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데뷔한지 12년이 지났죠. 그래도 중간 중간 많이 쉬어서 연기를 할 때면 늘 새로워요.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하니 신인처럼 공부하고, 연습하고, 도전하는거죠."
최근 MBC-TV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연출 장근수)를 통해 제대로 '욕'먹고 있는 지수원을 지난 9일 만났다. 자신을 향한 '욕'은 연기에 대한 '칭찬'이나 다름없다며 너스레를 떨던 지수원. 그는 이제야 연기의 '진맛'을 알겠다며 수줍게 말을 이었다. 1993년 영화 '투캅스'부터 2006년 드라마 '있을 때 잘해'까지, 지수원의 12년을 되짚었다.
◆ '투캅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더라? 지수원 역시 비슷한 경우다. 1993년 영화 '투캅스' 1편으로 스타덤에 올랐으니 '벼락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우연한 계기였어요. 대학시절 모델로 활동-당시 지수원은 '럭키금성(지금의 LG)' 전속 모델이었다-하다 우연히 영화 관계자의 소개로 오디션을 보게 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 없이 뛰어 든건데…."
지수원은 문자 그대로 '경험삼아' 외도를 했다. 배우에 대한 뜻은 애시당초 없었다. "강우석 감독의 새 영화인데 출연배우가 안성기씨와 최민수씨(나중에 배역이 최민수에서 박중훈으로 바뀌었다)래요. 일전에 강우석 감독님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느냐'를 인상깊게 봤거든요. 게다가 당대 최고의 배우 안성기, 최민수와 함께 연기를 한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 오만
원래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줄 모른다. 지수원이 꼭 그랬다. 아무런 겁이 없었다. "그 유명한 배우들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그냥 해봤죠. 아무런 준비없이 영화를 찍었는데 눈 뜨고 나니 연기자가 됐더라고요. 개봉 첫날 극장을 찾았는데 완전 매진사례.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을 더 우습게 생각했는지 몰라요. 그냥 되는구나 생각했죠."
그랬다. 이때만 해도 지수원은 어렸다. 인생에 굴곡이 없었기에 무엇이든 쉽게만 생각했다. 스스로도 오만하고 자만했다고 인정한다. "실패요? 이때까지 제 사전에 '부정'은 없었어요. 실패를 안했기에 그저 다 잘 될거라 자만했죠. 그래서 영화도 준비없이 뛰어 들었어요. 연기요? 그냥 하면 되겠지하고 우습게 본거죠. 그 아픔을 겪기 전까지 말이예요."
◆ 좌절
하지만 인생에 탄탄대로는 없다. 언젠가는 흙탕길도 만나고, 낭떨어지도 만난다. 지수원은 정확히 2년뒤 1995년에 낭떨어지를 만났다. 영화 '사랑하기 좋은 날'을 통해서다. "첫날 개봉관을 찾았죠. 극장에 들어가는데 한 여직원이 '지수원씨 어떡해요? 사람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전 장난인줄 알았어요. 한데 극장문을 여는 순간…. 정확히 10명이 앉아 있더군요."
지수원은 당시 엄청난 자괴감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연기를 그만두자고 마음먹은 것도 그맘때라고. "'그래, 내가 무슨 연기야. 그냥 그만두자. 어차피 연기에 뜻도 없었잖아' 그렇게 도망칠 궁리만 했어요. 준비없이 뛰어든 제 잘못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핑계를 찾았죠." 지수원은 그렇게 영화 '헤어드레서'를 끝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 은퇴
물론 아무도 모르는 은퇴였다. 일명 혼자만의 은퇴. 지수원은 당장 짐을 싸 미국에 있는 친구를 찾았다. "아무리 뜻없이 시작한 연기라지만 그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긴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다 연예계를 떠나니 처음에는 그렇게 좋을 수 없었어요. 해방감이라고 할까요. 미국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며 국제적인 수다 삼매경에 빠졌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빠져드는 공허함은 왜일까. 지수원은 왠지 제자리를 못찾고 겉도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지수원은 다시 연기가 하고 싶어졌다고. "문득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 조금씩 나아질 수만 있다면 처음으로 돌아가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받을 때까지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악물고 해보자 다짐했죠."
◆ 복귀
2000년. 지수원은 3년간의 방황(?)을 끝으로 다시 돌아왔다. 복귀작은 윤태영 감독의 데뷔작 '베니싱 트윈'. 다소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수원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과감한 노출연기를 선보였다. 후회는 없었을까. 지수원은 오히려 고맙다고 답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왜 찍었냐고 질타를 해요. 아마도 파격적인 베드신 때문인가봐요. 하지만 전 후회없어요. 오히려 감사하죠. 다소 힘든 연기를 펼치며 스스로 규정한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었어요. 제 연기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할까요."
지수원은 영화 '베니싱 트윈' 앞에 '정말 소중한', '결코 잊을 수 없는', '한계를 깨뜨린' 등의 수식어를 달았다. "이전에는 '대충 연기만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어요. 참 무책임했었죠.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준비없이 세월만 보냈어요. 그러나 '베니싱 트윈'때는 달랐어요. 정말 연기가 하고 싶어 택한 작품이었고, 제대로 하고 싶어 노력한 작품이에요. 아마 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낸 최초의 작품인 것 같아요."
◆ '있을 때 잘해'
요즘 지수원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여지껏 '배영조' 역할처럼 집중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 지수원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겸손을 보였다. 아니 더 잘하고 싶다고 의지도 드러낸다. "어떻게 하면 배영조라는 인물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연구하고 분석해요. 힘들지 않아요. 너무 감사하게 일하죠. 하희라, 변우민, 김윤석씨 등을 보며 살아있는 연기를 배울 수 있어 감사하고, 작가님의 대본을 보며 경험할 수 없는 인생을 배울 수 있어 감사해요."
지수원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스스로를 소비하기 보다 많은 부분을 얻어간다며 즐거워했다. '배영조'라는 희대의 악녀때문에 '욕'먹는 게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는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배영조는 어릴적 불우한 환경탓에 극단적으로 삐뚤어졌죠. 역설적으로 말해 배영조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캐릭터예요. 지금은 배영조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돼요. 하지만 나중은 몰라요. 영원한 선도 영원한 악도 없잖아요. 누구나 인생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배영조에게서도 배웠으면 해요. 최소한 저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등이라도…."