.
자신의 검 아래 두 놈이 순식간에 잘려나가자 치우도 놀랐다. 그러나 이내
막개를 찾기 위해 바닥을 더듬었다. 화섭자의 불이 없어서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을 몇 번 더듬어서야 차가운 막개의 몸을 찾을 수 있었다. 이미 그에게서는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양팔은 이미 뜯겨져 나가고 몸통만이 어둠 속에서
만져졌다. 차가운 그의 몸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저씨!!"
막개의 시체를 끌어안고 치우는 소리쳐 울었다. 어둠 속이라 막개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 때문에 이렇게 죽어갔다고 생각하자 더욱 서럽고 슬펐다.
처음 그와 만났을 때가 생각나고 초개와 같이 지내던 생각까지 머리 속에 겹쳐지자
더욱 슬펐다.
"왜...왜... 나에게 왜......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치우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소리쳤다. 하늘에게 소리치는 것인지 신을 향해 소리치는
것인지 자신도 몰랐다. 그저 이렇게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으면 자신이 못 견딜 것
같았다. 한동안 그의 서글픈 울음이 어두운 동굴에 깊게 울려 퍼졌다.
그의 슬픔을 함께 하려는 듯 폭포수의 굉음이 동굴에 가득 차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